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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든 어떤 ‘카메라’로든, 누군가를 촬영해본 경험이 있다면 알 거예요. 찍히는 상대가 언제나 카메라에 호의적이지는 않음을요. 친구라도 애인이라도 그럴 때가 있죠. 심지어 그 상대가 ‘낯선 사람’이라면, 더욱이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더하겠죠. 저라도 당장 모르는 사람이 ‘나와 내가 사는 곳’을 찍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 방어하게 될 거에요, 나도 당신을, 당신도 나를 모르고 그게 어떻게 사용될지 맥락도 알 수 없는데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찍겠다니요! 그럴 때 카메라를 든 사람은 한 명의 사람이라기보단 그저 ‘카메라’그 자체죠. 이 영화 속 화자, 즉 카메라가 처한 상황이 그러합니다. 촬영을 위해 찾아간 공간과 사람들에게 촬영자는 ‘카메라’이기에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그 와중에 ‘나’를 카메라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해주는 고양이 ‘나비’를 만납니다. 나비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줍니다. 카메라였던 나는 나비와 함께 움직이면서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사람으로 다가서고 그들의 순간순간을 화면에 담아냅니다. 그럼에도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지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해결할 수 없으면 찍지도 마라”고 말하는 그 사람은 또 얼마나 암담할지요. 영화 초반 불청객이 된 카메라는 물리적으로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디지털 줌을 사용합니다. ‘나’는 여기 서 있지만 멀리 있는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찍히는 존재들을 가깝게 보고 싶지만, 실상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음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줌 된 장면들에는 소리가 들어있지 않아요. 멀고 멀죠. 영화의 ‘나’는 그저 그곳에서 나를 환영해주는 나비를 화면에 담으며 삶의 언저리를 서성입니다. 애초에 ‘너’를 ‘이렇게’ ‘찍을 거’라고 합의하는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찍히는 너’에게 많은 것이 달려있지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찍히는 너’에게 카메라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 다가가기 위하여, 관계를 위한 많은 노력을 합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결국 이 영화는 이런 ‘자신’과 ‘자신의 작업’에 대한 고민을 담아본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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