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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데일리 [20131019] 영화제 - <왕자가 된 소녀들> 리뷰
2013-10-19 19:11:26
NeMaf <> 조회수 1298

2013 NeMaf의 슬로건인 ‘대안YOUNG展’은 ‘한국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타자화 되고, 배제, 왜곡되어 왔던 소수자의 영상언어’를 찾기 위해 마련된 영상전입니다. 그런 만큼 ‘대안YOUNG展’에 참여한 여자감독들의 수도 적지 않은데요. 오늘은 그 중 <왕자가 된 소녀들>을 감독하신 김혜정 감독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만나 뵀습니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1948년에 시작된 우리나라 전통극인 ‘여성국극’의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여성국극은 오직 여성만이 배우로 참여하는 무대극으로, 남장을 한 여성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극입니다. 때문에, 남장여성배우의 인기는 곧 여성국극의 인기를 몰고 왔지요. 국극을 쫓는 팬들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남장배우와 가상결혼식을 올린 팬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남장의 수준은 분장 뿐 아니라, 목소리, 몸짓에서도 나타납니다. 여성과 남성의 경계가 무너지는 결정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본다고 하듯, 여성 안에 숨어있는 남성성을 마주하는 이들은 이 속에서 어떤 합일 또는 통쾌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은 느낌이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사실 이런 퀴어적인 코드는 현대에 더욱 익숙한 것인데, 1950년대에 이미 유행같이 번진 적이 있단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여성국극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국극배우들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당시 시행된 전통문화 보존 정책에서 여성국극이 배제됐기 때문이지요. 의도적으로요. 여성국극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故조금앵 선생님의 말이 맴돕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그 꿈을 못 이룰 것 같다.’

 

<왕자가 된 소녀들> GT

Q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A 어느 날, 아는 분께서 50년대 여성국극 배우들의 옛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요즘엔 남장여배우도 많이 오지만, 그 옛날에 이런 장르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하니 다소 충격이었죠. 먼저는 제가 대학생활을 했던 90년대 중·후반은 성정치와 여성주의 문화 활동이 많은 시절이었는데, 저 또한 이런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제 고민을 같이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영희야 놀자’라는 집단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2007년부터 배우 분들을 찾아뵈며, 다큐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Q 다큐의 특성상, 인터뷰이를 대상화해야하는 부분이 있는데 잘 진행하신 것 같아요.

A 처음 뵀을 땐, 그분들께서 저희를 웃으면서 맞아주셨는데 속내를 보여주시진 않으셨어요. 저희들을 그냥 왔다가는 뜨내기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1, 2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저희들이 진정 여성국극에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아시고 가족처럼 대해주셨어요. 다큐작업은 다른데서 시간이 걸리기보다는 인터뷰이와의 관계를 맺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인 것 같아요.

Q 여성국극 왜 나타났고, 왜 사라지게 된것인가요?

A 여성국극은 1948년에 처음 시작됐는데, 그 시작에는 여러 요인들이 결합돼 있어요. 실력있는 여류명창들은 당시 기생을 길러내는 곳에서 뽑혀온 사람들이에요. 예술가로서는 뛰어났지만 천대받는 직업일 수밖에 없었죠. 남성보다 훨씬 활동을 많이 하는데도 여성명창들이 무시를 받다보니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올라간 첫 작품이 춘향전을 각색한 <옥중화>에요. 이렇게 올린 작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니 작품이 계속 만들어졌지요. 현재 명동예술극장이 있는 자리가 예전에는 국립극장이었는데, 이 국립극장에서 만원사례를 일으킨 적은 여성국극이 유일무의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때문에 원래 있던 창극은 여성국극에 밀려 설자리를 잃을 정도였죠. 당시 남성 명창들의 회고록을 보면 여성국극단의 인기로 인해 극장을 빼앗긴 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1950년대 전국적으로 엄청난 호황을 누린 여성국극이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이유는 한국 영화의 부흥 때문이라고 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는 한국 영화 전성기 였습니다. 당시에는 극장과 영화관의 구분 없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무대예술보다는 영화관객이 많아 공연들이 자리를 잡기 어려웠지요. 여성국극 뿐 아니라 다른 악극, 연극 등 모든 무대예술 자체가 60년대에 들어서는 전반적으로 쇠퇴기를 맞게됩니다. 여성국극 자체도 그 레파토리가 반복되다보니 영화에 밀릴 수 밖에 없었고요. 전통문화예술이 이렇게 위기를 맞게 되니, 국가에서는 이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보호정책들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여성국극은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외려 여성국극에 예술도 아니고 전통도 아니라는 딱지를 붙였지요. 국악을 기형적으로 망친 것이라면서요. 때문에 그 뒤로는 여성국극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별로 남지 않게 됐습니다.

Q 일본의 다카라츠카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 다카라츠카는 여성국극과는 태생자체가 다릅니다. 일본철도회사에서 그 지방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의도적으로 다카라츠카라는 문화상품을 만든 것이지요. 다카라츠카 전용극장, 학교를 만들어 매년 배우를 배출하고 그 배우를 무대에 세우지요. 규율에 묶였있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체계화 된 만큼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요. 하지만 여성국극은 자생적으로 생긴것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문화라고 생각해요. 다만 누군가가 집중시켜 부흥시키려한 시도는 없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안타깝지요. 그렇지만 배우분들이 어르신이 돼서 까지도 활동을 하는 게 창극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해요. 체계없이 우후죽순인 것이 여성국극의 치명적이 부분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유롭고 대중들과 더욱 가까이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요? 다카라츠카는 딱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김혜정 감독은 끝으로, 여성국극 배우분들에 대한 존경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성국극의 전성기는 한 때였고 그 이후 죽 쇠퇴기를 내려온 셈인데도, 어르신들께서 지금까지 무대 위에 선다는 그 자체에 큰 감동을 느끼신다는 김 감독님. 오래 시간이 지나도 열정을 놓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경험이 일생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글 뉴미디어루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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