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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보람 감독
NeMaf 조회수:3064 추천수:4
2017-08-19 17:47:44

 

“관계가 사라지고 있는 도시화된 삶, 그 안에서 공허했던 마음을 백구의 삶을 통해 돌아보고 싶었다.”

 

김보람 감독은 제 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 ‘한국구애전’을 통해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 <개의 역사>(2017) 를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김보람 감독은 현재 다큐공동체 푸른영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결혼전.투>(2013), <독립의 조건>(2014) 을 연출했다. <개의 역사>로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처음 네마프에 참여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독립해서 나와서 살았던 동네에서 이 작품을 찍기 시작했어요. 3년 사이에 세 곳을 옮겨 다니며 이사를 했어요. 이사 다녔던 동네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찍어서 만든 얘기에요. 거기 안에 개도 있고 그 개에 대한 사람들의 얘기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다 포함되었어요. 제가 살아오면서 갖고 있던 고민이 있었는데, 삶의 피로에 대한 부분일 수도 있고 삶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에 대한 생각들일 수도 있고.. 그런 고민을 모아서 만든 영화입니다.

 

 

 

잡지사에서 일하시다가 2012년에 다큐멘터리로 입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보람 감독을 사로잡은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다큐를 찍는 과정에서 카메라에 찍는 사람이 담긴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카메라가 그냥 기계잖아요. 감정이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찍는 사람이 드러나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걸 경험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성찰하게 하는 게 다큐 작업의 매력인 것 같아요. 예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돌아보며 살고, 그 안에 있는 나는 또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그 사람들의 삶을 내가 이야기하려면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왜 이 사람이 이렇게 사는지 계속 고민해야 하잖아요. 그게 제 삶과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고민일 수 있는 것 같아요.

 

 

 

<개의 역사>가 김보람 감독님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데요. 이 전에 단편 작품들과 비교해 작업하면서 느꼈던 제일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만들었던 세 편 중에 가장 길게 찍은 거였어요. 단편에도 이야기 구성의 흐름이 있긴 하지만 한순간의 인상 혹은 짧은 에피소드들로 완성할 수 있었다면, 반대로 장편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안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지켜보면서 따라가는 과정이 필요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개의 역사>를 구성할 때 변화들을 읽어내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찾아 흐름을 만드는 과정이 되게 어려웠어요. ‘꼴’을 갖춰간다는 느낌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장편 작업을 한다는 게 이런 거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어요.

 

 

 

제목에 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한글 제목은 <개의 역사>, 영어 제목은 <Baekgu>입니다. 제목만 들었을 땐 개 한 마리에만 집중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백구뿐만 아니라 다른 대상들의 모습까지 담아낸 영화였습니다. <개의 역사>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개가 동네를 떠돌던 개였고, 나이가 든 채로 동네에 왔기 때문에 원래 이름이 뭔지는 아무도 몰라요. 존재의 기록도 남아 있지 않고 존재감도 크지 않았어요. 영화를 시작할 때, 제가 느꼈던 감정도 그런 ‘존재 없음’의 감정에 가까웠었거든요. 난 분명히 살아있는데도 붕 떠 있는 것 같고,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감정을 백구를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어요. 개의 역사를 기록하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동네 개’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고 ‘개 같은 존재’라고 하면 밀쳐내지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개’라는 단어랑 ‘역사’라는 단어를 붙여보고 싶었어요.

