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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GT] 심혜정 특별전 단편
NeMaf 조회수:499
2019-08-19 11:11:49

818일 오후 2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심혜정 특별전 단편 <아라비아인과 낙타>, <동백꽃이 피면>, <꽃과 거짓말>, 그리고 <카니발>의 네 작품이 상영되었다. 상영 이후에는 심혜정 감독이 참석해 제작 과정과 연출 의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진행은 김장연호 NeMaf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김장연호: 2010년도부터 인연이 닿아 작가님의 작업을 봐왔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원래 미술 쪽에서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선보이시다가 그 이후에 극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는 미술에서 영상 작업 위주로 작업을 하다가 퍼포먼스도 하고 퍼포먼스 영상도 필름으로 만들어서 작업했었어요. 그러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계속 생겨나서 거기에 맞게 형식을 찾다보니 어떤 것은 다큐멘터리, 또 어떤 것은 극영화 형식이 되더라고요. 극영화를 시작할 때쯤은 배우분들과 친해지면서 미술감독으로 영화 일을 도와드렸어요. 그때 인연으로 다음 영화를 찍으면 도와주시겠다고 해서 극영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재미를 많이 느껴서 매년 극영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장연호: 개인적으로 작가님 작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아라비아인과 낙타>에요. 극영화이면서 개인의 사적인 공간과 부모님, 정씨 아줌마 등의 실제 인물들을 배우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 혹은 네오리얼리즘의 양식을 취하고 있었는데요, 제작 과정에서 부모님과 정씨 아줌마를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어머니는 의사 표현을 잘 못 하시고, 이제까지 이런저런 작업을 많이 해 와서 가족이나 친구들은 제가 무엇을 하는 것에 있어서 별 얘기를 안 했어요. 정씨 아줌마의 경우 마침 환갑을 맞으셔서 회갑연을 여셨는데, 제가 환갑잔치를 촬영해서 작품으로 만들어도 되냐고 여쭤보니까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마 회갑연 비디오를 찍는 줄 알고 그러신 것 같아요.(웃음) 막상 촬영을 시작해서는 화면에 나와서 본인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너무 적극적이셔서 나중에는 하모니카 엔딩 장면의 촬영 아이디어까지 주셨습니다.

 

김장연호: <아라비아의 낙타>의 경우 이솝우화에 나온 이야기를 차용해 우리나라의 재중동포 입주 여성 노동자라는 주제를 다루셨는데요. 이 우화를 모르시는 분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해드리면, 어느 추운 날 아라비아인이 있는 천막에 낙타가 와서 발 하나씩 들여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얘기하다가 결국 낙타가 천막을 차지하고 아라비아인은 쫓겨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작가님은 아라비아인, 정씨 아줌마는 낙타로 각각 비유되고 있는데요, 영화 속에서도 낙타가 들어오는 것을 불안해하는 아라비아인의 심리가 거울이나 곰팡이, 화초 등의 메타포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체와 타자의 문제, 특히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작품 제작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심혜정: 일단 저희 부모님과 정씨 아줌마와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그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소재 특성상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고 제작비도 많이 없어서 길게 작업하기는 어렵겠더라고요. 부모님과 이주노동자분께서 등장하는 만큼 윤리적인 책임을 질 수 있을지 고민되기도 했고, 사전에 연습 삼아 몇 개의 영상을 찍어보았을 때, 가족들과 영상을 찍는 게 생각보다 힘들단 것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극영화를 찍듯이 5회 차로 구성해서 밥 먹는 장면, 옷 갈아입는 장면 등을 나눠서 찍었어요. 이 방법을 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워낙 오랜 세월을 알고 지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령 아줌마를 도발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에(웃음)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고 집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김장연호: 끝부분에 정씨 아줌마께서 키우시는 파라든가 고추, 방울토마토 등의 식물을 치우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아줌마께 말씀드리고 촬영하신 건지 궁금했고, 작품이 다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그분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화초는 전부터 치우고 싶었어요. 영화를 찍고 치워야겠다고 결심했죠(웃음). 사전에 그건 말씀 안 드리고 청소하는 장면을 찍는다고만 말씀드렸는데, 아주머니의 반응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인물에 초점을 맞춘 화면을 더 넣었을 텐데 풀 쇼트(full shot)만 썼어요. 화분을 치운다니까 ‘에이, 다 버려버려!’ 그러신 거였는데, 영화를 다 찍고 걱정은 되었죠. 아무래도 편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아라비아인과 낙타의 권력 관계, 자리싸움, 자잘한 신경전이 담겨있는데 일반인 분들은 자신이 화면에 아름답게 잡히길 원할 수 있으니까요. 아줌마께 영화를 보여드렸는데 처음에는 별말씀이 없다가 ‘나는 내 비디오 찍어주는 줄 알았더니 이주노동자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하고 정확하게 아시더라고요. 그렇게 금방 이해하시고 흔쾌히 상영을 허락해 주셔서 영화제에도 출품하게 되었습니다.

 

김장연호: 향후 작업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지금은 <담배, 뱀, 설탕>(가제)이라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가부장 안에서 남자 세 명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막내 여동생인 제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인데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재연 형식을 섞어 만든 실험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에서 출발한 작업인데요, 어렸을 때 성격이 완전히 다른 세 명의 오빠들이 사고도 치고 어려움을 겪던 것을 지켜본 것이 파편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가, 젠더 규범에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억압적인 기제가 있는데 오빠들도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에 대해 고민했던 것들을 새로운 작업에서 해보고 싶습니다.

 

취재 │ 이예진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