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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SYMPOSIUM] PART1. 감각의 접속, VR 접경
    NeMaf 조회수:4680 추천수:3
    2019-08-24

    8월 23일 오후 4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감각의 접속, VR 접경>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정찬철 부집행위원장의 진행 아래 유태경 중앙대 컴퓨터예술학부 교수와 반기현 중앙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 전우형 중앙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 교수가 참석해 중앙, 한국외대 HK+접경인문학연구단의 의제를 가상현실 콘텐츠로 제작하려는 방법을 논의했다. 또한 VR 콘텐츠의 기술적인 실현 가능성과 시각적 스토리텔링 모델 및 전략에 대한 아이디어를 시민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찬철: 이번 <접경에 선 VR 영화 특별전>은 처음으로 연구소와 공동 기획한 기획전인데요, 함께해주신 중앙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접경’이라는 테마를 통해 에두아루도 헤르난데즈의 <난민>, 아사프 마크네스의 <국경>, 그리고 가야트리 파라메스와란의 <홈 애프터 워>라는 세 편의 작품을 상영했는데요, 심포지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기현: 저는 로마사를 전공하고 디지털 휴머니티(digital humanities) 분야에서 고대 유적지를 VR로 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현장을 복원하거나 발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갈등을 빚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가상공간에서의 고대 유적 복원을 활성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아직 우리나라는 미흡한 수준입니다. 저는 VR를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라는 게임으로 먼저 접했는데요, 고대 도시를 재현해 암살자가 되어 도시 곳곳을 탐방하며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런 콘텐츠에 익숙하다 보니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홈 애프터 워>가 가장 와 닿았습니다.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해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고, 직접 부비트랩을 작동시킬 수도 있다는 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찬철: 말씀해 주신대로 <홈 애프터 워>가 가장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활발했던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이제 VR 콘텐츠로 어떻게 접경이라는 의제(agenda)를 구체화할 수 있는지 논의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총 세 가지 주제를 다룰 텐데요, 첫 번째는 HK+ 접경인문학연구단의 의제를 소개하고 그다음으론 연구단이 장차 VR 콘텐츠로 구현하고 싶은 접경의 주제들에 대해 논의한 뒤에 마지막으로 이러한 VR 콘텐츠의 기술적인 실현 가능성과 이에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전우형 교수님께 연구단의 의제와 그동안 구상해온 주제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우형: 저희는 접경을 주제로 한 VR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연구단 내 TF팀을 구성해 정찬철 선생님, 유태경 선생님을 만나 고민을 이어왔고, 오늘 네마프에서 마련해주신 자리를 빌려 그간의 논의 내용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우리 연구단이 추구하는 콘텐츠로서의 접경(Contact Zones)이란,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경쟁하고 공명하는 사회적인 무대로써, 이질적인 것들이 만난다는 점에서 분명 갈등과 분쟁, 충돌이 일어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거칠게 말해 ‘접경’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삶들이 존재해왔음을 인식하고, 공간의 특성상 분쟁 해결에 대한 외면이나 침묵이 있었단 생각에 그 삶과 노력을 잘 드러내고 싶단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1년 넘게 접경 지역을 연구하다 보니 이곳이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기억과 감각, 그리고 실제 삶이 보존된 아카이브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학문적인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콘텐츠의 제작이 갈등 지역에 화해와 공존을 심기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해 7월 UC 버클리의 한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이민자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멕시코와 미국 국경을 가로지르는 분홍색 시소를 설치했는데요, 이는 그 공간에서 아이들이 시소를 타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게 하는 설치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이는 접경이 갈등과 분쟁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 현장을 해결할 수 있는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며, 실질적으로 어떤 소통이나 화해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저는 이러한 주제들을 3차원 가상현실로 옮겨올 필요가 없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접경이라는 공간은 과거에 멈춰있다고 느끼게 합니다. DMZ(비무장지대)도 50~70년 전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고 말해지지만 결국 이것은 시간이 멈추어 있다는 진술이 아닐까요.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VR 콘텐츠는 이렇듯 산일되어 있는 다양한 기억과 기록, 감각에 접속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를 통해 분할된 화해의 해결책들을 찾아보는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정체된 기억과 감각에 접속해서 새로운 시간을 부여하고 진행해보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말해 50년 전에 멈추어버린 DMZ와 같은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간의 시간을 재구축해보는 겁니다. 이는 소설이나 영화로도 할 수 있지만,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말했듯 인간의 감각과 운동기능을 확장하는 것이 미디어라면 VR 미디어는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정찬철: 접경 지역은 그 어느 곳보다도 삶이 유동하는 공간이자 복원되어야 하는 공간인 동시에 삶과 삶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VR 미디어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현실에 발딛고 있다는 감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미디어이기 때문에 접경이라는 인문학적 지식을 콘텐츠로 만들었을 때 가장 적합한 미디어가 아닐까 합니다. 다음으로는 유태경 교수님께 VR 미디어에 대한 기술적인 이야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유태경: 저는 VR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VR 매체에 대한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Contact Media”라는 제목을 붙여봤는데요, ‘접경’이라는 주제를 다루다보니 VR(virtual reality)이라는 것도 가상과 현실이 접해지는 지점에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접경’답지 않나, 이미 VR 자체가 접경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를 만든 Palmer Luckey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VR is a way to escape the real world into something more fantastic. It has the potential to be the most social technology of all time.”(VR은 현실 세계를 벗어나 더 환상적인 무언가로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는 이제껏 있었던 모든 기술 중에 가장 사회적인 기술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저 역시도 VR이 그 이전의 미디어에 비해 자신이 한 체험을 올곧고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소셜 테크놀로지(social technology)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서사 매체로서의 VR이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현존감(presence)입니다. 그 이전의 매체에는 관객과 화면 사이에 거리가 존재했다면, VR은 실제로 그 자리에 존재하는 느낌, 즉 몰입감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존감이 어떻게 서서히 형식으로 들어왔는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먼저 2D 스크린에서 시작해보면, 360도의 파노라마가 만들어져 헤드셋을 쓰고 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비디오 형식을 삼육공(360) 비디오라고 합니다. 관객이 어디에 시점을 둘지 선택할 수 있어 몰입형 비디오, 구현 비디오라고도 하는데요, 가장 단순한 VR이라고 할 수 있죠. 사진 분야에서 파노라마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비디오가 파노라마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일반 카메라 6대 정도로 리그(rig)를 구성해서 겹치는 부분을 접합하는 스티칭(stitching)을 거치거나 180도를 커버할 수 있는 어안렌즈가 있는 두 대의 카메라를 통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비디오는 큰 구에 영상을 입혀놓고 보는 느낌이기 때문에 몰입이 아주 강한 편은 아닙니다.

     

    360 비디오가 하나의 비디오로 보는 것이라면,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보는 비디오 두 개를 동시에 보여주는 조금 더 복잡한 형식도 있습니다. 이를 스테레오 360 비디오라고 하는데요, 한쪽을 두 대의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입체감을 줄 수 있습니다. 만들 때는 마찬가지로 6면씩 리그를 만들어 스티칭 과정을 거치거나 어안렌즈를 사용합니다. 이때 위아래로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볼 수 있는 비디오를 배치해 플레이하는데, 이를 탑앤바텀(top and bottom) 이미지라고 하며 양쪽 옆에 배치할 경우엔 사이드바이사이드(side by side)라는 형식이 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제작과정이 더 복잡해지고 필요한 데이터양과 헤드셋의 성능도 두 배가 되기 때문에 몰입감은 배가 되지만 아쉽게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형식은 아닙니다.

