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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라운드테이블] 한국구애전X
NeMaf 조회수:1342
2019-08-18 14:35:48

8월 17일 오후 2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네마프2019 [한국구애전X] 참여작가들과의 라운드테이블이 있었다. 올해 [한국구애전X]에는 개인적 사건을 통해 구조의 문제를 파헤치는 작품부터 매체와 장르의 고정성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까지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총 9편의 선정작은 서교예술실험센터, 아트스페이스오,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오는 24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는 권희수, <이미지 헌팅>의 이다은 작가, <Your_Korean_Name_Finder.exe>의 이시마 작가, <날갯짓>의 박철환 작가,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의 주다은 작가, <이야기의 얼굴>의 김혜이 작가가 참석했고 미술평론가이자 네마프2019 예선구애위원인 이양헌 모더레이터가 진행을 맡았다. 아래는 라운드테이블 현장의 기록이다.

 

간단하게 각자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권희수: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말이 물이 몸이>라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권희수라고 합니다.

이다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이미지 헌팅>이라는 작업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다은입니다.

이시마: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Your_Korean_Name_Finder.exe>를 전시 중인 이시마입니다.

박철환: 아트스페이스오에서 <날갯짓>이라는 작품으로 전시하고 있는 박철환입니다.

주다은: 저도 아트스페이스오에서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를 전시하고 있고, 주다은이라고 합니다.

김혜이: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이야기의 얼굴>을 전시하고 있는 김혜이라고 합니다.

 

네마프2019의 주제가 ‘젠더X국가’입니다. 젠더라고 하면 가장 뜨거운 이슈라고 할 수 있고, 가장 치열한 접전을 구축하고 있는 의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젠더는 더이상 고정된 것이 아니고 정의할 수 없는 다원체,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결합되어있는 하이브리드이고 동시에 여러 힘의 역상들이 경합하고 있는 필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라고 하면 근대성의 산물이고 배제와 포섭의 원리를 통해 규율을 생산해내는 것, 생명정치를 시행하는 것인데 젠더와 국가가 서로 만나는 그리고 대립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다양한 작업들을 이번 네마프에서 선보이고 있습니다. 젠더와 관련된 이슈가 중요하게 표제로 나오게 됐는데요. 그래서 젠더 관련한 작업을 한 작가님들께 먼저 질문 드리겠습니다. 이다은 작가님의 작품이 페미니즘 관련해서 이야기가 많이 된 작업으로 알고 있는데 작품을 제작하게 되신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이다은: 작업을 진행할 때 보통 사적인 사건들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지 헌팅>도 제가 지하철에서 몰카를 겪었던 경험이 시초가 되어서 시작한 작품이에요. 처음에는 이거를 작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이미지들이 제가 찍힌 이미지 말고도 수천 장의 사진을 가해자 휴대폰에서 확인하고 나서 ‘이 이미지들이 도대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변형됐을까’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차근차근 푸티지footage를 모으기 시작했고 2년 정도 모은 영상으로 연출한 영상도 있지만 제가 추적해서 찾은. 그런 것들을 종합해서 한 작품입니다.

 

이다은 작가님 같은 경우 작년에 이 작품으로 전시를 몇 번 여셨던 걸로 알고 있고 특히 작년에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페미니즘 이슈가 뜨겁게 불거졌는데요. 작품을 보면 어디까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관객이 알 수 없는 이미지 구성을 보여주고 계신데 경찰서에 갔다든지 하는 부분이 실제인가요?

 

이다은: 영상이 섞여있어요. 경찰서 같은 경우는 제가 몰래카메라를 달고 경찰서와 검찰청을 방문했어요. 앞부분에는 영화적으로 연출한 장면이 많고 뒷부분 이미지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의 푸티지들은 실제 수집한 영상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주다은 작가님, 본인 작업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주다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라는 다소 긴 제목으로 아트스페이스오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작업의 동기라고 한다면 작업의 시작이 ‘작업을 해야겠다!’는 아니었어요. 외할머니가 어릴 때 홀로 한국전쟁 직전에 남쪽으로 내려온 연로한, 삶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이라는 거, 또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제 삶에서 작동하고 있어서 그거 자체를 기록해야겠다는 것이 시작이 돼서 할머니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한 것이 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작업을 보면 구글을 통해 어딘가로 향하기도 하고 직접 찍으신 이미지가 결합되어있기도 하고 위치에 대해서 지시하고 있는 이미지가 많았어요. 사실 우리 세대 같은 경우는 분단과 관련된 경험이나 슬픔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어렵잖아요.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어떤 것인지?

