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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GT] 뉴미디어대안영화제작지원
    NeMaf 조회수:2674 추천수:2
    2019-08-21

    820일 오후 4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뉴미디어 대안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만들어진 이연 감독의 <직전의 밤>과 고싫싫 감독의 <헬로우! 옐로우!>가 상영되었다. 상영 이후에는 두 감독이 참석해 제작 과정에서의 고민과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은 심혜정 모더레이터가 맡았다.

     

    심혜정: 네마프는 대안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해 올해 <뉴미디어 대안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진행했는데요, 오늘 상영된 두 작품 모두 2년 동안 네마프 사무국과 많은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이연 감독님의 <직전의 밤>은 전부터 갖고 있던 푸티지(footage)를 사용해서 작업한 사적 다큐멘터리였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연: 혼자만의 두려움에서 빠져나와서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과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영화를 만들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때마침 그 시기에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여러 푸티지와 기억, 사건들이 쌓이면서 그토록 방대하고 무거운 것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한테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중간에는 작업을 못 하겠다고 생각했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저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제가 간직하고 있던 푸티지와 하지 못하던 이야기들을 모두 꺼내 본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마침표는 아니더라도, 쉼표를 찍는 마음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심혜정: 사적 다큐멘터리 작업 자체가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서랍처럼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 같아요. 한편 영화에 삽입된 필름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이미지들은 어떻게 모으신 건지, 사진 작업을 계속하고 계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연: 필름카메라로 찍은 푸티지를 많이 사용했는데요. 사실 작업이라고 할 만큼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고 있진 않고, 영화에 쓸 거라는 자각도 없이 그냥 놀이 삼아서 친구들 혹은 제 애인이었던 친구와 함께 제가 봤던 풍경, 우리가 있던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던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기억을 되돌아보면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뒤져보니까 그때 제가 놀이 삼아 찍었던 풍경이나 기억들이 무언가를 말해주기도 하겠다, 더 나아가 그 시간을 증명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영화에 넣게 되었습니다.

     

    심혜정: 영화에 삽입된 인용문들은 어떤 식으로 선택된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이연: (영화 구성상 총 네 개의 조각 중에서) 인용문이 삽입된 것은 첫 번째 조각인데요, 제가 한동안 말을 잘 못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일상생활에는 어려움이 없는데 진짜로 하고 싶었던 얘기나 가지고 있는 비밀들이 절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던 시간을 겪었습니다. 그 시간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다가 그때 제게 힘이 되어준 것들은 제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는 책의 구절들 혹은 영화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빌려서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기 때문에 실제로 그 시절에 많이 읽었던 책들을 인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심혜정: 이번에는 고싫싫 감독님께 질문드릴게요. 처음엔 다양한 입장의 성 노동자 이야기를 다루려고 하셨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섞여 있는 실험영화를 만들기로 계획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작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동 사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헬로우! 옐로우!>의 제작 과정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고싫싫: 제 관심사가 여성운동이라서 관련 사안의 최전선에 있는 성 노동 문제에 대해 취재를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인천 남구에 위치한 집창촌인 일명 옐로우하우스에서 종사해 왔으나 지금은 생업을 잃고 주거지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거주자들의 투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작업에서는 보편적인 노동문제를 함께 다루려고 했었는데 점점 연대 활동에 집중하면서 계획을 바꾸어 현재 현장의 상황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생존이 걸려있는 투쟁 현장에서 예술 관련 작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고, 단순 취재차 방문했다가 운동의 중심부에서 사람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입장이 되어버려서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서 관객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심혜정: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고 자본과 도시개발, 성 노동 문제가 겹쳐져 있는 만큼 작업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오랫동안 리얼타임(real time)으로 현장을 보여주면서 그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게끔 하셨는데요, 현재 중요하고 급박한 운동이라고 말씀하신 만큼 구체적인 사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고싫싫: 이곳은 다급한 동시에 외면되고 있는 현장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성 노동자 관련 사안보다 전선이 명확한 편인데요, 피해자들이 퇴직금과 이주보상금을 요구하고 주체적인 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 노동을 인정하는 진영과 반성매매 진영 모두가 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한 분 한 분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철거민 투쟁이 다 그렇듯 이곳도 생존권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단지 성 노동 집창촌이라는 이유로 고립되어 있고, 기본적인 권리 역시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함께 투쟁하고 계신 대표님께 더욱 자세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창이: 안녕하세요. 저는 옐로우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대표 창이입니다. 지금은 다른 가게는 다 헐고 가게 한 곳에 일고여덟 명이 거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합장 측에서는 명도 소송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인데 망치로 유리를 깨는가 하면, 철거 과정에서 석면이 발견되어 작업 중지 명령을 받은 상황인데도 포크레인을 몰고 와 이것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쓰레기를 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CCTV를 설치해서 저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등 저희를 사람으로 보는 것 같지 않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데도 관할 관청에서는 사유재산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고만 얘기해서 아주 답답합니다. 저희가 바깥의 사람들과 소통해본 적이 없는 만큼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제 9개월 가까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도 힘들지만,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하는 투쟁인 만큼 전국의 성 노동 여성들이 함께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 힘을 합해주시면 좋겠고, 많이 연대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심혜정: 마지막으로 두 감독님의 향후 계획이나 작업 마무리에 대한 발언을 부탁드립니다.

    이연: 이번 영화는 제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이야기와 너무 무거워서 다 정리되지 않았던 이미지들을 꺼내 본다는 생각으로 작업해서 부족함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와 감정적으로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아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큰 산을 하나 넘은 느낌이어서 조금 더 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잘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싫싫: 미완성의 영화를 보게 해드려서 사과드립니다. 완성된 영화로 다시 네마프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 이예진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 [2019] [GT] 뉴미디어대안영화 <키들랏 타히믹의 밤부카메라>
    NeMaf 조회수:2795 추천수:3
    2019-08-21

    8 20일 오후 7,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뉴미디어대안영화 섹션을 통해 배윤호 감독의 <키들랏 타히믹의 밤부카메라>가 상영되었다. 이어진 GT에는 설경숙 모더레이터의 진행 하에 배윤호 감독이 참석하여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영화는 키들랏 타히믹 감독님과 함께 남해 지역을 여행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단순해 보입니다. 하지만 키들랏 타히믹 감독님의 영화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영화 곳곳에서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 그리고 배윤호 작가님이 어떻게 감독님의 방식을 이 영화에 재현하려고 했는지를 주목해서 보셨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전작에서는 무엇인가 만들어지는 과정, 또 그 안의 도구들에 주목을 하셨던 것 같은데 이를 감안하며 <키들랏 타히믹의 밤부카메라>를 보다 보니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재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키들랏 타히믹 감독님의 눈과 입으로 우리 나라의 문화, 무언가를 칭하는 말 등이 어떻게 재현되고 보이는지가 영화 전반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이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배윤호 : 키들랏 타히믹 감독님은 원래 몰랐다가 우연치 않게 같이 작업했던 허대경 작가가 저에게 문득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더라고요. 때문에 영화를 만들자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요, 정말 여행처럼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이게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구성원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갑자기 같이 차를 타고 무계획으로 떠난 여행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목적은 없었고 기록하면서 나의 삶 속에서 이 여행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또 영화를 계속 만든다는 것은 무슨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키들랏 선생님을 처음 보았을 때 제가 생각한 영화감독의 모습이 아니라 호기심과 질문이 많은 어린아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주로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설명을 많이 해주거든요. 하지만 키들랏 감독님은 70대의 나이임에도 항상 질문하고, 호기심 많은 태도를 유지하면서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어서 저도 호기심을 가지고 그분을 따라가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감독님의 눈을 통해 재현되는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고자 결정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배윤호 :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 당시에는 카메라맨 없이 저 혼자 찍었어요. 이로 인해 기술적인 문제가 있기도 했는데 편집하면서 든 생각이 키들랏 타히믹 선생님의 눈으로 본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하는 일상, 예컨대 도로, 먹는 모습, 지나가는 것들 등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지 않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이 부분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영화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 영화 안에서도 키들랏 감독님이 시네마틱(cinematic)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촬영 스타일을 보면 상당히 홈 비디오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것은 의도하신 건가요?

     

    배윤호 : 의도를 했다기보다는 장비의 열악한 조건과 최소 장비로 어떻게 찍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이렇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이것도 하나의 스타일이 된 것 같습니다.

     

    편집 과정에서의 선택인지가 궁금했는데 그렇군요.

    배윤호 : 영화관 안에서 처음으로 키들랏 선생님을 만나는데 영화관에서 영화감독이 보여주는 형태가 아니라 같은 일상에서 보일 때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깝게 영화가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런 스타일을 차용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조명이나 설정 등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쓰지 않았고 후반 작업에서도 믹싱, 사운드, 효과적인 것, 심지어 음악조차도 쓰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라디오 배경음이나 노이즈를 가지고 음악을 구성했고요, 전체적으로 영화가 쓰는 모든 기법적 방법들은 배제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녹음된 노이즈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았습니다.

     

    키들랏 타히믹 감독님의 작품 세계와 이 영화의 언어는 어떻게 상응하는 건가요?

     

    배윤호 : 키들랏 선생님은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항상 열려 있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물에 가면 수영을 하고, 절에 가면 묵념을 하고, 음식점에 가서는 밥을 맛있게 먹는 등 참 자연스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과중 스트레스로 인해 공간이나 상황이 바뀌더라도 그 스트레스를 계속 갖고 있고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고 있죠. 그런데 키들랏 선생님은 순간순간 적응하면서 실제 몸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 점이 신비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매 순간 인위적이지 않고 먹을 때 맛있게 먹고 잘 때 푹 자고 바다가 보이면 뛰어들고 절에 가면 묵상도 하는 등 순간순간 바뀌는 모습에 대해 굉장히 독특한 창작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반인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24시간이 전부 스트레스잖아요. 공간이 바뀌더라도. 어떻게 보면 꿈, 영화, 삶 이 모든 것이 구별되지 않는 동시성을 가지고 있는데 다만 스트레스 때문에 보지 않고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하곤 합니다.

     

    한국이라는 곳에 오셔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배윤호 : 저는 선생님과의 첫 여행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특히 핸드폰을 처음 드린 날이었기 때문에 그 핸드폰으로 무엇을 담을지가 궁금하더라고요. 누구나 핸드폰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서 감독님은 핸드폰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찍게 되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선생님의 태도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키들랏 타히믹 감독님이 계단식 논 등 고대 기술을 찬양하면서 사실은 아이폰을 들고 촬영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상당히 모순적이라고 느껴졌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윤호 : 그 점이 모순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또 긴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태도, 그러니까 고대 기술이든 첨단 기술이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 촬영지를 특별히 남해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배윤호 : 키들랏 선생님이 계단식 논을 너무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전 세계를 다닐 때마다 꼭 나라별로 계단식 논을 다니셔서 허대경 작가가 남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에는 작품에 계속 나오는 허대경 작가님이 연출자이신 줄 알았는데 그냥 대화를 따로 하고 계신 거였잖아요. 그리고 허대경 작가님과 키들랏 감독님 사이의 대화에서 상당히 재밌는 부분도 많다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은연중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같은 것들이요. 찍는 입장에서 둘의 상호 관계에서 특별히 끌어내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나요?

     

    배윤호 :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요, 허대경 작가와 키들랏 선생님은 사제지간이고, 개인적인 정이 많아서 제가 의도한 부분이 있다면 영화라는 것과 창작자로서 나이가 들어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는 정도였습니다. 저보다는 허대경 작가를 통해 호기심이라든지, 나이 듦, 개인적 시간과 공동체의 시간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 등을 유도 질문을 한 편입니다. 그리고 숙박업소에서 20 년 만에 처음으로 편집한 과잉 개발의 기억에 대한 것들을 보면서 관객은 없지만 처음 만든 영화, 최근 오랜 시간 편집해서 만든 영화, 이를 보면서 여행하는 것까지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더라고요.

     

    관객 : 키들랏 감독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그때그때 사물들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일관된 미학이 있는 한편, 사물에 대한 유한성이나 우연성 역시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키들랏 감독님이 불교신자라고 하셨는데 사실 불교의 공사상보다는 도가의 사상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윤호 : 말씀하신대로 불교보다는 더 공허하고, 비어있는 데에 관심을 보이고 이것이 또 사라지는 게 반복되죠. 키들랏 선생님이 바닷가에서 돌을 주우면 의미가 생기고, 놓으면서 의미가 사라지듯이 일반 극장 편집에서는 돌에 클로즈업이 들어가고 앞뒤 관계를 두 세번씩 보여주어야 의미가 생기지만 여기서는 키들랏 선생님이 카메라를 들고 관심을 보이는 순간마다 의미가 생깁니다. 사실 이러한 힘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사용한 카메라가 DSLR이라 매번 포커스를 잡으며 촬영하다 보니 노이즈가 많습니다. 하지만 키들랏 선생님이 처음 본 세상에서 애정을 가진 부분들, 예를 들어 독립운동가의 포스터 이미지, 물소리, 식민지 시대에 대한 아이콘, 미의식에 대한 선입견, 돌맹이, 쌀, 빛 방울 등이 의미가 없다가도 키들랏 선생님을 통해 가치가 부여됩니다.

