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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vol 10. [기획] 대안영상예술이론학교
NeMaf 조회수:100
2021-08-27 14:19:27

제 21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이하 네마프)에서는 네마프 여름이론학교 2회차 강연시리즈로 <대안영상예술이론학교>가 열렸다. 올해의 주제인 ‘예술과 노동’에 관한 이론적 고찰과 이와 관련한 다양한 담론들, 의미있는 작품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6개의 강연이 2021년 8월 20일부터 8월 26일까지 온라인 플랫폼 줌(zoom)을 통해 개최되었다. ‘예술과 노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바디우와 랑시에르, 탈자본주의 이론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론적 토대를 다지는 동시에, 현 시점에서의 여러 작업들과 현상 분석까지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예술과 노동에서의 ‘예술’ 과 ‘노동’ 이 의미하는 바

예술과 노동의 이론적 토대는 무엇일까. 그 답은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와 바디우(Alain Badiou)의 ‘유적인 것’으로서의 예술과 노동을 설명한 제 1강과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주제로 한 2강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첫번째 강의인 <‘유적인 것’ 의 영역으로서의 노동과 예술 : 마르크스와 바디우>에서는 대안영상예술이론학교의 문을 여는 강의답게 ‘노동’ 과 ‘예술’ 사이의 교차 지점과 개념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의식적 활동인 예술과 노동 모두 ‘유적인 것’ 으로 기능하면서 기존의 구조적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구조의 불합리한 결정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또한 2강 <프롤레타리아의 밤 : 랑시에르, 예술, 그리고 노동>에서 중심으로 삼은 랑시에르의 텍스트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의 프롤레타리아는 구조, 지식체계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삶의 감각을 통해 느꼈던 바에 관해 스스로 책을 펼쳐 공부한 존재이다. 기존 지식 체계를 그대로 전수하는 방식의 철학이 표준적이었던 당시의 그들(프롤레타리아)은 기존의 구조적 법칙을 깰 수 있는 ‘외부자’ 인 셈이다. 그들의 ‘공부하는 밤(night)’은 실제 삶의 감각을 통한 깨달음과 이론적 지식이 만나는 획기적인 시간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랑시에르에게 예술은 그저 하나의 분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삶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개념이고, 예술가들은 이를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외부자적 존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과 노동은 이론적으로도, 형태적으로도 매우 유사한 지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지속불가하게 만드는 것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예술가와 노동자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창조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만 보아도 그렇다. 고용되지 않은 예술인을 위한 법은 제정 단계부터 예술계 현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고, 노동자들을 수단으로 삼아 전체 구조에서 소외시키는 전략은 이미 만연하다. 이들을 외부자로 내모는 힘의 정체는 4강 <노동과 예술의 컨버전스 : 탈자본주의적 삶의 문법을 향하여>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답은 ‘자본주의’ 에 있다.

마르크스는 ‘소외’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인간 노동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기계화, 자동화된 노동현장에서 인간이 창조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전체 공정에서 일부를 차지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를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종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간의 창조 활동인 노동과 예술이 그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탈자본주의적 삶의 문법’을 지향해야한다.

4강에서의 라깡 (Jacques Lacan) 에 따르면 ‘나’는 타자와 대면하면서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진 주체가 된다. 결국 사람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주체’가 되는 것이므로 타자는 밖에 있으면서도 나와 관계되어 있고, 나의 바탕이 되면서 목표나 지향점이 되기도 한다. 타자의 영역을 내재화 하면서 사회적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인데, 지금 우리 세계의 타자의 영역에는 자본주의가 자리하고 있고, 모든 가치와 의미는 돈에 집중되어 있다. 타자로 삼을만한 사이, ‘인간(人間)’이 없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무의식의 영역, 즉 우리가 살고는 있지만 미처 알지는 못했던 가치와 의미들을 발견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과 노동이다. 4강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격’으로 대체 되어버린 가치의 회복을 찾고, 더 나아가 본래적 자유를 어떻게 찾아내야 하는지가 예술과 노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미디어와 플랫폼이라는 관계의 영역에서 돈을 중심으로 한 관계맺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인간’ 없이 작동하고 있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물신성에 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강의였다.

