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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데일리 [8호] 트레이시 모팻 고동연 미술평론 토크
2016-08-11 14:29:38
NeMaf <> 조회수 1793

 8월 10일 수요일 오후 1시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t 1960-) 회고전 <트레이시 모팻 단편1>이 상영되었다. 트레이시 모팻은 호주를 대표하는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이번 네마프에서는 그녀의 장편과 단편 영상물들을 선보였다. 이날은 특별히 영화 상영뒤 고동연 미술평론가가 작가에 관한 강연을 진행해주었다. 이하는 이날 강연의 기록이다.

 

 김장연호 집행위원장: 올해 네마프에서는 [트레이시 모팻 회고전]을 진행했습니다. 비록 작가가 미술계 사진작가인 사람이라 영상물에 대한 보존은 잘 안되어 어렵게 호주를 비롯한 여러 국가 갤러리에서 가져오고 또 영상들에 대한 스크립트가 없어서 일일이 번역을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렇게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에게 감사드리구요. 오늘은 고동연 미술평론가 선생님이 현대미술사와 모팻의 작업을 연계해서 강연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뜻 깊게 해주실 고동연 미술평론가님을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고동연: 네 안녕하세요. 우선 저도 마찬이고 또 진부한 표현 이지만 현대미술의 경계가 혼돈 된 상태이라서 트레이시를 영화감독인지 사진작가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으로 정의해야할지 힘든 부분이 있어요, 또 작가 본인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지 안고 그때 그때 아티스트 적으로 설명을 하고 ‘일관성이 없어도 된다’는 설명도 하죠. 그리고 오늘 아침에 <신들리다 BeDevil>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작품에 연극적인 요소도 많구요. 트레이시 모팻은 [디아 아트센터 Dia Art Center] 에서 전시를 한 것 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그 사실뿐만이 아니라 현대의 영상예술역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 [플랫폼L]에서 하는 양푸동의 전시의 경우를 보아도 굉장히 유사한 측면이 있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화가들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오늘 본 다큐멘터리 중간에도 수녀들의 모습을 산의 형태에 비유하는데요. 수녀의 모습을 그저 굉장히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으로 보고 있어서 낮설기도 해요. 그런 혼돈의 상태가 어렵지만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징이구요. 그리고 우리가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해석할 수 있는 배경들도 실은 현대미술의 다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집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구분하기 많이 힘들어졌어요. 왜냐하면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매체도 바뀌었고 인식되는 방식 미학적인 것에도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인데요.  

 

 오늘 강연은 사진사와 관련해 진행해보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up in there>에서 나오는 사진인데요. 현대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의 주요 특징은 중 하나는 영화적 사진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사진에는 이야기는 있었어요. 지금과의 차이점이라면 그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해왔죠. 근데 80년대부터의 사진들을 보면 전통적인 기술을 포기하는 예를 들면 구성한 듯 안한 듯, 컬러와 흑백을 동시에 작업하고 등등 이런 사진의 추세가 지금을 낯설지 않지만 그 자체는 분명 낯선거죠, 왜냐면 스타일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일관성이 없다는게 중요한 특징이고 변화에요. 그들을 포기하는 대신에 요즘 사진은 이야기의 전달을 얻었어요. 단 우회적인 것이 특징이죠. 우리가 영화를 익숙히 보아온 세대이지만 서사를 포기할 수는 없는 거죠. 

 


 “나의 작업은 감정과 드라마로 가득 차있다 당신은 네러티브를 사용해서 그 드라마를 파악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네러티브는 언제나 간단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것들을 뒤튼다.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있지만 정통적인 시작과 끝 그리고 종결은 없다.”