     

    유태경 : 제가 관심 있는 부분은 조금 더 확장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셨던 것은 3 DOF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DOF는 Degree of Freedom이라고 해서 자유도가 몇 가지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3 DOF라고 하면 머리를 도리도리하고 끄덕끄덕하고 갸우뚱하는, 이 세 가지의 회전만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현존하는 것처럼 느끼기 위해 다가가도 피사체가 다가오지 않는 거죠. 그런데 VR 헤드셋에 센서가 확장된다던가 깊이를 인지할 수 있는 카메라가 달리게 되면 위치 이동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X와의 지축, 그러니까 앞으로 위로 깊이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을 6 DOF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조금 더 몰입이 되는 콘텐츠가 나오게 됩니다. 때문에 저희가 3 DOF, 6 DOF가 가능한 헤드셋을 보통 나누어 놓죠. 주로 통신사에 서비스가 된다던가 모바일 기기들은 3 DOF이고 데스크탑이나 랩탑 혹은 더 복잡한 기계일 경우에는 6 DOF가 필요하죠.

     

    아까 제가 보여드렸던 360 비디오로 만들 때 보여드렸던 장비로는 깊이 있는 영상을 찍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Volumetric Videos라고 하는데 돔 형태로 카메라를 위치시켜 놓고 전 방향에서 비디오를 같이 찍습니다. 그 후, 이를 기준으로 3차원 상에 존재하는 픽셀들을 다 저장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회전하던 움직임에서 깊이 있게 들어가도 그 깊이가 전부 보입니다. (영상 재생) 이 장비는 인텔에서 구축한 것인데 이런 장비를 통하면 이런 장면이 가능한 거죠. 이것은 <매트릭스>에서 쓰였던 타임 슬라이스가 아니라 360도가 전부 컴퓨터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긴 하지만 실제로 이 데이터를 가지고는 유저가 어디 위치하든 그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보셨다 싶이 어마어마한 장비나 기술, 노하우가 필요하고 저런 데이터를 획득했다고 해도 수정하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때문에 콘텐츠 생산자 입장에서는 저런 것들을 물리적 공간에서 취해오는 것보다 현실에 있음 직한 정도의 포토 이미지를 취해와서 그래픽 만드는 것이 더 수월하죠. 이것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여러분들이 즐겨 하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 엔진들이 최근 들어 아주 하이 퀄리티의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게임 엔진들은 그때그때 유저가 바라보는 지점을 보여줍니다. 이를 리얼 타임 렌더링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 이미지처럼 <스타워즈>의 한 장면은 이런 게임 엔진으로 만들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미지를 만드는 게 아닌 화면만 그대로 캡처하면 영화의 퀄리티가 나올 정도로 실시간 게임 엔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 엔진을 아주 복잡한 영역에 많이 사용하고 이를 실시간 개발 엔진(Realtime Development Engine)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몰입감 있는 영상을 위해 6 DOF가 도입되었다고 한다면 여기에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인터렉션(Interaction)입니다. 제가 말하는 인터렉션은 게임 컨트롤러(Game Controller)로 하는 수동적인 게 아니라 모든 물리적인 형태의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게임 장비의 경우 게임 컨트롤러가 허용하는 인터렉션만 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VR/AR 콘텐츠를 만들 때는 창작자가 원하면 보다 직관적인 신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예를 들어 큐브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제가 손을 올리면 그 큐브들이 갑자기 붕 떠올라요. 그러다 순간적으로 손을 내리면 마치 중력이 없어진 것처럼 박스들이 무너져 내리죠. 이전의 게임 컨트롤러에서 하나의 인터페이스만 바뀐 건데도 훨씬 다른 체험을 하거든요. 이런 인터렉션이 확장되면 VR 이상의 것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VR이라는 콘텐츠를 거론할 때 VR이냐 AR이냐 같이 형식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지금은 과도기적이고 기술과 창작욕이 만나는 모호한 상황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VR도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나머지 매체들도 개발되는 단계이기에 이 모든 노력들이 몰입감을 높이는 콘텐츠를 위한 흐름으로 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연출했던 <조의 영역>이라는 VR 웹툰이 있는데 콘셉트는 상당히 단순합니다. 여러분들도 VR을 체험할 때 느끼신 분이 있으실 텐데 어지럽습니다. 물론 이것이 몰입감 있는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연출하기 힘든 점이 있어요. 이동을 함부로 시키지 못하고, 이동을 시키더라도 등속으로 시켜야 하죠. 그래서 저는 웹툰을 온라인상에서 스크롤 하면서 보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넘겨 보면 어지러움이 없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실제로 3차원 공간을 넘겨가면서 체험하는 VR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VR은 가상과 현실 사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그래서 오늘 거론되고 있는 접경이라는 지점을 가장 표현하기 좋은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VR 체험이라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 가상으로 들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마법 같은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형식을 빌려 하나씩 설명했던 과정에서 오는 현존감, 이것이 저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입니다.

     

    접경인문학연구단은 한달 전에 처음 뵈어서 그동안 두 번 정도 만났었어요. 그때 전우형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이런 소재를 어떻게 VR로 만들 수 있냐 같은. 사실 실제 제작 경험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가 많이 있진 않으시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단순하지만 제시해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로 이야기되었던 것이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구성해 거기에 있음 직한 스토리텔링을 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입니다. 그런데 VR은 아직까지는 헤드셋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제약일 수도 있지만 헤드 트래킹이 됩니다. 그래서 어디를 쳐다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해 임시정부청사가 프랑스 조계지에 생기는 거죠, 이로 인해 해외 열강들의 이해관계 속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 스토리텔링을 공간적으로 나열해 놓고 관객이 어디를 쳐다보느냐에 따라 스토리텔링을 바뀌게 할 수도 있고 쳐다보는 지점의 사운드가 다가와 들릴 수도 있죠. 그리고 두 번째로 거론되었던 것이 두만강 다국적 도시 프로젝트입니다. 여러 국가들이 접경하는 두만강 하구에 새로운 자유경제도시를 VR로 만든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논의 중입니다. VR이라는 것이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공간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미디어입니다. 제가 예를 들고자 했던 작품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The Dial>인데요, VR 작품은 아니지만 하얀 면으로 된 집을 만들고 그 위에 프로젝션 매핑을 합니다. 이를 핸드폰으로 보면 AR로 보이는 거죠. 그래서 집은 프로젝션 매핑으로 물리적으로 구현이 되어 있고 그 위의 캐릭터나 나머지 인터렉션들은 AR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4명의 유저가 짝을 이루어 움직이는데 유저의 방향에 따라 스토리가 바뀝니다. 이처럼 저희가 VR로만 국한하지 않으면 조금 더 물리적인 공간의 것과 인터렉션이 가능한 콘텐츠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저는 두만강 프로젝트를 들었을 때 처음 떠올랐던 것이 물리적으로 두만강 프로젝트의 도시를 미완으로 만들어 놓고 유저가 MR 헤드셋을 쓰거나 AR 기기를 통해 보면 나머지 것들이 완성되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는 사람들이 소셜로 함께 들어와 다국적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그러한 콘텐츠를 생각했습니다.