 

주다은: 개인적으로 제 가족이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지만 역사적인 경험을 한 세대가 시간이 지나 사라지면 다음 세대는 개인이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기 힘들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변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지금 나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생각해서 표현해봤습니다.

 

다음은 이시마 작가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이시마: 저도 개인적인 경험에서 기인했습니다. 저는 해외생활을 오래해서 한국 이름의 느낌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저희 고조할머니께서 성차별적인 이름을 갖고 사시다가 80세의 나이에 개명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다른 논문이나 연구적인 자료를 찾아보다가 한국 여성 성명에 대한 연구를 보게 되어서 만들게 됐습니다.

 

<Your_Korean_Name_Finder.exe>에서 제일 난해한 부분이 계보도라고 생각하는데요. 읽으려고 해봤는데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잘 알 수 없었어요. 계보도에서 보여지는 억압된 여성의 역사에 대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하신 것 같은데, 표를 실제로 읽기 어렵게 의도를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시마: 표 읽기를 일부러 굉장히 어렵게 만들었어요. 지금 전시는 굉장히 크게 되어있는데 원래 작업을 할 때는 지금 사이즈의 1/4로 만들었고 자세히 보려면 벽에 딱 붙어서 되게 열심히 읽어야만 하는 작업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여성 성명학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가 그만큼 힘들었고 그걸 해석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반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서 교수님들이랑 얘기를 하면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었고 그분들 자체도 내 이름이 성차별적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을 정도로 본인을 본인이 보는 작업이 힘들었기 때문에 관객 분들이 작업을 보실 때도 신체적으로 힘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미지를 보는 방식도 일부러 어렵게 만들었어요.

 

다음은 박철환 작가님께 질문 드립니다. 작업의 동기가 무엇인가요?

 

박철환: 가장 큰 동기는 과제였어요(일동 웃음). 과제로 제작한 영상인데 그 때 담당하신 교수님이 되게 딱딱한 교수님이었어요. 영화는 내러티브가 있어야 하고 기승전결이 완벽해야 하고, 이런 게 있는? 그런데 저는 거기에 너무 반발심이 드는 거에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이런 게 아닌데’, ‘내가 만들고자 하는 건 이게 아니었는데’하는 반발심에서 시작했고,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은 영화가 무엇이냐는 원초적이고 단순한 질문이에요. 그런데 2019년을 살면서 단순히 그것이 무엇이냐고만 질문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과연 어디까지 영화일 수 있는가’, ‘이것도 영화일 수 있나’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네마프 같은 축제에서도 그렇고 오늘날 비디오아트, 방송,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를 압박하는 거대한 틀이 있다고 느껴졌어요. 예를 들어 서교예술실험센터 같은 갤러리에서 <극한직업>이 과연 틀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제 작업이 CGV 같은 멀티플렉스에서 투자를 받고 상영될 수 있을까? 하는 사회적 여건이나 틀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저는 둘 다에게 환영 받지 못 하는, ‘이건 비디오아트야’, ‘이건 극영화야’라고 하나의 장르에 속하지 못 한, 섞이지 못 한 이질적인 작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극영화적이지 않은 요소로 극영화를 만들어보자 해서 만든 게 이번 작업이고 운동하는 이미지들을 보통 극장에서 보는 영화에서 쓰이지 않는 쇼트shot들로 구성하여 이질적이고 모호한 작업을 해봤습니다.

 

<날갯짓>을 절반으로 분절한다면 앞부분에는 포디즘 시대에 있을 법한 중공업 기계의 모습이 나오고 뒷부분에 물가에서 사람이 앉아있는 그런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마스크팩을 찍어내고 마스크팩 이미지가 얼굴에 붙는데 마스크팩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궁금합니다.

 