 

 이런 것이 영화작가로서는 낯선 말은 아니지만 사진작가로 본다면 분명히 흥미로운 측면이 많은 말이에요, 전통적으로 사진작가들에게 하나의 큰 룰은 베르그송이 말한 듯인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라”를 였죠. 왜냐면 사진은 오래전부터 그냥 현실을 찍는 거예요. 아무나 일상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모두를 사진작가로 생각할 수 있어요, 전통적인 미술작가와 달리 기술의 능숙함이 기준이 아니어서 그래서 사진가들은 다른 사람이 못 가본 곳을 찍거나 혹은 우연한 순간을 포착하거나 그런 시선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래서 일상적인 풍경을 찍어도 극적이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 전통적인 사진가의 양성법 이었어요. 그런데 극적인 듯하고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이 정상은 아닌데 우리가 말하는 극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도적인 장치는 없죠. 하지만 동시에 기이해요, 그런 게 굉장히 틀고 틀어서 교묘하다는 거죠, 상당히 우연적이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게 현대 사진의 주요 흐름이구요. 특히 패션 사진처럼 완벽히 기획되고 연출된 사진이 아닌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많이 등장해요 혹은 그 외 넓은 사진의 분야애서도 등장합니다.

 


 방금 본 <Something more> 이것도 기이해요. 제목이 전반적으로 무책임 하죠. 왜냐 사진작가는 전통적으로 사실전달의 임무가 있었고 그렇기에 소재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제목이죠, ‘Something’ 이란 말도 가치가 있는 듯 없는 듯 말하는 표현이기 떄문에 ‘나도 진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몰라’라고 굉장히 무책임하게 던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눈썰미 있는 분들이라면 느꼈겠지만 자세히 보면 또 기이해요. 연출되었다는 의미죠. 그렇지만 정확히 어떤 순간인지 잘 모르겠을 측면이 있어요. 게다가 오늘 단편에서 보았지만 굉장히 많이 차용하죠. 오늘 본 <Something more 무엇인가 뭐>이 작품 정말 말하기 힘들어요, 이 작업이 만들어진 것은 89년인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디 셔먼 Cindy Sherman’ 사진작가를 생각할 수 있어요. 신디 셔먼이 여성작가로서도 중요하지만 그녀가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원래 신디 셔먼은 미술을 하려고 미대에 갔다가 사진도 재밌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교수가 ‘너는 사진을 못 찍는구나’라고 했데요. 그래서 셔먼은 사진을 개념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데요. 그니깐 기술은 되게 조약한 듯한 느낌을 주면서 소재들은 영화로부터 많이 차용해요. 왜냐면 이 세대들의 특징이 영화를 많이 보고 자랐거든요. 모팻도 영화광이지만 셔먼도 영화광이에요. 80년대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줄리아 슈나벨Julian Schnabel을 비롯한 화가들이 지금은 영화를 하는 것도 그들이 영화광이었기 때문이 죠. 이 시기 7080대에는 본격적으로 미술계 영화광들이 많아진 시기에요, 그래서 오늘 강연도 이 시기로 잡았습니다.

 


신디 셔면 <무제> 1978 

 

 신디 셔면은 잘 아시겠지만 자기를 연기하죠, 이런 모습이 모팻에게도 많이 보여요. 자전적인면도 있고 가족들을 많이 보여주기도 하죠 자신을 행위예술가로 규정한 부분도 있었구요, 그런데 그 행위와 연기들이 어딘가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에요. 그래서 스크린을 보면 전형적인 섹시스타의 모습으로 보이죠. 그리고 반대편 셔먼의 작품에서도 문지방에 있으면서 뭔가 성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여성의 모습이구요, 작품이 차용을 하고 비평적인 이슈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조금 아리송해요. 뭐냐면 우리가 어떤 단편영화를 본다면 어떤 부분은 ‘인종차별을 비판하네 근데 저 연출은 너무 감정적인 것 아닌가’라는 느낌을 갖게 되요. 그래서  대중소비문화가 만들어낸, 우리가 보통 비판하는 여러 이슈들을 이용하고 차용하면서도 비판하기도 하는 굉장히 복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죠. 그 시대에 이런 사진들이 많이 나왔어요.