     

    정찬철 : 유태경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니VR 미디어라는 기술은 이미 우리의 상상을 앞질러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상상하느냐가 문제이지 기술적인 문제는 해결된 것 같습니다. 콘텐츠로서 무엇을 만들까를 상상하는 인간의 문제만 남은 것 같네요. 그럼 이야기 들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아이디어, 의견 등을 자유롭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객 : VR은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여러 양상 중 하나인 플랫폼인데 두 가지 프로젝트에 VR이 가진 매체적 특성과 기존에 있는 매체와 차별점이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 굳이 VR로 해야 하는지, 특히 영상이나 사운드 설치로 하면 안 되는지 등 VR로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제 생각에 VR의 가장 효과적인 측면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 자체를 현존감을 갖고 느낀다는 것이거든요. 공간이라는 것이 사실 실제 있었던 공간일 필요는 없고 일종의 인터페이스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입체적인 인터페이스로 프로젝트에 담긴 생각들이 전달될 수 있을까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우형 : 말씀하셨던 것처럼 VR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현존성 때문에 어젠다를 VR로 잡았습니다. 또한 접경이라는 공간이 소외되거나 외면되거나 실질적으로 정체되어 있는데 이것에 시간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문자나 2차원적 영상이 아닌 현존성을 보여주는, 그러니까 VR을 통해 5-60년이 흘렀구나를 체험할 수 있는 미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언급한 패치워크처럼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결과물보다는 여러 사람의 손이 가고 그들의 노력이 덧붙여져 만들어지는 작품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보면 더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꼭 VR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나의 큰 사진만이 아니라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자원들이 활용되는 이질적인 지점들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접경이라는 갈등의 공간에서 화해하고 평상시의 일들을 해왔던 삶들을 기억하고 복원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객 : 참여자 간의 인터렉션 부분이 궁금합니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 내가 접속하기 이전의 사람들에게도 온라인 세상이 생기는데 VR의 경우에도 이러한 세상을 형성하는 게 가능할지, 그리고 VR 작품의 경우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갖게 되는 건지 아니면 동작 위주인지 질문드립니다.

     

    유태경 : 실제로 그런 소셜 VR 플랫폼들이 존재합니다. 접속해서 같이 만나 아바타를 통해 만날 수도 있고 인터렉션도 가능합니다. 말씀하신 온라인 게임처럼 NPC라고 하죠, 게임 내 자동으로 만들어져 있는 디지털 휴먼과 인터렉션을 할 수도 있는 거죠. 이 프로젝트에서 소셜 미디어를 이야기했던 것은 그 지점을 중심으로 분할을 한 다음 각 방향성 있는 접속자들이 들어오게 되면 그쪽 측면의 지형에서 불이 켜진다던가 하는 인터렉션이랄까요. 참여를 통해 지형을 바꾸거나 건설의 단계를 바꾸는 것도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접속 자체가 큐가 될 수 있고, 접속자들이 하는 활동이 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궁무진하죠. 하지만 라이브 하게 계속 유지될 수 있는 플랫폼은 비용이 많이 들죠. 두 번째 질문은 포맷이 정해져 있냐는 것인데 포맷이 정해져 있지는 않고요, 둘 다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방법 혹은 체험에 집중하는 것 둘 다요. 저희가 VR 콘텐츠 제작에 있어 고민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체험을 강조하면 스토리텔링이 약해지고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며 체험이 약해지거든요. 그래서 VR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그 안에서 접점을 찾는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관객 : 감각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촉각이라는 것이 참여자 간의 인터렉션을 통한 촉각인지 아니면 다른 감각을 활용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유태경 : 확실히 정해진 것이 있지는 않습니다. 소셜 VR을 의도한다는 것은 온라인으로 생각해 본다면 어디서 건 접속할 수 있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트래픽 문제도 있고 해서 인터렉션을 많이 하기는 힘듭니다. 온라인처럼 확장하면 인터렉션은 적어지는 반면 소셜이라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공간에 모여서 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실제로 물을 바닥에 깔아놓고 두만강을 걷는 것처럼 피지컬 하게 인터렉션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해놓은 게 아니라 브레인스토밍 과정이기 때문에 제안을 많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우형 : 저희가 절실히 원하는 공간, 우리가 가지 못해 경험하지 못했던 감각들이 있는데 사실 상영하거나 전시하는 환경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경험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두만강 국제 도시 프로젝트를 만들었을 때 이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촉각이 있다면 큐를 통해 유도를 해서 만짐으로써 두만강 고유의 촉감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상영 환경에 따라서도 충분히 가변적인 것이죠.

     

    정찬철 : 접경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가기 힘든 공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쟁이 일어났거나 막혀 있는 혹은 상상을 해야 하는 공간인 거죠. VR 미디어는 물리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하지만 가고 싶은 공간을 가상을 통해 체험케 하는 좋은 미디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시각적인 측면의 가상을 넘어 촉각적인 차원의 감정을 개입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Home After War>의 오리지널 버전은 4D인데요, 지금으로써는 저희들이 상상하는 것의 프로토타입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취재 │ 이예진, 정현경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 [2019] [REPORT] 네마프2019 시상식 현장
    NeMaf 조회수:4207 추천수:3
    2019-08-22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 시상식이 나도율, 이주윤 배우의 진행 하에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21일 오후 7시에 개최되었다. 이번 네마프는 젠더X국가를 주제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서울아트시네마, 미디어극장 아이공, 서교예술실험센터, 아트스페이스오에서 총 30개국 115편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관객에게 선보였다. 시상식에는 김장연호 집행위원장을 비롯하여 구애위원 및 수상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시상식은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현장 스케치>의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현장 스케치 영상에서는 지난 7일간 진행된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관객, 뉴미디어 루키, 스태프들의 뜨거웠던 현장 모습이 담겼다. 현장 스케치 영상이 끝나고 난 뒤에는 뉴미디어 루키에 대한 소개와 함께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인 구애 부문의 수상작 발표가 있었다. 