박철환: 저는 사실 작업을 할 때 어떠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넣지 않아요. 넣다 하더라도 정말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사실 다큐멘터리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했어요. 공장에 가서 제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편집할 때 이 호흡에서 이 쇼트들이 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넣은 건데 제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공간성을 무너뜨리고 싶었어요. 첫 번째 공간/두 번째 공간으로 나누어지잖아요. 근대적인 의미에서 첫 번째는 문명, 두 번째는 자연이라고 나이브하게 나눠질 수 있는데 첫 번째 공장에서 물가에 물이 흐르고 두 번째 공간에서는 자연에서 기계에 마스크팩이 자꾸 찍혀요. 그렇게 봤을 때 이 쇼트에 존재하는 공간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던 생각의 틀로 해석했을 때 ‘이거는 근대적인 공간, 문명이고 저거는 자연이야’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실 그게 아니라는 걸 저는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만 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했고 디졸브 시켜서 공간성을 해체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은 김혜이 작가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이야기의 얼굴>을 만들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김혜이: 저는 조현병 환자들을 인터랙티브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3년째 조현병 및 중증정신질환자 분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분들과 허물없이 지내게 됐어요. 그러면서 그분들이 자기를 세계에 알리고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는 이전에는 주로 카메라를 도구로 작업했는데 그분들은 자기의 얼굴이나 신체가 카메라에 찍히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또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혐오가 굉장히 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그분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얼굴이나 신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신체 신호를 받아들여서 드로잉을 하는 방식의 인터랙티브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조현병 환자가 다른 사람과 어떤 식으로 다른지 궁금합니다.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지만 신체 감각이나 신호 자체가 일반인과 많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김혜이: ‘조현병이 어떤 병이에요?’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조현병은 뇌의 신경전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난 병이라고 알고 있고요. 정신질환 모두가 마찬가지지만 조현병은 어떤 병이고 증상은 어떻다고 확정하기 어렵고 그렇게 말씀드리기도 위험합니다. 조현병은 대부분 10대 후반~20대 초중반에 발병하는데 제가 만나고 있는 분들은 지역에 계시는 분들이어서 인터뷰 참여해주신 분들이 젊으면 30대 중후반, 나이가 많으신 분들을 60대이신 분들도 있어요. 발병한 지도 짧게는 10주부터 길게는 30년이 된 분도 있어요. 조현병의 증상이 인지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장기간 정신병 약을 복용하게 되면 인지저하가 같이 오게 돼서 대화를 나누거나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고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들이 조금 힘듭니다. 그런데 이것도 개인마다 달라서 인터뷰이들의 개인적인 특성을 인터뷰에 드러내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질문해주신 ‘신체신호가 어떻게 다를까요?’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고 명확하게 답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작업이 <이야기의 얼굴>입니다

 

다음으로 권희수 작가님의 작업 동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권희수: 저는 <말이 물이 몸이>라는 영상작업을 만들게 됐고 이 작업은 영상에 사용된 화면적 공간뿐만 아니라 꺼졌을 때 정적과 어두운 공간에서 느껴지는 체험을 포함하는 작업이라서 공간성이 되게 중요한 작업이에요. 작업을 만들게 된 계기는 제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습니다.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 영상들이 막 재생되고 있었는데 정전이 발생해서 영상이 동시에 꺼지게 됐어요. 순간 정적에 휩싸이면서 흰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게 됐는데 그때의 기억이 되게 강렬했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느꼈었는데 한참을 그 공간에 있으니까 들리지 않던 미세한 소리가 들리고 공간의 구조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것이 작업의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작업 같은 경우, 영상을 단순히 보는 것뿐만 아니라 관객이 어두운 공간에 어떻게 입장을 하고 거기서 어떻게 관람을 하고 얼마 동안 그 공간에 있는 지까지가 저에게 중요한, 재미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중간에 영상이 상영되다가 암전이 됐을 때 어떤 소리가 들리고 나는 거기서 어디까지 머물 수 있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작품이 난해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세 개의 채널이 모여있다가 한 쪽으로는 구름 이미지, 왼쪽에는 꽃 이미지, 중간에는 꺼진 모니터가 나오게 됩니다. 형상을 찾을 수 없으니까 의미를 찾으려고 하다 보면 조그만 검은 모니터 안에 사람들이 응시하고 있고 문을 나가는 이미지가 보이더라구요. 그 모니터 속 영상은 어디서 찍은 건지 궁금하고 계속 ‘그게 뭘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푸티지를 사용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권희수: 불꺼진 모니터를 오랫동안 지켜보니까 어떤 반사된 이미지가 계속 보이더라구요. 그게 제 등 뒤로 나타난 실제 모습들인데, 나는 등을 돌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이미지를 반사된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는 거죠. 그 부분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작동하지 않는 검은색 화면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고 그게 내가 실제로는 볼 수 없는 등 뒤의 이미지라는 사실이 저에게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전시장의 반복되는 회전문의 작동도 밀물과 썰물이 만나서 기둥을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같이 느껴졌어요. 이렇게 ‘의미와 의미가 부딪혀서 아무런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을 때도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작업으로 다가왔어요.

