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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데일리 [4호] [네마프토크] 핀란드 미디어아트의 역사와 현재
2016-08-07 14:13:22
NeMaf <> 조회수 769

 

8월 6일 오후 6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핀란드 미디어아트 역사와 현재>라는 제목으로 ‘AV-아르키’ 연구원 티티 란타넨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티티 란타넨은 핀란드 미디어아트를 발굴하고 배급하는 민간 기관 ‘핀란드 미디어아트 배급센터 AV-아르키’의 연구원이자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하는 강연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Pre-history" of the Finnish media art

 

 우선 역사적인 배경을 말씀 드리면, 비디오아트는 많은 부분이 실험적인 영화 덕분입니다. 비디오아트는 핀란드에 매우 서서히 들어오게 됐는데요, 이 이야기에 앞서 많은 아방가르드 영화제작자들이 있습니다. 196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매우 밀접한 제작자들이었고, 이들이 부르주아를 자극하길 원했던 거죠. 많은 다른 서양 국가들이 큰 위기를 겪는 시기였듯이, 핀란드에서는 1960년대의 영화산업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형 스튜디오와 박스 오피스의 시대는 1950년대로 끝이 납니다. 시네마 영화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예술의 형태로 인정받기 위해서 고군분투합니다. 동시에 신세대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의 도구를 사용하고 자신만의 시네마틱 언어를 현대화시킨, 더 새롭고 자유로운 방식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합니다. 특히 60년대에 핀란드 아방가르드와 언더그라운드는 젊은 세대의 영화 제작자들, 연주자들, 작곡가들 등을 서로 연결시킨 분야였습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기에 서로 모두 알고 지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그런 공동체적인 협력은 없지만 서로 다른 예술 형태 간의 국경은 여전히 매우 유연합니다. 우리의 미디어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창작품을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나갑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핀란드 건축가인 Alvar Aalto가 그의 시네 클럽 프로젝티오에서 아방가르드 영화를 수입했던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니었던 거죠.

 


1950: venus of modernism and critique des auteurs

 

 1950년대 이후 실험이 시작되었고, 프랑스 예술가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여기에 포함되는 마누 쿠르크바라(maunu kurkvaara), 리스토 자르바(risto jarva), 존 도너(jorn donner) 등의 감독들은 움직이는 영상을 쇼 비즈니스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진지한 아트의 형태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에이노 르차를로(Eino ruutsalo)는 핀란드에서 첫 추상영화 제작자로 여겨집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동안 파일럿으로 일했고, 영화에서 이런 무모함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뉴욕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의 영화는 그림과 시네마의 조합을 보여줍니다.

 


Erkki kurenniemi(1941-)

 

 우리는 에르키 쿠렌니에미(Erkki kurenniemi) 영화를 이미 봐서 여기서 보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말씀을 드리면, 에이노 르차를로의 실험 영화는 시각 예술에 기원한다면 쿠렌니에미는 뉴미디어 핀란드 개척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 쿠렌니에미는 헬싱키 대학의 핵 물리학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그는 음악학부에서 어시스턴트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거기서 음향기술과 전자음악 실험실을 시작했고 자신만의 전자음악 기기인 DIMI A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2006년까지 다이어리 영상을 제작했고 지금은 건강상의 문제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쿠렌니에미 단편영화의 3가지 주요 주제는 자연(동물과 식물),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에로티시즘입니다. 포르노그래피와 누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에 관련해서 그의 단편영화를 보면 에로티시즘을 전인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개체들 간의 무한한 접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개체들은 서로 폐쇄된 것이 아니라 통합 또는 동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인 아이디어는 그의 영화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쿠렌니에미의 단편영화는 시각적인 조작으로 가득 차있지만, 에이노 르차를로와는 달리 그는 영화재료를 그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16mm Pathe cine camera를 사용해서 영화를 되감기 한다든지 이전의 작업물에 새로운 레이어를 기계적으로 추가합니다. 후에 쿠렌니에미는 디멘시오라고 불리는 그룹에 컴퓨터와 아트를 접목시켜 나갑니다.