 


리처드 프린스 <무제 (카우보이)> 1980-89 
1960년대 웨스턴 영화 섹시스타의 예 

 

 사진을 보시면 뭔가 되게 영화에 나오는 듯 하죠.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 의 위 사진 같은 경우에는 영화 속 장면을 다시 연출해서 찍은 작품인데 이런 작가들이 굉장히 그 시대에 많았어요. 그리고 이건 아까 말한 굉장히 웨스턴 모던의 섹시스타죠. 마를린 먼로도 웨스턴영화에 나오거든요. 근데 이 웨스턴 모던의 영화가 장르가 우리의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로 남아죠, ‘어디선가 본 것 같아’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는 동시에 작가도 공유하는 무의식적 포즈, 느낌 유형 이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죠.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세히 보면 아까 <Somthing more> 시리즈에서 동양 남성이 중국풍의 옷을 입은 서양여성의 사진의 그 모습이 일차적으로는 굉장히 금지된 관계인데, 웨스턴 영화는 그런 금지된 관계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보인 장르에요. <포카혼타스>도 그렇구요. 30년대 까지는 인디언들과 대립적 관계만 보여주다가 그 전후부터는 여성에 대해서만은 굉장히 섹시하게 포장해서 멋있고 우월한 백인 남성과의 사랑을 보여주었죠. 거기서 부터가 웨스턴 장르를 조금은 덜 촌스럽게 만드는 부분이기한데, 그래서 웨스턴 장르가 오랫동안 금지된 사랑, 인종을 초월한 사랑이 주요한 소재였는데요. 이런 것들이 굉장히 층층이 들어있어요. 딱 보면 한눈에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자세히 본다면 마치 끝말잇기 숨은그림찾기와 같죠. 그래서 질문을 하게 되요. 뻔한 포즈인데 부자연스러워요. 아까 영사에서 스튜디오 촬영을 한다 했는데 굉장히 빛을 강하게 사용하죠. 은은한 사진은 만들지 않죠. 실은 상당히 평면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있어요, 이 말은 ‘실제 공간과 시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차용을 주로 하는 작가들에게는 유용한 방법이죠. 이미 잘 만들어진 이미지들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는 거죠.

 


 모팻에 대한 비판중 하나가 소재의 무분별함입니다.  페미니스트 같은데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하만 이 소재들 모두가 주요해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소재가 2개 있다면 자연과 가족이에요. 두 개 모두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나죠. 뭐냐면 이번 상영 전 <Be Devil>을 보셨다면 알겠지만, 초반부에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면서 정형화된 호주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 보이고 호수에서 노래 부르며 아름다운 자연을 카메라에 담았죠, 7080년대 사진이 개념화 되면서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같은 기호학자들의 영향이 컸는데요. 그 학자들의 관심도 대중문화에요. 대중문화는 아름다운 굉장히 평온한 자연과 가정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죠. 원형적인 상태에요, 평온한 자연은 폭력이 없어야 유지 되요, 우리 모두 안에 욕망이 없어야 유지 되요. 평온한 가정도 갈등이 없어야 완벽한 가정이 가능하죠. 그래야 인류의 영원한 발전이 가능해요, 그래서 자연과 가족의 이미지가 대중매체를 통해 어떻게 재현되는가에 특히 기호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요. 그들의 핵심적인 연구 분야가 뭐냐면, 우리가 언어 말고도 다양한 수단으로 소통하는데 그중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소통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특히 롤랑 바르트는 최초의 ‘대중 인문 과학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죠, 그의 집중하는 것은 자연인데 이 말에서도 여기서도 나타나요, 그가 말하길 ‘신화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특정한 대화’ 라고 했는데요. 무언가 소통하는 방식임을 말하는 거예요. 옛날의 기호학자들의 특징은 단순히 언어로 논리적 언어로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소통에 관심을 가져요, 그래서 ‘인덱스’니 하는 굉장히 어려운 용어들로 설명하죠, 그리고 미셀 푸코 Michel Foucault 같은 경우에는 ‘사일런스’ 침묵이라는 굉장히 인간의 다양한 소통에 관심을 가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신화라고 하지만 신화가 어떻게 우리 대중문화에 나타나는가’말했죠.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얼마나 우리 대중문화 속에 대중문화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일종의 특정한 권력의 형태로 보여주느냐 에요. 근데 그 특정한 권력은 언제나 자연과 가족을 편안한 상태로 만 보여주죠, 그래서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자연스럽게 원형적으로 만들어 보여주는데 그러면서 이것이 되게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돌아가면 아까 <Be Devil>에서 아름다운 호주를 보면 호주로 놀러 가보고 싶잖아요. 굉장히 그런 아름다운 이미지로 환상을 주는데. 잘 보면 어때요 그 안에서도 호수에서 요트를 모는 사람들 모두 백인 중산층이죠. 기호학자들도 이론가도 그렇지만 대중문화 안에 깔려있는 이데올로기를 파해치 것또한 예술가의 일이기도 하죠.