 

이제 작가 분들께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나씩 드려볼게요. 박철환 작가님께서 쓰신 글들도 흥미로웠어요. 아직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신데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실험적으로 양초로 설치한다고 하셨는데 인스톨레이션이 완벽하게 되지 않았어요. 그 재료가 스크린의 성질을 보여주는 데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처음 지원서에 제출하신 것과 지금 설치하신 이미지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나요?

 

박철환: 사실 이 작업을 왜 전시 부문에 지원했냐면 인스톨레이션 부분이 되게 중요했어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해체나 탈근대적인 서사가 항상 영화의 내부적인 요소에만 갇혀있는 게 아쉬웠어요. 그러다 <액체적 영화에 관하여>라는 비평문을 읽고 영감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그 동안 신선하게 경험한 영화들이 이것 때문에 내가 거기서 낯섦을 느꼈구나’하고 깨달았어요. 그러나 그 비평문 역시도 결국 영화의 내부적인 요소만 얘기하더라구요. 우리가 스크린을 생각할 때 이것을 작품의 하나의 맥락으로서 받아들이기 보다는 단순히 환경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영상을 틀기 위해서 스크린이 필요한 거고 스크린을 끄면 영상이 사라지는, 스크린은 영상을 위한 환경에 불과하고 비물질적인 속성을 지녔다고 공부를 했어요. 그럼 ‘내가 <액체적 영화에 관하여>에서 느꼈던 낯선 경험을 영화 내부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외부로도 끌어가보자’라는 게 제 첫 번째 목표였어요. 스크린을 대체할 수 있는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물질을 찾아서 그걸 스크린처럼 만들어서 이질적인 극장에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극장에 온 것 같은 느낌, 시네마틱한 비디오를 보는 듯한 경험이 드는데 영화라고 하기에는 스크린으로 보이는 설치물이 기묘한. 그래서 처음에는 양초를 지원서에 썼는데 안전 문제로 불발됐어요. 그래서 대체할 오브제들을 찾아보다가 비누 베이스라는 오브제를 친구가 추천해줘서 확인해봤는데 그게 지정온도가 되면 아주 천천히 녹아 내리더라고요. 가격도 저렴하고 해서 비누 베이스를 벽돌 모양으로 여러 개를 중첩을 시켜서 스크린을 만들고 열선을 깔았어요. 처음에 전시가 시작되면 스크린이 온전한 고체의 모습이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열에 의해 녹아내리면 우리가 단순히 환경이라고 생각했던 스크린이 또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제가 수학을 잘못해요. 그래서 비누 개수를 잘못 사서 정사각형이 돼야 하는데 ㄴ 자가 되어버렸어요. 그게 이틀 전이었거든요. ‘어떡하지’ 하다가 제가 하고자하는 메시지는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가장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전시장에 남는 가벽을 가지고 와서 그 위에 비누를 깔아서 영상을 투사했어요. 상영 중간에 비누 액체들이 스크린을 타고 내려온다면 이것도 충분히 내가 하는 작업에서 스크린의 속성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서 이미지는 변화하게 됐습니다.

 

장르시네마의 고전적이고 규칙적인 요소를 해체하고 재배치하는, 액체적인 감각을 전달하는 작품이군요.

 

박철환: 네, 그런데 느겼을때는 지극히 영화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보고 나서 어떤 친구는 ‘이게 무슨 비디오아트냐, 뻔한 영화 장르적인 습성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고 다른 친구는 ‘이게 무슨 영화냐. 이건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어요. 이런 감각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방금 제가 말씀 드린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이건 영화야’ 혹은 ‘이건 비디오아트야’라고 장르를 정의 내려서 보여드렸다면 작품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질 것 같았어요. 저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작품으로 관객들께 질문을 던진 거에요.

 

이다은 작가님 작업은 페미니즘 관련 이슈와 연결되어서 많이 이야기됩니다. 물론 사회적 이슈도 중요하지만 장르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디지털 기반 온라인 세계 안에서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유통되고 있고 그 이미지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 지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카메라에 찍히면 영혼이 사라진다고 생각한 것처럼 카메라라는 게 뭔가를 뺏어가는 모티프로 많이 사용되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온라인 유통망으로 퍼져나갔을 때는 전혀 다른 것같이 사용됩니다. 제가 궁금한 건 마지막에 몰카 반대 시위 장면이 나오는데 이다은 작가님도 이미지 유통의 피해자로서 온라인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긍정적으로 보시는 지 부정적으로 보시는 지 궁금합니다

 