 


Pasi "sleeping" Myllymaki

 

 핀란드의 이런 지식 계급의 정치적 환경이 1960년대에 유쾌한 언더그라운드에서 좀 더 진지한 톤으로 변하게 됩니다. 실험보다는 사실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1970년 후반과 1980년 초반까지 이 분야를 좀 더 얼어붙게 만들었는데요, 이 때 파시 슬리핑 밀리아키(Pasi "sleeping" Myllymaki)는 이런 영화계에 펑크록 반항자가 되었습니다. 밀리마키와 그의 친구 리스토 라쿠넨은 8mm 영화를 찍었습니다. 밀리마키의 철학이라고 하면 ‘거대한 걸작보다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화가 더 낫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핀란드 실험영화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New media in finland:slow biginnings

 

 1980년 이전에 핀란드의 새로운 미디어아트라는 것은 실제적으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핀란드 미디어아트 역사의 특별한 부분이 있다면 천천히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백남준 씨가 미국에서 시작을 했고, 1960년대는 미국에서 굉장히 활발하게 미디어아트가 이루어진 때입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불행하게도 그런 활발한 활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핀란드 문화에서 은둔과 소외의 시대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사회에서 바라본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에서는 비디오아트에 대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멀티아티스트인 말란다(J.O.Mallander)의 경우, 백남준 씨와 우호적인 관계가 있었습니다. 또 그를 플락스 운동에 소개하는 계기가 됩니다. 말란다 씨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새로운 아트 형식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했지만 핀란드의 아티스트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비디오를 제작하도록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intermedia라고 하는 아트 행사에서 1971년에 백남준 씨의 일부 작품이 소개 되었고 매우 초기에 있었던 핀란드 비디오 설치물도 상영되었습니다. 에르키 쿠렌니에미의 퍼포먼스도 있었고 DIMI O가 하는 즉흥적인 연주도 있었습니다. 즉, 미디어 기술과 퍼포먼스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의 동시대 예술인들의 경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디오아트라는 것이 미국의 반체제 문화와 운동의 핵심 부분이었다는 것을 놓친 것이죠. 핀란드의 영화학자인 하노 에리카닌 같은 경우 “핀란드에서 시장과 환경이라는 것은 시네마의 사실주의와 TV와 사진의 정보성, 기능성 그리고 다큐멘터리 등이 굉장히 지배적”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게다가 이 비디오 같은 경우에는 자체적인 아트 형식으로 간주되지 못했고 TV 세트의 일부분이라고 간주되거나 홈 비디오의 일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까지는 핀란드에서는 비디오가 아트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비디오아트는 정보를 주는 대안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international pioneer:mervi kytosalmi (later: deylitz-kytosalmi; kytosalmi-buehi)

 

 이러한 1970년대의 미디어아트에 대한 저항 속에서 예외적인 상황이 있었는데요, 메르비 키토샬미(mervi kytosalmi)는 비디오아트의 경력을 가진 첫 핀란드 여성입니다. 아트를 공부하기 위해 독일 cologne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키토샬미는 비디오라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표현하는 매체라고 생각했습니다. 페르투 라스따는 키토샬미가 기술에 대해 포커스를 둔 것이 너무 독일적인 접근이라며 비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1980s: the birth of the finnish video art

 

 1980년대는 서로 다른 예술 간의 엄격한 경계로부터 출발의 기록을 보여주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예술 심포지엄을 통해서 핀란드 미디어아트의 탄생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임이 입증됩니다. 그리고 turppi 그룹은 사이키 정신 혹은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이 심포지엄에 많은 기여를 합니다. 비디오는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굉장히 훌륭한 매체이면서 그 자체적으로도 훌륭한 미디어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청각 형태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예술 과정을 접목시키는 데에 완벽한 역할을 하고 있죠. 핀란드 미디어아트의 경우, 비디오는 이러한 프로세스 과정이나 공간, 아트의 실험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국제적인 비디오 아트 같은 경우에 핀란드에서 1980년 초기에 도입이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여행에서 가져온 테이프, 카세트를 들여옵니다. 특별히 독일의 비디오아트 경우, 영감을 주는 소스로 여겨집니다.