 


디코르시아 <삶의 이야기>

 

그러면서 90년대에는 진짜 가족과 연관된 이미지들이 많이 있어요, 모팻도 그렇고 또 모팻이 굉장히 자전적인 작가라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 자전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인종차별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생모가 있지만 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 위해 ‘postable’ 맡겨진 거죠. 아까 <Be Devil>에서 나온 어떤 아줌마가 굉장히 인조적인 고루한 모습에 막 진주목거리 화려한 치장으로 나오죠. 그런데 닉이 라는 아이를 기억한다고 이야기 하며 그 원주민 아이를 기억할 때 우리는 ‘이 아줌마가 착안 사람이가?’ 라고 생각하는데 그 영화가 굉장히 자전적이거든요. 결국 대분의 많은 원주민 아이 출신들이 자신들의 뿌리에 이중적일 수밖에 없죠.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으로 고려하면 백인 중산층의 가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선택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배경들을 스스로 알고 자라온 세대라서 가정에 대한 이야기 작업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당시 디코르시아 DICORCIA 같은 사진작가들이 앞으로도 등장하는데 장르자체는 별거 아닌데 연출된 가족사진을 책을 만드는데 잘 보면 인종적인 측면은 있고 겉으로는 아주 멀쩡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 재현되어있습니다. 

 

<scarred for life>의 사진 속 스토리에 거짓도 없지만 엄청난 드라마도 아니에요. 그리고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도 엄청난 슬픔의 연기도 아니고 진짜로 그런 표정을 지은 것도 아니어서 모호해요, 그런 모호함을 강조할 수 있도록 고화질이 아닌 그을린 듯 만들었죠. 이런 것들이 현대 다큐멘터리의 특징 중 하나인거죠. 그리고 아까 모팻이 말한 것처럼 사진 속 인물은 동네에서 보이는, 가정에서 부모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에요. 그런데 모팻의 사진에 대한 제 생각은 소재들도 그렇지만 특히 화면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이 뭔가 빠진 것 같아요. 오른쪽 <unuseless>를 보더라도 구직에 실패한 아이에게 부모가 ‘너 쓸모없구나’ 라고 이야기 했데요, 그 말을 듣고 난 뒤 그 아이에 대한 이미지에요. 근데 그 말하는 순간이 아닌 애매한 모호한 순간에 포착해 두었죠. 사건에 중심의 시간에서 조금 벗어난 타이밍에 대상을 포착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 소재들도 우리가 전통적으로 영화하고 다큐멘터리로 만들만큼 극적인 사연의 인물들도 아니에요, 원래 다큐멘터리 작가들도 비행청소년이라는 극적인 사연의 아이들을 찍었는데 점차 90년대로 가면서 아주 비행보다는 일상적인 삶속에서 퉁명스러운 사람들로 이야기하고 있죠.