이다은: 제 작업을 기존 성차별 구조에 저항적인 부분으로 해석을 많이 해주시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여성의 신체나 이미지가 변형되는 과정을 매체의 특성에 주목해서 디지털 이미지들의 변형 형식 속에서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이미지에 대한 메타 비평적인 작업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진행했고요. 그리고 제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미지를 가공하고 변형하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 익숙한 일이었거든요. 저도 그 이미지가 유통되고 소비되고 스프레드 되는 그 환경에 저도 너무 익숙한 세대에요.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을 안 하고 저도 작업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실제적으로는 피해자의 위치에 있지만 사실은 저도 이미지를 계속해서 가공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이미지를 정말 만드는 사람이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작업을 하면서 많이 했었고 가해나 피해의 이분법적인 사고 안에서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상황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으로 작업을 계속 했어요. 제 영상이 되게 기승전결이라는 안전한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마지막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미지가 처음에는 모니터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시작했고 거기서 취득된 이미지들이 모니터에서 변형되는 과정이 중간 단계였다면 모니터 안의 이미지들이 또 다른 물성을 가지고 외부의 공간으로 나오는 과정이라고 마지막을 생각했어요. 그것의 정치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지만 이미지가 외부 공간과 모니터 내부공간을 왔다갔다하면서 사적인 사건으로 시작해서 공적인 장소에 놓이게 되는 과정들을 이미지 트래킹의 마지막 부분에 놓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이미지를 추적하는 장면에서 시작했으니까 그것이 정치적인 시위를 촉발하는 것을 마지막 장면으로 넣었습니다.

 

저는 작업을 보면서 페미니즘 이슈보다는 디지털의 속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온라인 이미지과 오프라인 이미지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강력한가? 이미지가 계급성을 가지게 된다면 오프라인 이미지와 온라인 이미지가 어떻게 다른가? 전통적으로는 가장 희귀한 이미지가 소장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권력을 가지고, 아무나 소지할 수 있는 이미지는 권력 분포에서 계급이 낮았어요.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상업적 이미지나 포화의 이미지, 이미지의 파퓰레이션population 발생이 큰, 순환성, 현재성이 가장 큰 이미지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저화질이나 가난한 이미지라고 불리는 것들이 하위에 놓이는, 온라인 환경이 새로운 계급성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가 끝없이 변화하면서 편하게 규정할 수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니까, 이것이 현실인지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이다은: 그래서 저도 실제와 연출이 섞이면서 헷갈리게 하는 장치들을 일부러 섞었어요. 이미지들이 정말 그 안에서 계급이 있거든요. 계속 카피라이트 되고 매뉴팩쳐되고 아무 맥락 없이 쓰이는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연결했었고 영상 초반에 영화적 푸티지를 차용하기도 하는 등 형식적인 부분들도 많이 신경 썼습니다.

 

다음으로 이시마 작가님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읽어내기는 쉽지 않았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했으나 사운드와 이미지의 관계 등이 저에게는 어렵게 다가왔어요 사운드를 크게 입혀놓으셨고 비명 소리 같은 사운드인데 저는 처음에 좀 직접적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운드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면?

 

