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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데일리 [5호] [네마프 심포지엄] 가상의정치-매체/신체/정치
2016-08-08 12:51:24
NeMaf <> 조회수 1512

 

8월 7일 오후 1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가상의 정치-매체/신체/정치’의 주제로 네마프 심포지엄이 진행되었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김현주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사회를 맡았고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 이선영 미술평론가, 이택광 문화평론가가 참가하여 활발한 토론을 펼쳤다.

 

 

이선영: 안녕하세요. 오늘 발표는 발표 내용의 예증이 될 만한 도판을 중심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가 가상의 정치인데 정치가 지배와 피지배가 중심이 되는 담론이라고 한다면 그 지배의 구체적인 대상이 되는 것은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이 몸에 작용하는 방식은 고문 등 몸에 직접 작용하는 방식에서 지금은 지배적인 상징체계에 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돈을 투자해서 스스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렇게 권력이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몸을 단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권력과 관계있는 담론으로 보는 측면도 있고, 반면에 몸을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연의 실제적인 존재로 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중용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담론에 얽혀있지만 또 지배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것도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몸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뒤러의 ‘아담과 이브’ 작품을 보시면 그 당시 아름답게 여겨졌던 아름다운 몸을 가진 여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대 몸에 대한 가치관이 투사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통해서도 인간의 몸이 우주의 질서와 형이상학적인 틀에 맞게 재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미켈란젤로 카시나 전투를 위한 드로잉’는 전투 씬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 당시의 규범에 맞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재현된 몸을 볼 수 있습니다. 전투를 중점으로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남성 누드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육체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렘브란트의 해부학강의(1632)를 보시면 해부대 위의 몸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의 몸에 대한 지식들은 지금 보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골상학을 보면 알 수 있죠. 어떤 형태의 몸이 가장 좋은 것인지에 대한 기준, 사실 옳다고 할 수 없는 기준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생학도 마찬가지로 어떤 민족이 가장 우월한지에 대한 생각이나 기준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수태고지’는 식욕과 성을 거부한 여자가 수동적인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을 통해 욕망을 절제해야 아름다운 여성일 수 있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성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작품입니다. 지금도 날씬한 몸매를 얻기 위해 식욕을 절제하는 현대 여성들의 모습과도 닮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남성의 몸은 육중하게 표현되는데요, 특히 올림픽의 포스터들에서는 고전주의적인 남성상이 부각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포스터는 인종주의적인 색채가 많이 포함된 포스터입니다. 몸에 대한 시대적 시각이 포스터에도 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권경엽의 ‘백자 같은 피부를 가진 여자’, 위영일의 ‘짬뽕맨’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몸에 대한 상반된 정치적 시각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몸의 형태에 따라 차별을 겪기도 합니다. ‘코디 최’의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겪은 차별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심정을 이러한 포즈로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몸과 정치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 사진은 미래라이프대학 사태 중 학생들이 김활란 동상에 페인트를 뿌린 모습입니다.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를 통해 미래의 라이프를 상징하는 산업이 웰빙이나 패션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을 지배하는 것 중 기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사진은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시스템입니다. 맨 처음에 푸줏간에서 고기를 잘 분류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컨베이어 산업이 자동차 산업과 결합되어 이 기계에 맞춰 육체노동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은 구조에 의해 몸이 제한을 받음으로써 규율이 내면화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사진은 전시장 전체가 저울인 홍기원의 작품을 담은 사진입니다. 관객이 올라가면 바로 몸무게가 나옵니다. 자신 스스로 몸을 계속 관리해야하는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고문을 줄 때도 기계가 쓰입니다. 중세의 이단 심문제도가 그 예입니다. ‘프리츠 랑 영화 메트로폴리스’라는 영화 등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투사된 작품들도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통해서는 몸이 시스템에 의해 고통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그러면서도 회화처럼 몸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 있죠. 그런 역설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고, 지금까지 살펴본 예들을 통해서 예술이 대안의 정치학의 하나의 흐름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김현주: 네, 발표 잘 들었습니다. 몸에 관련된 담론들을 근대와 현재까지의 다양한 작품들을 예시로 활용해 잘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어서 김지훈 선생님이 <실험 다큐멘터리에서 가상의 정치:하룬 파로키와 히토 슈타이엘>발표를 해주시겠습니다.

 

 

김지훈: 저는 영화뿐 아니라 현대미술, 무빙 이미지 쪽에서 잘 알려진 작가들이 가상의 정치와 어떻게 연관이 되어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발표를 하겠습니다.

