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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마스터클래스] 마를린 호리스의 작품 세계와 네덜란드 시네마
NeMaf 조회수:2129 추천수:4
2019-08-17 18:50:58

8월 17일 늦은 8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스터 클래스 <마를린 호리스의 작품세계와 네덜란드 시네마>가 열렸다. 패트리샤 피스터스의 초청 강연 및 토크가 약 2시간 정도 진행되었으며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마를린 호리스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던 이번 마스터 클래스 현장을 더욱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페트리샤 피스터스: 네덜란드의 유명한 감독인 마를린 호리스 감독에 대해 강연하게 된 페트리샤 피스터스입니다. 1970년대, 1980년대는 여성해방이 막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때 마를린 호리스가 어떤 배경에서 영화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당시의 다른 유럽 여성감독들은 누가 있는지, 어떤 배경에서 영화를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합니다. 또한, 그 시절의 여성감독들과 요즘 시대의 여성감독들을 비교해보는 좋은 자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이전의 여성감독들이 아주 극소수가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역사적으로 잘 다루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바로 1970년대로 들어가겠습니다. 네덜란드의 첫 여성감독은 누츠카 반 브라켈입니다. 이 감독의 첫 작품은 1977년작 <데뷔>입니다.

 

영화 <데뷔>를 보면 새로운 주제가 등장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의 누드가 나오긴 하지만, 엄마와 딸이 욕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등장하고, 굉장히 자연스럽고 에로틱하지 않는 여성의 몸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논란이 될 수 있는 토픽을 다루기도 했는데요. 영화에서 중년의 남성과 소녀가 관계를 맺고 있는 그런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의 키워드는 ‘자유’ 였기 때문에 그때 상황을 반영했던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츠카 반 브라켈 감독이 만든 또 다른 영화 두 편을 또 언급하고 싶은데요. 첫번째로는 <이브 같은 여자>입니다. 이 영화는 결혼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게 되고, 이 사실이 발각되자 양육권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9세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죽음의 호수> 또한 결혼한 여성이 애인과 관계를 이어나가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정신이상자가 되는 내용입니다.

 

1970년대는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여성 해방이 떠오르던 시기입니다. 가족 계획, 낙태의 자유, 자유롭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권리 등에 대해서 여성들이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유럽과 미국에서 여성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러가지 페스티벌이 등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명분이나 동력이 생기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입니다.

1970년대, 1980년대 여러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독 중 한 명이 아녜스 바르다 프랑스 영화 감독입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도 누츠카 반 브라켈 감독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감독의 작품으로는 1958년작 <오페라 무페 거리>가 있는데요. 감독 자신이 실제로 임신했던 기간 동안 만들어진 단편영화입니다. 그 당시 굉장히 실험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바르다 감독의 작품으로, 네마프에서도 상영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바로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두 부류의 여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둘 다 자유로운 해방을 보여주지만, 하나는 꽃이나 평화, 사랑을 다룬다면 다른 부류에선 시위를 한다거나 활동적인 여성들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첫 여성감독은 샐리 포터로 1993년작 <올라도>를 만들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울리크 오팅거라는 여성 감독이 있습니다. 이 감독은 새로운 물결 (New Wave) 에 힘 입어 여러가지 시도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결혼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한국식 결혼>도 만들었습니다.

1970년대에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여성 감독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 명이 샹탈 에커만 감독입니다. 1975년작 <잔느 딜망>은 3시간이 넘는 긴 영화입니다. 3일 동안의 여성의 행동을 담았습니다.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하고, 식사를 차리고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기록한 영화입니다. 보통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데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인물이 어떤 소소한 행동을 하는지 보는 것에 있습니다. 세번째 날에 인물이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게 됩니다. 원래 인물에겐 시간에 따른 일련의 행동 패턴이 존재하는데,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기상하게 되자 인물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자를 태우거나 갑자기 머리 정돈이 흐트러지는 등 작은 것들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에커만 감독은 극중 이런 작은, 소소한 것들로 큰 감정이나 사건을 묘사했는데요. 이 영화가 마를린 호리스 감독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를린 호리스가 첫 영화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샹탈 에커만 감독의 <잔느 딜망>을 보고 <침묵에 대한 의문>을 집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를린 호리스 감독은 정식적인 영화 제작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쓴 <침묵에 대한 의문> 대본을 들고 아크만 감독에게 문장마다 설명을 하며 자문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크만 감독에게서 혼자 영화를 만들어 한다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제가 호리스 감독 인터뷰를 했을 때 실제로 어떤 것을 쓰고 싶었고, 만들고 싶었는지 질문을 하니 마를린 호리스 감독은 4개의 영화를 말했습니다. 그중 <안토니아스 라인>이 가장 유명한데, 이 영화는 아카데미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첫번째로 여성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영화였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여성 감독들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다시 <침묵에 대한 의문>으로 돌아와서, <침묵에 대한 의문>은 여성의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입니다.한편으로는 굉장히 사실적이지만, 또 상징적인 기법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극중에서 콕스 허베머는 상위층을 대표하는 심리학자이고, 헨리에트 톨은 중위층의 비서이고, 에다 배런즈는 하위층의 전업주부, 넬리 프리다는 근로 계층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각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여줍니다.