이시마: 사운드는 제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작업했는데 캔버스가 하나 있으면 픽셀 하나하나에 다른 음을 입혀서 제가 인터뷰를 했던 분들의 성함을 핸드라이팅handwriting해서 캔버스에 입혀서 거기서 나온 사운드를 기반으로 작업을 한 거거든요. 피치pitch가 높은 분들을 중심으로 레코딩을 했기 때문에 그런 비명 같은 사운드가 나왔습니다. 전달이 잘 되었는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인터뷰이 분들께서 인터뷰 때 당신들 이름이 악몽 같은 트라우마로 다가왔던 일상의 순간들을 말씀하신 거에서 의미를 뒀어요. 예를 들면 ‘시마야, 밥 먹으러 갈래?’라고 친구가 말했을 때, 본인 이름에 내재된 성차별이 불러오는 트라우마 때문에 이름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이 아프게 들려왔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코딩은 하이피치 노트, 멘트는 ‘밥 먹으러 갈래’, 그 다음 또 코딩은 하이피치 노트, 멘트는 ‘어제 숙제가 뭐였지’. 이런 식으로 일상적인 대화들을 짧게짧게 넣어놓은 거거든요. 사실 저것도 일부러 밖에서도 들릴 수 있게 했어요. 그만큼 그분들에게는 역동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특히 우리는 그런 경험을 전혀 갖고 있지 않거든요. 헤드셋을 떼면 끝이고 전시 공간을 나가면 끝인데 그분들은 대부분 40~60년대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최소 60년간 매일매일 내 가장 친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경험한 거잖아요. 그런 경험이 태어날 때부터 내재되어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최소 여기에 왔을 때 그런 찢어지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에게 호명된 이름을 내가 영원히 들어야하고 그것이 트라우마적으로 남은 경험을 표현하셨군요. 다음으로, 작가님께서 여성폭력을 리서치 하시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시마: 제가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여성 성명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검색해보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아요. 그 누구도 그 부분을 연구하지 않아서. 사실 남성 성명학도 그렇게 연구된 건 아니라서 대단히 성차별적인 거는 아니라고 보는데 조선 후기 이전을 보면 여자들의 이름 자체가 없었어요. 남자는 항렬에 맞춰서 이름을 가졌는데 여자는 집에서 부르면 아명, 결혼하면 서교동 김 씨부인 이것이 본인의 공적 이름이 됐는데 애초에 여성이 공적인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적인 이름이 필요 없었고. 자식도 엄마를 서교동 김 씨부인 이렇게 부르는 거죠. 일제강점기 이후 창씨개명이 시작되고 호적이 생기면서 이름이 강제적으로 등록이 되어야 하니까 여자들의 이름이 강제로 만들어졌는데 자연적, 지리적인 특성을 타고 역사가 확립이 된 게 아니라 ‘이름을 빨리 아무거나 지어서 일본어로 내!’라는 일제의 명령에 의해 생긴 거잖아요. 조선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여성들이 이름을 가진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70%가 예를 들어 성이 김 씨면 김김 이렇게 내거나 김밀양, 김서울 이런 식으로 낸 거에요. 맨 처음에는 총독부에서 수락을 해주다가 너무 말이 안 된다는 거를 일제도 알았으니까 ‘제대로 된 이름을 내라’라고 해서 김박수, 김소리, 김탕 이런 식으로 내요. 여자의 이름이라는 게 조선 사람들에게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니까 이름이 그렇게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지어진 거죠. 그 시대 흔한 이름 중 하나인 ‘희자’할 때 ‘–자’도 일본 여성의 ‘–코’랑 같은 한자거든요. 일본 여성의 성명 문화도 그대로 들어오면서 ‘–자’, ‘-희’ 이런 이름이 많아지게 됐어요. 80년대 이후 확 변해서 지금은 웬만하면 예쁜 이름을 쓰는데 ‘말년’이라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름을 가졌다는 역사 자체가 아예 기록이 되어있지 않아요. 지금 진행 중이기 때문에 오히려 연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이름을 가진 분들이 다들 살아계시기 때문에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 한 부분이라 주제에서 굉장히 신선함이 느껴졌고 흥미로웠습니다. 다음은 권희수 작가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아까 정전에 의해서 공백과 암전의 순간이 찾아왔고 사운드나 모니터 등 스크린의 요소가 아니라 외부의 요소에 의한 자각에 관해 얘기를 주셨는데, 그랬을 때 작품의 요소가 작가가 내재적으로 만들어냈다기보다 이렇게 외화적인 위치에 있고 그것이 설치적인 요소에 의해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작품의 맥락으로 포섭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어디까지를 작품의 의미로 보아야 하는지,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권희수: 저는 작가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구도나 장치를 세팅해놓는 것, 우연적 요소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까지가 작가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작품이 만들어지고 나서 프로젝터의 밝기도 조절하고 스태프 분들께도 조명을 이렇게 안내해달라고 말씀을 드려요. 그거 자체가 퍼포머티브한 요소이기 때문에 안내를 하는 것까지 작업의 일부로서 설정을 해 두는 게 중요한 요소였어요. 입장하시고 나서 관객 분들께 언제 끝나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관객이 들어오는 순간 영상이 시작되고 나가는 순간이 종료되는 시점이거든요. 단순히 영상 하나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외부적 요소를 포함하여 거기서 느끼는 것은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제가 작업을 할 때는 열린 공간까지 생각을 합니다.

 

작업을 봤을 때 흥미로웠던 지점이 사운드에요. 텍스트로 작품 설명을 읽었을 때는 물소리가 들리는 정적인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운드가 크게 나오더라구요. 소용돌이 이미지에 발췌를 하신 건지, 사운드를 강하게 강조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권희수: 소리가 갖는 힘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침묵도 저는 가장 강한 큰 소리라고 생각하고. 언어로 전달이 안 됐을 때 들리는, 비명소리나 물소리 같은 것들이 <말이 물이 몸이>에서도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중요한 요소였어요. 영상을 보면서 몽롱한 환경 속에서 어둠에 길들여지는 중에 갑자기 물소리가 들렸을 때 경각시키는, 그 순간의 감각적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소리가 언어와 비언어, 의미와 무의미의 간극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 드리면 전시장에서 물소리가 들릴 때 매미소리가 바깥에서 들리는 거에요. 매미의 비명소리와 물소리가 비슷하더라고요. 저도 매 순간 다르게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게 재미있는 지점 같아요.