 

Changing Horison Of The Virtual


 가상이라는 것은 디지털의 고유한 특성은 아닙니다. 가상공간이 작동되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미지 공간이 갖고 있는 환영성이고 두 번째는 가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일시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방식으로는 가상현실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아트가 있고, 두 번째 방식으로는 텔레마틱 또는 텔레프레즌스가 있습니다. 두 번째 방식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으로 겹쳐서 현실이 구성되는 방식입니다. 이 두 방식이 미디어아트에서 가상공간을 실험한 방식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기존의 이 두 방식은 우리의 삶의 영역과 분리되어 있었던 특정한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의 가상은 어떤 경험 속에서 어떤 공간과 미디어들과 연결되는가, 즉 가상이 우리의 삶 속에 놓이는 지점들이 달라지게 됩니다. 2000년대 이후 가상이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감시 카메라나 IOT, 다양한 센서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디지털이 실제 생활의 모든 지점들과 중첩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예로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포켓몬go 게임을 들 수 있는데요, 이렇게 가상과 실재가 서로 영향을 받고 중첩이 되는 이러한 때에는 가상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접근을 해야 합니다. 디지털이미지는 무한하게 연동이 가능하고 많은 곳에 퍼져있기 때문에 더 이상 hard한 이미지가 아니며 soft하고 cool한 존재론적인 상태로 옮겨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soft virtuality에 개입을 한 하룬 파로키와 히토 슈타이엘의 작품들을 오늘 이 발표에서 다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Farocki


soft virtuality로서의 이행과 관련된 파로키의 키워드는 파로키가 사용한 ‘작용적 이미지’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작용적 이미지라는 것은 뭔가를 재현하는 이미지라기보다는 감시 카메라나 의학에서의 내시경과 같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이미지를 뜻합니다. 이 작용적 이미지는 디지털 시대의 고유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들이 자동화된 이 시대에 있어서는 점점 더 지배적이 되고 있습니다. Serious games 3;Immersion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전쟁에 참여한 후 전쟁 증후군을 겪는 군인들을 가상적으로 다시 그 상황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증후군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가상임에도 불구하고 환영의 차원을 넘어서 신체적 또는 뇌 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이 가상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이죠. VR이 가지고 있는 구성적인 힘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Steyerl


히토 슈타이엘이 제안한 가장 유명한 제안은 poor images, 즉 빈곤한 이미지입니다. 빈곤한 이미지라는 것은 데이터가 무한하게 순환되고 버려지는 네트워크 속에서 디지털이 생산하게 되는 잔여적인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미지들이 소비되고 전유되어서 원래의 가치들이 사라지는 흔적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빈곤한 이미지의 범위 안에는 단순히 해상도가 낮은 이미지들을 넘어서 여러 사용의도가 긴밀히 얽혀있고 침범 받는 상황들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빈곤한 이미지라는 것이 기존의 모든 종류의 이미지들을 통합하고 아카이브하는 측면을 갖고 있고 그런 통합과정에 의해 이미지가 구성하는 공간 자체가 유동화 되며, 이미지와 사운드들이 신체와 메시지를 통해 혼합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빈곤한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흔적들이 생산과 순환 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측면들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공된 이미지들이 갖고 있는 생산과 순환의 흔적들, 정치경제학적인 의미들에 대해서 개입할 수 있는 실마리도 제공합니다. 그래서 슈타이엘에 따르면 이런 식의 이미지에 참여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이미지가 갖고 있는 모든 생산과 순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슈타이엘의 최근 작업들은 자신이 표현하는 가상적인 것의 네트워크, 가상적 이미지의 정체성들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깨끗함과 빈곤함 등의 차원들을 에세이적인 표현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bactic educational.mov’라는 작품인데요, 잠깐 보여드리겠습니다. 

 

 

Conclusion


파로키와 슈타이엘은 디지털 네트워크, 디지털 기술의 확산, 스마트 미디어의 등장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상의 지평의 변화, 예를 들어 하드에서 소프트로의 이행 과정 등의 변화를 통해 이미지가 갖게 된 위상에 개입을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지에 대한 비평의 전통이 있죠. 이미지를 보는 방식, 이미지와 신체의 관계를 다른 각도에서 보거나 다른 관점을 통해 보는 식의 비평예술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들의 작품 속에서는 하나의 가상이미지와 다른 가상 이미지, 또는 디지털 이미지와 그 전사적인 이미지, 이미지와 삶 사이의 관계들을 연쇄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파로키와 슈타이엘과 관련해서 가상의 정치에 대한 제 생각을 전달하는 것으로 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남수영: 네, 김지훈 선생님 발표 잘 들었습니다. 가상의 정치 심포지엄의 3가지 키워드가 신체, 매체, 정치입니다. 이선영 선생님이 신체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 김지훈 선생님이 매체에 관해 설명을 해주셨는데 사실 이 3개의 키워드 순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완전히 구분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발제하시면서 겹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는데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택광 선생님의 <정치적 공간은 무엇인가?: 재현을 비껴가는 정치>발표를 듣겠습니다.