이 제목을 처음 생각했던 게 ‘내가 이걸 영화로 찍겠어’라고 결심한 날이었어요. 백구를 돌봐주시던 아저씨가 운영하시던 슈퍼가 철거되는 걸 봤거든요. 아저씨가 30년을 채 못 채우고 이사를 하셨고, 텅 비어있는 슈퍼를 봤는데 그때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아요. 그날 그걸 찍고 내려가면서 ‘아 이거는 개같이 하찮은 것들에게 의미부여를 해주는 그런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와 그 중에서도 공터에 이름 없는 백구를 촬영하기로 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남산 아래 동네에서 살았었는데, 버스를 타려면 계단을 무조건 올라가야 해요. 그 계단 바로 옆에 백구가 살았던 창고 건물이 있어서 맨날 보게 됐고, ‘저 개는 왜 저기 혼자 있지’라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그냥 짧게 한번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으로 찍기 시작했었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마주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동네의 모습이 아니라 카메라로 담은 영상이기에, 카메라의 시선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개의 역사>에서 핸드헬드나 정지화면처럼 매끄럽지 않은 영상들을 연출하셨는데,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배경이나 제 얘기를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꼈어요. 처음엔 백구 모습으로만 가편을 만들어 모니터링을 받았는데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개의 이야기 자체가 아닌 밖에 있는 얘기였거든요. 그래서 일 년을 다시 찍고 편집해서 지금 버전이 나왔어요. 개의 얘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제가 갖고 있던 기억으로 돌아가는 거였어요. 지나온 시간을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이런 고민의 지점에 있는 게 말씀하신 영상이에요. 영화용으로 촬영을 안 했었기 때문에, 핸드폰이랑 옛날 비디오에서 영상을 많이 가져와서 거친 느낌을 극복해야 했어요. 아저씨를 쫓아가는 장면에서 스틸로 잡아서 연결하는 씬이 있는데, 뛰면서 찍었더니 화면이 너무 흔들리는 거예요. 작은 화면으로 봐도 어지러운데 극장 화면은 무리였어요. 그 장면을 뺄 수도 있었지만,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씬이어서 고민하다가 스틸로 잘라서 넣어봤더니 괜찮은 거예요. 그리고 그 씬이 영화의 초반부에 제 배경이 나오기 직전에 있어요. 이 영화가 결국엔 제가 겪어온 저의 역사이고, 백구가 저이기도 하거든요. 과거로 회귀해서 돌아가며 매끄럽지 못하고 삐꺽하고, 쿵 하는 지점들을 겪는 모습이 표현된 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대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감독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우리가 ‘이거'를 놓치고 있다 명확히 말하는 건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영화를 시작할 때 가지고 있던 감정이 무엇일까 많은 고민을 했고 알아보고 싶어서 계속 두드린 게 80분 동안 풀어진 얘기로 나오지 않았나 해요. 이 도시에 살아가는 거 자체가 서로가 서로한테 시선을 주지 못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저는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한 장소에 진득이 살며 관계를 맺는 게 어려웠어요. 한 장소에서 30년을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동네 이웃을 다 안다고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사는 공간과 생활하는 공간이 분리된 삶의 형태이기도 하고, 그런 식의 붕 뜸이 도시화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도시가 표상하는, 계속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주입된 생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기보다 계속 바뀌어야 하고 밀려나는 것들은 그냥 밀려나면 끝나는 식의 마음들이 이미 너무 우리 안에 퍼져있어서, 그렇게만 살다 보면 분명 놓치고 있는 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요, 영화를 보시는 분들은 어떻게 보실진 모르겠지만, 같이 고민해주세요’라는 뜻으로 이 문장을 말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김보람 감독님께 ‘NeMaf2017’은 어떤 의미인가요?

미지의 세계에 발 딛는 느낌인 것 같아요. 네마프라는 영화제 얘기를 많이 들었고, 주변에 감독님들이 가서 상영하시는 것도 보곤 했지만 제가 네마프를 가본 적은 없어요. 제 생각에 네마프는 실험영화들이 많이 상영돼서 그런지 약간 저 멀리 있는 세계 같은 느낌이 사실 있었거든요. 궁금함은 있었지만 발이 잘 닿지 못하는 쪽에 네마프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거기서 제 작업을 상영하게 될 거라곤 상상을 못 했었는데, 연락이 와서 매우 기쁨과 동시에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도 많이 생기는 거 같아요. 관객분들이 제 영화를 어떻게 읽어주실까 궁금하고, 다른 작품들도 보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김보람 감독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존재에 주목하였다. 이 영화는 작가의 알 수 없는 감정에서 시작되었으나,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개의 역사>는 우리가 외면했던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관객과 같이 고민하고자 하는 김보람 감독은 8월 24일 목요일 오후 4시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말, 분리, 표류의 가능성’ 토크에서 또한 만나볼 수 있다.

 

 

 

취재 및 정리 │ 이은아 루키

사진 │ 김지원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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