살인 장면은 좀 더 상징적인데, 단순히 가게 주인을 살인하는 것을 넘어서서 조용히 침묵하는 것으로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 침묵하고 있는 증인들 또한 다양한 인종, 계층, 연령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극의 사실주의와 여러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들이 오늘날에도 이 영화의 힘을 크게 실어줍니다.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에도 중요합니다. 이 법정 장면에서 심리학자인 콕스 허베머는 세 여성이 정신 이상자라는 진술을 하란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 압박을 받았지만, 콕스 허베머는 세 여성은 모두 정상이다는 진술을 내리고 법정에서 좀 더 실제적인 문제들, 즉 사회적 / 정치적 / 젠더 이슈를 마주하게 만듭니다.

역사적으로 주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경향은 꾸준히 존재했는데요. 1920년대 미국에서는 심지어 여성들에 해당되는 질병 코드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 질병 코드를 따로 매기고, 그들을 침묵하게 만든 후,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영화 말미에 전략적으로 여성들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마무리를 짓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 장면을 통해 소위 사회상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 아닌 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다루기 힘든 여성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리학자인 콕스 허베머가 남편에게로되돌아가지 않고 여성들에게 가는 마지막 장면 또한 그런 점을 잘 나타냅니다.

다음 영화는 <부서진 거울>입니다. 암스테르담의 사창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 영화는 굉장히 극단적인 편인데요. 마를린 호리스 감독 본인 또한 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진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들어야만 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서진 거울>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다른 사건들이 연결되는 구조의 영화인데요. 두 가지 스토리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데, 두 스토리 모두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이 부각되어집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관객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여성들이 4대에 걸쳐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물 안토니아가 자신의 고향인 작은 마을로 돌아가게 되는데, 마법 같은 페미니즘의 서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동화적이고 조금 더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물론 종종 어려운 난제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잘 해결하며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또한 극중에서 사실주의나 폭력적인 장면이 있긴 하지만, 반면에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동상이 말을 하기도 하고 천사 동상이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선생님이 비너스화된 장면도 있습니다.

남성을 거부하기보다는 프로워먼 (Pro Woman) 의 측면으로 나아가는 영화이고요. 대가족이 밖에 모여서 식사를 하는 장면들도 등장합니다. 또한, 조연들의 연기도 두드러지는 영화입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의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호리스 감독의 작품 선택 폭이 넒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를린 호리스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 소설이 원작인 <델러웨이 부인>입니다.

클래식한 작품이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중년의 델러웨이 부인을, 나타샤 맥켈혼이 젊은 델러웨이 부인을 연기합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에서도 그랬지만, 플래시백 기법을 주요적으로 사용하며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교차적으로 보여줍니다.

<댈러웨이 부인>에 또 다른 주요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굉장히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된 군인이 나옵니다. 소설과 영화 둘 다 델러웨이 부인과 군인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데요. 그런 연결고리를 영화에서는 델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위해 꽃집에 들러 꽃을 사고 있는 장면에서 군인을 보게 되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또한,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연결고리를 보여주는데요. 군인이 전쟁 트라우마로 귓가에 전쟁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델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 갔을 때 장면과 연결하면서 그 둘의 연결고리를 조금 더 부각하게 됩니다. 이런 평행적인 구조로 가다가 마지막에 창문이라는 미장센이 나오는데요. 군인은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기를 결심하지만, 델러웨이 부인은 살기로 결정을 합니다.

호리스의 마지막 영화는 <소용돌이 속에서>인데요. 예브게니아라는 인물의 실화로 만든 영화입니다. 예브게니아는 러시아문학 교수로, 당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어느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녀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게 되어 감옥으로 가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 감옥에서 만난 의사가 자신의 문학적인 면모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미장센과 이미지가 정말 강하며 연기도 훌륭합니다. 배급이 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는데, 네마프에서 상영을 한다는 점이 정말 감사합니다.