    먼저 한국구애전 상영 부문과 한국구애전X 멀티스크린 부문의 관객구애상 수상작품의 시상이 있었다. 상영부문 관객구애상은 이창민 감독의 <디어 엘리펀트>가 수상하였다. <디어 엘리펀트>는 한국 최초의 태국 이주자인 영화감독 이경손의 흔적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이창민 감독은  “네마프는 10년 전에도 상을 받았던 영화제라 의미가 남다르다”며 영화 제작에 도움을 준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멀티스크닝부문 관객구애상 수상작은 주다은 감독의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로, 피난과 전쟁을 체험한 외할머니의 기억에 기반한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된 SF작품이다. 주다은 감독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큰 곳에서 상영된 적이 처음이라 이를 계기로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고자 한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히는 한편 “작업의 바탕이 되는 내레이션을 담당해준 외할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발표와 시상에 도움을 준 관객구애단(장유경 · 김소영 · 김재연 · 이수진 · 유지인 · 전규연) 대표 장유경 위원의 구애 총평이 이어졌다. 장유경 위원은 “두 작품은 거대 담론의 역사 쓰기에 대항하는 사적 기억의 역사 쓰기로써 영화적 재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사적인 서사를 역사 그리고 사회와 연결해 조망하면서 주류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는 대안의 역사로 이를 기록하고 남겨 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다음으로는 글로컬구애전 최우수 구애상 시상이 있었다. 글로컬구애전 최우수 구애상은 크리스틴 휘르젤레르의 <까마귀들>이 수상했다. 크리스틴 휘르젤레르 감독은 아쉽게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크리스틴 휘르젤레르 감독은 “참석하지 못해 슬프지만 수상하게 되어 영광”이라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제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데 기쁨을 느끼고, 이것이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세라 본선 구애위원은 “<까마귀들>은 까마귀로 비유되는 감독의 사적인 시선을 가지고 가상의 사건을 유비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서, 가상과 실제, 인간 군상과 까마귀들이 어떻게 유비되고 있는지를 미스터리하게 추적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 까마귀들만 등장하지만 카메라 워킹이나 시점들이 흥미로워 이러한 점 위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총평을 남겼다. 또한 김윤아 본선 구애위원은 “구애위원들간의 시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뉴미디어페스티벌인 만큼 참신하고 새롭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작업 중에 선정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구애 부문 최고의 영예인 한국구애전 최우수 구애상의 시상이 있었다. 한국구애전 최우수 구애상은 강네네 감독의 <경계 없는 벽>이 수상했다. 강네네 감독은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으로 옮기는 부분이 조심스러워 1년 반의 시간이 걸렸지만, 인물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순수하게 담아내려고 했다"며 “고생에 대한 격려 같아 기쁘고 앞으로도 좋은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강경덕 본선 구애위원은 “논의 과정에서 작품들 모두 완성도가 높아 어느 작품에 상을 주어도 큰 부담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도 이 작품이 수상하게 된 이유를 꼽자면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가지고 예술과 노동, 국가 등 다양한 주제를 가로지르며 영화의 형식을 잘 살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구애전X 멀티스크린 부문 최우수 구애상은 김방주 작가의 <A Teleportation Through Two Chairs, I Don’t Have a Problem with Berlin Because I’m Not Late Also I Am Invited>가 수상했다. 김방주 작가는 사정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어머니께서 대신 “감사하다”는 수상소감을 전하셨다. 김세진 본선 구애위원은 “작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작가분이 구애해주신 것에 감사하다”며 “이번 출품작의 경향으로 디지털 문명의 일상화라는 주제가 두드러져 인터넷과 SNS 등의 뉴미디어를 어떤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주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았다”고 밝혔다. 한편 김성호 본선 구애위원은 “김방주 작가의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목적지로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몸의 수행성이라는 보편적인 미학을 담대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특히 자신의 목적을 완수하고 두 발로 걸어 나오는 마지막 대목이 감동적인, 인생에 대한 성찰을 주는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김성호 본선 구애위원은 특별언급 작품으로 이다은 작가의 <이미지 헌팅>을 소개하며 “오늘날 신진작가들이 미디어를 대하는 비판적인 작업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며 “소위 ‘몰카’를 통해 이미지가 채집되고 소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하는 사회학적인 담론을 인터뷰의 형식으로 추적해나갔으며,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접근방식이 돋보였다”고 덧붙였다. 이다은 작가는 “앞으로의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히며 네마프와 구애위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 순서로 김장연호 집행위원장과 정찬철 부집행위원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김장연호 집행위원장은 “네마프에서 소개되는 작가분들의 작업은 예술적 가치와 인권, 젠더와 같이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대다수”라고 밝히며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작가를 위해 “다양한 영화와 영상 예술적 가치를 위한 정책사업도 필요한 시대”임을 힘주어 말했다. 한편 “작년에도 네마프를 통해 소개했던 ‘옥인콜렉티브’의 비보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 밝히며 “많은 분께 도움이자 희망이 되는, 정말 좋은 작업을 해주신 작가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정찬철 부집행위원장은 첫 부집행위원장직을 맡은 소회를 밝히며 “향후 20년은 지금까지 다뤄온 진지한 주제들과 젠더X국가의 세부적인 테마들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또한 “영화제의 가치는 소비자였던 관객을 향유자로 만드는 문화적인 장치라는 점에 있다”며 “네마프가 영화를 향유하는 관객, 영화를 읽는 관객, 더 나아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네필(cinephile)들로 가득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시상식은 각각 글로컬구애전과 한국구애전 최우수 구애상을 수상한 크리스틴 휘르젤레르 감독의 <까마귀들>과 강네네 감독의 <경계 없는 벽>을 상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젠더X국가>는 2019년 8월 15일부터 시상식 이틀 후까지 전시 및 VR 상영이 이어져 총 11일간 서울 곳곳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네마프는 내년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주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대안 영상문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취재 │ 이예진, 정현경 루키

     
    사진 │ 최예준 루키

  • [2019] LECTURE] 젠더X국가 : 강연 <SM페미니즘>
    NeMaf 조회수:4323 추천수:6
    2019-08-21

    20일 롯데시네마 홍대 입구 14시 50분 [젠더X국가] 섹션의 파올라 칼보 감독의 <바이올렌틀리 해피> 상영 후, 16시 30분 임옥희 교수의 [젠더X국가 : 강연 <SM 페미니즘>]이 시작되었다. <바이올렌틀리 해피>에서 다루어진 BDSM과, 페미니즘에 관한 코멘트와 질의응답을 관객과 주고 받는 형식의 강연이었다. 이 날 진행은 김장연호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먼저 강연을 진행해 주실 임옥희 교수를 소개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올해 네마프와 협력해 작품을 상영하도록 도와 주신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이하여이연’) 신주진 대표의 인사를 들어 보겠습니다.

     