     

    도교의 카오스 속 질서처럼 거리를 두고 보면 그 안에 연결되는 의미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의도는 없었다고는 하지만 촬영 스타일이나 노이즈도 전체적인 분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 : 상징적인 공간이 아닌 여정과 그 안의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전의 작업과 다른 부분이 궁금합니다.

     

    배윤호 : 이전의 <서울역>이나 <옥포 조선소>같은 경우에는 주로 근대 공간의 건축물이나 구조를 오랜 시간 관찰하여 공간과 그 안의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추적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의 경우에는 이러한 프레임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여 지켜보고 바라보는 키들랏 감독님의 모습을 따라감으로써 무수히 많은 공간들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시간과 돈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데 키들랏 감독님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길을 섬세하게 가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 제작까지의 과정에서 사실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기에 그렇지 않고 밥 먹듯이 매일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는데 은연중에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키들랏 감독님이 계속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시잖아요. 그렇다면 제목이 밤부 카메라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배윤호 : 밤부 카메라는 키들랏 선생님의 상징적인 물건입니다. 독립영화의 아이콘으로서 필리핀의 대나무, 혹은 지역적인 캐릭터에 대한 상징, 그리고 제3세계에 대한 심벌이랄까요. 결국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과 이야기를 찍어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영화라는 것이 과연 기존의 방법만을 고수해야만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영상의 세계가 열려있는 건지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밤부 카메라라는 제목을 사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태어나는 세대들은 영화로서 이미지를 처음 보는 게 아니라 핸드폰을 통해 영화를 보기 때문에 핸드폰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이 극장에서 첫 영화를 보는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자신의 인생에 있어 첫 영화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핸드폰에서 보는 영화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주소겠죠. 그래서 다른 시대의 역사가 시작되는 느낌을 받아 밤부 카메라를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시대의 밤부 카메라는 도대체 무엇인가, 모든 지구인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밤부 카메라가 상징하듯이 잊지 말아야 할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것과의 경계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 키들랏 타히믹 감독님의 눈을 통해 보니까 한국의 것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계속 우리 것과 독일적인 것, 미국적인 것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업하셨나요.

     

    배윤호 :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과연 그것이 한국적인 건지,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남아있는 건지, 새롭게 등장한 기술적인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동시에 하게 되더라고요. 저 역시도 잘 모르지만, 평범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이 사실 새롭게 해석되고 발견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 순간에도 새로운 한국적인 것이 태어날 수도 있고 잊힐 수도 있겠죠. 그리고 한국적인 것이 뭐냐, 아시아적인 것이 뭐냐, 세계적인 것이 뭐냐는 물음처럼 지역적 경계로 구분하는 태도가 아니라 미디어 내에서 변형되고 혼합되면서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 중간중간의 질문은 배윤호 감독님의 아이디어인가요, 아니면 키들랏 타히믹 감독님의 아이디어도 많이 들어가 있었나요?

     

    배윤호 : 제가 미리 인터뷰를 통해 유도 질문을 한 다음에 그 질문을 빼고 키들랏 감독님의 답변만 삽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면은 아무런 유도 없이 키들랏 감독님이 기상한 후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촬영한 것도 있습니다. 화장실 벽의 금, KT 등의 장면은 키들랏 감독님이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찾은 부분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범한 미용실 이미지, 국립 공원의 이미지도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본능적으로 아시아에 뿌려져 있던 자본적 캐릭터의 이미지들을 캐치하는 것 같아요. 특히 아시아 문명이 식민지화되는 과정 속에서 문명의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딱히 설명은 안 하셨지만 미의식에 대해서도 고민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취재 │ 정현경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 [2019] [GT] 한국구애전 단편 : 젠더 내러티브
    NeMaf 조회수:2875 추천수:1
    2019-08-20

    8월 19일 오후 7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한국구애전 단편 : 젠더 내러티브] 섹션의 <검은 집>, <비잉휴먼>, <핑크페미>, <높은 마음>이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난 뒤에는 <검은 집>의 전수현 감독과 <비잉휴먼> 손채영 감독, <핑크페미>의 남아름 감독, <높은 마음> 고경수 감독이 참석해 작품 소개와 함께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날 진행은 이양헌 모더레이터가 맡았다.

    이번 작업을 하게 된 동기나 계기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고경수 : 4년 전 만든 작품인데, 한예종 무용과 룸메이트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제대 후였고, 그 친구는 입대 전이었어요. 군대를 가면 커리어가 끝날 것 같다는 불안함과 동시에 자신이 발레 콩쿠르에서 입상을 해서 군 면제를 받을 실력은 아니라는 친구의 고민을 들은 기억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손채영 : 저는 작년 상반기에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그 때 가장 이슈였던 것이 탈코르셋 이슈였고, 그 담론이 당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만들 수 있던 주제라는 생각을 해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남아름 : 저 역시도 작년 3월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도 미투 담론 등 이런저런 담론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여서 제 마음속에 있던 얘기들, 제 어린 시절에 관한 얘기들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서 그 때, 이야길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수현 : 저도 작년에 정릉 재개발지역을 10년간 다니신 캣맘을 어쩌다 알게 되어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 쫓아다니다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비잉휴먼>의 손채영 감독께 여쭙겠습니다. 탈코르셋이라는 이슈에 대해 유보적 방식으로 이야기가 끝맺음되는 것 같습니다. 관객이 이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해석했으면 좋겠는지?

    손채영 : 이 작업은 작년 6월 마감이었는데, 당시 제 상태는 아노미였어요. 그 상태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결론적으로, 유보했던 건 아니구요. 제 고민은 계속 진행 중이라는 엔딩이었어요.

    작품 속 인터뷰이들과 인터뷰 하시면서 흥미로웠던 내용은?

    손채영 : 가장 인상 깊었던 건 50대 여성분이었는데요. 자신의 분노의 방향이 여성들에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현장에서도 편집 하면서도 놀랬었어요. 저는 사실 막연하게 나는 그럴 리 없다 생각했었는데 관조해보니 저 자신도 그러고 있더라고요. 그 때가 인상 깊었어요.

     

    <검은 집>의 전수현 감독께 질문하겠습니다. ‘캣맘’을 만나게 되긴 경위가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전수현 : 제 친구가 캣맘인데, 고양이 밥 줄 때만 집 밖으로 나와서, 친구를 만나러 따라다니다가 캣맘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어요. 원래 제가 중년 여성들의 삶에도 관심이 있었고, 그 분들이 하시던 농담들 중에 통쾌했던 지점들이 있어서 따라다니게 되었어요.

    제목과 관련지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검은 집이라고 명명하신 의미가 무엇인지?

    전수현 : 일단 제가 작업한 환경 자체가 보통 밤이었어요. 촬영도 밤에 주로 했고, 캣맘들도 주로 밤에 활동하거든요. 그리고 흔들리는 구도의 영상이 많은 이유는, 인터뷰나 어떤 내러티브를 넣는 것 보다는 영상 그 자체의 언어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제가 카메라를 직접 들고 다니며 촬영한 불안한 구도의 영상을 많이 삽입하여 편집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검은 집>인 이유는, 제작 기간에 고양이에 관한 자료를 찾다 어떤 문학 작품을 읽게 되었는데 그 제목이 ‘검은 고양이’였어요. 거기에 꽂혔어요.

    캣맘들이 자신들이 캣맘 활동을 하며 벌어지는 갈등들에 대한 조정은 어떤 방식이 있을까요?

    전수현 : 갈등에 대한 조정보다는 그들의 태도에서 힘을 많이 얻었는데요. 사람이나 돕지 왜 고양이 밥을 주고 있냐는 시비가 걸려 올 때, ‘뭐 어때? 내가 하겠다는데’ 라고 반응하는 태도가 너무 좋았습니다.

     

    <핑크페미> 남아름 감독께 여쭙겠습니다.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이 나오셨던 어머니는 이제는 페미니즘 활동을 안 하시는지?

    남아름 : 아 제가 편집을 잘 못했는지, 다들 오해하시더라구요. 사실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벌어진 잠깐의 해프닝이었고, 지금도 엄마는 활동 중이에요.

    ‘핑크페미’ 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남아름 : 매번 듣는 질문인데 사실 답을 아직 못 찾았어요. 저에게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 같고, 기성 세대의 페미니즘 운동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높은 마음>의 고경수 감독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이번 섹션이 젠더 내러티브인데, 작품이 이번 섹션으로 함께 묶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고경수 : 우선 <핑크페미> 제가 좋아하는 작품인데, 이런 영화와 같이 묶여 상영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연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고경수 : 4년 전 만든 작품이고, 그 당시에는 이 작품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완성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올해가 되서야 편집했고, 연출 의도는 가지고 있는 소스 내에서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의의를 두었고, 9와 숫자들이라는 가수의 ‘높은 마음’이라는 노래에서 제목을 착안했습니다.

     

    관객 1 : <비잉휴먼>에서 감독님이 하신 ‘GV에 메이크업을 하고 참석할지 노 메이크업으로 참석할지’에 대한 고민이 흥미로웠는데, 오늘은 어떻게 오셨나요?

    손채영 : 첫 상영회엔 화장을 하고 갔었어요. 그 때는 안 하고는 도저히 못 가겠더라구요. 지금은 그 때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났는데, 요즘은 제가 메이크업을 제 기분에 따라 선택적으로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어서, 오늘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 하고 왔습니다.

     

    관객 1 : <핑크페미> 감독께 묻고 싶습니다. 극 중 마지막에 나온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가 아니라 홀로 미국행을 결심하셨던 상황에서 감독님이 느꼈던 것을 자세히 듣고 싶어요.

    남아름 : 그 당시가 5월 정도였는데, 엄마는 너무 힘든 상황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셨던 것 같은데요. 저는 그 당시, 이제야 엄마와 사상적 동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도망가고 싶다니 화가 났었어요. 다시 그 때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돼요. 엄말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 2 : <검은 집> 감독께, 작품 속에 철창과 가림막이 삽입된 시퀀스가 굉장히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의도가 있었나요?

    전수현 : 공사장이 거대한 무덤 같다는 인상이 들어서 의도적으로 많이 넣었어요. 공사장을 둘러싼 철창과 가림막이 고양이들에게는 불편한 요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가림막이나 철창을 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삽입하기도 했습니다.

     

    관객 2 : <높은 마음> 감독께, 4년 전에 작업하시다 최근에서야 편집하신 작품이라셔서 어느 정도는 감안을 했지만 작품의 의도를 저는 잘 파악하지 못해서 설명을 좀 듣고 싶습니다.

    고경수 : 4년 전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해 크게 변하진 않았어요. 사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동시녹음 파일의 반이 날아갔거든요. 작품의 의도는 ‘현실은 이렇지만 마음은 더 높게 갖고 싶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비잉휴먼>의 손채영 감독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작품에 출연한 인터뷰이를 섭외하신 기준이 있으신가요?

    손채영 : 원래 기준은 연령이었는데, 하다 보니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긴 했지만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섭외한 청소년, 여대생, 직장인, 중년 여성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여성들의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관객 3 : <비잉휴먼>, <핑크페미> 감독님들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두 분 다 완성된 페미니즘을 말씀하지 않고 고민하는 과정을 보여 주신 점이 많은 공감이 되고, 감사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솔직하게 꺼내기까지의 결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남아름 : 작품 속에서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실 저는 많이 울어요. 엄마랑 그런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를 처음으로 터놓고 해봤거든요. 그래도 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손채영 : 원래 제가 등장하려는 계획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골몰해 있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인데 제가 안 나올 순 없었습니다. 당시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울 것 같으면 카메라를 바로 켰습니다. 그렇게 클립들을 모았어요. 그 당시에는 모든 일이 퀘스트를 하나하나 깨는 듯한 과정이었어요.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지우는 것 같은 것들이요. 지금은 쌍커풀 수술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감독님들의 향후 계획에 대해 한번 들어보며 마치겠습니다.

    고경수 : 앞으로도 극영화를 계속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보여드린 작품은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하려는지에 대한 심적 다짐인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여고생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손채영 : 앞서 말씀드렸던 제 고민거리인 쌍커풀 수술에 관한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쌍커풀이 풀리는 게 쌩얼보다 싫어요. 근데 탈코르셋을 하겠다는 제가 쌍커풀 수술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이 지금 저의 최대의 딜레마인 것 같아서,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남아름 : 다음 작품도 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주로 나온 엄마의 얘기도 나올 것 같고, 아주 잠깐 등장한 아빠의 얘기도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 작품도 잘 만들어져서 다음 네마프에서 상영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수현 : 중년 여성, 결혼 이주 여성, 국내 거주 중인 일본인 의사에 대해 찍어서 장편으로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이팅!