 

다음은 김혜이 작가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이야기의 얼굴> 역시 설치 부분이 흥미로웠는데요. 조현병을 앓고 계신 대상자들의 인터랙션이 기반이 된 작품이고 관객들도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렇게 콘텐츠를 설치하신 이유가 있나요?

 

김혜이: 총 12분 인터뷰를 진행했고 두 분이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 것에 동의를 해주시지 않아서 10분의 인터뷰가 작업에 쓰였습니다. 러닝타임이 한 분당 짧으면 9분, 길면 20분 정도까지 돼요. 인터뷰지를 작성할 때에는 기승전결에 맞춘 질문을 드렸지만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해주신 분도 있고 질문과 상관없는 내용을 계속 반복해주신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인터뷰가 짜임새가 있거나 구조적으로 완성된 글이라고 보기 어렵고 이 뭉쳐진 인터뷰를 그대로 장場에 올려서 관객들이 선택해서 보게끔 구성했어요. 리니어적으로 묶어버리면 기승전결이 없지만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이야기의 얼굴’이 완성된 마지막 썸네일을 보고 관객이 선택을 하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설치를 했습니다. 인터랙티브 작업을 진행했다 보니까 관객들도 얕은 수준이지만 인터랙션을 하는 식으로 설치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제가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사람과 접속된 느낌이 흥미로웠어요. 여러 장치들이 기반이 되었을 때 ‘저 분들이 약간 다른 존재는 아닐까’라는 게 느껴진 부분이 있었고 또 다르게 봤을 때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일 수 있겠구나’라는 양가적 생각이 들었어요.

 

김혜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위협을 느끼며 살고 계셔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조현병 환자들이 많거든요. 제가 인터뷰한 중증정신질환을 앓고 계시는 분 뿐만 아니라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앓고 있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병원에 가서 ‘당신은 어떠어떠한 병입니다’라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 사람들이 사실 우리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인터뷰한 분들은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분들이고 심한 망상이나 환각을 체험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세상, 그들이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을 끄집어 내고 싶었습니다.

 

다음으로 주다은 작가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작업을 봤을 때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어요. 텍스트와 이미지가 병치되어있는 방식이나 시작과 끝을 이루는 이미지 구성이 안정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용과 관련해서는 잊혀지고 망각되고 우리가 발견하지 못 하고 스쳐가는 존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친가족까지 인터뷰하신 거잖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주다은: 작업을 할 때는 항상 즐거운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기 때문에 과거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그 슬픔에 격하게 젖어 들지 않으세요. 듣는 저희 입장에서는 계속 반복해서 말씀해주시는 거고 할머니도 그냥 그게 자꾸 생각이 나서 계속 말씀을 하시는 것 같고. 딱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생각나지 않네요.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는 가정으로서 기본적인 베이스로 깔리는 슬픔은 있겠지만 그게 삶에서 주된 에너지를 갖고 작동하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작업에서도 너무 슬픔을 자아내거나 눈물을 짜내는 다큐 형식보다는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서 좀 더 객관적인 공간을 위치적으로 탐색하는 이미지들을 사용하려 했습니다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이 존재한다>에서는 기억과의 싱크를 중심으로 이미지를 살펴봤습니다. 어떤 이미지가 하나의 편향적인 것은 아니에요. 특정한 기억 안에서 다양하게 열려있을 수 있다는 것을 주다은 작가님의 작업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관객 분들께 마이크를 넘겨서 질문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1: 이시마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언술로 하셨을 때 의도가 더 명확하게 전달이 되고 논문 쪽으로 리서치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왜 텍스트로 하지 않고 설치미술로 나타내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시마: 사실 현재 논문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논문과 미술을 별개로 보지 않는데요. 논문 자체가 엘리트주의적인 부분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페미니즘은 엘리트주의에서 많이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텍스트를 작업의 언어로 통역해서 오디언스에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주제를 매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갖는 케미스트리가 다른 것 같아요. 논문과 작업이 완전히 별개의 언어이고 각자가 주제와 빚어내는 케미스트리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관객이 다르고 그러면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주제의 전달력 자체가 다원화되는 기능이 있는 것 같아요.

