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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LECTURE] 마스터클래스: 통제되는 신체 (출라얀논 시리폴)
NeMaf 조회수:2522 추천수:7
2018-08-19 15:56:44

 

《제 18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의 개막작인 <블라인딩 Blinding> 의 감독, 출라얀논 시리폴이 18일 인디스페이스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가졌다. 시리폴 감독은 태국 방콕 출신으로, <근대성의 신화>(2014) 와 같이 정치·사회·종교를 아우르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는 감독이다. 시리폴 감독은 <마스터클래스: 대항기억과 시네마, 통제되는 신체> 라는 제목으로 관객들에게 태국의 정치 상황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일부 소개했다.

 

 

출라얀논 시리폴:  오늘 제가 작업했던 몇 편의 영상들과 함께 태국 정치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세션의 제목은 ‘대항기억과 시네마, 그리고 통제되는 신체(Body under cotrol)’ 입니다.

 

저는 방콕에서 태어나 방콕에서 자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시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방콕은 모든 것이 중심화 된 곳입니다. 방콕에서 쭉 경험해 왔던 태국의 미디어와 교육은 정부의 규제 하에서 운영되어 왔습니다. 태국에 가면 느낄 수 있는 국가주의의 3요소가 있습니다. 국가, 종교 그리고 군주제입니다. 이러한 3요소는 태국 국기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도 이 3요소가 존재합니다.

 

학교에서 항상 배우는 것은 태국 국경을 수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태국의 모든 학교에서는 조례시간에 매일 국가를 부릅니다. 공공장소에서도 국가가 들릴 시에는 모든 이들이 멈추고 가만히 서 있어야 합니다.

태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불교신자가 대다수입니다. 학교에서 국가를 제창한 후에는 불교에 관련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군주제 역시 강력합니다. 태국 국민들은 왕을 사랑합니다.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는 늘 국왕의 사진과 함께 국왕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찬양가가 나오는 내내 부동자세로 기립해 있어야 합니다.

 

이 세 요소는 교실에도 늘 전시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태국인이란 무엇인지, 태국인을 구성하는 요소란 무엇인지를 항상 배웁니다. 이것은 단순히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길거리 곳곳에도 국왕의 사진이 있죠. 심지어 개인의 집이나 달력에도 국왕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미디어에 군주제가 투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태국은 평화롭고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최근 태국에서는 2005년에서 2018년 현재까지, 13년간 정치적으로 큰 대립이 존재했습니다.

 

2005년 “노란 셔츠” 를 입은 사람들(PAD)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입니다. 노란 셔츠(PAD)는 탁신 전 총리가 굉장히 부패한 사람이며 부당한 정치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탁신 전 총리가 군주제에 반대하며, 태국을 일반 국가와 비슷하게 뒤바꾸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란 셔츠는 부패 정치인에 반대한다며 군부와 군주제를 지지했습니다. 우리는 왕을 위해 싸우겠다, 우리는 국왕을 사랑한다고 외치며 거리로 나왔죠. 이들은 국왕에 대한 사랑을 표하는 문구가 새겨진 팔찌를 차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창동의 <버닝>을 보면 이 팔찌를 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탁신 정부와 노란 셔츠 사이에는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장기 분쟁에 반대하여 2006년에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군부를 지지하는 이들은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에 찬사를 보내며 군인들에게 장미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 쿠데타 직후 TV에서는 군부세력을 대표하는 장군이 연설을 합니다. 그 뒤에는 국왕 내외의 사진이 있고요.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국왕 일가, 군부세력, 그리고 노란 셔츠는 모두 같은 정치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한 부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들과 생각을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2007년에는 반독재민주전선(UDD)이라는, 탁신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결집합니다. 이들은 빨간 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섰으며, 군부의 쿠데타와 독재에 반대하고 선거를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태국 북동부 층의 빈민층들로, 탁신을 지지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반면 노란 셔츠는 방콕과 같은 태국의 중심 쪽 사람들이었고요. 이 분쟁은 그저 군주제와 군부에 대한 지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계층간의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2009년, 탁신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수장이 선거 없이 총리가 되었습니다. 2010년 붉은 셔츠(UDD)는 이 사태에 불복하여 방콕 중심가에서 여러 시위를 벌였고, 이들 중 일부가 사망하거나 잡혀가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사진에서도 드러나듯이, 군부와 민주당은 함께 붉은 셔츠를 억압했습니다. 붉은 셔츠는 대부분 빈곤층에 속하는 이들이었지만, 군부 세력은 이들을 국가의 적이라고 여기도록 만들었고 부패의 상징인 탁신 전 총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저는 과연 정부가 국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악을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붉은 셔츠 소속의 사람들을 죽이거나 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2년에 <시체놀이 Planking>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시체놀이’ 는 바닥에 엎드려 죽어있는 척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앞서 말했듯 태국에서는 국가가 흘러나올 때 정자세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그 시간에 엎드려 있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2012년 인터넷상에서 어린 친구들이 시체놀이를 하며 그 사진을 SNS에 올리던 유행에서 착안했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이와 엎드려 누워있는 이의 대조를 나타낼 수 있었죠.