     

    취재 │ 안진영 루키

     
    사진 │ 김하영 루키

  • [2019] [LECTURE] <안토니아스 라인>을 통해 보는 삶과 비체 공동체의 가능성
    NeMaf 조회수:3104 추천수:2
    2019-08-20

    8 19일 오후 8,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이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의 ‘<안토니아스 라인>을 통해 보는 삶과 비체 공동체의 가능성강연이 열렸다. 김장연호 집행위원장의 진행 하에 이뤄진 이날 강연에는 풍부한 인문학적 해석으로 마를린 호리스 감독의 <안토니아스 라인>을 살펴본 한편, 비체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논해볼 수 있었다. 

     

     

    이현재 : 안녕하세요, 이현재입니다. 저는 <안토니아스 라인>을 비체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서 분석을 해보고자 합니다. 공동체는 학생들이 싫어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공동체가 나에게 해준 것이 없고 공동체의 윤리를 따라 봤자 이득이 없다는 거죠. 하지만 <안토니아스 라인>은 바로 이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 하에서 가능할까요? 

     

    1. 모계와 비체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정서적 조건들

     

    우선 모계와 비체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정서적 조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모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모계에 대한 설명을 잘 해놓은 것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 보면 생산양식 혹은 사회적 조건과 관련하여 가족 구성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떤 식으로 모계가 부계로 바뀌는지, 어떤 식으로 모권이 부권으로 바뀌는지에 관한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굉장히 오래전부터 클래식처럼 보아 온 책인데요, 이상하게도 요즘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과거의 군혼, 혈연가족, 푸날루아 가족의 형식이 대우혼이 되었다가 가부장제 가족이 되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일부일처제 가족이 되었는지를 생산 양식의 발전 과정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모권제는 가능했을까, 어떻게 모계는 가능했을까를 생각해보세요. 

     

    엥겔스는 루이스 모건과 원시 씨족 사회의 원형이 바로 모권제 씨족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씨족 사회는 근본적으로 모계가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죠. 더 재밌는 것은 모권제 씨족의 사회적 조건은 수렵과 채집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수렵이나 어로에 종사하며 이동하며 살던 그 시절에는 인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인구가 많지 않았기에 서로 경쟁할 일이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토지나 생산물은 씨족 공동체의 소유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시공동체 씨족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가장 주요한 가족 형태가 푸날루아였고, 이는 점차 대우혼으로 변모합니다. 이때까지의 인류학적 역사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모권이나 모계가 보이는 사회일수록 실제로 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고, 어느 정도는 수렵이나 채집에 의존을 했고, 토지나 생산물을 갖게 되더라도 그것이 씨족 공동체의 소유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생산양식에서 푸날루아 가족이 형성되는데, 푸날루아는 같은 형제가 같은 자매의 부인들을, 같은 자매가 같은 형제 남편들을 공유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의 아내, 한 사람의 남편을 주요한 혼인관계의 구성원으로 여기는 대우혼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대우혼도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일부일처제와는 거리가 조금 멉니다. 왜냐하면 이 친밀 관계는 일단 1:1의 관계가 나타나지만 완전히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었고요, 지금의 결혼과 달리 그 관계를 계속해서 지속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이 시대의 생존은 씨족 공동의 문제였고, 아이의 양육도 공동체가 함께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배우자를 특정하거나 결혼 관계를 영속화 시켜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씨족은 공동체가 먹고 쓸 만큼의 생산을 하였고 따라서 권력의 불균형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엥겔스는 “씨족 제도에는 지배와 예속이 있을 수 없다는 데에 그 위대성과 동시에 한계가 나타나 있다.” 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와의 배타적 관계를 맺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거죠. 오늘날의 결혼 제도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아이를 여성이 출산하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계보를 따지는 것이 더 확실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저 당시에는 지배층이냐 아니면 예속 상태이냐 하는 계급적 구분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모계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모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떤 독점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지금의 권력의 의미인데 이러한 맥락이 아니기 때문에 모계라고 파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이미 엥겔스가 조망하였고, 실제로 저런 생산양식을 갖던 시대에는 가부장적 양식이나 일부일처제의 양식이 거의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각종 혁명들이죠, 기술혁명들. 특히나 엥겔스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목축 및 농업 혁명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기점이 되는지를 봅시다. 목축, 대규모 농업으로의 전환과 함께 잉여 생산물이 발생했다는 것이 굉장히 커다란 사건입니다. 이 목축이라는 것은 떠돌아다니며 가축을 키우다 이제는 한꺼번에 많은 가축들을 우리 안에 가두어 놓고 키우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그러고 나니 가축들에게 먹이를 줄 사람이 필요로 하게 되죠. 그래서 대규모의 농업 또한 필요해집니다. 정착 생활로 인해 대규모의 목축, 그리고 대규모의 농업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잉여생산물은 남는 것이죠. 이처럼 잉여생산물이 발생을 하면서 원래는 모든 것이 공동체의 것이었다가 어떤 개인적인 사람의 축적물,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모권과 가부장제와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여기서 엥겔스가 지적하는 점이 바로 역할 분담인데, 그 당시 힘을 많이 쓰는 목축과 농업을 남성들이 담당하고 여성들이 가사 노동을 담당하게 됩니다. 재밌는 것은 많은 잉여 생산물이 생겨 사적 소유를 발생시키는 목축과 농업을 남성들이 하게 되면서 남성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가사 노동이 평가절하 되는 시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정착생활과 함께 부성이 확실시되면서 더 이상 모계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타이밍까지 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유 재산의 축적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나누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계급이고, 계급이 발생했기에 씨족은 더 이상 공동체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즉, 목축과 농업을 통해 사적인 소유가 가능해지면서 남성들은 권력을 획득했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전쟁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축적한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가부장적 개별 가족관계를 확립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가부장적 가족의 탄생입니다. 일부일처제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생산양식이라는 문제는 젠더 분화, 나아가 젠더 억압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죠.

     

    2. 사회계약은 어떻게 가부장제를 지속시키나

     

    여기까지가 인류학적 고찰이었다면, 이제는 근대로 이동해 근대의 사회계약은 어떻게 가부장제를 지속 시켰는가를 살펴봅시다. 여기서 가부장제의 개념은 공동체적인 것과 반대적인 것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사회계약론은 근대의 원자론적 개인이 확립된 이후의 인류 역사입니다. 시민 계약은 원자론적인 개인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인류, 모든 개인들을 위한 사회계약 혹은 모든 시민들을 위한 국가라고 이야기하며 근대 국가가 출범합니다. 근대 국가의 출범에 중요한 것이 사회계약론이었습니다. 근대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제시했거든요. 하지만 흥미롭게도 캐롤 페이트먼(Carol Pateman)이라는 여성학자가 근대 사회계약론의 창시론자 중 하나였던 홉스의 시민 계약론을 주목합니다. 당시의 시민 계약, 국가가 어떻게 사회계약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정당성을 획득하는가에 대한 이론적인 대답을 했던 저 시절에 홉스를 비롯한 많은 계약론자들이 자연 상태를 많이 이야기해요. 자연 상태란 지금 상태의 문명적인 것들을 추상화해 내면 그 상태는 어떠했을까에 대한 상상이에요. 그 상상 안에서 자연 상태가 어땠을 것인가 추측하는 것인데 홉스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리바이어던>에 나오는데, 리바이어던은 거대 국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대 국가가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이때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어떤 지배 질서도, 어떤 결혼 법률도 당시에는 없었다”라는 말을 합니다. 또한 “힘이나 신중함에 있어서 개인들 간에는 어떤 현저한 차이도 없다, 그리고 남녀 결합도 일시적이다”라고도 합니다. 엥겔스가 말한 씨족 공동체 사회 같은 모습을 계속 이야기하는 거죠.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했습니다. 심지어 홉스는 육체적으로도 남자에 비해 열등하지 않았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성을 열등하게 보거나, 육체적으로 약하게 보게 된 것도 일견 문명의 결과라고 보고 있는 거죠. 이러한 의미에서 홉스가 어떤 부분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보는 통찰적인 의식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캐롤 페이트먼은 인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리바이어던>을 읽어 보자면, “자연 상태에서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항상 힘이나 신중함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기계약으로서의 결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이 부재한 상태에서 아이는 어미니에 속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는 모든 여성은 어머니이지 군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자연 상태에서는 이랬던 것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근대 국가에서는 왜 사회계약을 맺을까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보죠. 바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기 때문에 싸운다고 말합니다. 일정한 재화를 둘러싸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기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그런데 홉스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설명이 흐려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어떻게 됐길래 여성에 대한 설명이 없는 걸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대 사회계약론으로 가게 되면 갑자기 남성들만 등장을 합니다. 이것이 홉스가 본인이 살았던 시대의 의식을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부분인 거죠.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대비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의 일부를 국가에 내어주고, 국가에게 강력한 권력을 위임하였기 때문에 국가가 그 권력을 담보로 모든 사람들이 싸우지 않도록 법을 통해 보호해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에 동의함으로써 사회계약이 성립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여성과 남성 모두 시민으로서 동등했어야 하죠? 하지만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시민 계약 이후 참정권 획득이나 시민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고대와 똑같이 남성뿐입니다. 남성들 중에서도 어떤 남성들이냐, 소유권 즉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그 권리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맥락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싸워서 이겨 자원을 획득하고, 진 사람은 노예가 됩니다. 남성들조차도 진 사람은 노예가 됩니다. 홉스는 최초의 가족을 혈연 가족이 아닌 주인과 노예가 같은 밥을 먹는 한 식구라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노예라는 소유물을 가지고 있는 주인뿐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어디 있나요? 또 물어보죠. 갑자기 여성은 싸움에서 진 걸로 나옵니다. 자세한 설명은 없어요. 하지만 캐롤 페이트먼의 추측에 의하면 아이 때문에 불리했을 거라고 합니다.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싸우기란 매우 불리했을 것이고, 따라서 노예와 같은 위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란 것이죠. 그리고 노예로 만든 여성을 자신의 아내처럼 맞이하게 된 것이 바로 가족입니다. 당연히 여성도 노예이기 때문에 시민권이 없는 거죠. 사회 계약의 주체가 아닌 겁니다. 따라서 근대 사회 계약론에서 말하는 원자론적 개인은 소유권을 가진 남성 개인입니다. 이쯤 되면, 캐롤 페이트먼이 물었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근대의 시민 계약은 가부장을 지속시켰는가. 소유권을 가진 남성들이 자신의 권력을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자신의 소유권을 보호받는 체제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민 계약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가 해주어야 하는 가장 큰 임무는 무엇일까요? 갖고 있는 소유물을 남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근대적인 가부장제는 신 계약과 함께 정당화됩니다. 이것이 캐롤 페이트먼이 작성한 논문의 주된 담론입니다. 그러니까 부인과 어머니는 정복이 된 거죠. 그런데 이때의 계약을 보면, 주인이 노예를 막 죽여도 되는 것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노예가 복종을 하면 주인은 이 노예를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예에게 있어 사실 어떤 상황이 더 최악이냐면, 이 집을 벗어나 아무런 공동체가 없는 저 산속으로 가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은 정말 미지의 세계,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드글거리는 세계이죠. 따라서 주인은 노예를 관대하게 보호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주인이라는 어떤 미덕 같은 것도 생긴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한 여성들도 노예의 자리에 있기 되는 것이죠.