 

지금의 예술과 노동

조금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지금의 예술과 노동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예술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하는가? 남은 세 개의 강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3강 <“여성노동이 역사가 될 때” - 한국다큐멘터리 영화 속 여성의 이야기>에서는 다큐멘터리 속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과,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여성은 늘 우리의 역사 속에서 피해자이거나 조력자, 희생자로 다루어져왔고, 역사는 늘 권력자의 시선에서 피치자를 대상화해왔다. 그런 점에서 여성에 의해, 여성이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내는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매우 전복적이고 유의미한 기록인 것이다. 이를 통해 발화의 주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재현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존 위계 구조 상단에 있던 남성적 문법의 노동이 아닌 ‘진짜 여성’의 노동 현장을 그려낸 많은 작품들을 소개 받으면서, 개인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제안하는 사적 다큐멘터리의 가치와 그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카메라를 든 예술가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예술가의 카메라가 향하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곧 무의미한 영역에 있다고 여겨져 온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탈구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이 되는 셈이다.

또한 5강 <한 없이 가벼워지는 노동의 보관방식>에서는 변화하는 현 시대 사회적, 기술적 상황에 따른 예술에서의 노동 방식 변화에 관해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조각은 그 방식의 특성과 변화지점을 잘 보여준다. 조각은 묵직한 물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완성되면 그 자리에 ‘보관’된다는 특성을 가져왔다. 하지만 최근 플라스틱이나 종이, 알루미늄같은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작업을 하기도 하고, 디지털 상에서의 조각 작품 제작도 가능해졌다. 육중한 조각을 가벼이 만드는 최근의 시도들은 기존의 조각하는 행위가 제약하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로, 노동의 성격과 모양이 달라졌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노동을 보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움직이지 않고 작품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만이 예술 작품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상품 브랜드로서의 작품, 분절되는 관람방식 등으로 인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동하고, 이를 어디에 둘 것인지의 문제도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전환들은 예술가에게 새로운 노동의 형태를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말처럼, 기술은 오히려 이전의 자연주의와 같은 사조를 재창안하고 부활시킬 수 있다. 제 5강 <한 없이 가벼워지는 노동의 보관방식>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동을 어떻게 예술의 조건으로 사유할 수 있을 것인지와 관련해 생각해볼 기회가 되어주었다.

마지막 강의인 6강 <공장을 떠난 노동자는 어디로? : 추방과 해방 사이 일탈하는 이미지들> 에서는 20세기 대표 재현 양식인 영화가 가지는 특성과 역할에 관해 뤼미에르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 하룬 파로키의 작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뤼미에르의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 에서의 노동자들은 공장의 문 밖에 존재한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공장 밖에 ‘보이는’ 노동자들은 일탈적 존재가 되고,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예술은 비가시적이었던 대상들에게 가시성을 부여하는 한편, 공장 밖으로 나오는 노동자들을 경계의 대상으로 변모시킴으로서 사회의 치안을 작동시킨다는 우려 지점을 갖기도 한다는 것이다. 영화라는 예술은 결국 재현의 정치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파로키의 작품이 ‘영화관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설명하며, 여러 화면을 병렬적으로 설치하는 등 미디어 아트 작품의 등장은 영화가 통일된 운동의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한 반발로 기능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기존의 통일성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들로부터 벗어나, 분산되고 뒤엉킨 디지털 이미지는 다시 ‘일탈’과 ‘벗어남’을 기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빈곤한 이미지는 단순히 저급하고 저질의 평가되는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으로부터의 추방을 해방으로 탈바꿈하는 새로운 정치 행위가 된다.

6강을 통해서는 영화적 재현의 행위가 정치적 행위가 된다는 사실로부터 예술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 곳곳에 존재하는 ‘빈곤한 이미지’의 존재 의미를 재사유함을 통해 나아가야할 방향에 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예술과 노동이 가야할 길

예술과 노동에 관한 질문은 수백년전부터 제기되어 온 질문이다. 2021년인 지금에도 여전히 같은 지점에서 같은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쉽게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다 준 위기상황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한계, 그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시점이 온 것이라고 본다면 지금의 어려움이 반드시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그 정체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예술’ 과 ‘노동’을 개념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고, 두 가지 개념이 지금 우리의 위기에 어떤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는지에 관해 매일 치열하게 공부해볼 수 있었던 강의였다. 앞으로의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무엇에 방점을 두고 논의를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모두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글 | 이지윤 홍보팀 ALT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