    신주진 : 여이연은 97년 창설된 이래로 여러 연구자들이 모여 현재까지 페미니즘 운동에 관해 논의하는 단체입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 시즌에 강좌도 진행하고 있고, 연 5,6회 가량 콜로키움도 진행하고 있으며, 여성 이론에 관한 책도 출간하고 있습니다. 또한 격년으로 학술 대회를 열고 있는데, 올 12월엔 ‘디지털시대의 섹슈얼리티’ 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니 많이 방문해 주시면 논의가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의 산 증인이신 임옥희 교수께서 좋은 얘기 많이 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주제전은 항상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자체적으로 기획을 해왔었다가 올해는 생각을 조금 바꾸어 다른 단체나 기관과 협력해 프로그램을 알차게 꾸며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젠더X국가의 주제와 적합한 단체들에서 추천해 주신 작품들로 기획을 봤습니다. 방금 상영된 작품은 여이연과 임옥희 교수님의 추천으로 상영하게 되었는데요. 역시도 임옥희 교수의 저서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SM 페미니즘이라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많이 이슈화되지 않은 내용으로, <바이올렌틀리 해피>라는 작업과 SM 페미니즘을 연결지어 고찰해보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봅니다. 그럼, 여기서 임옥희 교수께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임옥희 : 영화를 본 후 충격을 받아 아직 정신이 없지만, 강연을 시작한 만큼 잘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에이섹슈얼과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섹슈얼리티에 관해 평상시에 그다지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방금 상영된 작품 <바이올렌틀리 해피>를 본 후, 가장 강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했다는 부분에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 클럽>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극 중 주인공인 노인들-4명의 친구들-은 40년간 독서 클럽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어느 날 모임 도중 한 명이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책이 하나 있다며 같이 읽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저는 텍스트를 선호하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에 ‘대체 60이 넘은 노인들이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책이 무엇일까’가 굉장히 궁금했었어요. 그 책은 바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였습니다. 1억 이상의 조회수를 자랑하던 웹 소설이었던 이 작품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고, 영화까지 제작되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BDSM이 주된 소재인 소설입니다. 거기에 여성들이 끌린 이유가 무엇일까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게일 루빈의 <일탈>이라는 책을 번역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일탈>을 번역했을 땐 BDSM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만 그 책의 소개글에서 저는 ‘정치적 BDSMer’가 되어야한다는 입장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BDSM은 도착적인 성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질적인 BDSM에 대해 제대로 알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 <바이올렌틀리 해피>를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같이 본 여러분들과 토론의 장을 열고 싶습니다. BDSM에 관한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페미니즘과 BDSM이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 또한, BDSM은 여성의 행복 추구권이나 여성 해방이라는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져 봅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질문이나 코멘트를 주시면 함께 논의해 보는 방식으로 강연을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여이연 신주진 대표께서 화두를 던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주진 : 영화를 고른 사람이 접니다. 사실 잘 모르고 골랐는데, 한 웹진에서 소개 기사를 보고 이 작품에서 다루는 ‘공동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또한 섹슈얼리티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BDSM이 어떤 형태를 띠는가 하는 일차적인 고민도 있었구요. 그러한 일차원적인 궁금증 때문에 이 영화를 골랐는데, 보면서 굉장히 철학적인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아티스트들이고, 자신의 몸과 존재에 대해 탐험하는 과감한 모험가들같다는 인상을 받았구요. 젠더의 정체성의 경계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작품에 등장한 ‘하우스’의 주인이 굉장히 제왕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아무튼 이런 지점들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옥희 : 흔히, 헤테로섹슈얼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실용적이잖아요? 결혼이나, 하다 못해 섹스에서의 체위도 결국 재생산이 목적인 것이고. 그런 사회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일반적인 질문이 하나 있어요. ‘좋았어?’. 근데 이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아?’라는 질문이었구요. BDSM을 몸이 가진 극한까지의 감각과 만나는 관문으로 여기며, 고통을 통해 육체적인 한계의 확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연 철학적인 영화라고 할 만한 것 같습니다. 몸은 곧 예술이라 여기는 것과, 지배자인 ’돔’이 아닌 ‘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육체의 쾌감이 어떤 때 강하고 어떤 때 희박한지 연구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히 학구적인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섹스는 예술이고 춤이며, 세계와 만나는 하나의 공간이라는 것을 BDSM이라는 수행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신주진 대표의 입장처럼, ‘왜 백인 중년 독일인 남성이 저 하우스에서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까’라는 생각도 했구요. 마치 BDSM이 종교의 의식과 같이 굉장한 수행을 요구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해지는 일차원적인 ‘재생산’만을 목표로 하는 성 행위와는 달리 BDSM은 굉장히 귀족적인 행위입니다. 인공적으로 자기 몸을 확장시키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또 다른 의견 있으십니까?

     

    관객 1 : 작품을 보며 이 ‘BDSM 공동체’라는 것이 정상 규범과는 분리된, 은폐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BDSM을 공공성의 확장이나 정치성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요?

    임옥희 : 이 폐쇄적인 ‘해방구’에서 BDSM을 수행하며 얻은 해방감이 다시금 사회가 더욱 원활히 유지되도록 환원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BDSM이 가질 수 있는 정치성은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저도 계속 고민하는 질문인데, 일단은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게일 루빈은 그의 저거 <일탈>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죽(매듭)은 피보다 진하다’. 그 말을 이 상황에 대입해 보면, 생물학적 가족(‘피’)이 아니라, 공동체(‘가죽’)에 속한 BDSMer들간의 관계들이 괴상한 ‘퀸쉽’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나름의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일종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기존의 사회가 BDSMer들을 도착증이나 변태성으로 치부하며 배제시키는 모습이,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특정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뒤집어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과연 헤테로섹슈얼 가정이 과연 얼마나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 사회는 일상 속에서의 지배적인 권력 관계는 당연하다 여기면서 인공적인 무대-상호가 동의한 ‘안전’한 상황-에서의 권력 관계는 도착적인 것으로 몰아가는 모순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성적 규범이 거꾸로 뒤집힌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BDSMer들이 자신을 오픈하는 것을 도착증이나 변태성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서의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조금 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부모가 SMer라면 자녀를 격리시키기도 합니다. 그들을 반사회적 인물들로 보는 것이죠. 사회가 SMer들을 가장 비체화된 섹슈얼리티로 보는 시선에 대한 저항의 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기대를 합니다. 스스로를 개방해야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자본주의의 소유관계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적 공동체로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관객 2 : 저는 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외부인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젠더 의식을 관찰하자면, 굉장히 생물학적이고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젠더를 구별하는 사회로 보입니다. BDSM처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바람직하고 재밌는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BDSMer들을 격려할 수 있을까요?

    임옥희 : 한국 사회에서도 이걸 상영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아요. 검열의 위험이 있거든요. 이런 공적인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상영해준 것 자체가 획일화된 한국의 남성 중심 헤테로섹슈얼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견고한 스테레오타입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파괴적인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용히 스며들어 균열을 내는 방법이 때로는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관객 3 : BDSM이라는 성적 장르는 해외에서 더 많이 소비돼 온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한국 여성들이 이 토픽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안전한지? 또한 BDSM에 관한 논의는 진보적 사회에서만 가능한 건지? 한국 사회와는 적합한지?