     

    캐롤 페이트먼은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의 지배가 곧 권력관계였던 것이 전통적 가부장제였다면 고전적 가부장제를 주장했던 필머가 성경에 근거하여 가부장제의 정당성을 피력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렇게 주장한 가부장제의 내용이 사회계약론 이후에도 유효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 평등하다는 사회계약론 이후에도 이러한 메시지가 계속해서 관철될 수 있었죠. 캐롤 페이트먼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은폐된 사회계약론입니다. 그렇다면 고전적 가부장제를 통해 어떠한 것들이 전파되는가를 보겠습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고전적 가부장제는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말자는 주장을 실제로 하기도 했죠. 그 구절을 보자면, “신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아담에게 부여했다.(창세기 제1장 28절, 사실 번역상 오류로 아담이 아닌 그들에게 권력 부여)”, “너의 욕망은 네 남편에게 존재할 것이며, 네 남편은 그대를 지배할 것이다.(창세기 제3장 16절)” 등이 있습니다. 우에노 치즈코가 정의한 여성 혐오 담론에 따르면, 사실 여성 혐오는 “너를 싫어해” 이런 것 아니잖아요, 억압하는 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구조의 핵심은 남성이 주체가 되고 이 주체들의 연대를 위해, 여기서 연대는 사회계약이죠,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상화는 뭐고 주체가 뭔지 아시나요? 여기서 주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욕망의 주체라는 뜻입니다. 주체는 자신의 욕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상들은 자신의 욕망을 가질 수 있나요? 대상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주체의 욕망을 따라야 합니다. 대상의 자립성이 없고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갖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남성의 욕망을 내가 그대로 따르는 거죠. 이리가레이 같은 경우, 여성들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들은 어머니든, 딸이든, 창녀든 남성들의 욕망을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욕망을 잘 반영해주면 착한 거울이고, 좋은 대상인 것이죠. “너의 욕망은 네 남편에게 존재할 것이다.”라는 대목을 다시 보면 주인과 노예라는 그 구도 있잖아요, 그 구도가 여전히 사회계약론에도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필머 경의 논변들이 통한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아버지를 존경하라.(십계명)”를 보면 어머니 이야기가 아예 없죠. 캐롤 페이트먼은 이러한 것들을 지적하며 가부장제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페이트먼에 따르면, 근대 가부장의 정치적 지배는 기존의 전통과는 조금 다르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에게 있다기보다는 아버지에게 있던 것이 아들이 빼앗아 오는 식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독점적으로 소유했던 여성을 갖게 되면서 자기 여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근대 가부장제는 아들이 성교권을 가지게 된 것에서 확실시됩니다. 때문에 신은 아담에게 여성에 대한 지배권을 줬다는 말은 그 성교권을 강조하기 위한 말로, 정당화하기 위한 말로 써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왕은 여성을 임신시킬 수 있는 능력 덕택에 아버지로서 지배”, “남성이 생식에서 더 숭고하고 주된 행위자이기에 이브를 지배” 같은 이런 말들도 너무나 서슴없이 근대에까지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캐롤 페이트먼이 보기에 이러한 말들은 고전적 가부장제가 사회계약론을 거치며 여전히 성교권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 가부장제로 가기 위한 기본적 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교권은 정복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남성 시민들이 계약을 맺었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국가는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보장해주어야 하죠. 그중에 하나가 결혼입니다. 일부일처제는 성문법적으로도 굉장히 확고하게 될 필연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이트먼은 “법률과 칼이 부인들의 영원한 노예 상태를 보장”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시민 사회에서 부인은 남편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자기 보호를 포기하기 됩니다. 그 당시 여성들에게 가장 큰 벌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이었습니다. 추방하면 다른 데 가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른 공동체도 안 받아줍니다. 그러면 거리와 숲속을 헤매야 되고, 거리와 숲속을 헤맨다는 것은 그 어떤 사람의 강간에 완전히 노출이 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이 상태가 좋다기보다는 더 험한 꼴을 보기 싫으니까 여기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남성의 보호에 만족하는 삶을 이어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거죠. 결국 가족을 대표하는 단 하나의 인격은 남성이었다는 겁니다. 때문에 19세기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 결혼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지배를 만들어내는 제도로서 해체해야 하는 것이었죠. 이미 19세기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68혁명에서 다시 나오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런 부분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로크는 “모든 인간은 그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즉, 여성도 주체이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명제에 의해 결혼법을 개혁하고 여성의 시민권, 더 나아가 여성의 낙태권에 대해서도 이미 동의를 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내 몸의 나의 것이라는 명제, 언뜻 보기엔 되게 해방적인 것 같죠? 이것에 대해 조금 생각해 봅시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내 몸은 누구의 것이라고 소속시키는 소유의 방식 자체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대 시민 계약의 기준이 되었던 시민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자,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자, 그것이 바로 원자론적 개인이었잖아요. 원자론적 개인이 국가에 권리 양도를 하면서 국가의 보호나 질서 체계를 받아들이지만 실제로 개인과 개인은 지속적으로 경쟁 상태입니다. 이는 더 많은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내 몸은 나의 것이고, 계약은 내가 아니다, 나는 모든 계약의 주체라고 주장한 것이 1세대 페미니즘의 핵심이긴 했는데 이것은 한계를 가집니다. 이렇게 주장하면 근대적 가부장제가 소유자로서의 개인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어요. 이 말은 나도 남성과 똑같이 해줘, 서로가 똑같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개인이 되게 해줘라는 것까지만 가능하지 그 이상의 미래를 제시하는 데까지는 도달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캐롤 페이트먼은 내 몸은 나의 것이고 대상을 넘어 주체가 되는 것은 마땅하지만 소유 관념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 이 소유 관념이 가부장제를 탄생시킨 그 생산 양식과 매우 맞닿아 있다는 것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계약론, 가부장제, 자본주의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해방론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3. 안토니아스 라인은 어떻게 가능했나

     

    앞서 언급한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영화는 전쟁이 막 끝난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전쟁은 잉여생산물을 소유하기 위해 일어났는데, 바로 이 전쟁 때문에 원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가 오히려 시민의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모순적인 상황이 등장합니다. 안토니아가 왜 마을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애인 혹은 남편이 전쟁 중에 죽었으리란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모계 사회적인 공동체 모델은 이러한 가부장 국가의 자기모순에서 출발했습니다. 크룩핑거라는 인물은 이러한 모순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하면서 존재는 가치가 없고 따라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식의 염세적인 주장을 펼치는데요, 저는 크룩핑거가 당시 시대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 안에서는 여성을 확보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인 강간과 성폭력이 일어납니다. 두 여성을 강간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피터는 가부장 가족의 여성 억압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인데요, 주목할 점은 이 사람이 항상 군복을 입고 있다는 점입니다. 젠더와 국가의 교차지점이 보이시죠(웃음). 근대 국가가 출범할 때 시민을 보호해준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더 이상 국가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왔습니다. 모든 혁명은 이렇듯 사회적 약속이 깨질 때 출발하는 것 같아요. 안토니아가 탁월한 개인이어서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사회가 자신에게 약속한 것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곧바로 필요한 일들을 실천력으로 옮긴 것뿐이죠. 나는 아들이 필요하지 않고 남편이 필요 없으며, 더 나아가서 결혼도, 국가가 필요하지 않다. <안토니아스 라인>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 첫 번째는 자신이 대적하는 세계의 자기모순을 인식한 것입니다.

     

    모계가 다시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조건은 공동의 집과 땅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생산관계의 모델이 도시가 아닌 농촌인데, 커다란 땅에 많은 작물을 수확하는 대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규모로 꾸려나가죠. 또한 집과 땅을 공동의 재산으로 여겼기 때문에 도시에서 레테라는 여자 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도 곧바로 승낙해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엥겔스의 씨족사회 모델을 연상시키는 소규모 자급자족 농업과 공동재산을 채택했기 때문에 안토니아는 계급분화가 없는 모계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분쟁은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계급이 분화되기 때문에 일어나는데, 운동은 생산의 규모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우리’끼리 싸워서는 안 되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체화하고 자라난 세대가 연대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토니아의 공동체에는 계급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근대 사회의 주인-노예 관계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이 함께 공동식탁을 이루어 평등한 위치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죠.

     

    4. 돌아온 자들은 누구였는가?

     

    그렇다면 안토니아와 함께 한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이야기해볼까요. 우선 안토니아의 어머니 - 안토니아 - 다니엘 - 테레사 - 사라로 이어지는 계보를 살펴봅시다. 먼저 안토니아의 어머니는 대상화와 피해자성을 벗어나지 못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근대 가부장제에서 남편의 외도라는 전형성으로 행복이 좌절당한 부인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데, 안토니아의 어머니에게는 이것이 우울증과 치매 증상으로 나타나죠. 이때 이 인물에게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안토니아가 마을로 돌아온 이유는 어머니가 집을 물려줬기 때문인데 이 계보는 안토니아의 어머니가 아닌 안토니아로부터 시작한다는 겁니다. 안토니아의 공통체는 대상화된 자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이후에 논의할 ‘비체’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대상화라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자 비체로 인식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인 어머니는 여기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편 계보에 속한 다른 여성 인물들을 살펴보면, 안토니아는 농부, 다니엘은 미술가, 테레사는 수학 교수이자 음악가, 사라는 시인을 꿈꾸는 아이라는 면에서 모두 자기 욕망을 갖고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토니아는 농부 바스와의 관계에 있어서 청혼을 거절하거나 손잡는 것을 뿌리치는 등 철저하게 자기 욕망에 따라 움직이죠. 이 사회가 여성 혐오적인 구조를 갖고 움직인다면 대상(여성)이 사랑받는 방식은 주체(남성)의 요구를 잘 받아들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때 남성 주체는 자기 욕망이 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여성을 싫어하겠죠. 안토니아가 ‘방탕한 년’이라는 욕설을 듣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안토니아의 어머니는 대상화된 존재의 방식으로 살았지만, 이 계보가 시작되고 나서는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자각하는 주체의 모습이 출현합니다. 하지만 일단 이 존재방식이 정확히 말해 주체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다른 인물들도 살펴볼까요. 크룩핑거는 밖에 나가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이미 태어난 입으로 하는 모순적인 인물입니다. 모든 관계를 거부하지만 유일하게 안토니아와는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디디는 지적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조롱받는 인물입니다. 비록 기존의 질서에서 ‘정상’으로 간주되진 않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조롱받는 대상의 위치를 벗어나는 사람이죠. 보름달이 뜨면 늑대 울음을 우는 미친 마돈나(Mad Madonna)라는 인물은 이미 종차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분이에요. 이교도라고 얘기되고, 달을 보면서 예식을 하는 것만 같죠. 기존의 질서를 위반하는 사람입니다. 신부의 경우 성당을 뛰쳐나와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고 다니죠. 레테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져 12명의 자식을 낳는 모습을 보입니다.

     

    디디와 사랑에 빠지는 미친 입술(Loony Lips)이라는 인물도 재밌는 게, 바보 취급을 당해서 아이들에게 놀림받는 상황에서 안토니아의 도움을 받잖아요. 그때 주인이 따라오라고 했는데 그 명령을 거역하고 너무 가뿐하게 안토니아에게 갑니다. 대상은 주체의 욕망에 매우 잘 길들여져 있는데,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 길들여지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어요. 언제든지 그 질서체계를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 안토니아와 함께하고 있는 겁니다. 한편 농부 바스는 이주민이에요. 이미 다른 곳에 있다가 경계를 넘어온 사람이죠. 피터가 자신의 동생인 디디를 성적으로 능욕할 때 디디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올가는 조산원이자 장의사로 일하며 삶과 죽음을 동시에 돌보죠. 또 다니엘은 성당에 가서 죽은 할머니가 관에서 일어나 노래 부르는 장면을 목격하는데, 이처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같이 본다는 점에서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질서체계 안에 편입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 모든 인물을 ‘비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체’(abject)란 1) 동일성이나 체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 2) 경계와 안팎을 넘나드는 것 3) 흐르는 것, 고체화되지 않기에 어떤 규정이나 언어로도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프로이트의 용어를 가져온 것인데요, 상징계(사회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규칙에 종속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 안의 무언가를 버리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힘들지만 버리고 외면했던 것, 그렇지만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친근했던 것을 일컫는 개념이 바로 비체입니다. 비체는 주체도 대상도 아닙니다. 주체는 질서 지워져 있고 경계가 뚜렷한 존재죠. 특히 자신의 몸에 하나의 오점이나 구멍도 없다는 태도를 취하며, 매우 논리적이고 독립적인 사유를 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반면에 대상은 주체에 의해 대상화된 존재방식이라면, 비체는 이와 달리 기존의 주체에 의해 잘 대상화되지 않는, 한 단어로 포섭되지 어려운 존재방식을 뜻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상은 없고, 주체에 의한 대상화만 있을 뿐입니다. 주체 역시도 대상이 질서체계를 완벽하게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체는 순종적으로 길들이려고 해도 잘 대상화되지 않는, 즉 대상이 아닌(a-bject) 존재인 거죠.

     

    중요한 것은 비체가 놀림과 조롱을 당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이 놀림은 대상일 때 더 많이 당하고, 막상 비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주체가 공포를 느낀다는 겁니다. 주체는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데, 비체는 잘 이해되지도 않고 개념에 잡히지도 않는 거죠. 그래서 주체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개념적이고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상황에서는 두려움이 없지만, 어떤 비체성을 발휘하는 군집이 있을 때 이것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래도 대상화되지 않으면 배제, 즉 죽여 버리고 이것의 대표적인 예가 마녀사냥입니다. 주체의 전략은 대상화 혹은 배제인 것이죠. 안토니아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 같지만 기존의 질서에서 보면 말 안 듣는 사람, 말도 안 되는 사람이에요. 안토니아가 정착할 때 마을 사람들이 안토니아를 어떻게 받아들였다고 나오느냐면 ‘송장이 송장 보듯이’, ‘신을 보는 듯이’ 받아들였다고 해요. 죽음과 관련된 것은 다 비체인데, 재밌는 점은 신도 비체라는 거죠. 안토니아는 늘 대상화의 위협에 시달리지만 끊임없이 자기 욕망을 갖고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질서체계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토니아는 그래서 무서운 사람이고,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런 이유로 저는 <안토니아스 라인>의 공동체가 비체들이 모여서 이룬 공동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5. 긍정적 존재조건으로서의 비체

     

    정리하면, <안토니아스 라인>은 비체들이 모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양식을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질문은, ‘비체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는가하는 것입니다. 비체는 예측할 수 없고, 어디서 출현할지 모르기 때문에 비체와 비체는 서로에게 불투명한 만큼 서로에게 공포감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페미니스트끼리도 비체와 비체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우리가 처한 물적 조건이 씨족사회가 아닌 자본주의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거나 연대를 도모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동체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요?