 

<시체놀이> 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가 엎드려 있던 축구장은 1976년 10.6 사건과 결부됩니다. 1976년 10월 6일, 미국과 중국 사이의 냉전에 맞물려 일어난 공산주의 운동 이후에 공산주의자들은 국가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타마싯 대학 재학생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때마침 우익들이 공산주의자들로부터 태국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0.6 사태를 일으켰던 것이죠. 그림을 보시면, 이때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숙청해야 한다는 문구를 새기거나 미국 측과 친해져서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을 홍보하는 등 여러 프로파간다들이 뿌려지기도 했습니다. 군주제와 국가,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러 요소들 또한 프로파간다 안에 내재해 있었습니다. 이런 프로파간다들은 태국인들을 겁에 질리게 했고, 타마싯 대학의 학생들을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우익단체들은 국가주의라는 이름 하에 학생들을 사살했습니다. 저는 이 역사와 저의 예술을 연결시키고 싶었습니다.

 

2011년,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붉은 셔츠(UDD)의 힘으로 총리로 선출됩니다. 이때 당시 탁신 전 총리는 중국, 홍콩 등에서 망명중이었습니다. 태국에 귀국하는 즉시 체포되는 상황이었죠. 2013년 잉락 총리 정부는 사면법을 입법합니다. 노란 셔츠는 이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부패정치인들이 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명분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란 셔츠(PAD) 는 이름을 PDRC로 바꾼 뒤 거리로 쏟아져나와 태국 국기를 펄럭이며 시위를 했습니다. 저는 이 당시 ‘과연 사람들에게 정치사상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014년 <근대성의 신화 Myth of Modernity> 라는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저는 영화 속에 불교, 우주학, 건축 그리고 국가주의를 아우르는 주제의식을 담고 싶었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은 천국, 인간세계 그리고 지옥으로 나뉘어집니다. 이 불교의 ‘삼각형’ 개념은 태국 사원의 아이덴티티이자 건축양식으로 기능했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와 태국 현대 건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외교부 청사, 태국문화센터와 같은 태국의 현대 건축물에는 삼각형을 차용한 요소가 다수 사용되고 있지요. 이 삼각형을 노란 셔츠들이 가지는 사상과 결부시켜, 이들이 우선시하는 태국의 전통문화·사상과 삼각형을 연결시키게 된 것입니다.

 

2014년 5월 22일 쿠데타가 다시 일어납니다. 노란 셔츠는 군부에게 꽃을 전하며 쿠데타 지지 의견을 전달했고,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쁘라윳 짠오차 차노차 장군이 총리가 됩니다. 이런 독재주의에 반대하는 붉은 셔츠는 다시 시위를 시작합니다. 젊은이들은 빈 종이를 들고 ‘우리는 언론의 자유도 없고,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할 수 없다' 는 비유적 표현을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군부는 미디어를 통제했습니다. 모든 텔레비전에서 같은 화면을 내보냈고, 세븐일레븐과 같은 24시간 편의점도 쿠데타 이후에는 밤에 영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22시부터 05시까지는 통행금지가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다루기 위해 저는 2014년 <Blinding>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저는 통행금지 시간에 공공장소에 나가서 빈 종이를 들고 서 있습니다. 촬영 당시 경찰관 몇몇이 찾아와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영화를 찍고 있는지' 를 묻기도 했지만 촬영감독이 러브 스토리 영화를 찍는 중이라며 둘러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웃음) 이 영화를 통해서 저는 모든 것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마법의 공간과 시간을 그려냈습니다.

 