 


Heart attack  / 'Brith certificate'  

 

 출생에 관한 비밀을 이야기하는 사진인데요. 부모가 아이에게 출생증명서를 던진 거예요. 그러면서 아빠가 사실은 아이의 생부가 아니라고 밝히는 이야기죠. 물론 이야기는 비극적이에요 근데, 조그마한 크기로 글씨가 써 있는 게 참 재밌어요. 너무 길게 적지도 안고 딱 간단히 설명만 해주는 것이 처음에는 잘 모르겠죠. 그니깐 슬픈 것은 알겠는데 엄청나게 슬퍼 보이지는 안는 거죠. 그리고 출생증명서도 잘 보이지도 안구요, 그 증명서를 던지는 장면도 아닌 살짝 비껴난 순간을 보여주죠. 뭐 그렇게 되면서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도 있지만요. ‘백인이 아닌 가난한 가계에 혼외자의 자식...’ 이런 식으로 말이죠. 


 <up in the sky>도 마찬가지에요. 소재 자체가 호주 사회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에요. 근데 어때요. 아까 모팻이 말하는걸 보면 하늘이야기 밖에 안하죠. 웃기죠. 이런 곳에 가서 사진을 찍는데 하늘얘기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하늘에서 봤다’라는 것도 굉장히 이중적인 말이에요. 하늘에서 보면 다 아름답죠. 또 실제로 사진도 아름답구요, 이런 것이 이중적인 의미를 갖게 하는 거죠. 그렇다고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랑 완전히 다르지는 안지만 그래도 전통 다큐멘터리는 훨씬 충실해요. 전통 다큐멘터리는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과정에 장기간 그들 곁에 머물고 취재하며 그런 경험들과 교감을 바탕으로 찍는 건데, 모팻은 다른 방식을 보이고 있죠. 그리고 제목이 <하늘에서 보다>인데 거리를 둔다는 의미에요. 그들의 삶속에 들어가지 안죠. 하늘에서 보았을 때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잖아요. 굉장히 그런 거리두기가 모팻의 작업에서 많이 들어나요, 클로즈업할 때와 멀리서 바라볼 때, 클로즈업을 하면 굉장히 우리에게 어떤 사회의 이슈들이 다가오잖아요. 하지만 멀리서 볼 때는 이상한 것은 감지할 수 있지만 크게 다가오지는 안거든요. 우리가 실은 그걸 보고 지나칠 수 있다는 거에요. 우리가 감지하지만 무시하고 싶을 때 멀리 거리를 두잖아요,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도 ‘멀리 거리를 두면서...’ 라는 말을 하는데 그런 태도가 이중적인 거에요. “내가 너 도와줄게”라는 불필요한 관여가 없다는 측면에서는 도덕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있기는 해요. 근데 한편으로 다큐멘터리 작가 혹은 사진작가가 빈민층이나 불우한 이들을 소재로 다루었을 때. ‘그들은 어떠한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하는가’라는 전통적인 정의로 부터도 거리를 두고 있는 거죠. 

 

 

‘본격적인 아웃백에서‘ 

 

이런 점이 신기해요. 아웃백에서 찍었는데 ‘거리를 둔다’는 것이 신기하죠. 왜냐면 영상은 자기가 만든다는 측면이 있는데 여튼 독특한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리고 결국은 이 사람들이 굉장히 힘든 사람들이에요 원주민도 아닌 사람들인데 말이죠. 제가 상상하기로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인종적으로 결합된 이런 사람들이 사는 극빈층의 거주구역이 아닐까 싶어요, 왜냐하면 호주 아웃백에 원주민들이 사는 곳은 굉장히 풍경이 아름다운데 어중간 하거든요.