     

    우선 저는 비체 공동체를 위해서는 적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모든 사람과의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체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질서를 교란하는 데 가담하기 때문에 질서를 보수하고 유지시켜서 이득을 얻으려는 자에게는 분명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한편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은 비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은 꽉 짜인 질서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체는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나 라캉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사회적 질서에 들어가기 위해 삶의 존재조건이었던 것 하나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해요. 크리스테바는 이를 코라(chora)라고 명명하며 비체성이 새로운 의미와 변화의 저장고임을 피력하는데요. 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 즉 옹알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은 비체성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비체성이 늘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그럴 때만이 비체 공동체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체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대신 긍정적으로 재전유하는 순간, 변화를 위한 새로운 행위자성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때 공동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비체가 불안한 나머지 스스로 주체가 되려고 하는 것이겠죠. 사회를 뚜렷하게 질서 지우고 사람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 하지만 <안토니아스 라인>은 그런 불안한 우리, 비체성을 가진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삶의 조건이며, 따라서 우리는 인생 안에서 춤을 출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비체성을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영화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물적 생산조건이나 미래 사회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운동이 정당화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일상에서의 대중운동을 넘어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많이 시도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운동을 함께 시작했던 분들이 이미 고민하고 이론화시키고 있는 부분이기도 할 텐데요, 지금을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기로 받아들이고, 생산조건과 틀 다시 짜기, 그리고 비체들 간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정서적, 물질적 토대에 대한 고민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강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취재 │ 이예진, 정현경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 [2019] [LECTURE] 국가적 차원의 여성배제와 국가 정치에 도전하는 여성들
    NeMaf 조회수:2781 추천수:4
    2019-08-20

    8월 19일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 상영이 끝난 오후 4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에서 고정갑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글로컬페미니즘학교 집행위원장의 강연이 있었다. 정치와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한 이날의 강연은 페미니즘 정치의 역사를 <서프러제트>, <델마와 루이스> 등 영화를 통해 살펴보고 앞으로 페미니스트 정당이 정당정치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안하는 것으로 끝마쳤다. 이날 진행은 김장연호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김장연호: 앞서 본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와 연관해서 페미니즘 정치에 관한 강연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글로컬페미니즘학교와 함께 합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10년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상당히 많은 여성활동가도 양성하고 여성학 이론, 글로벌 이슈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이슈파이팅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리우스 집행위원장님 모시고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글로컬페미니즘학교라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이야기를 간략한 소개를 들은 후 곧바로 집행위원장님의 강연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리우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를 간략하게 소개드리면 2009년 4월에멕시코,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활동가들과 같이 창립한, 지구지역 액티비즘을 제안한다는 컨셉의 단체입니다. 2009년에 국제포럼을 통해 글로컬페미니즘학교를 열고 2010년부터 페미니즘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이 있으니까 참고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이 자리에 초청해주시고 글로컬액티비즘을 대안영상활동과 매칭할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김장연호: 사실 저희가 이 프로그램을 꾸리기 위해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나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중앙대〮한국외대 HK+접경인문학연구단에 젠더X국가라는 주제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추천해달라, 작품에 맞는 강연을 요청을 드렸어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는 지금 보신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과 다른 작업을 하나 더 추천해주셨는데 그 작업은 배급사와 연락이 안 돼서 아쉽게도 초청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고정갑희 위원장님께서 오늘 강연 안에 그 작업까지도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정갑희 집행위원장님 모시고 강연 듣도록 하겠습니다.

     

    고정갑희: 이렇게 오후 4시라는 시간에 영화관에 와서 들어주시기까지 하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네마프2019에서 젠더와 국가와의 관계를 특별기획전으로 하고 있어서 그 중에 일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강연 제목은 ‘젠더 국가와 페미니스트 국가 정치’라고 했는데 네마프 기획전에서는 곱하기가 들어갔잖아요. X가 다양한 연결점을 얘기한다면 저는 그걸 빼고 ‘국가가 젠더 국가다’라는 얘기를 할 거에요. ‘젠더 국가’라는 국가의 성격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정치를 했는지. 페미니즘 정치 중에 국가 정치라고 했을 때 정당정치, 의회정치까지 정당을 창당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한국에서도 페미당을 창당 준비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페미당이 ~한 걸 해 줬으면 좋겠다’하는 바람까지 오늘 강의에 들어있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여성은 계속 배제되어왔고 단순히 배제만 되어온 게 아니라 억압, 통제하는. 배제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배제를 통해 통제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적 차원의 여성배제와 국가 정치에 도전하는 여성들>이라고 오늘 강연을 이름지었습니다. 네마프가 영화제이다 보니 영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자면, <서프러제트>의 시대가 여성들이 국가 정치에서 통째로 배제된 거잖아요. 성인 남성에 비해 100년 뒤에나 투표권이 주어지고. 그래서 오늘 강연에서도 <서프러제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할 거에요. 국가 정치에 도전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창당 도전기가 앞서 보신 영화에 기록되어있는데요. 스웨덴에서 2005년에 사람들이 모이고 다양한 여성 활동가들과 교수들, 사회당의 대표로 있었던 사람도 들어가고 하면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이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에 나와있습니다.

     

    젠더 국가에는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오늘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학생들과 수업에서 <시녀 이야기>라는 소설 같이 읽었어요. 사실은 암울한 전체주의 국가의 이야기에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 같이 이야기 하다 보니 학생들이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2015년부터 굉장히 한국 사회에 다른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걸 봤는데, “<시녀 이야기>는 정말 잘 쓰여진 소설이고,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학생들로부터 들었어요. 저는 <시녀 이야기>가 그 어떤 이론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녀 이야기>라는 작품이 보여는 성 정치와 그것이 미국 사회에 불러일으킨 반향을 살펴본 이후에는 젠더 국가 안에서 페미니스트 국가정치를 어떻게 해 왔고, 해 나가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를 <서프러제트>와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를 통해 살펴볼 거구요. 영화에서 보셨다시피 스웨덴에서 페미니스트 정당정치를 2005년부터 준비해서 2006년부터는 선거에 돌입했었는데 2014년이 되어서야, 10년이 지난 다음에야 유럽 의회에서 의원석을 가지게 돼요. 그때 그러면 의제를, 내지는 아젠다/이슈/정책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Feminist Initiative(2005년 스웨덴에서 창당한 페미니스트 정당)가 ‘우리는 51%를 대표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들어가는 거라면 저는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창당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51%에서 출발하는데 99%를 위한. 그런데 이때의 99%는 지금까지의 99%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그건 그냥 다수파를 말하고요. 여성을 중심으로 51%에서 출발하되 여성의제가 너무 좁게 책정되어서 정당정치에서 공간을 확장하거나 페미니스트 정치를 더 이상 넓혀가기 어려운 상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99%를 다시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성 운동, 내지는 정당정치를 하겠다는 쪽에서 평등equality라는 개념을 가지고 들어가서 평등이 민주주의고 평등해야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거라고 얘기한다면, 제가 제안을 해보는 것은 ‘이제는 체제를 고려하는 정당정치를 해보자’, ‘가부장 체제와 국가의 관계를 고려하는 정치면 좋겠다’라는 것이 오늘 얘기하려는 줄기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젠더 개념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젠더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하세요? 단순히 성별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단어도 아니고 개념이 되게 복잡한데. 정신분석학에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페미니즘은 젠더,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젠더라는 건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된, 이분화 되어있는 성을 의미합니다. 제1의 성과 제2의 성의 이분법으로 구분해온 사회를 보부아르가 지적했다면 70년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한 사람인 케이트 밀렛이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성의 정치학>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는 성 정치를 얘기하면서 침실에서 정치로, 침실에 있는 성을 정치로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젠더와 관련된다, 남성과 여성의 섹스, 성행위라는 것이 얼마나 권력적인가, 성행위부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라는 걸 얘기했습니다.

    난해하다고 많이 얘기되는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에서는 '이성애적 규범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형성되고 만들어진 것인데, 만들어지고 구성된다는 것조차도 실은 없는 거라는 허수인데 실수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사실은 근친상간을 통해 젠더가 형성되고 수행되는 것인데 실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생물학적 여성을 설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과 또 한편에서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수행적이고 만들어지고 구성된 것인데 오히려 페미니즘조차도 이분법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라고 <젠더 트러블>이 얘기한다면 <젠더 무법자>에서는 트랜스젠더과 관련해서 체제 안에서 젠더를 수호하는 사람들이 있고 outlaw법을 어기는 사람. 둘로 나뉘면서 누가 젠더 수호자고 누가 젠더 무법자인가 따지려는 게 아니라 젠더라는 것이 트러블,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서는 이미 다양한 젠더들이 있는데 젠더 퀴어, 논 바이너리, 엄청나게 많은 개념들이 스펙트럼으로서만이 아니라 서로 엉켜있는 계속 진행되고 변화하는 개념인 것 같아요 젠더가. 서양 페미니즘에서 젠더에 관한 논의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어온 것에 비해 한국사회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젠더와 국가

    • 국가는 성별을 구분하는 젠더 국가이자 가부장적 국가다.
    • 국가는 젠더를 수행하는 단위이자 장치이다.
    • 국가는 젠더 이분법을 토대로 여성을 억압, 배제, 통제해왔다.
    • 소설 <시녀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로도 나옴)는 가상 국가 길리어드가 여성과 남성을 어떻게 갈라 통치하는지 잘 보여준다. 여성은 아내/시녀/하녀/매춘여성/비여성으로 구분되어 통치 당한다. 그리고 국가 정치는 남성들이 한다.
    • 여성의 생산력을 무보수, 무노동으로 만든 국가. 여성의 생산력을 무상으로 취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국가 정치에서 배제해야 했다.
    • 국가는 정치에서 여성을 배제해왔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젠더가 이런 개념이라고 한다면, 젠더와 국가의 관련은 어떠한가? 개인이 국가를 넘어서기는 굉장히 어렵잖아요. 국가를 움직이는 방식이 젠더를 깔고 있다. 젠더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성의 정치뿐만 아니라 성의 경제까지를 이야기하는 거고. 국가가 젠더를 남녀로 나누어놓은 이유가 무엇인가? 남녀로 나누어서 여성을 배제해왔던 가부장적 역사라는 것이 국가가 그것을 수행했던 하나의 단위이고 장치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성 장치로서의 국가를 생각해보자. 그래서 국가는 젠더 이분법을 토대로 여성을 억압, 배제, 통제해왔다. <시녀 이야기>가 이를 굉장히 잘 전달해주는데요. 길리어드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종교와 성을 토대로 억압적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가 실제로 <시녀 이야기>에서 보면 여성이 생산하는 것-임신, 출산을 토대로 국가가 움직이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로 미국에서 드라마화되어 시리즈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치의 방식이라는 게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성적 계급, 아내/시녀/하녀/매춘여성/비여성으로 구분되어 통치당한다. 아내는 괜찮은데 시녀 계급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지 못 하면 식민지로 비여성으로 쫓겨나는 국가체제인거죠. 그랬을 때 국가정치는 사령관과 천사 수호자 이렇게 되면서 남성들이 계급화되어 있는데. 여성들은 여성대로 성적 계급화되어 있는거죠.