    임옥희 : 젊은 여성들은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페미니즘의 발달은 진보적인 사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로 드러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 사회는 엄격한 금기가 많아서 BDSM을 오픈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엔 레즈비언 소사이어티도 존재했지만 그것조차도 오픈하기 힘들었잖아요. 어떤 공격을 받을지 알기 때문에 ‘안전’이 최우선인 모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정치적 움직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시차, 편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 4 : 질문이자 코멘트이기도 한데요. 작품 속 ‘필릭스’ 라는 인물이 커뮤니티에서 행하는 것이 일종의 정신적, 신체적 ‘훈련’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아마 과거에 안무가였던 배경이 있던 것 같은데, 본인의 성향 때문에 예술계에서 축출된 트라우마가 있고, 자신이 현재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예술 무대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욕망이 비춰졌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옥희 : 채찍질을 어느 강도로 해야 고통의 쾌락이 극대화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수행하는 모습이 종교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필릭스’는 통상적인 주류 예술계로부터 배제될 수 밖에 없었고, 연금도 끊어졌습니다. 저 역시 그가 메인스트림은 아니지만 도착과 변태의 포르노 집단에서의 행위를 통해 다시 예술로써 무대에 오르길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사이비 종교의 목사나 밀교의 구루처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착취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경계심도 생겼습니다. BDSM이 가지는 특징은 ’상호 동의와 합의’ 안에서 가장 안전하게 행해지며 끊임없는 대화가 동반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간의 섹스만큼 몸이 가진 다양성을 봉쇄하는 행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삽입 - 섹스 - 사정으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가장 심플하고 상상력 없는 행위일 뿐입니다. 헤테로섹스는 ‘재생산’ 말고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섹슈얼리티를 이용한다거나 몸의 언어화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필릭스’에게 어떤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영화 전체를 보고 나면 그는 또 어딘가에 내몰려 헤맵니다. 그것은 도심이 소수자들을 어떻게 배치하는지 얼핏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성적 소수자들은 계속 주변화되고 변두리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지요.

     

    관객 5 : 저는 이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SMer이자 페미니스트입니다. SM이 과연 정치적인 것인가 여권 신장에 도움이 되는지가 궁금합니다. 어느 책에서, 예전에 백인과 흑인의 계급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각자의 인종으로 분장하는 축제를 하며 잠시나마 현실에서의 억압이나 차별을 해소하곤 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백인들이 자신의 권력을 더 잘 유지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축제를 사용했다는 것이죠. 그처럼 ‘펨돔’과 ‘멜섭’의 관계 역시 잠깐의 유희를 통해 젠더간의 권력 차이를 해소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을때 여성이 남성에게 더욱 잘 순종하게끔 만드려는 목적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한 번, SM이 과연 정치적인가 하는 물음이 있어요.

    임옥희 : 당연한 질문입니다. BDSM에서 ‘섭’이 대변하는 ‘여성성’과 페미니즘의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 때문에 탈 정치적이지 않냐는 질문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질문 같구요. BDSMer들이 ‘우리가 반드시 정치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해방구’, 즉 권력의 역전이 일상으로 재포섭되기 위함으로써 기능한다는 입장도 생각해 볼 수 있고, 꼭 그런 식으로 고착된 것은 아니고 현실에서 다른 방식으로 영위되기도 한다는 입장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BDSMer들이 혁명가는 아니지만, 자기 삶을 달리 볼 가능성을 열 수 있고, 자기 몸을 각성하는 능동적 방식의 도구로 BDSM을 이용한다면, 성적 주도권, 자율성이라는 가느다란 정치성을 엿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일부일처제 성생활이 스테레오타입이라 말씀하셨는데, 남성은 SM 욕구를 노동자를 통해 해소할 있지 않은지?

    임옥희 : 당연합니다. 정보를 구할 공간이 인터넷에 굉장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남성이 여성들에 비해서 SM을 경험할 기회가 많은 것 같아요. 비유적으로 얘기하자면, 군대 문화도 SM이잖아요. 치과에 가는 것도 SM이에요. 일방적으로 드러누워서 진료를 받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요즘 들어 유행하는 타투 역시 SM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갑을관계의 SM을 연출하며 살고 있죠. (비유적으로 얘기하자면) 학교, 군대, 교회, 가정 할 것 없이.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현실에 만연되어 있지만 그것을 특별히 연출하고 예술적으로 만드는 BDSM은 오히려 차단하는 모순적 행태가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단한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덮어질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넘쳐 흘러와 사회에 스며들 수도 있죠.

     

    관객 6 : 에스엠이 사회적 계급과도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0평짜리 거실에서 부유한 백인들이 모여 향유하는 게임 같았습니다. SM이 먹고 살기 바쁜 사람에게는 사치이지 않나 싶습니다. 계급과 섹슈얼리티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임옥희 : 그것은 오래 전부터 많이 얘기된 주제입니다. 노동자들은 빨리 욕망을 해소하고 그 다음날 노동 현장으로 복귀하라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섹슈얼리티 억압에 대한 이유 중 하나이지 않나 하는 맑시즘적 어프로치가 아직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로는, 가난한 사람들도 넥타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SM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즐긴다는 시선을 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사용 설명서로써 BDSM을 연구해 봐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같은 주제로 수없이 고민했을 분들이 이 강연을 찾아와 주실 거라 믿었고, 제가 여기서 먼저 화두를 던지면 여러분들이 논의를 활발히 펼쳐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네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취재 │ 안진영 루키

     
    사진 │ 김하영 루키

  • [2019] [GT] 젠더X국가 단편
    NeMaf 조회수:3554 추천수:2
    2019-08-21

    8월 20일 오후 12시 20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2관에서 젠더X국가 기획전 단편 프로그램을 통해 <거리측정>, <검은 악어>, <당신의 젠더는?>, <더블 럭키>, <바뀌지 않을 것이다>까지 총 5개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의 서진 감독이 참석해 작품 설명과 함께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진행은 김장연호 집행위원께서 맡았다. 

     

    김장연호: 영화를 보면서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괜히 울컥하기도 했는데 감독님께서 <바뀌지 않을 것이다>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극 중에서도 나왔듯이 썼던 글에 대해서 고소를 당하게 되면서 더이상 어떤 글도 쓰지 못할 거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이런 두려움이 아마 나만 느끼는 그런 감정은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 두려움을 기록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사적인 두려움을 공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김장연호: 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가 가지고 있는 스펙트럼. 젠더를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개인적으로 참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군기, 군대 문화나 전체주의적인 분위기에서 시작해서 세월호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미투와 같은 성폭력 공론화를 모두 관통해서 보여주셨잖아요. 세월호랑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를 연결하시는 감독님은 처음 뵌 거 같은데, 혹시 어떻게 이렇게 연결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연결 지점은 타인의 고통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했던 거 같아요. 일련의 사건들이 5년 동안 연달아서 터지게 되면서 굉장히 무겁고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이어지는 날들을 (저희가) 살아가고 있었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웃고 있어도 되는가?’, ‘행복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됐어요. 또 그 사이사이에 계속 피해자. 분들과 만나고, 대화하러 가고, 연대하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가끔은 지쳐서 집에만 있어 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도대체 피해자란 무엇인가. 피해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피해자들이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고립되어가고 있고, 그 고립을 내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대가는 무엇이 될까. 그리고 또 내가 피해자가 됐을 때, 나는 똑같이 고립이 될 텐데 그대로 사라지려나 하는 질문을 하게 됐던 거 같아요. 제 자신의 피해자성을 깨달으면서. 그래서 피해자들이 숨쉴 수 있고, 억울하지 않고, 같이 살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바뀌지 않을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되어서, 영화를 보셨듯이 이 영화가 질문으로 이어져요. 질문이 한번에 해결되진 않지만,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그 질문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같이 대화를 하면서 만들어갔던 내용이어서 연결 지점들이 그런 곳에서 나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장연호: 작품에서도 나와있듯이 실제로도 젊은 세대들이 집회뿐만이 아니라 SNS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그런 점에서 이제 상영을 했을 때 감독님은 어떤 지점에서 보람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영화제를 다니면서 보람보다는 무거운 마음을 많이 안고 나가는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우세요. 그리고, 공기처럼 보이지만 (혐오는) 존재한다, 이거에 대한 담론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평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사실 <바뀌지 않을 것이다>의 지도 교수님이 다 남성 분이셨는데, 처음 트리트먼트를 보여드리니까 이 이슈들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인지 모르겠다고 하셔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에게 지도 받으러 가는 걸 멈추고, ‘분명히 이건 존재하는 것이다’ 는 생각으로 혼자 제가 느끼는 것을 말하려 했어요.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여러 영화제에서 불러주시는 것을 보면 현재 실존하는 문제임은 분명한 거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살아있는 언어, 정치적인 언어, 힘을 있는 언어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을 하다 보니 발화는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긴 했지만, 이 발화를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진행 중인 거 같아요. 그런 고민들을 나눌 때 관객들이 각기 다른 지점에서 이야기를 해주시고, 또 제 스스로도 ‘아, 이런 지점에서 또 시작하면 되겠구나’ 하며 확인하고 다시 나아가는 부분에서 많은 보람을 느끼는 거 같습니다.
     

