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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데일리 [LECTURE] 얀 슈반크마예르 특별강연
2017-08-19 17:08:04
NeMaf <> 조회수 463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는 체코의 거장 애니메이션 감독 얀 슈반크마예르의 장편, 단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8월 18일 오후 4시, 네마프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생애와 작품 전체를 연대기순으로 훑으며 그의 작품들이 그리는 지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강연이 시작되었다. <대화의 가능성- 영화와 순수 미술의 사이> 강연에는 체코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할 차브카와 체코 문화원장 미하엘라 리가 참석하였다.

 

 

1. 얀 슈반크마예르의 출생과 가정환경

얀 슈반크마예르는 1934년 9월 4일 프라하에서 태어났으며 올해 83세이다. 아버지는 쇼윈도 장식가였으며 어머니는 재단사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순수미술과 인형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에는 9살 때 부모로부터 선물받은 마리오네트 인형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프라하 미술산업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는 프라하 국립공연예술대학교에서 연출과 무대미술을 전공하며 배우가 대형 인형 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기법은 이후 얀 슈반크마예르의 영화에서 성공적으로 이용되었다.

얀 슈반크마예르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극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면극 극단도 창설하고,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후 극장 상사와의 논쟁 이후 다른 극장으로 옮겨가 마술적 서커스의 제작에도 관여하였다.

1960년, 얀 슈반크마예르는 초현실주의 예술가인 에바와 결혼했다. 이후 에바는 얀 슈반크마예르의 장편 영화 작업을 맡았다. 그녀는 포스터 디자인, 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예쑬 작업을 맡았다. 그녀는 <광기>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디자인 한 후 얼마 안 가 사망했는데, 그 후 체코에서 가장 명성있는 ‘체코사자영화상’을 수상하였다. 1962년 얀 슈반크마예르는 첫 단편영화인 <마지막 속삭임>을 연출하고, 이후 프리랜서 혹은 감독으로 일했다.

 

 

2. 얀 슈반크마예르의 초기작

1967년, 얀 슈반크마예르는 단편영화 <자연의 역사>를 촬영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소품들은 신나는 춤 속에서 살아나고, 이러한 움직이는 박물관의 소재는 이후의 영화에서도 활용되는 주제 중 하나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동물들의 전시품은 이후에 예술작품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일반 동물의 모양이 아닌 초현실주의적인 동물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일반 동물의 다른 부위들을 합쳐 괴물 같은 작품을 만들고 이를 전시했다.

1968년에는 두 편의 영화 <정원>과 <방>을 제작했다. 영화 <정원>에서는 주인공인 백발 농부가 친구에게 살아있는 울타리를 소개하고, 결국에는 친구를 울타리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내용의 영화이다. 두 번째 영화인 <방>은 일상적 물건의 반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얀 슈반크마예르는 이 영화를 촬영할 때 새로운 기법을 사용했다. 그 기법은 살아있는 사람을 애니메이션적으로 찍는 기법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1초에 12개로 제한해 애니메이션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1971년 촬영된 <자바워키>는 어린이의 장난감이 사람 없이도 살아나는 내용의 영화로 어린시절의 감정적 본질을 표현한다.

 

 

3. 공산주의적 정상화 시기부터 중반기의 영화

공산주의적 정상화가 체코에서 이루어지자 얀 슈반크마예르는 작업이 어려워지고 심지어 1970년부터 79년까지는 영화 제작을 금지당하는데, 이는 영화 <오트란트의 성>을 편집하며 공산당과 의견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동안 그는 영화를 연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란도프 스튜디오에서 특수효과 전문가로 일했다. 또한 영화보다는 미술 창작에 집중하며 자연사 캐비닛 콜렉션의 3차원 작품과 콜라주 작품을 제작했다.

1980년 영화 촬영 금지가 해제된 후 얀은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어셔 가의 몰락>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얀 슈반크마예르는 그의 단편영화 중 가장 유명한 <대화의 가능성>을 제작했다. 감독은 말을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고 세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공격’, ‘우위를 점하기 위한 투쟁’,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의 의사소통 지배’를 보여준다. 감독은 예술적이니 애니메이션 은유를 통해 파멸을 표현한다. ‘영원한 대화’는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영향을 받았다.

<대화의 가능성>은 체코 공산당의 비난에도 불구, 외국의 영화제에서 큰 상과 호평을 받으며 얀 슈반크마예르가 첫 장편영화인 <앨리스>를 촬영할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첫 장편영화인 <앨리스>는 1988년에 개봉되었고, 얀 슈반크마예르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다음 영화 제작을 위한 지원금을 받아 1988년과 1989년 사이에 단편영화 다섯 편을 빠른 속도로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4. 후반기의 영화

1989년 벨벳혁명 이후 1992년, 얀 슈반크마예르는 프라하에 밀접한 작은 도시의 오래된 극장에 영화사를 설립하여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1994년, 그곳에서 두 번째 장편 영화인 <파우스트>를 촬영했고 그 영화의 배우인 피트르 세펙은 영화가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으나 그 이후 체코사자영화상을 수상한다. 1996년 얀 슈반크마예르는 성적 도착과 쾌감에 대한 영화인 <쾌락의 공범자>를 통해 오늘날 인간의 외로움을 표현한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00년 그는 코메디 <오테사넥>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체코의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2005년, 얀 슈반크마예르는 철학적인 공포영화인 <광기>를 제작한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이전에 사용했던 소재인 ‘혀’와 ‘고기’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간다. 그 후 2010년, 얀 슈반크마예르는 장편 영화 <살아남은 삶>을 완성했다. 이 영화에서는 그가 새롭게 만든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바로 배우의 사진을 이용한 애니메이션과 직접 배우가 출현한 부분이 섞어 쓰는 기법이다. 이 영화는 현실과 꿈, 두 가지 생활을 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감독은 자신이 꿨던 꿈에서 영향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마지막 영화는 <곤충>이라는 블랙코미디이다. 시나리오는 이미 1970년에 완성하였으나 당시의 영화 스튜디오가 거절했었다. 영화는 카렐 차페크의 『곤충극장』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연말에 완성될 예정이다.

 

 

5. 질의

관객1: 초현실주의나 스탑모션 작품은 체코의 것이 특히 유명합니다. 체코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미할 차브카: 체코는 아주 작은 나라이고, 강대국 사이에 끼어 지배를 받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체코는 그들을 무력으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유머’라는 방법으로 방어했습니다. 체코의 애니메이션 대부분은 유머러스합니다. 내 생각에 체코 애니메이션의 성공 이유는 이러한 체코 유머입니다.

 

관객2: 얀 슈반크마예르의 인간적인 면모가 궁금합니다.

미할 차브카: 제 생각에는 아주 독립적이면서도 똑똑하고 유머러스한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천재라서 조금 이상하고도 신기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항상 친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관객3: 대부분의 영화에서 새로운 소품보다는 낡고 오래된 물건을 쓰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미할 차브카: 오래된 물건을 통해 얀 슈반크마예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오래된 물건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 영화에 원하는 소품이 있으면 쓰레기통도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얀 슈반크마예르의 장, 단편 작품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 종로에서 상영된다. 관심이 있는 관객은 회고전이 끝나기 전에 극장을 들러보면 어떨까?

 

 

정리 ㅣ 김혜림 루키

사진 ㅣ 김지원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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