    그래서 여성의 생산력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임신, 출산을 통해 노동력이 생산되는 것과 가사 노동을 포함합니다. 그럴 때 그것을 무보수, 무노동으로 만든 국가. 상품생산이든 취직을 했다, 거기서 월급을 받는다, 임금을 받을 때는 보수를 받는 거지만 여기서는 보수를 받지 않는, 여성의 생산을 무상으로 취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계속 이분법으로 나눠서 남성의 영역, 여성의 영역, 그러면서 또 가족이라는 제도, 결혼이라는 제도, 또는 연애라는 제도를 통해, 출산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를 유지해왔다고 보면 되는데요. 총체적으로 보면 국가는 ‘정치’(좁은 의미의 정치, 즉, 정당정치 또는 의회정치)에서 여성을 배제해왔고 여성에게 조금씩 공간을 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배제되어온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시녀 이야기>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젠더 국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녀 이야기>는 미국에서 2017년에 드라마로 각색된, 1985년 발표한 소설이고요. 배경은 여성을 인간을 생산하는 존재로 설정하고 남성과 여성을 계급으로 나눠서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동성애자는 성을 배신한 '배성자'라는 죄로 처형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시녀는 식민지로 쫓겨나서 비여성으로 낙인 찍히는 형태가 되는 거죠. 21세기 중반의 ‘길리어드’에서는 여성은 배제되는 것뿐만 아니라 통치당하고 통제당하고 착취당하는 형태로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을 배제,통제,억압하는 국가의 전체적인 모습이 젠더 국가라고 한다면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면서 이를 문제삼기 시작합니다. 여성의 날 제정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즘의 물결이 시작되었는데요. 페미니즘의 역사를 말할 때 흔히 언급되는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부터 시작해서 2019년까지 엄청난 물결을 만들어왔는데 이를 역사화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페미니즘 정치라고 했을 때 국가 정치 쪽으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녀 이야기> 복장을 한 시위대의 사진을 보시면 소설이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 정치의 장을 보여줍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시녀 이야기> 속 시녀 복장을 하고 반낙태법 시위를 하는 것이 미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 국가가 통제하는 여성의 몸과 낙태금지법

    출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역사상 세계 곳곳에서 흔히 보여졌습니다. 2016년 검은 시위가 있었던 것처럼 한국은 낙태죄가 폐지되기까지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싸워온 역사가 있으면서 올해 4월 11일 낙태죄가 헌법불합치한다는 판결이 내려진 상태잖아요. 낙태금지법 폐지 운동은 전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폴란드 같은 경우 가톨릭 국가고, 가톨릭 국가들은 낙태를 오랜 세월 금지해오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국가와 싸워온 많은 시위대, 의사들이 죽은 상황이죠. 지금도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이고 있고.

     

    # 페미니즘 영화, 국가 정치의 장으로 진입한 여성들을 보여주다: <서프러제트>와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

    젠더/가부장적 국가를 바꾸려는 페미니즘 정치를 다룬 영화에 대해서는 <서프러제트>부터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서부터 넘어오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제도정치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기에 서프러제트 운동이 젠더 메인스트림, 성 주류화 정책이라는 것에 대해 전체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구조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는 상당 부분 감동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렇게까지 투쟁을 했구나'.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에 그냥 투표권이 주어졌잖아요. 모든 제도들이 서양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가 싸워오지는 않았지만 그 이전에 싸워온 여성들의 덕을 보는구나'하고 영화 <서프러제트>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신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와 연결지어서 <서프러제트>를 생각해보면, <서프러제트>가 전체적으로 여성들이 투표권을 달라는 요구를 하는 움직임이었다면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는 투표권을 넘어서 피선거권까지 가는 거고. 그 다음에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로 나가면서 정당을 만들겠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더불어민주당이나 그런 당들이 창당되는 것과 페미니스트 당이 창당되는 것의 의미가 조금 다를 것 같거든요. 페미니즘을 표방하면서 정당을 창당한다는 건 굉장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지금까지 여성운동이든 페미니즘 운동이 진행되어온 과정에서 창당까지 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가정에서 ‘정치’의 공간으로: 가정을 떠나 길을 나선 <델마와 루이스>의 두 여자, 가족의 장을 바꾸고 여성이 주도적인 공동체 <안토니아스 라인>의 여자들
    • 가정과 노동현장을 떠나 길을 나선 <서프러제트>,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자들’
    • 참정권 요구를 넘어, 피선거권을 넘어, 새로운 길인 페미니스트 정당을 창당한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의 여자들

     

    # 개인에서 정치로: 거리로 나선 여자들

    <델마와 루이스>에서는 개인 여성들이 가정을 떠나 길 위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길에 나서자마자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는데요. 총을 든 두 여자들이 동지적인 관계를 취하는 못브이 나옵니다. 이번 네마프 특별전으로도 상영 중인 <안토니아 슬라인> 같은 경우도 페미니스트 영화의 고전 중 하나인데요. 차이가 있다면 <델마와 루이스>는 길 위의 로드무비로서 로드라는 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데요. 그 길에 나서서 여성들이 어디까지 가는가 했을 때는 창당까지 가는 그 길 위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에서 정치로 나아가는 과정이 <델마와 루이스>에 투영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개인도 정치적이고 가정도 정치공간인데요. <서프러제트>의 두 여자도 마찬가지로 세탁 노동을 하면서 동지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어려운 시련들을 거치면서 투쟁을 통해 투표권에 도전하는 참정권을 얻게 됩니다. 한편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에서는 학생 운동을 했던 소피아와 사회당 대표를 지낸 구드런, 터키에서 이주해와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데브림, 이 세 사람을 당 대표로 선출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서프러제트>가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해서 성적 평등, '남자들이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어'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저는 <서프러제트>를 보고 본격적인 페미니즘 영화가 이후로 더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발굴하지 못 했던 역사화하지 못했던 현장들, 역사는 쌓였는데 영상 작업들이 따라가지 못한 부분들을 메꿔나가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운동들을 소개하는 영화들이 나올 것을 기대해봅니다. 길 위에 서 있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아직 새롭게 이야기 되지 않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이제 기대하게 됩니다. 영화의 힘이 페미니즘과 만나 온 역사 속에서, 페미니즘이 제시하는 대안적 세계까지 나올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보여주는 힘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여성들의 힘이기도 하지만 영화감독의 힘이기도 하잖아요. <델마와 루이스>가 갖고 있는 힘과는 또 다르게 <서프러제트>는 집단적인 여성의 움직임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라는 뜻은 투표권을 뜻하는 서프러지Suffrage와 여성이름 어미 ette가 결합하여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자들이라는 뜻인데요. “남자들은 도덕적 규범을 만들고 여자들이 그것을 따라주길 바란다. 그들은 남자들이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고 옳은 일이라고 결정했지만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옳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했다.”라고 말하면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기 시작한 것이 서프러제트 운동입니다. 영화 <서프러제트>가 다루는 것이 참정권 투쟁을 하는 서프러제트들의 이야기라면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마들, 딸들, 반역자들, 참정권 운동가들이 엄청나게 <서프러제트>에 등장하는데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여서 전달되는 힘이 있기도 합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서프러제트>의 대사들이 주옥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우리는 법을 어기는 자가 아니라 법을 만드는 자가 될 것입니다”, “노예가 되기보다 반역자가 되겠다”라고 했는데요. ‘법을 만드는 자가 되겠다’라는 말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법을 투표권을 주는 법으로 바꾸겠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그런 법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이제는 정당 정치를 시작하면서 무수한 국가정책들을 바꿔내고 바르게 설계할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주인공 중에 한 사람인 모드 와츠는 “난 평생 남자들 말만 들으며 살았어요. 법이 아들을 못 보게 한다면 법을 바꾸기 위해 싸우겠어요”라고 말하며 남편이 아들을 뺏어가자 법과 싸우겠다는 선전 포고를 하고 짱돌을 던지고 창문 깹니다. 실제로 빈 상점, 빈 집을 불태우고 어떻게 보면 과격한 행동까지를 했는데 왜 이렇게 했느냐. “We break windows, we burn houses, because war’s the only language men listen to. (우리는 전쟁만이 남자들이 알아듣는 언어이기 때문에 창문을 깨고 집을 불태웁니다.)” 라는 말에서 폭력을 운동의 방법으로 택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외 대사들을 보면 “우리는 모든 가정에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반이고, 당신들은 우리 모두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겁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를 경멸하고 조롱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우릴 때리고 배신해서 더 이상 남은 것도 없으니까요.” 등이 있습니다. 또한 서프러제트 운동 초기에 주인공 모드 와츠와 서프러제트의 대화를 보면

    “우리로 하여금 법을 준수하게 하려면 법이 정당해야죠. 우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뭐든 해야해요.”

    “그건 정당한 짓이 아니에요.”

    “법을 준수하라고요? 그럼 정당한 법을 만들어야죠.”

    정당함이 누구의 정당함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요. 정당한 법이라면 지키겠다, 법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데 지키란 말이냐, 법이 정당하지 않다면 outlaw하겠다는 거죠. 또한 '여자들의 몸이 아니라 정부의 창문이 깨져야 합니다. 노예가 되기보다 반역자가 되겠다'라는 말을 하는데 투표권을 얻기 위해 여자들이 감옥에 가야 한다면, 기꺼이 감옥에 가겠다는 선언들이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Deeds not words(말이 아닌 행동)'를 구호로 수상의 집 폭파하기, 우체통 폭파하기, 돌멩이로 유리 깨기, 추근대며 성추행하는 사장 손을 다리미로 지지기, 감옥에서 단식 투쟁하기, 경마장에서 왕인 조지 5세의 경주마에 뛰어들기, 버킹엄 궁에 매달려 경찰 공격하기 등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부분들을 <서프러제트>에서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투표권의 역사를 보면 굉장히 오랫동안 싸워오면서 얻어낸 결과라는 말씀 드리고 싶고요. 가장 최근에(2008년) 여성이 주권을 행사한 첫 선거를 치른 부탄부터 올해 처음 여성에게 참정권 부여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에는 여성 인권에 시차들이 있는거죠. 그렇지만 참정권, 투표권은 시민으로서 꼭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오늘 보신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는 2005년 봄의 다큐멘터리로 스웨덴 최초의 페미니스트 당인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Feminist Initiative, 이하 FI)를 창당하기 위해 모인 다양한 여성들의 기록입니다. FI는 2014년 원외 정당 중에서 가장 다수의 지지를 받았고 유럽 의회에 당선되어서 세계 최초 의회 진출을 한 페미니스트당이 되었습니다. FI는 가부장적 피라미드 구조의 1인 책임체제를 타파하고 3인 책임체제를 택하여 3명의 당 대표를 뽑았습니다.

    여성 정치인의 수가 늘고 우리나라에도 심상정, 신지애 등 생각해보면 여성 대표들이 많은데 실제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당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때문에 여성의 이익을 온전하게 대변하지 못 한다는 생각이 페미니스트 당을 창당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좌파당의 대표를 역임했던 구드런이 '정부와 정당에 포섭된 여성운동이 스웨덴 사회에 팽배한 가부장적 성 위계질서를 타파하는데에 어디까지 나아갔나?'라고 진단, 평가합니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비율이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늘어났지만 실제로 가부장적 성위계질서에 제대로 도전하지는 못했다는 결론을 내면서 이제 페미니스트들이 직접 정당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페미니즘 이슈를 풀어나가겠다고 선언합니다. 여성당이 아닌 페미니스트 정당이잖아요. 이 차이, 왜 women이 아니고 feminists라고 하는가. 페미니스트라면 젠더를 떠나 누구든 가입할 수 있다며 ‘여성당’이 아닌 ‘페미니스트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데요. 저는 여기에도 의미가 있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를 보셨을 때 이슈, 의제를 남녀 임금격차, 여성 폭력, 여성에 대해 폭력적인 강간으로 설정합니다. 그러나 FI는 2006년 9월 총선 결과 지지율 0.68%로 참패했습니다. 당 지도자들 간 노선 차이로 인한 갈등, ‘여성’ 이슈에만 주력해 다양한 유권자의 정책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점, 기존 정당의 여성 조직들을 지나치게 비판해 결국 이들로부터 배척당한 점, 자금 부족 등이 패배원인으로 꼽혔습니다. 특히 영 페미니스트와 1970년대부터 활동한 페미, 레즈 페미와 이성애 페미, 시민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과 현실정치로서의 페미니즘 간 내부 분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미디어는 FI 내부의 갈등을 집중 조명했고 많은 유권자가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습니다. 이 과정들이 방금 보신 다큐멘터리에 나오죠.

     

    에바 기억나시나요? TV에 출연해서 티나와 소피아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갈등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티나는 엄청난 마녀사냥을 당했다고 나옵니다. 에바 교수가 실제로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당을 만든다고 할 때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논쟁들이 있었는가. 그 안에서 내부적인 차이와 싸움이 사실은 당의 성격을 규정할 텐데 그렇게 규정한 당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까지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처음 티나가 얘기한 것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창당할 때 이슈를 뭘로 해야한다고 했나요? 이성애 핵가족을 문제 삼아야한다고 했는데 마지막까지 이것이 FI의 정책의 내용으로 드러나지는 못 합니다. 티나는 배척받지만 끝까지 같이하는 모습을 영화에서는 볼 수 있는데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와 이성애 중심사회의 이성애자 페미니스트의 갈등, 시민사회 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을 하는 활동가와 정당정치를 하겠다는 목표와 상충되는 지점들이 있었고 또 언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했을 때 기존에 해왔던 이어달리기 같은 걸로 하자는 사회운동파들이 있었고. 반면에 정당정치는 어쨌든 대중들을 설득하고 대중들의 표를 얻어야 하거든요. 대중들의 표를 얻는 다는 것은 의제의 수준을 훨씬 낮춰야, 톤다운해서 기대보다는 훨씬 낮춰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고요. 그러면 뭐하러 정당을 만드냐는 질문조차도 나오게 되고 에바 같은 사람들도 70년대 여성운동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문제제기를 합니다.