 


Fourth #2 / 3

오래는 안하고 이 정도에서 슬슬 결말을 지을 것 같은데요. 오래전 올림픽의 사진이에요. 4등을 한 선수를 담은 사진인데요. 재밌는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요. 우선 TV 중계를 하다가 중계가 끝나면 TV는 더 이상 보여주지 않죠. 그 이후는 그저 메달을 딴 선수들만 하루 종일 보여주지 아닌 사람들은 보여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모팻은 그 선수가 경기가 끝나고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대요. 이런 점이 계속 되는 소재이죠. 정확히 말해서 인종차별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지만 모팻은 원주민의 피를 받았지만 그 계층은 아니에요. 중산층 백인의 집에서 살고 있고 고등교육도 받고 여행도 맘껏 다녀요. 그러나 부모님은 생모가 아니고 후견인인 인물이기에 뭐라 말 할 수 없는 계층에 있는 거죠. 제 생각에는 작가 본인도 그런 배경이 있어서인가 정확히 분류할 수 없는 미묘한 부분과 사람들을 잡아내고 만들어내는 것에 예민한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모팻이 사진, 회화, 연극을 좋아해서 평면적인 특징이 있는데요, 

 


‘4등’ 

 

모팻이 4등을 궁금해 했다했잖아요, 하지만 중계가 끝나면 4등은 나오지가 않죠.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는데, 모팻이 4등을 고른 이유가 뭐냐면 “대부분 그들의 표현은 표현이 없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인간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주어진 표현인데 (‘유형화 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표정이 ‘오, 제게’라는 마스크를 파악하는 것이 대단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라 했는데요. 그러한 표정이 뭐냐면 ‘오, 제게’인데 ‘’정신이 없어서 화도 못냈다‘ 라는 거예요. 그 몽롱한 순간이 모팻에게는 흥미로웠다는 거죠. 멍하지만 그냥 멍한 것이 아니라 올림픽을 위해 되게 열심히 했지만 4등밖에 못해서 되게 짜증이 나는데 근데 화를 내고 표현할 만큼 기운이 없는, 되게 묘한 그 순간이 자기는 흥미로웠고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모팻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지만 소재적인 측면 미학적 태도가 결국에는 사람에 대해서 바라보는 또 삶에 대해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것 인 것 같습니다.  .

 


1. 작가는 과연 전적으로 캐릭터, 캐리터의 포즈와 장소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아니면 차용하는가? 

 

이게 되게 묘한 분위기가 있어요. 여러분 보다 보면 특히 두 번째 단편은 다 차용으로 만들었는데요. 앞에 장편 <신들리다 Be Devil>에서 보면 프리다 칼로가 나왔거든요. 근데 갑자기 이상한 스토리로 전개되는걸 보면 되게 웃기게 캐릭터를 설정한 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그러나 핵심적인 것은 동시에 묘한 감정을 잘 잡아낸다 생각합니다. 

 


2. 어떻게 극적인 순간을 보여주는지 않으면서도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가? 인데요.

 

 잘 보면 치고 박고하는 장면은 안 나오지만 그 분위기는 잘 표현하고 있죠. 모팻이 ‘늪’을 잘 사용하는데요. 늪의 특징이 뭐냐면 정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늪이 왜 추리소설에서 많이 사용 되냐면 쑥쑥 빠지는 거죠. 그러한 속성이 무의식에 세계, 모르는 세계와 같아 굉장히 우회적으로 여러 번 사용하죠. 그리고 폐쇄공포증을 말했지만 평면적이기 때문에 뭔가 똑같은 하늘인데도 그 하늘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듯 엄습하는 느낌을 주죠, 그리고 이것이 사진에서도 굉장히 중요한데요. 카메라 안에서 이야기되는 이미지만큼 이나 그 프레임 밖의 스토리도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가 모팻의 주제를 인종, 여성에 대해서 다루지만 그것들로 결정적인 순간들이 일어나지는 안아요. 왜냐면 여자들이 자립적 독립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죠. 즉 페미니즘의 이슈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안아요. 그래서 언제나 중요한 주제, 장면은 놓치고 있는 듯하고 외부의 이야기가 다시 내부의 이야기를 암시 하는 듯하죠. 모든 영화감독들이 그렇지만 캐릭터적인 측면에서는 워낙 어렵고 실험적이다 보니 여러 영화들을 같이 보면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어요. 


