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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GT] 한국구애전 장편1 <개의 역사>
NeMaf 조회수:3087 추천수:6
2017-08-25 10:40:13

 

8월 24일 낮 12시, 인디스페이스에서 ‘한국구애전 장편1’이 상영되었다. 김보람 감독의 <개의 역사> 상영 후에, 설경숙 모더레이터의 진행으로 김보람 감독과 관객 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번 GT를 통해 김보람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해 더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영화를 기획하고 찍게 되었는지, 작품 소개 말씀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독립하고 살게 된 남산 아래 ‘후암동’이라는 동네에서 이 영화를 처음 찍었어요. 제가 그 당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빠져 지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감정을 영화 안에 심어 넣고자 했습니다. 분명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은, 붕 떠 있는 것 같은 마음 상태였어요. 동네에 오고 다니면서 창고 위에 살던 ‘백구’라는 개를 볼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있었어요. 그래서 백구를 계속 보게 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 영상을 찍던 시기가 있었어요.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했을 땐, 백구가 내가 생각하는 감정을 딱 표현해 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어요. 근데 이 미묘한 감정 상태를 백구라는 존재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은 찾을 수 있을 같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백구를 돌봐주시던 아저씨의 대관령 슈퍼가 갑자기 철거되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쪽지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던 때, 이걸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에 이사하며 이동했던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섞으면서 지금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제목이 <개의 역사>이고 백구 이야기를 중심으로 할 것처럼 시작하지만, 백구가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지 않는데요. 우리가 봤던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 달리,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깊게 파고들어서 끝까지 풀어내지 않는 형식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 개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으려던 의도였는지, 아니면 영화를 만드는 기간 동안 형식의 변천을 겪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촬영 기간에 어디 가서 사람들한테 개를 찍고 있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백구와 아저씨의 아름다운 우정, 혹은 이름 없는 개를 돌봐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같은 것들이었는데,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약간의 인식 같은 걸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거든요. 전 백구가 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영화를 받아들이는 분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작업하면서 많이 느끼게 됐어요. 그런 반응들을 접한 이후에는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백구가 죽었다’라는 자막을 앞에 먼저 넣고 시작하거나 백구에게 다가가는 과정 자체를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들, 그리고 뒤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넣은 부분을 통해서 ‘소위 동물농장 식의 이야기는 아니에요’라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실은 ‘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개를 바라보는 제 마음 상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개로 보이진 않더라도, 뒤에 있을 어떤 저의 감정 상태흐름을 잘 엮어내는 방법이 뭘까를 편집하면서 제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영화 속, 감독님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날것의 접근은 보통 다큐멘터리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편집에서 제외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영화에 등장하시는데, 영화 속 감독님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시나요?

사실은 편집하는 과정에서 제가 나온 장면을 넣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첫 번째 가편에서는 제가 등장하지 않고, 마지막 내레이션에 모든 걸 쏟아 붓는 구성이었고, 두 번째 가편에서부터 제가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해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독의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너의 이야기가 전혀 전달되지 않을 거다’라는 피드백들을 받고, 제가 만드는 이야기에 제 역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다음부터 절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어떤 지점 때문에 이런 전략을 취하게 됐다고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중심이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촬영본을 찾을 때도 제 얼굴이 드러나거나 사건의 중심이 제가 아닌, 그림처럼 흘러갈 수 있는 영상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되도록 묻혀갈 방법들을 고민하면서 편집했습니다.

 

 

 

관객1: 빨래를 너는 장면을 어떤 의도로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살아가다 보면 지저분해지는데, 세탁을 통해 새 출발 한다는 마음으로 삶을 점진적으로 추구하는 의미로 느꼈습니다.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볼 수도 있겠다고 방금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빨래를 좋아해요. 빨래를 널고, 널려있는 빨래를 보는 걸 좋아해요. 빨래만을 가지고 단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찍은 장면들을 편집하면서 가져오게 된 케이스예요. 이렇게 널려있는 빨래를 볼 때마다 삶이 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일상의 조각들일 수도 있을 텐데, 널려있는 빨래를 보면 이 빨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이는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살았던 동네는 아파트촌이 아니라 밖에 빨래를 너는 집이 많았어요. 빨래가 널려있는 집들을 보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했어요. 제 삶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빨래가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 장면을 넣었습니다.