예브게니아가 감옥에서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시와 문학이었는데,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Osip Mandelstam의 숨결이라는 시가 등장합니다. 사실 이 시는 마를린 호리스 감독이 영화 속에서 다루고 있는 여자들을 관통하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힘을 돋구고, 여성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그런 시라고 생각하고요. 예전에 쓰여진 시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네덜란드 여성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6명 정도의 여성 감독이 있었는데, 영화 자금 지원을 받는 수치로 본다면 요즘에는 반 정도가 여성들이 제작한 영화입니다. 2018년에 46 퍼센트 정도였는데요. 그 감독들 중에서는 젠더에 관련된 영화들을 만들지 않는 감독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들이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여성 해방이나 젠더 이슈에 대한 영화를 만들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젠더이슈나 페미니즘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감독들이 있는데요. 써니 베그만 감독은 뷰티 산업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플레이보이에 나오기 위해 여성은 어떤 강요를 받는지 지적하는 영상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가정 폭력을 다루는 감독도 있습니다. 에스더 랏츠 감독은 2018년작 <해고>를 통해서 가정 폭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명확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1970년대 마를린 호리스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유쾌한 방법으로 여성에 대해 접근하는 감독도 있습니다. 바로 엠마 웨스턴버그인데요. 쟈넬 모네의 PYNK 뮤직비디오 감독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늘날에는 좀 더 유쾌하고 가볍게 여성 이슈에 대해 다룰 수도 있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기존 세대들이 여성에 관련한 많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움직임은 있을 수 없었겠죠.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까지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약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억압하려는 세력도 여전히 존재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관객 1: <침묵에 대한 의문> 마지막 법정 장면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정신병을 사유로 형을 감하고자 하는데, 극에서는 반대로 진행되어 흥미로웠습니다. 네덜란드에서도 정신병이라고 하면 감형이 되는데도 정상이라고 진술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영화적 장치로 쓰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페트리샤 피스터스: 말씀하신 부분이 바로 영화의 포인트인데요. 네덜란드에서도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은 형이 감해집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본인들이 종신형을 받을지라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중점을 둔 것입니다. 만약 본인들이 정신 이상자라고 했다면 그 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혀지고, 문제 또한 덮혀질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전개된 것입니다. 영화 속 남자도 ‘차라리 정신병동에 가자’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목소리가 묻히고 문제가 덮혀지느니 차라리 수감되겠다는 뜻을 밝히며 상징적인 가치를 보여줍니다.

 

관객 2: <침묵에 대한 의문> 중 안드레아가 정신심리학자의 몸을 쓸어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합니다. 또, 심리학자가 초반에 그 세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왜 등장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페트리샤 피스터스: 영화 속에서 명시되어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레즈비언을 표현한 장면이라고 느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실제로 마를린 호리스 감독님도 레즈비언이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장면 같은 경우, 심리학자를 도발하기 위한 시니컬한 장면이라 볼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것이냐, 하고 도발하는 장면인데요. 세 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심리학자를 도발합니다. 한 명은 조소를 날리고, 한 명은 또 시니컬하게 말을 하고, 또 말을 하지 않는 크리스틴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바로 아이, 남성, 여성이 한 집에 감금되어 있는 그림인데요.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말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린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관객 3: <침묵에 대한 의문>을 굉장히 흥미롭게, 의문을 가지고 봤습니다. 젠더 이슈를 다루는 감독이나 여성 영화 감독들이 영화를 제작할 때 가장 느끼는 어려운 점으로 제작 지원 미비를 꼽았는데요. 마를린 호리스 감독님과 더불어 네덜란드 여성감독들이 영화를 제작할 때는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궁금합니다.

 

페트리샤 피스터스: 영화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대, 다른 문화에서 만들어진 영화니까요. 영화의 영어 제목은 <침묵에 대한 의문>이지만, 네덜란드어로는 <크리스틴 M을 둘러싼 침묵>으로 상영되었는데요. 네덜란드어 영화 제목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데 크리스틴이죠. 아무도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고, 남편도 크리스틴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커튼도 항상 닫혀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범죄자가 신문에 실릴 때 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 뒤에 온점을 찍고 성의 첫번째 알파벳만 신문에 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이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대해선, 우선 <침묵에 대한 의문>을 유명 프로듀서가 펀딩을 해주었는데요. 이 프로듀서와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영화 제목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프로듀서가 포스터에 네덜란드어 제목인 <크리스틴 M을 둘러싼 침묵>에서 크리스틴 뒤에 붙는 온점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호리스 감독이 이 문제에선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온점 하나가 사라진, 아주 다른 의미가 되어버린 제목 <크리스틴 M을 둘러싼 침묵>으로 포스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두번째 문제는 프로듀서가 포스터에 감독인 마를린 호리스의 이름을 적어주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행히 마를린 호리스가 이겨 포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 외에 네덜란드가 영화 자금력이 좋은 국가는 아니지만, 마를린 호리스는 운 좋게 모든 영화에서 예산을 확보해 본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관객 4: 한국에 젠더 이슈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십여년 정도 되었는데요. 젠더 이슈가 GDP 수준과 연계되어있다고 보시나요?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요?

 

페트리샤 피스터스: 소득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여성 인권은 매우 낮은 편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오히려 대중문화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사람들의 인식을 깨울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같은 경우 모두가 바로 쉽게 대중문화를 누릴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물론 점차적으로 법이나 관습도 변화하겠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 소프트 파워 (soft power)이고, 문화입니다. 이런 소프트 파워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굉장히 그런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인 것 같습니다. 젠더성의 흐름이 활발하기도 하고요. 또 국경을 초월한 콘텐츠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이런 이슈들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복합적인 해결법이 있는 것 같고요. 대중문화와 소프트 파워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취재 │ 김하영 루키

 
사진 │ 안진영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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