     

    이러저러한 내분으로 당장의 성공은 거두지 못 했지만 FI가 등장하면서 다른 스웨덴 정당들도 성평등 이슈에 더욱 관심을 쏟았고, 주목받지 못했던 이슈들이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스웨덴 내부 뿐만 아니라 2005년에 창당을 준비했던 이 움직임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로 확산이 됐어요. FI의 약진에 힘입어 노르웨이, 핀란드, 영국, 프랑스 등 각국 여성들도 페미니스트 정당 창당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성평등 이슈를 공공정책 의제로 만들고 남성중심적인 제도정치권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가 여러 나라에서 등장했고 유럽 연합 내 다른 국가들에서도 FI가 등장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움직임이 있으면 전염성이 있어서 다른 곳에서도 우리도 페미니스트 정당이 필요해라는 이야기를 하게되는 거죠. 그래서 노르웨이의 페미니스트 정당인 Feminist Initiative Norway가 창당됩니다. FIN도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 정당인데 인권운동가들 르네 닐슨이라든지 고용노동복지청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비롯해서 여성 65명, 남성 11명이 함께 창당했습니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FIN도 기존 성평등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며 등장했는데요. 그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낙태죄 부활 시도입니다. 2014년 4월, 노르웨이 우파연립정부는 의사가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거부할 권한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2011년 좌파 연정 때 폐지된 법안을 2년만에 되살리려 한 것이죠. 여기에 거센 반대여론이 일자 정부가 법안을 철회했지만 여성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페미니스트 정당 창립까지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FIN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얘기하고 있는 임금 격차부터 성범죄, 가정폭력, 강간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니다. FIN의 크리스티안센이 말한 것처럼 페미니스트 정당이 얘기할 수 있는 당만이 주도할 수 있는 이슈들이 있고 이런 이슈들이 정치권 안에서 제기되어야 하는거죠. 또한 슐츠-플로리는 “우리 당은 여성이슈, 기후변화, 평화와 인종차별 반대 문제가 얼마나 깊은 연관성이 있는지 지적할 거예요. 유권자들은 놀랄 겁니다”라고 말했는데요. 각 이슈들이 따로따로 노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사실 인종차별, 기후변화, 성불평등이 연동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오늘 생략하도록 하고요. 어쨌든 저는 이 문제들이 연동되어있다는 의식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FIN 역시 지지율 부진으로 의석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창당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작은 신당이다 보니, 기존 거대 정당보다 조직력이나 의제 장악력이 부족했던 거죠. 우리도 앞으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 텐데, 한편으로는 좋은 현상이기도 합니다. 페미니스트 정당이 만들어지면 페미니스트 정당의 자극을 받는 다른 정당들이 나타납니다. 우리도 경쟁력이 있으려면 이런 의제들을 내놓아야 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죠. 유권자들의 표를 유권자들의 공감을 생각하면서 움직이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핀란드 페미니스트 정당, 페미니스텐 푸올루에(Feministinen Puolue )의 시의원 선거 홍보포스터에는 인종차별 없는 도시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김장연호: 당원들 사진에 <당신의 젠더는>에 출연한 두 분이 있어요.

    고정갑희: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아까 보니 관객 분들 중에 <당신의 젠더는>을 아직 안 보신 분들이 많던데 젠더퀴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당신의 젠더는>도 시간나시면 꼭 봐주시고요

    이처럼 노르웨이, 핀란드의 페미니스트 정당들의 특징은 여성 인권과 더불어 성소수자 이슈, 장애인, 난민, 불법체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것을 같이 내세웠다는 거에요. 정당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페미니스트 당이 누구를 대변하는 당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51%와 99%와 연결해서 뒤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영국의 경우 2015년 5월에 창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2005년에 시작한 오늘 보신 다큐멘터리가 출발점이 되었다는 걸 아실 거에요. '평등이 모두를 위해 더 나으니까'라는 슬로건 하에 여성평등이 창당되었는데요. 여기는 페미니스트 정당이라고 얘기했지만 이름 자체는 여성을 표방하면서 여성의 평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내세웠습니다. 창당의 계기는 여성 정치 컨퍼런스에서 성평등 이슈를 제안하고 해결할 방법에 대해 논의하다가 ‘결국 총리 관저에 가는 것밖에 답이 없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면서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실제로 성평등에 주력하는 정당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역사 속에서 정당을 만들어진다고 금방 뭐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선거에서 참패했지만 패배를 딛고 2020년 총선을 대비중인 웹의 웹사이트엔 이런 선언이 실렸습니다 “ 영국을 장악한 낡은 정치는 민의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며, 따분하고 여성들의 일상적인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우리는 함께 모여 패배감에 젖으려는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한다. 절망을 행동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51%라고 보통 얘기하는데 페미니즘 정치가 누구를 위할 것인가? 51%를 위할 것인가? 99%를 위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금융위기 이후에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운동들이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으로도 건너가고 한국에서도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시도를 하긴 했는데요. 그 때의 슬로건을 보시면 ‘99%는 강하다. 우리는 99%다.’ 1%가, 특히나 금융자본가들이 이 세계의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데 우리 99%가 강하고 바꿀 수 있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99%가 누구냐고 의문을 제기하며 ‘가부장제를 점령하라Occupy Patriarchy’라는 시위 안에 저런 팻말을 갖고 나온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99%야라고 하면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이 한편에서는 남성중심적이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지금 이 문제는 한국이든 전세계적으로든 51%냐, 99%냐, 아니면 51% 안에서도 여성들 안에서도 차이를 놓고 갈등을 일으키잖아요. 성노동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쪽과 성매매는 없어져야 한다는 쪽 등 여러 갈등들이 있는 상황에서 누구, 어떤 여성을 위한 정치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될텐데. 51%는 어쨌든 여성 전체가 51%라는 거고. 그 51%를 위한 정치를 시작하겠다가 페미니스트 정당입니다. ‘99%가 다 못살고 있어’라고 했을 때 ‘우리는 똑같은 99%가 아니야’라는 여성들이 ‘Occupy Patriarchy’라는 팻말을 들고 ‘We are not 99%, Women are 51%’라는 슬로건을 걸었기 때문에 페미당도 51%를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51%를 중심에 두고 가는 것, 그 부분에서 제가 질문하는 것은 페미니즘 정치, 특히나 국가 정당정치를 얘기한다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가부장적 99%에 묻힐 것인가? 51%를 위할 것인가? 아니면 그 51%를 바탕으로 다시 99%를 생각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의 핵심주제입니다. 제 답은 51%에서 출발하되 그 51%를 바탕으로 하면서 99%를 생각해야만 정당으로서, 또한 페미니스트들이 대안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 지금 현재 힘드니까 저항해야 하고 싸워야 하고 바꿔내야 하는데 그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목표 지점을 크게 두자는 게 저의 생각이고요.

     

    그래서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를 통해 본 FI의 고민과 문제들을 보면 내부의 차이, 외부의 공격들이 있었잖아요. 투표권을 갖고 있는 남성, 여성들이 가부장적 시선으로 공격해오는 것들이 있었고 자금 부족의 문제라든지 리더십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가, 당의 주요 사안들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가, 언론 활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들도 있었는데요. 내부 불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세대, 현재의 위치와 경력들의 차이에 따른 갈등이 영화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활동했던 페미니스트 전설들은 영 페미니스트들이 오랜 시간 활동해오고, 페미니스트 단체의 대표로도 지내온 자기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면서 또 한편에서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티나와 이성애 가족 중심의 페미니스트 에바 사이에서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앞서 보셨다시피 티나에 대한 마녀사냥이 보여주는 이성애중심적 페미니즘 이슈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티나는 결국 3명의 당 대표에 포함되지 못합니다. 여성 이슈와 성소수자 이슈가 만나지 못한 상황인거죠. 또 터키 이주민인 데브림이 등장했을 때, 이주 여성에 대한 시민들과 경찰들의 공격과 위협 이로 인해 데브림이 불안에 떠는 모습이 영화에 나오고요. 한편에서 구드런과 데브림이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거리 유세에서 나왔습니다.

     

    숱한 갈등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은 평등을 이슈로 잡고 갔습니다. 평등은 이뤄내야 한다 그런데 평등을 말로만 할게 아니라 평등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구드런은 인터뷰했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노르웨이, 핀란드에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육아 휴직,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성적 폭력 근절을 중요한 이슈로 잡고 있는데, 의회 정치와 시민사회운동 사이의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정당으로서 정치를 한다는 거 자체가 사회와 일정 부분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민사회운동은 자유로워요. 치고 나가면서 현실적으로 변화하지 못하더라도 이슈를 내놓기도 하고. 하지만 의회정치라는 건 또 다르다는 거죠. 정당정치로서 페미니스트 정당이 대중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면 운동 차원에서 어느 만큼 갖고 가는가 하는 본인들의 문제의식과 그러면 기존의 정당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에 ‘난 차라리 의회정치를 안 하겠어’라는 형태로 간 게 에바죠. ‘의회주의가 풀뿌리를 이겼다’라고 선언하면서 탈당합니다. 그런데 에바가 영화에서 보여준 방식은 비열했던 거 같아요. 언론을 활용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일방적으로 언론에 나가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게 인간적으로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티나가 가장 많이 당한 사람 중에 하나죠. 레즈비언으로서 퀴어로서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폭력적인 대우를 받게 되는데. 그 이전에 ‘누가 페미니스트인가’라고 했을 때 특히 한국 사회에서 2-30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남자는 배제하자라는 입장도 상당히 강하고 남자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이에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은 ‘남자 때리기’가 아니라고 말하며, 개인으로서 남성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권력구조를 미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사회민주당이 ‘페미니스트들’이라는 네트워크를 시작하고, 그 전국조직회장이 “남자들은 동물이다”라는 발언을 했는데요/ 이에 FI가 비난을 받게 됐습니다. 한편 어떤 남성 백만장자가 FI 당원으로 재정지원을 하게 됩니다. 본인은 어릴 때부터 페미니스트였다고 하면서 “나는 페미니스트다. 몸과 영혼으로 느낀다” 돈을 후원하는 것이 “That’s my way of taking two steps back so that women can get the same level with us”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영화에서 “왜 여성이 여성에게 투표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남편에게 물어보아야겠다”는 장면도 나오고 (웃음) 혹은 나는 오랫동안 사회민주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답을 듣게 되죠.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의 배경이 된 2005년에는 다른 양상인데 <서프러제트> 때에도 서프러제트를 조롱하는 포스터들이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키스 한 번 못 해 본 노처녀가 서프러제트가 된다’, ‘남자들을 타도하라’, ‘노처녀들에게 남편을’이라는 식으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결혼 못하고 노처녀고 그러니까 참정권 투쟁하는 거라는 식의 남성중심적 풍자들이 횡행하게 됩니다.

     

    한편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에는 서프러제트들에 대한 마녀사냥과는 성격이 다른 티나에 대한 마녀사냥이 나옵니다. 티나가 “남자와 자는 여자들은 자신의 성을 배반한 자들”이라고 했다고 에바는 폭로하자 티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 여성이랑 살고 있지만 나도 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가 있다. 사회적, 정치적 구성이 아닌 젠더는 없다.”라고 반박합니다. 이 논쟁이 미디어의 티나 마녀사냥을 촉발시켰고 언론들은 그걸 다른 형태로 전환시키는 게 아니라 티나가 대중들의 화살을 받게끔 만들었습니다. ‘나치 창녀’, ‘나치 페미니스트’라든지 이런 식의 언어들이 6주간 계속되었고 아카데믹 사기꾼이라는 비난과 더불어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됩니다. 티나 입장에서는 이성애 이슈인 낙태권이나 데이케어 등에도 동참했는데 억울한 거죠. 70년대에는 이성애 가족 이슈가 중심이 되었다면 2000년대에는 LGBT 이슈 역시 페미니스트 정당이 같이 갖고 가야 하지 않은가하고 말합니다.