 사진의 역사에서도 전통적인 사진처럼 드라마틱한 순간을 클로즈업 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사람의 상황을 일상적인 삶에서 소위 모자라는 사람을 표현하는데요. 어떻게 보면 좋은 점은 이거죠 장엄하게 인종차별 폐지라고 하면 무슨 주제인지는 정확히 알겠지만 동시에 거부감이 들죠. 그러면서 동시에 내 자리와 상대방의 자리를 구분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저 사람 불쌍해’ ‘저 영화는 그렇구나’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모호한 전략을 사용하고 그리고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작가가 그러한 발언에 회피하면 뭔가 빠져드는 측면이 생겨요. 정확히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여러 가지 차원들을 동시에 들어 갈 수 있어요. 접근성이 편하고 좋은 거죠, 이런 것들이 요새 흘러가는 다큐멘터리사진과 사진 트렌드에 절대 가를 수 없는 모팻의 특징입니다. 

 


저는 소리가 유머러스함을 주는 것이 좋았어요. 왜냐하면 음악이 좋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거슬리잖아요, 멋있지만 과도한 것 같아요. 클래식하거나 코믹한 음악이 나오든 과한 것 같거든요. 그러면서 유머러스함을 유발하는 점이 신기했는데요. 뭔가 영화 속에서 특이함을 느끼신 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관객: 선생님의 음악 말씀이나 설명처럼 장면들이 극적이지 않고 인위적이었는데, 음악은 반대된다 싶었어요. 장편의 경우를 고려하면 단편은 음악의 효과가 과한 것 같은데 그러한 부분에서 모팻의 작업 배경이나 자전적 스토리에서 비로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 생각에는 모팻의 음악적 테크닉이 미숙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차용을 했잖아요. 굉장히 유형화된 기존의 있던 것들로 작업을 하죠. 제 생각에는 물론 영화팬 이지만 유형화된 사운드만 사용해서 그렇지 않았나 싶구요. 그리고 원래 사운드가 굉장히 중요해요. 영화이론에서 여성주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각을 장악하는 남성의 세계’라는 말이 있어요.뭐냐면 시각은 기득권의 세계이고 그 기득권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백인 중산층의 세계라는 건데요. 이 굉장히 단순화된 영화이론의 반대로 ‘소리만이 굉장히 묘한 영역이다’라는 이론이 발전해요. <또 오해영>에서도 나오지만 에릭이 왜 멋있어 보이냐면 원래 소리는 매우 예민한 영역이에요. 근데 에릭은 경제적, 정치적, 권력, 힘을 지배하려는 남성의 세계에서 무의식적이고 섬세한 세계를 장악하고 있으니 멋있어 보이죠. 영화에서도 소리는 무의식의 영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 감정과 연관된 장면에서 소리에 의지하죠. 그래서 누군가 ‘뭔가 몽환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예산이 없다’라고 말하면 소리를 활용하라고 조언해주고 시각으로 다룰 수 없는 것에서 음악은 굉장히 효과적이죠. 

 


관객: 별다른 질문은 없는데 저는 트레이시 모팻의 영화를 처음 봤는데 ‘파운드 푸티지’를 많이 사용했더라구요. 솔직히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모팻만의 특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일단 컨셉은 모팻인데 제작은 다른 사람인 굉장히 이상하죠. 그건 분배의 문제인데요. ‘남의 것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게 아마추어일 때는 상관없는데 유명해지면 문제가 되요.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위대한 차원도 있지만 시기적인 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면 미학적 측면에 있어서 이전 다른 작가들의 푸티지 작품에 비하면 잘 만들었어요. 아까 소리를 이야기했지만 굉장히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이구요. 그리고 푸티지라는 것이 갤러리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영화의 역사를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푸티지 작품이라고 다 카피작품일 뿐이야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이미 ’나는 푸티지 작품으로 할 거야’라고 시작을 했으니까요. 그 다음에 이런 장면이 아이러니 한가 캐릭터의 관계 이런 것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해요. 어느 배우가 이번영화에 이런 캐릭터로 나왔다가 다음영화에서는 저런 캐릭터로 나왔더라.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고다르 트뤼포의 영화를 보면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죠. 예를 들어 <쉘부르의 우산>에서 나온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있잖아요. 그 영화를 본 6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드뇌브가 숭고한 여성의 이미지였다는데요. 트뤼포는 그 배우를 데리고 플레이걸 캐릭터를 만들죠. 그런 묘미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파운드 푸티지 영상들에는 그런 차원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과연 어떤 영화들로 편집 하느냐도 중요해요. 이런 것들이 왜 중요하냐면, 요즘에 수많은 영화감독들이 푸티지를 사용하다보니 그 미묘함을 감지했을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팻은 미리 정교하게 했기 때문에 유명하기도하죠. 유명한 작가라는 건 미리 그 자리를 선점하면 되는 문제니까요. 그래서 스스로도 영상에서 예술에 대한 조크를 날리죠. 현대미술에서 절대적인 유명함과 위대한은 제 생각에는 없는 것 같아요.

