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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데일리 [9호] 범전 GT
2015-08-14 15:40:39
NeMaf <> 조회수 1653

8월 13일 오후 다섯시 산울림 소극장에서 오민욱 감독의 ‘범전’상영이 있었다. ‘범전’은 오민욱 감독이 실제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부산의 범전동을 배경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이다. ‘범전’은 과거 존재했던 미군부대 ‘캠프 하야리아’와 사라진 마을(돌출마을) 그리고 붉은 골목(300번지)을 섬세하고 치밀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상영 후에는 이승민 영화 연구가의 진행으로 오민욱 감독과 관객이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제목에 관해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한국어 제목(범전)과 영어 제목(A Roar of the Prairie)이 다릅니다. 제목을 다르게 지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선 기본적으로 영화의 실제 배경이 부산의 범전동입니다. 또한 작품을 통해 범전동이라는 동네가 없어지는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구요. 때문에 한국어 제목은 자연스럽게 ‘범전’이 되었습니다. 영문제목은 직역하면 ‘초원의 굉음’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범전동에 있던 미군부대의 이름이 ‘하야리아’인데,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촬영하면서 포착했던 미세한 소리들이 움직이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착안해서 짓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붉은색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붉은색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의 배경 중 하나였던 300번지는 과거 홍등가였습니다. 홍등가하면 아무래도 붉은색의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죠. 하지만 그 지점에서 착안해 영화의 톤을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홍등가 혹은 양공주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따라오는 일종의 판타지를 내포하고 있는 붉은색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붉은색으로 영화의 톤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촬영을 하다 보니 우리의 일상에 의외로 붉은 색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일반적인 사람들도 많은 붉은색의 것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붉은색은 작더라도 매우 도드라진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구요. 그래서 영화의 톤을 붉은색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살펴보면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구성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구성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범전’같은 경우는 부산에 있는 개발의 풍경을 따라가다가 우연히 만난 공간을 촬영한 작품입니다. 때문에 저도 이 공간에 대해 잘 알고 시작한 작품이 아니고 오히려 범전동을 알아가는 과정을 찍고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이 아닌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범전동이라는 공간이 가진 그 긴 시간을 선형적으로 정리하고 물리적으로 압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방식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때문에 이미지들이 불쑥불쑥 드러나는 방식을 선택해 편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아니어도 기준점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 공간이 나누어져 있기도 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영화를 세 개의 챕터로 나누었습니다. 따라서 영화속 세 개의 챕터는 돌출마을이 사라지고 붉은 골목이 사라지고 그 모습들을 ‘굉음’이라는 소리로 포착한 순간들을 담은 것입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이미지들 중 나무나 철조망처럼 처음에는 모호하게 보여주다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공간을 소개하신 이유가 있나요?

첫 장면의 나무는 과거 이스라엘에서 승리의 징표로 사용된 종려나무입니다. 미군부대 주변에 이런 종려나무가 심어진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종려나무 이외에도 태극기 그리고 동상들 역시 이런 승리의 징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했던 과거의 영상 역시 이런 징표의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부산 시민공원 역시 기념을 위한 징표이구요. 범전동이 이런 기념의 징표 아래에 묻혀있듯이 다른 징표 아래 묻혀 사라진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선명한 징표들은 사실 선명하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게 되는 것이죠. 일상생활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 아래에 숨어 있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의도를 가지고 이런 이미지들을 군데군데에 부분적으로 등장시키게 되었습니다.

 

감독님의 답변을 듣고 보니 일상생활에서 주목하는 순간 선명해지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영화를 보다보니 고양이와 빨래가 계속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양이와 빨래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신 이유가 있을까요?

촬영장 주변에 예쁜 고양이들이 참 많이 있어서 밥도 챙겨주고 그랬었는데 어느 순간 저의 카메라보다 고양이들의 눈이 더 오래 이 공간을 담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고양이의 뇌 속을 볼 수 있다면 아마 범전동의 모습을 가장 오랫동안 담아낸 기록이 그 안에 있지 않을까요? 가장 마지막까지도 그 공간들을 보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범전’이 공간에 관한 작품이긴 하지만 그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인위적으로 배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때문에 고양이들이 작품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빨래 역시 고양이들과 더불어서 그곳에 살고 계셨던 어르신 분들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빨래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빨래 뒤편에 공사시작을 알리는 표기가 쓰인 벽이 있는데요, 때문에 빨래라는 살아가고 있음의 징표와 철거공사라는 끝의 징표가 같은 프레임 안에 대비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이 대비를 ‘범전’의 중심축이 되는 이미지로 사용하고자 반복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범전’에서는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공사장에 놓인 돌 혹은 고양이들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인물을 이렇게 두드러지지 않게 다루신 이유가 있을까요?

촬영을 할 때 여전히 그 곳에 살고 계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인위적으로 배제하고 싶지 않아 인터뷰를 진행했고 영화에 담게 되었습니다.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미군부대라고 하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신 내용들은 영화에 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 그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씀해주셨는데 특정 공간에 대한 역사를 기술할 때 그 공간의 역사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기술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범전동 위에 지어진 부산 시민공원 역시 기념식을 하는데 그 기념식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모두 실제 범전동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는 높은 분들이죠. 그런 부분이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느낀 아이러니를 드러내기 위해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조금 희미하게 편집한 것입니다.

 

결국 ‘범전’은 이 세상의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찍으신 입장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 시대를 살면서 재개발 혹은 공권력에 의한 사건들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항상 그런 풍경들을 찾아 작품을 찍어왔구요. 그런데 이번에 범전을 찍으면서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시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여전히 패배한 풍경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가 이미 잠겨가고 있는 공간을 선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국가와 공권력에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패배한 공간들을 담고 있는 나의 작품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고민 끝에 결국에는 패배하는 공간들을 그저 담아내는 것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는 결론에 다가섰습니다. 극영화처럼 흥미진진한 사건을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라 보는 것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정말 긴 시간동안 존재했던 공간의 시간을 두 시간동안 보는 게 많이 힘든 일은 아니잖아요. 물론 언론을 통해서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 접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패배하는 풍경들을 조금 다른 톤으로 잡아내는 것에 의미를 찾아가면서 ‘범전’의 편집을 마쳤습니다.

 

 

진행  |  이승민 영화연구가

참여작가  |  오민욱 감독

기록  |  윤하영 루키

사진  |  김재아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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