    데브림 역시 이주여성으로서 공포를 느끼고 나치의 위협을 받았다라는 얘기를 하고요. 제인 폰다가 “가부장적 암흑을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라고 한 것도 재밌는 표현이었습니다

     

    다음으로 ‘51%에 토대를 두면서 99%를 어떻게 만들어낼까’라는 질문에 대해 구조, 체제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아젠다에 올려야하는 게 남성과 여성 사이의 임금격차, 동일임금, 성폭력 이런 구체적인 사안들도 있지만 더 크게 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가부장 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을 가지고 얘기해보겠습니다. 젠더 국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성 체계, 가부장체제:성종계급체계의 피라미드가 맨 왼쪽 사진이고요. 중간에 공장 사진은 근대가 기계화된 공장 노동자를 남성으로 놓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여전히 ‘노동자’가 중심성이 있는 것이죠. 여성들의 노동이라는 가사노동, 임신출산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노동이라고 보지 않는 거죠. 맨 오른쪽, 고기를 위해 키워지는 돼지들의 모습인데 돼지들의 노동을 같이 고려하는 정당정치 역시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그래서 국가와 성종계급체계는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가라고 했을 때 가부장적 성종계급체계를 유지하는 게 국가라는 겁니다. 앞에서는 국가의 성질이 젠더 국가이자 가부장적 국가라고 말씀 드렸는데 국가는 영토에 기반하고 있고 노동에 기반하고 있고 여성, 자연, 동물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여성이 하는 일에 대해 가치를 매기지 않고 가족 제도를 기반으로 존재합니다. 가족과 관련하여 여성들의 임신출산은 사회와 노동의 영역에 넣지 않습니다. 모든 사회활동의 출발점인 가사노동에 대해 정당한 가치매김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낙태를 금지하는 법은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놓고 있는거죠. 이런 모순 체계를 만들어내는 장치로서 국가가 있으니까 국가를 바꾸려면 정당정치를 통해 국가정치를 해야합니다.

     

    근대 이후 가부장체제2는 자본주의-제국주의-군사주의 체제인데 보시면 또 성별화되어있거든요. 성별화되어있는 체제를 페미니스트 정당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의식하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를 얘기하고 있는데 사실 여성들이 임신, 출산을 하면서 인간을 생산하는 노동은 빠져있고 제국주의적인 영역에서 여성, 동식물들이 어떻게 억압당했가에 대해서도 빠져 있습니다. 피카소의 한국전쟁을 그린 작품을 보면 전쟁이 확실히 이분화 되어있는데 군사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적인 게 같이 가고 있다는 것이 그림에서 나타납니다. 시민운동, 사회운동 차원에서 페미니즘이 해내야하는 것도 있지만 정당정치를 표방하는 쪽에서의 방향성도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근대 서구에서 자본주의와 함께 민족국가가 본격적으로 출현하는 것은 국가가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지금도 국가는 자본주의 체계를 수호하고 있죠. 그렇지 않으면 국가로서 생존하기 힘든 게 세계체제이고 지구지역 체계 자체가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라크에도 파병해야하는 식으로 가게 되는 거죠. 어떤 정부이건 간에. 진보가 집권하든 보수가 집권하든 통치 방식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근대의 발전관은 국가를 발전국가로 그리고 서유럽의 국가를 제국주의 국가로 만들면서 식민지배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식민지배는 이후 민족국가들의 독립과 출발을 낳았지만 출발지점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 불평등은 지금도 양산되면서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을 힘들게 합니다. 이 국가라는 것이 발전국가 체제를 취하고 있는 한 우리가 생산력이 낮아지면 국가 경쟁력이 낮아진다고 얘기하게 되는 그 안에는 군사력이라는 것도 과시를 하고 끊임없이 유지를 해야 하는, 이런 것들이 국가경쟁체제 안에 들어가있기 때문에 국가정치를 하겠다 했을 때 국가 정치라는 것 안에 이러한 국가 간의 경쟁체제에 대한 인식이 빠져버리면 안 됩니다. 세계적으로 극우 경향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데 난민 정책을 어떻게 하는가. 전세계적으로 머리를 맞대야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문을 닫고 그렇게 가고 있다면. 페미니스트 정당이라고 했을 때 출발은 ‘여성이 배제되고 억압당했다. 통제 당하고 있는 방식이 남성들과 다르다’에서 출발하더라도 실제로는 난민 문제까지 포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있다는 말씀이고요.

     

    국가는 영토를 보호하고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안보질서와 군대체계를 유지합니다. 이 체계 속에서 움직이는 국가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다른 국가들과 경쟁관계 혹은 공조관계에 들어가는데요. 사실 국가들이 서로 힘이 불균형한 상황에서 세계질서, 세계체제, 혹은 세계화는 국가간 불평등 구조의 다른 이름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국가나 체계는 현재 지구지역적 불평등을 양산하면서 가부장적 지구체계를 만들어냅니다. 지구지역적으로 다른 역사를 경험한 지역과 국가들이 서로 정치-경제-군사-종교-인종-민족적으로 얽히게 되면서 내전과 분쟁, 침공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재 지역/국가 체제입니다. 어떤 정권이 주도권을 잡든지 간에 국가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이 구조적으로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권력이 폭력이 되는 지점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이런 폭력적인 국가 내에서 페미니스트 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지구지역적으로 페미니스트 정당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본다면,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FI가 지방 의회 진출에 성공하면서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유럽에 만연한 인종주의, 나치즘, 파시즘 속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위해 싸워야할 때”라고 선언하면서 “인종주의자를 페미니스트로 바꾸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습니다. 즉,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2014년에 당원 수가 1500년에 1년 만에 2만명 이상으로 크게 늘고 성평등 의제를 넘어서 경제, 기후변화, 난민, 복지, 연금 등 다양한 의제를 다룬 것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오늘 강연은 여기까지 끝내겠습니다. 가부장 체제와 국가의 성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페미니스트 정당 정치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고요. 감사합니다.

     

    김장연호: 1시간 30분동안 페미니즘과 젠더정치 관련해서 많은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세가지 미션인 인권감수성, 젠더감수성, 예술감수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당히 배제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 출품된 작품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개봉한 작품들이 거의 없어요. ‘왜 상업화된 작업이 아닌 작업들이 소개가 되었을까’ 이런 게 궁금하실 텐데 저희 쪽에서 작업을 소개하는 작가 분들은 내 작업이 자본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 작업하기 보다는 목소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예술적 가치라든가 아니면 자신의 매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대안적인 실험들을 하고 싶어서 영상작업을 하는 작가 분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이런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이 배제가 되죠. 자본주의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만 자본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여성이라든가 난민이라든가 장애인이라든가 자본을 획득할 수 없는 분들의 작업들이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도 상당히 많습니다. 기존의 서사와는 다른 대안적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든가. 물론 이번에 회고전이 열린 마를린 호리스 감독은 상업 영화에서도 성공하긴 했지만 독특한 케이스죠. 페미니즘 이슈를 가지고 대중적으로, 또 주류영화계에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데 7-80년대 여성운동의 물결의 특혜를 받은 게 없잖아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하고요. (웃음)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라는 단체와 같이 보고 싶은 작업으로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를 구애해주셨는데 그 과정에서 10년동안 현장에서 다양한 페미니스트, 사건 이슈들을 접하시고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해주셨어요. 한국 같은 경우에 아시아 가부장체제는 유럽이나 서구의 가부장체제하고는 결이 다르게, 깊게 뿌리내린 유교문화가 배어있어서 쉽게 사고전환이 어렵거든요.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여성도 마찬가지로 쉽게 변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지는 못했어요. 요즘에야 미투 운동을 통해 활발하게 있지만 반대급부는 그런 거를 싫어하는 여성 분들도 있었고 그런 분들을 현장에서 보셨을 때 해결책, 어떤 게 현장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데 대안 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정갑희: 한국의 특수성이 있지만 유교적인 가족제도가 서구와는 다른 측면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근대 세계라는 것이 서구 유럽으로부터 도입되어서 한편에서는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과 한국의 가족제도가 오랜 전통으로 인해 강하고 공고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면 현장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래도 낙태죄 폐지가 다른 유럽보다 먼저 헌법불합치를 받게 된 건 여성 운동이 강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제도, 결혼, 연애 이런 부분, 데이트폭력, 여성살해같은 경우에 강남역10번출구에서 시작해서 여러 이슈가 쏟아져 나오는데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까. 현재 진영이 갈라져있는 게 래디컬하게 남자들과의 4B 운동(비연애,비섹스,.비혼,비출산)을 주장하는 쪽과 이성애 사회에서 그것이 실현 가능한가? 그게 아니라면 결혼제도, 가족제도, 연애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부터 운동이 출발해야 하지 않나는 쪽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결혼한 여성들은 거기서 어떻게 운동이 가능할까? 임신, 출산을 해서 어떻게 가부장체제를 인식하면서 바꿔 나가야 할까. ‘기존의 흐름과 완전히 다르게 가야해’가 아니라 대중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정당정치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밀양같은 경우는 가부장제에 협력하면서 저항하는, 성종계급체계에 대한 저항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도 보호하는 운동을 펼쳤는데요. 여성운동과 동시에 한전 송전탑을 막으려고 했던 현장에서의 움직임을 의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영화든 운동이든, 기록을 남기는 거도 중요하고. 페미니즘 이론,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연구 성과까지 같이 공유하는 정도까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장연호: 여기 유일하게 남자 관객 분께서 계신데,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서 오신거죠? 오늘 강연 어떻게 들으셨는지, 특히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 듣고 싶습니다.

    관객1: 저는 생물학적 성에 관심을 가지다가 젠더에도 관심을 갖게 됐는데 제가 주장을 할 때에는 조심스럽죠. 비당사자니까. 여성들의 문제나 감정을 100% 공감해서 느끼지 못하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래디컬 페미니스트 쪽에서 ‘남페미는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도 공감해요.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가 제가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한 번은 제가 학교에 다니는 선생님하고 같이 생리에 관해 사업을 했는데 지나갈 때마다 ‘나는 남잔데, 생리를 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가. 내가 생리에 대해 얘기하는 게 여성들에게 어떻게 공감이 되겠는가’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런 딜레마에 대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고민은 되더라고요.

     

    고정갑희: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말조차 이제는 조심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어쨌거나 젠더가 구성되었다 하더라도 구성된 세계 속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생물학적 남성/여성으로 나누어진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죠. 그래서 운동도 ‘생물학적 여성만 모여’라고 하면서 남성 배제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는 건데. 저는 당사자라는 것에 대해 요즘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비당사자와 당사자. 여성 운동이면 자신을 시스젠더 남성으로 놓으면 비당사자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성운동에서도 남성으로서의 당사자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사회가 젠더라는 것은 남성, 여성으로 키우고 만들고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으니까. 그럼 나는 이렇게 수행하도록 되었다라는 것을 얘기하는 당사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리 문제 같은 경우도 ‘생리는 여성들의 것이니까 내가 얘기하거나 개입할 수 없어’가 아니라 그 생리에 대해서 나는 시스젠더 남성으로서 이런 변화된 생각들을 할 수 있다 정도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좀 달라질 것 같아요.

     

    김장연호: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 출품하시는 분들이 생물학적 여성만 출품하신 건 아니거든요. 모든 분들이 출품가능하고요. 저는 현장에서 상당히 다양한 젠더들과 만나는데 남성으로서의 삶을 사시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저희가 갖고 있는 이슈를 자신의 엄마, 누나에게 대입해서 그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작업도 그런 작업들을 하려고 노력하시는 분들도 봤거든요. 어머니의 구술사를 만들어보려고 영상을 잡는다든가. 그런 식의 가족 간에서의 관계도 있으니까.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성을 위한 운동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고정갑희 집행위원장님 말씀듣고 강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정갑희: 국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지구지역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려면 정당정치도 그 수단 중 하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그 정당정치가 기존의 정당들이 하는 걸 넘어서면 좋겠다, 그래서 좀 더 목표지점들을 잡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남성도 페미니스트라고 본인을 정체화하고 노력한다면 가족 중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를 놓고.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을 만든다는 건 남성도 남성으로서 수행하도록 만들었다는 거거든요. 남성으로서 너는 어떻게 길러졌는가. 언제 남성으로서 사회적으로 자리매김했고 어떻게 이를 거부할 수 있는가. 거기에서 다른 하나를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여성/남성의 이분법을 우리 자신이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다른 곳으로 이행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저도 래디컬 페미니즘을 다시 강의하게 된 이유는 거기서부터 퀴어로 가고 트랜스젠더로 가고 그 안의 성, 가부장체제에 대해 어떤 다른 움직임이 있는지 그것을 볼 수 있는 지점들이었던 거 같아요. 또 계속 적녹보라는 걸로 성종계급체계를 나타냈는데요. 보라색,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는 성 체계, 생태주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녹색, 맑스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적색이 따로 가는 게 아니라, 서로가 교차하는, 교차성 페미니즘이 아니라 정말 함께 연동되어서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계급의 문제와 성의 문제와 종의 문제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데까지 가 있거든요.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가부장 체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이 체제를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나를 고민하는 자리들이 많았으면 좋겠고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취재 │ 김민주 루키

     
    사진 │ 최예준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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