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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TALK] 젠더(X=접경)국가
NeMaf 조회수:1718 추천수:1
2019-08-18 19:30:27

8 17일 오후 8,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젠더(X=접경)국가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반기현 중앙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의 진행 하에 정찬철 한국외대 교양대학 교수, 정희원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전우형 중앙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 교수가 함께 했다. 개막작인 모나 하툼 감독의 <거리측정>과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캘린더>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회(반기현) : 안녕하세요, 젠더(X=접경)국가 사회를 맡은 반기현입니다. 여기서 접경은 공간뿐 아니라 시대와 시대 간의 접경,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접경, 한 인간 사이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정체성 사이의 접경 또한 포함됩니다. 오늘 저희가 다룰 것은 개막작인 모나 하툼의 <거리측정>과 아톰 에고이안의 <캘린더>입니다. 정희원 선생님부터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희원 : 저는 개막작인 <거리측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영상이나 이미지 전공이 아닌 영문학 전공자다 보니 제가 보면서 느낀 개인적인 소감 위주로 말씀드릴 테니까 관객분들도 감상하시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식으로 느껴졌는지 비교하는 식으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작가 소개를 드리자면, 모나 하툼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레바논 시민권이 나오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영국 대사관에 근무했기 때문에 영국 여권을 발급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영국 여행을 가게 되는데 마침 레바논에 전쟁이 일어나 공항이 폐쇄되어 레바논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국에 살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 바로 <거리측정>입니다. 작품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자면, <거리측정>은 초반에 화면 가득 아랍어 글씨가 등장하죠. 바로 하툼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인데, 어머니가 하툼에게 보낸 편지를 영어로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샹탈 애커만 의 <News from Home>이 생각이 났어요. 이 영화를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애커만 자체도 부모님은 유대인인데 벨기에에서 살다가 뉴욕에 와서 이방인으로서 굉장히 힘들게 살면서 뉴욕을 찍은 것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그리고 애커만이 어머니의 프랑스어 편지를 뉴욕을 배경으로 읽어요. 그래서 편지를 매개로 한 어머니와 딸의 관계, 그런데 딸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고국을 떠나 망명자 같은 삶을 살면서 어머니와 소통한다는 점에서 <거리측정>과의 공통점이 생깁니다. 이제는 두 영화 사이의 차이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두 영화는 다르죠. 애커만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인상 깊었던 것은 <News from Home>에서는 지하철 창문이나 유리창 같은 표면을 찍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특히 상점을 찍을 때 가장 흥미로운 것이 안에서 보지 않고 밖에서 들여다보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이 컷 같은 경우도 보시면 유리를 통해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또 자기가 보고 있는데 이런 식의 여러 겹의 화면 구성이 특징이에요. 이처럼 여러 층들이 겹쳐있다, 이런 자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나 하툼의 영화 역시도 여러 가지 층들을 겹쳐 놓는 측면이 있어서 두 영화를 비교하며 보는 것이 흥미롭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와의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과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 않나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하툼 영화를 보면 아랍어 글씨가 마치 베일처럼 깔려 있는데 아랍어를 모르다 보니 되게 조형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렇다면 글씨가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사실 고다르의 영화도 그렇고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이렇게 고국에서 살지 않는 작가들이 글씨들을 가져왔을 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아 술레이만의 <Homage by Assassination>을 보면 주인공은 이란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 주인공은 이라크 전쟁 당시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이동성을 박탈당한 채 계속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데 화면에다 자기 모국어, 그러니까 아랍어로 글씨를 쓰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글씨가 자기 손에도, 얼굴에도 비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이 의식적으로 반복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동성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모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기 몸에 수동적으로 기입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이것은 그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실천이고 수행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하툼과 애커만의 작품을 보면서 대번에 시린 네샤트이라는 이란의 유명 미술가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거리측정>의 스틸컷이 사실 어머니의 누드 사진이거든요? 우리가 아랍 여성의 누드를 본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경험인데, 어떻게 보면 마치 베일을 씌운 것처럼 그 위에 아랍어 글씨를 입힘으로써 우리가 그 내밀한 순간을 같이 들어가 볼 수 있어요. 베일이라는 이미지를 사실 여성 작가들이 대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네샤트같은 경우, 이란 작가이기 때문에 페르시아어를 베일을 쓴 여성 위에 써놓는데, 이를테면 얼굴이나 손, 발 같은 곳에 써놓는 작업을 했어요. 이 부분들은 중동 여성들에게 허락된 노출 부위라고 해요. 이것은 관습적으로 중동 여성하면 생각나는 수동적이고, 서구인의 관점에서 성적인 부분만 강조되는 그런 식의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도전적이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범주에 갇히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모국어의 글씨를 신체에 쓰는 방식으로 재현됩니다. 그리고 글씨를 생각하다 보니, 90년대 중반의 피터 그린어웨이의 <Pillow Book>도 떠오르더라고요. 그린어웨이도 사실 글씨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있지만 사실 이건 되게 다르죠. 어떻게 보면 사드처럼 몸에 쾌락을 새긴다는 점에서 포르노그래피의 전통에 맞닿아 있고, 하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일 방향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요. 또 여자 주인공이 일본 사람인데 중국어도 하면서 홍콩에 사는, 마치 서구인들이 오리엔트라고 생각하는 것을 두루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점에서 앞선 영화의 주체들이 가지는 임파워링(empowering)과 다른 차이를 지니죠. 

