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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 CRITCISM - 해파리와 함께하는 비평 웹진

[2021] 파이어 하트 (배인경, 하난 벤 시몬) – 정원 관객위원
nemafb 조회수:1961 추천수:1 222.110.254.205
2021-09-01 12:41:23

‘심장을 해고하라’는 발랄하고도 무서운 제목만큼이나 <파이어 하트>와의 조우는 강렬했다. 어두운 극장에서 관객들은 핸드폰을 꺼내서 QR 코드를 스캔한 후 각기 다른 시간에 시작된 핸드폰 속 영상에서 소리가 겹치자 일사불란하게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스피커를 껐다. 아마 두 사람 이상이 소리를 켜두었다면 또 다른 영화적 체험이 되었을 것이다.


핸드폰 속 여성은 또 하나의 관객이다. 그녀는 스크린의 전개에 코멘트를 하기도 하고, 나오는 물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미션 중에 핸드폰 속 여성은 핸드폰을 떠나간다. 관객이 자신의 얘기에 답변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영화를 만든 이들은 관객이 씨네필리아에게 금기시되는 `극장에서 핸드폰을 켜기`를 수행할 것이라 전제하지만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핸드폰에게 말을 거는 것까지는 기대하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만약 말을 걸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떠나갔을 테다. <파이어 하트>는 인터랙티브 시네마를 자처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핸드폰 속 여성은 가상 관객으로서 관객과 가상 관계를 맺다 가상 세계로 사라질 뿐이다.

가상의 관계는 스크린 속 내러티브에서도 나타난다. 사이보그 주인공과 가상 기상캐스터 샤프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전개’는 기존의 아침 드라마 혹은 막장 드라마의 컨벤션을 답습하면서도 영화는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단 한 번도 집을 떠나지 않고, 샤프는 화면에서 나오지 않으며, 비대면으로 행해지는 예비 시어머니의 다이너마이트 택배는 싸대기나 물붓기를 대체한다. 이는 치명적인 자외선을 방사하는 해가 지지 않는 세상이라는 다소 빠르게 지나가는 디스토피아적 설정 때문인데, 이러한 영원한 백야의 상태는 꺼지지 않는 모니터 혹은 디지털 세계 속의 영원한 연결을 강요한다.

타이틀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의 첫 번째 음악은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 힌트를 준다. 뮤즈들(하난 벤 시몬 분과 애리 분)은 비밀과 꿈을 들려주라며 자신들이 일기장이라 얘기한다. 주인공 사이보그는 0과 1을 통해 자신의 비밀(데이터)을 그들에게 전달하고, 애인의 선물을 뜯는 순간을 로깅하며 자신의 삶을 공개한다. 이런 사이보그의 꿈은 세계적인 기계 음성 내레이터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가 어디에서나 편재하는 것이다. 마지막 곡에서 사이보그는 두 뮤즈들과 함께 디지털 세계에서 공존하게 되며 이는 오프라인의 포기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사랑과 감정, 그리고 신체적 감각의 해고, 혹은 제목에 의하면 심장의 해고다. 랩이 가미되어 마치 `무감각`이 일종의 자랑거리처럼 묘사된다는 점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심장을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양철인간이 아니라 심장을 해고하여 완전한 사이보그 혹은 무감각의 영역에 도달하는 목표의 변주 또한 흥미롭다.

<파이어 하트>의 또 다른 장점은 영화가 관객을 설득하기를 포기함으로써 관객을 설득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택배원이 엘리베이터에서 뮤즈들의 음악에 의해 고양elevated되는 장면은 외부에 나갈 수 없는 설정과 상충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장면이 딱히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기에 있다. 마치 핸드폰 속 여성처럼 말이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당해서 무감각해지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고양된다. 관객이 기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끝까지 보여주는 영화를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갑고 행복했다. 이런 특별한 영화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심장은 정년퇴임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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