2015년 저는 <그림 뒤에서 Behind the Painting> 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동명의 유명 소설을 응용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태국 공주와 사랑에 바진 태국 학생의 이야기로, 계층간의 문제로 이어질 수 없는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드라마,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림 뒤에서>는 그저 비극적인 로맨스 영화일 수도 있지만 사실 태국의 정치적 역사를 반영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은 1932년 태국이 완전한 입헌군주제로 전환된 뒤 5년 후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1932년 이전의 태국은 라마 7세가 통치하는 절대 왕정 국가였지만, 1932년 무혈혁명 직후 입헌 군주제 국가로 바뀌었습니다. 국민당은 절대 왕정에 반대하여 군부와 함께 시암 혁명을 일으켰던 것이죠. 이 시암 혁명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도 있습니다. 이 기념비 근처에는 1932년 쿠데타 기념 조각도 있습니다. 마침내 헌법이 도입됨을 기리는 의미에서 새겼던 것이죠. 하지만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2017년 4월 14일, 이 조각은 사라집니다. 그들은 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지우려고 했던 것이지요. 이때 민주주의자와 극우주의자들의 분쟁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사와 기억에 대한 논란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왕정의 역사와 기억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고, <그림 뒤에서>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학생 노폰과 키라티 공주가 주된 주인공입니다. 키라티 공주는 제가 직접 분해 연기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키라티 공주를 주제로 저는 <키라티 박물관> 이라는 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시를 통해 일반적인 하얀색 외벽의 박물관을 키라티 박물관으로 바꾸려고 시도했었습니다. 한 관에서는 <그림 뒤에서>를 상영하며 영화를 어떤 식으로 촬영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다른 관에서는 여러 가지 그림들을 전시했고, 그 중에서는 영구 버전으로 움직이는 사진들을 형상화한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진들(Motion Picture)은 1927년 태국의 지식계층 여성들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진을 움직이는 포스터로 보여주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들 속의 여인들은 묶이고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최대한 오래,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모든 것들을 합쳐 <나를 잊지 말아요> 라는 90분 분량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932년 이후 86년간 태국에서는 수많은 정치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나를 잊지 말아요> 라는, 일종의 대화를 통해 태국의 극우주의자들, 군부세력들, 또는 국가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의 기능은 무엇인지, 국가주의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제까지도 태국은 군부 정권하에 있습니다. 선거를 언제 치르게 될지도 잘 모르겠어요.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일들이 통제되고 있는 것이죠.

 

 

관객 1: 2014년 쿠데타 이후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태국을 떠나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국내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검열이나 제재는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A Breif History of Memory> 는 군부에 대한 직접적 비판으로 여겨지지 않았나요? 태국에서 상영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출라얀논 시리폴: 쿠데타 이후 영화 감독들이나 예술가들은 실제로 자유를 많이 잃었습니다. 군부가 저희들을 주시하고 검열하려는 시도를 계속했고, 상영금지 등의 처분도 내리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하에서는 이러한 정치문제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A Breif History of Memory> 는 제가 2010년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아들을 잃게 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군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기보다는 노스텔지어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져 상영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관객 2: <키라티 박물관> 같은 경우는 태국 왕가를 재현하려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태국에는 형법 112조와 같이 군주제 비판 금지 조항이 있다고 들었는데, 상영시 아무 문제가 없었나요? 그리고 <그림 뒤에서> 의 책 표지에 있는 남자 사진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가요?

출라얀논 시리폴: 표지의 남자 사진은 시우라파라는 작가입니다. 그는 기자이자 활동가였습니다. 그의 소설은 아름답고 로맨틱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주제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숨겨둔 소설이기도 합니다. 형법 112조에 관해 말해 주셨는데요. 공공장소나 SNS에서 왕족이나 군주제에 대한 비판을 할 경우 체포될 수 있다는 조항이죠. 저는 실제로 키라티 공주를 통해 왕정의 기억을 투영하려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작품을 상영하기 전에 국왕이 서거하기도 했었구요. 따라서 저도 형법 112조에 관한 여러 걱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존 인물이 아닌, 그저 유명한 작품 속의 인물들을 논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왕정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면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이죠. (웃음) 이런 방식이 우회적으로 군주제에 관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3(나윈 노파쿤 감독): 같은 태국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일련의 작품이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최근의 작품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놀라웠구요. 태국 정부에서는 많은 것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과 정권 사이에서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Catch Me If You Can)’ 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태국의 예술가들이 처해있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작품을 꾸려나가야 할까요?

출라얀논 시리폴: 태국 현대 예술은 정치적 이슈뿐 아니라 다른 것도 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1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또 태국의 정치 상황은 국제적인 이슈이기도 하고요. 저희가 이런 토픽을 다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10년 뒤, 지금 이 상황을 돌이켜 본다면 분명 의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3(나윈 노파쿤 감독): 마지막 질문은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태국인으로서 질문드립니다. 태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출라얀논 시리폴: 이 문제는 모든 태국 국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도 중요합니다. 이 이슈들은 제가 영화로 답변드렸었죠. <태국의 10년> 이라는, 단편 4개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태국의 10년 뒤 미래를 담은 작픔입니다. 현재도 군부가 미디어를 통제하고 있듯 미래에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기존의 정책들도 이어지고 있지 않을까요.

 

 

 

관객 4: 태국은 최초로 제 3의 성을 인정한 국가입니다. 군부 정권 하에서도 이를 인정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합니다. 성적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합치되지 않는 점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출라얀논 시리폴: 젠더의 측면에서, 태국은 LGBT에 관해 상당히 열려 있습니다. 실제로 주위에서도 쉽게 LGBT를 찾아볼 수 있고, 일상적인 주제이기도 하죠.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은 아직도 통제, 억압되고 있고, 이는 여전한 문제입니다. 한국과는 약간 반대되는 경우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기록 | 전동현, 홍수진 루키

사진 | 김진우 루키, 임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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