    김장연호: 발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전체 나레이션을 영어로 하셨잖아요. 그거에 대한 이유가 있을까요?

     

    첫째는 제 한국어 나레이션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둘째는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가지는 위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허구적이지만 지식인 사이에서도 버리지 못한 식민지성이나 그것이 가지는 객관성 혹은 우월함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 느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외국에서 잠깐 살다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많이 느꼈거든요. 이 다큐가 한국에서 틀어질 때와 캐나다에서 한번 틀어진 적이 있는데, 캐나다에서 틀어졌을 때의 그 느낌은 굉장히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장연호: 저는 구글에서 길거리를 한번도 쳐본 적이 없었는데 그 부분도 깜짝 놀랐습니다.

     

    street와 길거리를 쳤을 때 결과가 완전히 달라요.

     

    김장연호: 마지막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작업 이후 차기 계획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바뀌지 않을 것이다>는 나와 사회와 타인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그런 다큐였는데, 기록만 5년을 걸쳐 하게 되어서 제 스스로 소모되고 지친 부분이 조금 있어요. 그 소모되어 있는 것을 달래서 계속 싸워나가자고 마음 먹다가도 갑자기 ‘이렇게 해서 바뀌는 게 뭐지, 남은 게 뭐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사실 영화는 되게 한줄기의 희망을 찾은 것처럼 마무리하긴 했지만, 그 뒤에 남는 공허함에 대해서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좀 내면으로 들어가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 외에 발화 같은 경우, 더 넥스트나 개인적인 공동체 안에서 토론이나 스터디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취재 │ 김하영 루키

     
    사진 │ 안진영 루키

  • [2019] [GT] 심혜정 특별전 장편: 욕창
    NeMaf 조회수:2914 추천수:7
    2019-08-21

    8월 20일 오후 7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2관에서 심혜정 특별전 장편 <욕창> 상영이 있었다. 이후 진행된 GT에는 심혜정 감독과 강애심, 김종구 배우가 참석하여 임종우 모더레이터의 진행 하에 관객들과 작품의 의미와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종우: 우선 <욕창>이란 작품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심혜정: 저희 엄마가 오랫동안 앓고 계셔서 재중동포 분과 꽤 긴 시간 동안 실제 영화처럼 저희 부모님 댁에 계신 일이 있어요. 저희 부모님도 제가 가깝게 보고 주변 친구들도 부모님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노령화, 노령화’ 얘기는 많이 하지만 실제적으로 노인 문제에 대해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하고 싶다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임종우: 보론 차원에서 제가 <욕창> 영화를 리서치 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전작인 <아라비아인과 낙타>라는 작업을 많이 언급해주시더라고요. 혹시 그 작업과의 연결성도 볼 수 있을 까요?

    심혜정: <아라비아인과 낙타>는 다큐멘터리고요. 좀 전에 말씀드린 저희 부모님 집에 계신 재중 동포 간병인 분하고 저하고, 외부인과 내부인, 이주노동자와 선주민 사이의 신경전, 자리다툼에 관한 다큐멘터리고요. 그걸 만들면서 다큐멘터리가 이야기를 담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잖아요. 노인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극영화를 통해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얘기하고 싶어서 만들게 됐습니다.

     

    임종우: 캐스팅에 관해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강애심 배우께서는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됐는지 캐스팅과 참여 과정 듣고 싶습니다.

    강애심: 저를 너무 정성껏 떠받들어서(웃음) 찾아와주셔서 저는 감사하죠. 매체 연기를 많이 안 해봐서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고 정말 즐겁게 촬영했어요. 저는 연극을 오랫동안 했는데 보통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은 매체가 어렵고 쑥스럽기도 하고 분위기가 적응하기 어렵다고 하는데요. 굉장히 편하게 깔깔깔 웃으면서, 내용은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재밌고 즐겁게 해서 감독님께 항상 감사하고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심혜정: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공으로 출연하신 김종구 배우분도 오늘 오셨는데요.

    김종구: ‘이 영화를 하길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또 듭니다. ‘야, 이거 김종구의 대표작이다.’ (웃음) 감사합니다. 많이 와주셔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거기서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라고요. 이렇게 좋은 영화를 개봉관이 많아서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어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어 오늘 두 번째 보는데 영화가 너무 좋습니다. 심혜정 감독님, 사랑합니다. (웃음)

     

    임종우: 감독님께서 두 배우분의 매력을 얘기해주신다면?

    심혜정: 저는 배우분들 캐스팅할 때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오디션을 안 봐요. 사실 못 보는 걸 수도 있어요. 제가 오디션 진행을 잘 못 하는 걸 수도 있고, 순간을 가지고 판단하는 걸 제가 저를 못 믿어서. 대신에 공연이나 매체를 통해 제가 생각한 캐릭터를 저분이 하셨으면 좋겠다, 찜을 해놓고 제가 마음을 굳힌 다음에 직접 찾아 뵈면서 정성 들여 모시는 방식이에요(웃음). 독립영화가 조건도 좋지 않은데 기꺼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배우분들이 꽉 채워주는 영화잖아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관객 1: 영화 너무 잘 봤고요. 두 분이 춤추시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장면에서 이주여성분을 위로해주면서 그 느낌이 이 두 분이 너무 나쁜 사람도 아니고 굉장한 복잡한 심경이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거든요. 그래서 전체 영화가 다 좋았지만, 특히 그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배우분들이 그 장면을 연기할 때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애심: 영화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별로 디렉션을 안 주셨어요. 그래서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봤어요. 처음에는 선배님이 아주 유혹하는 눈빛으로 웃으면서 손을 내미셨거든요. 그렇게도 찍어봤다가 아닌 것 같아서 인간적인 연민으로 나갔어요. 심혈을 기울여서 밤늦게까지 촬영했는데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찍었습니다. 선배님께서 리드를 잘 해주셔서 편하게 찍었습니다

