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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데일리 [9호] [네마프토크] 공간의 전복적 전유
2015-08-14 15:41:43
NeMaf <> 조회수 2583

8월 13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오민욱 감독의 ‘범전’의 상영이 있은 후, ‘공간의 전복적 사유’라는 주제로 이승민 영화연구가의 네마프토크가 진행되었다. 이번 네마프토크에서는 ‘범전’을 비롯해 최근 실험적인 한국 다큐멘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승민 영화연구가는 일련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공간이 주인공이 되는 특징을 지적하면서 공간이 영화와 접목될 때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해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강연 이후에는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강연을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다.

 

 

새로운 ‘공간’의 등장

기존에 다큐멘터리에서 ‘공간’이라는 것은 ‘배경’ 혹은 ‘지명’으로서의 역할이 가장 중심이 되어왔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공간’은 또한 ‘현실성’이 매우 강조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 공간에 직접 방문하고 진행 중인 사건을 직접 겪어보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방식이 가지고 있는 한계들이 지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왜곡된 사실이 화면에 담겨지거나 혹은 관객들로 하여금 부채의식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공간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 전개되고 있는데, 사건 전후의 공간을 방문해서 이미지를 채집하고 분류한 후 다시 모아내는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공간은 종속적인 요소에서 벗어나 직접적으로 감응의 매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의 작품들은 ‘범전’처럼 탈서사화되어 있고 표면적으로 이미지에 접근하지만 그 안에서 영화적 언어를 통해 이면으로 접속한다는 점 그리고 계몽적이기 보다는 내면적이고 사색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특징들을 ‘공간 이미지’로 명명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공간이미지’

먼저 ‘공간이미지’의 등장배경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공간은 항상 존재했었지만 ‘범전’의 경우처럼 맥락 없이 탈서사화되어 사색과 성찰을 유도하고 그와 동시에 비인칭적인 공간은 매우 특징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간이 왜 영화에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공간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사건 없이 비어있는 이미지입니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미지는 사건이 끝난 후일수도 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일수도 있습니다. 카메라는 비어있는 이미지를 롱테이크 같은 기법으로 파고드는 게 아니라 표면적으로 보여주게 되죠.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관객들은 공간의 이면에 접속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공간이 그 자체로 서사를 품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서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즉 감응을 품도록 도와줍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하나의 공간을 오래 응시하고 관찰하면서 공간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그 공간이미지는 공간을 유기적이며 독자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 때의 공간이미지는 계몽의 의도보다는 사색을 위한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공간 이미지’의 특징

그렇다면 이런 ‘공간이미지’들에게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맥락을 해체한다는 것입니다. ‘공간이미지’는 이미지들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사건이 부재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현재의 충실하면서 역설적으로 과거를 호출해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즉자적이고 독자적이라는 것입니다. 롱테이크와 클로즈업 등을 통해 공간이 그 자체로 드러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때 카메라를 든 사람의 주관이 섬세하게 그 공간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감독이 전면에 나선다기보다는 관객이 직접 그 공간과 대면할 수 있도록 이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다차원성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간이 하나의 시간이 아닌 두터운 시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고 인과관계에서 일탈하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간성이 탄생합니다. 공간이미지는 관계, 기억, 역사를 소환하여 살아있는 유기적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네 번째 특징은 비인칭적인 시선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 시선은 무작위적인 시선과는 다릅니다. 시선 안에 주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인칭의 비인칭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할 수 있겠네요. 이런 시선은 안팎 구분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시선과 공간의 시선이 융합되면서 공간자체를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한국 다큐멘터리 속 ‘공간 이미지’

이번에는 ‘공간이미지’들이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재개발의 공간입니다.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느냐는 다큐멘터리의 중심 과제이기도 하죠. 아마 지금도 밖을 나서면 어렵지 않게 공사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재개발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재개발의 논리는 자본주의의 논리입니다. 때문에 공간 역시 ‘투자’라는 자본주의적 논리로 파악할 수밖에 없어지죠. 그러한 공간을 ‘폐허’라는 공간이미지로 보여주면서 새로운 공간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은폐된 역사적 공간 역시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트라우마를 공간 이미지로 소환하는 것인데 기억이 가진 파편적인 특성을 공간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반(反)기념비적 공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범전’의 기념공원도 그렇고 기념공간이 진정한 기념의 의미를 담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죠. 이런 유령화된 기념의 공간을 공간이미지를 통해 불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QnA

강연을 통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공간이미지들은 이미 사라진 공간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공간이미지를 사용하는 의의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최근에는 이사를 다니고 하다보니 장소감이라는 것이 많이 사라졌죠.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들도 많이 사라졌구요. 그런데 오히려 그러다보니 공간성이 더 부각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통해 자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상품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질문자 분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박탈당한 공간 그리고 죽어있는 공간을 살아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공간이미지의 의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연  |  이승민 영화연구가

기록  |  윤하영 루키

사진  |  여준석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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