 


김장연호 집행위원장: 저는 트레이시 모팻만의 독특한 영화적 장치, 미장센, 장면들이 좋았는데요. 사진의 느낌들을 무빙이미지로 만드는 느낌 그리고 허구적인 느낌도 있으면서 스튜디오 작업을 통한 사실적인 느낌도 있었던 것 같아요. 네러티브의 경우는 자신을 기반한 사적인 히스토리이지만 이걸 그냥 현실의 지형지물을 통해 만들었으면 묘한 느낌이 없었을 텐데 인공적 세트를 통해 촬영해서 묘한 느낌이 형성된 것 같아요. 그런 모팻만의 독특한 영화적 장치가 있는데, 왜 한편의 장편만을 만들었을까 싶은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구요. 사실 단편은 보여주기 어려운 환경에서 단 한편의 장편만을 제작해서 영화인들에게 많이 소개되지 못했나 싶어서 그래서 영화를 계속 만들지 사진 쪽은 어떻게 생각할지지 궁금합니다. 

 

 제가 모팻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상상한다면 간단한 이야기일 것아요. 핵심은 이거죠. 모팻이 장편 영화을 만든다면 물론 힘든 점도 있을 거에요. 프로덕션이나 투자 등등에서 말이죠. 일단 모팻은 순수 예술가이기 때문에 결단을 해야 할 거에요. 그리고 작업 과정이나 협업하는 사람들의 영역에서도 어려운 점은 있겠지만, 가장 큰 고민은 현실적인 측면에 있을 거에요. 사진은 모팻이 작가로서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분명히 도움이 될 거에요. 아주 크게는 아니더라두요. 처음부터 기반이 없었다면 모를텐데 만일 화랑을 통해 영화를 한다면, 뉴욕의 화랑들은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컨트롤 하는 관여하기 때문에 힘들기도 할 거에요. 제 생각에는 그런 여러 가지 상황에 맞물려있어서 모팻이 결단을 내리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이런 문제는 모팻만의 문제가 아니구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경계의 허물기의 장점이지만, 작가들이 그 선택을 통해 감수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에게는 쉬운 결정은 아지죠.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2~30년이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쉽게 해결되지 안는 문제에요 왜냐면 미술이라는 분야가 항상 자본이 흐르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철저히 상업적 영화 산업에서 들어가야 하고 그쪽의 네트워크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하기는 그녀만의 힘든 점이 아닐 것 같습니니다. 

 


 오늘 강연해주신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좀 더 모팻을 보실 기회는 남았구요. 모팻이 장편을 하길 바라는 건 제 팬으로서의 욕심입니다. (웃음)  모팻의 파운드 푸티지 작품들은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에 비해 10년 정도 앞선 것 같아요. 모팻의 푸티지 작업이 남성작가들에 비해 좋았던 점은 탈식민주의적으로 읽을 수 있는 맥락들이 많아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다른 푸티지 작업보다도 재밌고 좋은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시간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08.10

 

진행 | 김장연호 집행위원장
강의 | 고동연 미술평론가
기록 | 최상규 루키
 사진 | 손지은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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