 

전우형 : 젠더(X=접경)국가 주제전에 초청된 작품들을 보면 언어, 시선, 언어의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 재현에 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여러 언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그 언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까요. 일단 <캘린더>를 잠깐 말씀드리자면, 아주 건조한 장치가 반복해서 등장해요. 달력이 있고, 정수기통이 있고, 그 위에 전화기가 있는데 이 전화기가 계속 울려요.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아 자동 응답기가 돌아가고, 주인공의 부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기 심정을 토로하고, 너는 도대체 뭐냐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너 거기 있어(Are You There?)’라고 묻는 장면이 영화의 끝까지 계속 나와요. 그러니까 왜 계속 자동 응답기만 돌아가느냐, 너 거기 있니라는 건데 저는 이것이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저는 Are You There에 Still을 집어넣어 ‘아직도 거기 있니(Are You, Still, There?)’라는 것으로 바꾸어 봤어요. 너 거기 있니라고 순수하게 궁금해한다기보다는 너 아직도 거기에 있니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는 외로움, 고독에 관한 영화 같아요. 하지만 원래 인간은 외로워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특수한 환경 때문에 외롭고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캘린더>는 고독의 증상으로서의 불안을 전면에 내세워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외롭고 불안한 사람이에요. 어쨌든 불안이 내면화되면서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거죠. 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거나 적대적이거나 이러한 상상이나 장난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고독이나 외로움, 불안, 그리고 긴 시간 불안이 내면화되면서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불온한 상상이나 시선은 감독인 에고이안 그 자신의 것이기도 합니다. 에고이안은 아르메니안 혈통으로 이집트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영화 활동을 한 감독이에요. 즉 디아스포라라는 거예요. 디아스포라는 정체성이라는 이야기가 없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외롭겠지만 디아스포라만의 외로움이 있고, 디아스포라가 갖는 불안이 있어요. 그리고 디아스포라는 그 지역에 원래 살던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 아니면 다르게 보려는 시선들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지 않기 위해 순치가 되는 거죠. 마치 여기 원래 있던 사람들처럼. 그리고 이렇게 살다 보니 무의식의 찌꺼기가 남아 역으로, 적대적으로, 불온하게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부인이 자꾸 말을 거는데 프레임을 옮기는 연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영화 속에서 사진작가로 분한 아톰 에고이안 감독은 부인과 함께 달력에 사용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아르메니아에 있는 교회를 갑니다. 그곳에서 택시 운전사는 그들을 안내하며 아르메니아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아르메니아계인 아내는 이를 통역합니다. 에고이안은 부인과 운전사 사이의 긴밀한 유대감에 질투를 느끼는데 반감을 표현하기 위해 바로 프레임을 옮기는 연출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에고이안은 자신의 것이었던 디아스포라를 부인에게 넘겨 디아스포라가 가지는 불안, 외로움, 불온 위에 젠더를 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주인공 근처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다국적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카메라 뒤에 위치하면서 디아스포라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시선을 대변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제인 젠더X국가의 X는 국가와 젠더 사이의 트러블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좌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제는 젠더나 디아스포라가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위치를 발명하는 좌표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보는 접경연구단의 어젠다이자, 갈등과 간극을 넘어선 상상력들의 집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반기현) : 그럼 이제 정찬철 교수님이 <거리측정>과 <캘린더>를 종합적으로 말씀해 주실까요?

 

정찬철 : <캘린더>에는 사진기 뷰파인더, 비디오 이미지, 음성녹음기 등 다양한 통신기록매체가 등장합니다. 왜 이민자의 삶을 이러한 다각적인 매체를 통해 기록했을까요? 영화 속에서 남편은 아르메니아에 사실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게 프레임 밖으로 나가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가 떠나온 모국의 역사는 대상화되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치를 지닙니다. 여기서 에고이안의 사진기는 단지 모국을 대상화 시키고 거리를 두는 장치일 뿐이죠. 한편 아내는 모국의 언어와 소통하는 이산자입니다. 그녀는 번역자의 역할을 하고, 모국의 언어와 역사를 알아가고자 하며 모국의 뿌리를 두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산자의 정체성은 뭘까요? 떠나온 모국을 기억하는 것이 이산자의 정체성일까요, 아니면 잊어버리는 것이 정체성일까요? 이 질문이야말로 미디어를 사용해 에고이안이 던지고자 하는 질문입니다. <캘린더>에는 아랍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마케도니아인, 이란인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여성들이 나옵니다. 왜 모국을 떠나온 이산자들이 등장할까요? 그리고 왜 이들은 모두 에고이안의 전화기를 빌려 모국으로 전화를 하는 걸까요? 사실 앞서 언급한 나라들은 모두 다 아르메니아 학살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들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접경지대로 이동했고, 그렇게 이산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장면은 떠나온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이 맞을까?를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캘린더>와 <거리측정> 사이의 매체적인 유사성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유사성이 말하고자 하는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공통점이라면 사실 이 두 영화는 닮아있죠. 우선 영상 이미지와 문자 이미지를 주로 사용합니다. 목소리와 비디오 이미지 그리고 문자, 동일한 미디어를 가지고 이산이라는 주제에 관해 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성만은 정반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톰 에고이안이 이산자에 대해 뿌리를 버려야 한다에 힘을 더 실은 반면, 모나 하툼은 그 뿌리를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만약에 잊었다면 복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언어를 영어로 해석해서 전달하는 장면은 마치 에고이안의 영화 속 아내의 역할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에고이안에게 있어 미디어는 고국을 떠나기 위한 도구이고 하툼에게 있어서는 고국과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크 녹음 파일이 손상 되어, 토크의 일부분은 누락되었습니다.  

취재 │ 정현경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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