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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vol 10. [기획] 재구성되는 영화의 역사전 : 알리스 기 블라셰 회고전
NeMaf 조회수:128
2021-08-27 15:32:43

 

지난 19일 서울 롯데시네마에서 개최된 ‘서울 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일명 네 마프)’는 이번 27일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자리를 빛냈다.
네 마프는 ‘여성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상영과 전시를 이용해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특히 이번에 열린 ‘알리스 기 블라셰’ 및 여성 감독 3명의 회고전인 일명 <재구성되는 영화의 역사전>은 이번 페스티벌의 감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번 <재구성되는 영화의 역사전>은 종로 3가에 위치한 서울아트 시네마에서 20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되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잊혀 있던 영화감독 알리스 기 블라셰 뿐 아니라 도로시 아주 너, 이본느 라이너, 제르 멘 뒬 락희 작품을 복원해 전시했다.

알리스 기 블라고 셰는 세계 최초의 서사 영화 연출가이자, 여성 감독으로서 초기 영화산업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다. 그녀는 할리우드가 번성하기 전인 19세기 프랑스에서 그녀의 상사 고몽의 비서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영사기 발명의 소식을 듣게 되고, 그녀와 고몽은 영사기를 이용해 상업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고몽은 그녀에게 영화의 연출을 맡기게 되고 그녀는 미국으로 진출해 영화 회사를 건설하고 본격적인 연출가의 삶을 살게 된다.
특히 그녀의 작품을 보다 보면 독특한 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영화의 용도 변화이다.
영화는 그녀의 연출을 기점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그녀의 영화는 기존 ‘사실 기록용’의 용도가 아닌 ‘허구의 서사 작품’으로 연출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일상 속 허구의 서사를 전달하기를 원했고 1896년 <양배추 요정>을 시작으로 200여 자기 넘는 서사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수많은 영화를 제작했던 그녀는 왜 사람들 사이에 잊혀 있던 것일까?

19세기 당시, ‘여성’이 남성들을‘주도’해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알리스 기 블라셰 역시 초기에는 프랑스에서 연출가의 삶을 이어갔지만 성별의 제약으로 인해
그나마 제약이 없었던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미국에서 활동하던 어느 날,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고 그 이후 세계 경제 대 공황이 발생함으로 인해 그녀의 영화 회사는 빚더미에 쌓이게 된다. 게다가 경쟁 회사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그녀의 회사는 점점 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수많은 빚과 함께 더 이상 미국에서 활동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된 알리스 기 블라고 셰는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 다시 돌아와 연출가의 삶을 이어가려 했을 때는 아무도 그녀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프랑스의 영화계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업적은 다른 남성 감독의 업적으로 왜곡되게 된다.
알리스는 이에 부당함을 끝없이 호소했지만 아무도 늙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번 회고전은 다시금 그녀를 재조명하며 흩어져 있던 알리스 기 블라 셰이 업적들과 흔적들을 다시 재조립 하는 과정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여성 감독들 역시 
그 당시 국한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여성들의 목소리를 예술적인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도 엿볼 수 있었다.

여성의 노동에 대한 가치는 무참히 짓밟히던 시기, 그녀들은 다양한 형태로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   김보민 홍보팀 ALT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