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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 CRITCISM - 해파리와 함께하는 비평 웹진

[2018] 그 책(이정식)-채명현 관객구애위원
nemafb 조회수:1957 추천수:2 222.110.254.204
2018-08-29 16:45:58

우리의 삶 속에 ‘순수’란 무엇일까.
남자는 아이들처럼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혹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책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하얀 종잇장을 계속 넘긴다. 페이지도 글도 적혀있지 않은 하얀 백지는 마치 길을 잃은 남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는 하얀 공간 속에서 어둠에 대해, 욕망에 대해 얘기한다. 
“고독이 날 떠났다. 슬픔도 날 떠났다”라고 읊조린다.
남자는 책을 찢는다. 찢으면 무엇이라도 해결되는 것처럼 열심히 아주 열심히 찢는다. 계속 찢는다. 그리고 파쇄기에 넣고 돌린다.
그의 책 속에는 무엇이 적혀져 있었을까. 무엇이 적혀져 있길래 그를 그렇게 슬프게 했을까. 그 하얀 종이에는 우리는 볼 수 없는 글들이 적혀져 있다. 그만이 보이는 고통의 문자들이 적혀져 있다.
“나의 운명은 신의 축복을 받았어.
난 남자들의 외로움을 달래주었지.
난 천사였어, 사람들이 외면하고 혐오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손을 내밀었지.”
남자는 검은색 크레파스로 우리는 보지 못하는 글들을 가린다. 어둠 속에서 발가벗겨진, 과거의 성관계에 대해 적혀진 글들을 가린다.
그는 계속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면역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과의 만남을 더 이상 이어 나갈 수 없음이 두렵다. 그가 걸린 에이즈는 외로움의 질병이다. 그는 병을 앎과 동시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하나의 책으로 시작해 <그 책>으로 끝이 났다. 우리의 삶 속에 순수한 음성, 울림, 말이란 무엇일까. 그건 누가 정의 한 것일까? 누가 흰색을 순수하다고 말했을까?
그는 길을 잃었다. 우리는 길을 잃었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단편적이고 획일화된 생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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