 

 

 

관객2: 성형해주는 프로그램에 지원한 할머니가 감독님께 전화하셨을 때, 질문을 던지시잖아요. “제가 이 꿈을 포기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들을 던지셨을 때, 감독님의 답변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크게 세 가지 질문이 있었어요. 처음에 허락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 갔다고 화를 내시면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셨고, 두 번째로 자신이 성형 프로그램에 지원할 거라고 고백하시면서 ‘늦은 나이에 지원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셨어요. 세 번째로, 떨어진 다음에 ‘나의 꿈을 포기해야 하냐’고 질문하시는 게 있었는데, 제 질문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처음에 친해지지 않았을 땐, 불편한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대답했었어요. 저희가 같은 건물에 살았기 때문에, 이웃으로서 봤던 할머니의 모습이나 제가 찍고 있는 영화에 관해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친해지게 됐어요.

성형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거에 대해선 전 반대를 많이 했어요. 그 프로그램을 봤는데 출연자를 대하는 방식과 소비되는 모습들에 화가 많이 났었어요. 처음에는 할머니께서 그걸 모르고 계신다 생각해서, 할머니께 설명도 많이 했고,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데 왜 지원하셔야 하느냐고 했었어요. 계속 논쟁을 하다가 한참 뒤에, 전 할머니가 모르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든 걸 알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그 방법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니까, 지원하는 자체가 할머니께 의미가 될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그 프로그램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 과정에 내가 개입하거나 반대를 강요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마지막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을 못 했어요. 다음에 그런 기회가 또 있으면 지원하실 거냐 물어봤었고, 할머니는 여전히 그런 기회를 얻고 싶어하세요.

 

 

 

감독님이 말을 거는 존재, 또 하나의 기억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등장함으로써, 의미를 규정짓지 않는 영화의 톤을 만드는 듯해요. 그런데 영화 끝에서 감독님이 내레이션으로 감상을 쭉 정리하시는데, 어떤 의도였는지 궁금합니다.

충동적인 선택일 수도 있는데요. 요즘 몇 번 상영하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제 생각보다 제 마음상태나 제가 하고자 했던 얘기를 잘 알아주시고 받아주시는구나’ 라고 느끼고 놀라고 있어요. 사실 가편집하는 과정에선 조금 자신이 없었어요. 이 이야기가 어느 정도나 전달이 될 수 있을까,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말하는 이 이야기가 과연 보는 사람들에게 유의미하게 전달될까 생각했고,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극복하지 못한 채 편집했어요. 앞부분에서 이야기하려 했지만 다 얘기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번 내질러보자는 마음으로 내레이션을 넣었어요. 앞에서 말하지 않던 사람이 뒤에서 쏟아냈을 때 만들어지는 느낌이 좋았어요.

 

 

 

해외에 있는 친구와의 통화가 중요한 지표처럼 다뤄지는데,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제일 친했던 친구라서 제 삶의 궤적을 다 알고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런 인간으로 변화했는지 다 알고 있는 친구예요. 편집 기간에 메일을 주고받게 됐는데, 재미있는 옛날 에피소드를 친구랑 얘기하게 됐어요. 친구가 옛날 일을 상세히 적어준 걸 보면서, 이 친구가 제 배경을 얘기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전화 통화하면서 얘기를 유도한 부분도 있고, 자연스럽게 나온 부분도 있어요. 친구의 말을 통해서 제 상황을 대신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찍었을 때 가지셨던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정리가 되셨나요?

어떤 단어로 명료하게 말하기엔 어려운 감정인 것 같았고, 그냥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 되게 미묘한 결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절망적이지만 희망적이기도 하고, 잊고 싶지만 잊고 싶지 않고, 그 과거가 내 아픔이지만 내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하고, 이런 중첩돼있는 결들을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과 백구의 모습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런 감정 상태에 있을 때 ‘왜 내가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우울증에 가까웠는데, 지금 내가 이 우울증을 해결했나 묻는다면, 명쾌하게 모든 걸 해결했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아요. 오히려 그냥 내 상태를 봤고, 이 상태를 지닌 채로 계속 하루하루 숨 쉬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도, 이 영화가 저에게 주는 의미가 막연하게 제 마음에 대해서 내뱉었다는 것에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상영하고 관객과 대화하면서 알게 모르게 위로 받는 지점도 있어요. 제가 말하려고 했던 거에 대해 뭔지 알 것 같다는 반응을 받았을 때, 영화 만들면서 힘들었던 것들을 되돌려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하시고 계신 작업이나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푸른영상’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선배 감독님과 함께 음악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어요. 프리재즈라는 즉흥 음악 하는 분들이 중심이 되는데, 소리를 통한 나에 대한 배출, 관계 맺기, 소통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좀 더 많이 공부하고, 저 자신에 대해 개발해서 더 좋은 작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요즘입니다. <개의 역사>를 계속 상영하면서 더 많은 분과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주변에 입소문을 내주시면…(웃음) 소규모 상영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하반기에는 제가 찍었던 동네들을 다니면서 영화 상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언제 어떻게 진행이 될진 모르지만, 그런 계획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록 | 이은아 루키

사진 | 김지원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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