 


late 1980s and early 1990s: the field gets organized

 

 핀란드 환경에 맞춰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미디어아트라는 단어를 쓸 때, 아티스트의 무빙 이미지라고 해서 아티스트의 움직이는 동영상이라는 영국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핀란드 미디어아티스트이자 학자인 카리 아날레의 경우 일반 대중의 프로덕션을 이야기할 때 ‘산업이후의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페르투 라스따스는 독립영화와 비디오를 다큐멘터리와 추상적인 미디어아트로 분리를 해서 얘기합니다. 이 두 분리법은 이미 80년대에 적용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아르키의 작품을 배급하는 방식을 보시면 또 다른 단편 다큐멘터리를 배급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프로덕션의 구조 같은 경우에는 다르지만요. 

 


video workshops /  Sami van Ingen founede Helsinki Film Workshop

 

  핀란드 미디어아트가 처음에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었다면 비디오 워크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에서는 영국에서 사용하는 협동조합과 같은 모델이 없습니다. 비디오라는 것이 개인적인 미디어 매체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비디오 워크샵 같은 경우에는 공공 교육 형태로 조직됩니다. 그래서 1980년 초기의 아트 교육으로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티스트의 경우, 새로운 미디어 매체를 배우기 위해서는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배워야 했습니다. 1990년 이후가 되어서야 학교에서 뉴미디어 커리큘럼이 소개됩니다. 핀란드 미디어 아티스트인 사미 반 인겐(Sami van Ingen)은 영국에서 공부한 후 핀란드로 돌아왔을 때 비디오 워크샵을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헬싱키 필름 워크샵은 실험 영화 제작과 비디오 아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허브가 되었습니다.

 뉴미디어는 1988년 까지는 정치적, 문화적인 색채를 대표하진 못했습니다. 그 때는 아티스트 조직인 MUU 라는 것이 설립되었을 때인데요, 그 이후 1989년에 페르투 라스따스가 ‘AV-아르키’를 설립합니다. 그 이후부터 핀란드 비디오아트의 문화적 수출을 AV-아르키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핀란드 아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대부분 공동 투자 기금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국가 보조금이 있고 민간 기관이 아티스트나 학자를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핀란드는 작은 나라이고 부유한 갤러리들은 많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하는 강연 같은 특별한 문화적 홍보의 경우엔 국가적 재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 간의 작업이 중요합니다. AV-아르키가 설립된 직후에 활발한 배급이 이루어져서 핀란드 미디어아트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Characteristics of the Finnish Media Art

 

 핀란드 미디어아트의 특징은 비평을 통해서 스칸디나비아에서 이상적으로 꼽고 있는 자연, 평등, 교육과 같은 이상성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가치들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객: 핀란드 미디어아트를 국내외에 보급하는 AV-아르키 같은 민간 단체가 여러 곳이 있는지, AV-아르키가 유일한 기관인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예산이 굉장히 적어서요, AV-아르키 배급사와 아티스트들이 자체적으로 예산을 들여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아티스트인 리카 타넨틸라 같은 아티스트들은 자체적으로 배급을 하고 저희와 콜라보를 하는 형식입니다. 주류 영화산업 같은 경우에는 많은 배급사들이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말씀드리면 시각예술 같은 경우엔 아트 에이전시가 핀란드에 하나 혹은 두 개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미디어아트 분야에선 AV-아르키가 주로 하고 있습니다.

 


관객: 핀란드 미디어 아트를 접하고 강연 중에 흥미로운 작가 분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핀란드 미디어아트를 많이 접하기 어려웠는데 AV-아르키에 인터넷으로 작품을 볼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핀란드어와 영어로 지원되는 웹사이트에 아티스트와 작품들의 정보가 올라와 있습니다. 또는 저에게 연락을 해 주시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2016.08.06

 


강연 | 티티 란타넨 연구원 
기록 | 정솔지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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