 

관객1: 주다은 작가님께 질문 드립니다. 기억이라는 게 칵테일처럼 불분명해지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외할머니께서 치매라고 하셨잖아요. 증언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 넌센스 같은 제목을 붙이셨어요. 기억과 기록을 제시할 때 신빙성 부재하는데. 그럼에도 기록을 최선으로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주다은: 질문해주신 분께서 기억과 기록을 합쳐서 생각하시는 지, 분리해서 생각하는 지 모르겠네요.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어떤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생을 다하기 전에 그것을 기록하는 저의 입장에 대한 기록을 말한 거였거든요. 여기서 기억이 작동하는 지는 모르겠어요. 기억은 서사구조 내에서 작동하는데 말씀 드렸다시피 개인의 기억조차 정확하게 과거에 일치하지 않아요. 당연히 기억은 어느 정도 허구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서사 내에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기록’이라고 제목에 붙였을 때는 서사 밖에서 이 과정을 보았을 때 기록의 과정이 최선이 된다고 말을 한 건데 이게 질문하신 거에 대해 정확한 대답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웃음)

 

관객2: 김혜이 작가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으셨는데 저는 이게 시의성 높은 주제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의 유일한 특징을 조현병으로 한정 지어버리는 사례가 몇 번 있었고 언론이 이를 매우 자극적으로 다루어서 대중들이 조현병 환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그런 현상들과 연계 지어 생각하셨을 것 같아서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혜이: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랑 다 연관이 되어있는데 지난 2년동안은 제가 원래 다큐멘터리를 해오기도 했고 일부러 더 작업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편하고 재미있게 프로그램 진행을 했어요. 센터에서 할당해주는 예산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짜는데 제가 했던 프로그래밍 테마가 첫 해에는 가지고 계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거였는데 휴대폰 없는 분은 참여가 어렵고 지켜보고만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고 그 다음 해에는 예산이 조금 늘어서 아이패드 20대를 장기간 대여해서 일상생활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어보고 내레이션도 입혀보고 자기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기를 했어요. 올해는 필름카메라를 하나씩 드릴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사진 찍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프로그램에 집중하면서 저도 재미있게 참여했다가 작업을 해봐야겠다고 문제의식을 느낀 게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여기 내가 살아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고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그분들의 자기표현의 욕구를 느꼈던 거였어요. 작년 중순 이후로 조현병 환자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자극적인 보도들이 나왔잖아요. 사실과 굉장히 다르거든요. 조현병 환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짜임새 있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게 잘 안 돼요. 신체적으로 그 부분에 병이 생긴 거기 때문에. 그런데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자극적인 보도로 혐오감과 공포심을 조장해요. 그 이유는 작년에 정신건강법이 개정되면서 조현병 환자들이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폐쇄병동에 입원을 할 수가 없어요. 그 동안의 병원은 강제 입원된 환자들을 통해서 수익을 얻었거든요. 그렇게 되지 않고 수익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니까 병원 측에서 그런 이야기를 언론에 뿌리는 거에요. 그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언론이 공포심이나 혐오감을 부추기고 있고 ‘저 사람들을 가둬야지’, ‘저 사람들 인권 때문에 우리가 위험해질 수 없잖아’ 이렇게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잖아요. 중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조현병을 앓았던 이력이 있었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모든 조현병 환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건 절대 아니고. 그 사람은 조현병을 앓지 않았더라도 폭력적인 습성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고 많이 말을 해요. 제가 직접 만나서 느꼈던 구조적이고 생활적인 부분이 합쳐져서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관객1: 암실이라는 공간에서 얼마나 있을 수 있는 지를 하나의 작업 목적이라고 하셨는데 큐레이터 분께 여쭤보니 러닝타임이 6분이라 하더라고요. 전체 암전의 효과를 6분 안에서 구현해낼 수 있을지, 더 길게 하지 않고 짧게 하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권희수: 영상 자체의 길이는 6분 48초고요. 영상은 하나의 단위로 설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 작업은 사실 캡션표기를 할 때 영상 자체라고 하지 않고 영화 퍼포먼스라고 찍거든요. 그래서 영사의 시작과 끝을 관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게 저에게는 중요한 지점이에요. 시작과 끝점은 사실 들어가는 순간 시작되고 나가는 순간 끝나는 작업입니다.

 

이것으로 [한국구애전X] 라운드 테이블을 마치겠습니다. 작가 분들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취재 │ 김민주 루키

 
사진 │ 최예준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