 

 

이택광: 앞서 미시적인 관점에서 이야기 해주셨다면 저는 포괄적인 큰 관점 얘기해볼까 합니다. 미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밀튼이 스페이스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스페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천국과 지상이라는 기독교적 상상력입니다. 그 중간에 존재하는 것을 우주(space)라고 불렀습니다. 르네상스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그런 관점에서 전체 공간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전체 공간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재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공간이라 불리는 것은 감각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해 최초로 파악한 철학자는 칸트입니다. 제가 부제를 재현을 비껴가는 정치라고 했는데 비껴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0년대의 반미학들 테제는 반재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재현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죠. 예술은 계몽적 측면이 강한데 서구가 계몽이고 서구를 쫓아가는 것이 한국의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를 쫓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는데 서구를 쫓아가는 계몽, 또는 그 계몽에 대한 비판적 테제로서 제출되는 것이 계몽 반재현성입니다. 

 

 이 발표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반재현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현을 비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정치라는 개념은 아주 복잡한 개념인데 제가 여기서 쓰는 정치라는 개념은 본연적 개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을 때 사용하는 그 정치의 개념이죠. 인간의 존재론적 본성으로서의 정치. 여기서 본성이라는 것은 자연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정치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권력으로 위협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체적으로 훨씬 위협적인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언스에게 집니다. 왜? 네안데르탈인은 네트워킹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피언스는 돌에 그림을 그려서 정보를 전달했죠. 그러한 네러티브를 만들 수 있는, 상징화를 시킬 수 있는 것이 정치라는 겁니다. 

 

 이 그림은 피터 불기엘이 그린 베를렘 인구조사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배경인데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베를렘은 중동이어서 눈이 오지 않는데 눈을 그렸습니다. 또 마리아와 요셉을 크게 부각시켜 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보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 시선이 가겠죠. 중세의 영향을 받은 그림이지만 중세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테제라고 할 수 있죠. 북유럽 르네상스에 영향을 준 것은 바로크 예술이고 바로크 예술의 핵심 테제는 성서로 돌아가자는 것이며 세속적인 것을 통해 종교적인 것을 표현했습니다. 다음 그림은 놀이하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잘 보시면 놀이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른입니다. 이 그림의 의미를 영어로 표현하자면 industrial입니다. industrial은 부지런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Circle of Life라고 불렀습니다. 그림 중간에 수레바퀴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Circle of Life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이 사람들에게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즉 산업사회의 핵심은 민주주의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의 표지입니다. 필립 3세가 그려져 있는데 몸통이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로 국가를 뜻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전하는 핵심 개념은 인민들이 국가를 필요로 하여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리바이어던이라는 것은 필요악입니다. 국가라는 악을 사람들이 지지하고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홉스는 people이라고 불렀습니다. 홉스는 사람들을 국가로 수렴시켜서 인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근대적 테제이고 철학적으로는 자유주의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군중에서 인민으로 바뀌는 것이 핵심인데 여기서 인민이란 국가와 안전 혹은 안보의 계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홉스는 군중을 방치하면 서로 싸워서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현대인들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판옵티콘은 흔히 독재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는데 판옵티콘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명만 고생하면 되기 때문이죠. 이게 공리주의입니다. 죄가 나쁜 것이지 죄를 지은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반영되어 교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감옥이었습니다. 판옵티콘을 근대의 모델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우리들 각자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화였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절대 쾌락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쾌락 원칙은 규범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식별합니다. 아름다움을 식별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편리함이죠. 판옵티콘도 그 시스템이 잘 돌아갈 때 편안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판옵티콘에서 간수가 죄수들을 감시한다고 볼 수 있는 반면에 죄수들이 간수를 필요로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근대성의 핵심이자 미디어의 원리입니다. 

 

 이 그림의 윗부분이 무의식을 나타내고 아래는 상징계라고 불립니다. 즉, 아래가 발화의 부분이고 위는 말해지진 않지만 말을 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가상현실이라는 것은 이 두 부분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상성이라는 것이 정치를 만들어 가지만 정치를 수렴해가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 오늘 발표의 핵심이고 그랬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김현주: 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세 분의 발표를 통해 가상의 정치라는 주제 하에 키워드 별로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눠보았습니다.

 

남수영: 오랜 시간동안 발표해주신 세 분의 패널 선생님들께 박수 부탁드리고, 쉬는 시간 없이 진행했는데 끝까지 경청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사회 | 남수영 김현주
패널 | 김지훈 이선영 이택광
기록 | 정솔지 루키
사진 | 강보람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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