    김종구: 오랫동안 그 집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심혜정 감독님께서 거의 시퀀스 순서대로 영화를 찍었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너무 다행이죠. 정서가 줄거리를 따라서. 그래서 춤을 출 때 유수옥을 몰래 따라다니던 열정, 사랑이 맴돌았어요. 나는 그 장면이 참 좋아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요. 그때 심혜정 감독님께서 그런 걱정을 하셨어요. 잘못 카메라를 잡으면 남자와 여자가 나쁜 느낌이 들 수도 있으니까 몇 번을 찍었는데 감독님이 디렉션 주신 것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종우: 사실 장편 프로덕션에서는 경제적인 측면, 관습적으로 장소 순대로, 낮과 밤 순으로 섞어서 진행하기 때문에 배우분들께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영화이기도 한데요. 시간순으로 진행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심혜정: 중간중간 바뀌는 날짜는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웬만하면 시간순으로 찍으려고 했어요. 두 분이 연극 쪽에서 워낙 많이 활동하셨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이 쌓여가는 대로 찍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임종우: 이 영화를 제가 처음 봤을 때는 ‘스릴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점 가면서는 ‘블랙코미디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장르를 규정하는 게 의미 있다는 건 아니고요. 영화 분위기 전반을 잡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 장소, 색감, 앵글 등 다양한 장치와 선택이 있었을 것 같아요. 영화의 톤이나 분위기를 위해 감독님께서 주의를 기울이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각각의 공간에 색감, 느낌이 드러나게 하고 싶었는데요. 제작 여건이 좋지는 않아서 집을 통째로 빌려서 한 공간 안에서 각각의 공간이 보이는 것처럼 찍었어요. 카메라 감독님, 조명 감독님이 되게 고생하셨죠. 조명 칠 공간도 별로 없고, 카메라도 좁은 공간에서 잡는 앵글이 되게 한정적이어서 그런 거는 아쉬움으로 남는데요. 언제나 그렇지만 최고를 고민하다가 영화는 늘 최선을 선택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쨌든 그 안에서 모든 스태프가 최대한 노력을 다했던 거 같아요.

     

    임종우: 저는 간호사분이 오셨을 때 침대 앞으로 카메라를 두고 간호사분을 가운데에 두고 인물들이 배치되었던 앵글이 인상 깊어요.

    심혜정: 오늘 이 자리에 간호사 역을 하셨던 분도 오셨어요. 일어나서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과일 사던 분도 오셨고, 옆에는 음악 감독님이십니다. 곡도 사실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다 만든 곡들이에요. 약간의 뽕짝 느낌이 나면서 서정적인 느낌으로 잘 해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드립니다. 작사는 또, 잘 상상이 안 되겠지만, 영화에서는 아버지랑 땐땐한 관계로 나오는 과일 장수 큰아들 역의 김재록 배우님이 하셨어요. (웃음) 음악감독님하고 김재록 배우님하고 금주 악단이라고 노래하시는 듀오에요. 너무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임종우: 극 장편 영화 GT의 매력은 함께해주신 분들이 객석에 많이 오셔서 같이 느껴주시니까 즐거운 것 같아요. 첫 장편 영화셨잖아요. 장편 영화가 더 큰 자본과 많은 스태프와 더 복잡한 프로덕션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상황이잖아요. 장편을 경험하시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이나 특별히 재밌다고 느낀 점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재미는 항상 작업할 때마다 재미있는 것 같아요. 힘든 재미가 늘 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고요. 장편 영화를 하면서 힘든 건 제작비나 제작 여건이 좋지 않아서 함께하시는 분들을 본의 아니게 괴롭히게 되고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지속 가능한가 고민이 돼서. 좀 더 독립영화 하시는 분들이 조금 더 나은 조건에서 작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임종우: 지난 주말에 <경계에 선 네덜란드 여성 감독과 한국 여성 감독의 경향> 포럼에 참석해주신 게 기억나요. 그때도 독립영화, 여성영화, 인권 영화, 여성 감독 영화에 대해 제작환경에 대해 말씀해주신 게 기억납니다. 그때 말씀해주신 내용, 잠시 언급해주실 수 있나요?

    심혜정: 17일 토요일에 네덜란드 여성 감독과 한국 여성 감독의 경향에 대해 포럼을 했었는데요. 저는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은 훨씬 더 여성의 지위가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좋다고 했는데 여전히 비슷하더라고요. 방송, 영화 등 매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퍼센트가 적어서 깜짝 놀랐어요. 자기의 선택으로 독립영화를 할 수도 있고 주류 상업 영화를 할 수 있는데 주류 상업 영화에서 여성 감독이 많지 않았어요. 여성 감독의 성과나 여성의 서사가 흥행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애초부터 많이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영화학교에는 여성 감독들이 상당히 많잖아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다른 제작지원을 통해 많은 감독과, 많은 이야기와 함께 한국 영화가 같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2: 영화 결말에 대해 궁금해서 여쭤보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생각으로 영화 결말을 그렇게 지으셨는지 질문드립니다.

    심혜정: 마지막에 연기가 들어차면서 그 집안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저희가 노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다 삶을 산 사람들, 앞에 남은 것이 별로 없고 그들의 앞에 남은 삶은 단조롭고 별것 없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불안하고 남은 삶에 대해서 역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장치로 안개를 이용해서 안개 속에 가려진, 거기 안에서 어떻게 더 살아야 할지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임종우: 김종구 배우님과 전국향 배우님 같은 경우는 죽어가는 상황이었고 강애심 배우님이 연기하신 유수옥이라는 인물에게는 추방으로 이어지는 결말이잖아요. 두 배우분께서는 각자 마주하셨던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종구: 그냥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웃음) 마지막 장면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시는데요. 그런 상황에 젊은이와 노인네들의 생각 차이가 뭐냐는 생각을 했어요. 젊은이들은 아직 많은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에 또 다른 길을 도전할 것 같고 노인들은 오랜 삶을 살아오면서 쌓인 경험에 의해서 더 답답한 것 같아요. 저도 나이가 강창식과 거의 똑같거든요. 답답하죠. 여기서 좀 더 가면 노인 우울증에 걸릴 것 같고. 나이가 들면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뭔가를 하려면 ‘답답하다. 이제는 시도할 수 없다. 이제는 정리해야 한다. 그런 때다.’ 이런 생각들이 짓누르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래서 그 장면에서 깜깜한 집안에 자욱한 연기가 드러나는데 자기가 계속 앉아있던, 내가 눌러앉아 있던 방석으로 겨우 연기를 쫓아내잖아요. 오브제가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웃음)

    강애심: 저는 새드엔딩도 싫어하고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생각하면 이건 열린 결말이지 안개 속에서 사라지듯이…… 불 난 거 아니잖아요. 사골만 태운 거예요. 일주일 지나면 냄새도 없어져요(웃음). 저도 추방당한다고 해서 정치사상범으로 몰려서 시베리아 감옥에 가는 건 아니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예요. 새로운 정국을 맞이할 수도 있고 저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야지 기분이 좋으니까.

     

    관객 3: 영화 크게 흥행하리라 생각하고요. 2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화가 상영될 때 객석에서 웃음이 많이 났는데 그게 연출하신 부분이었는지, 연출 의도와 관객들의 반응에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고요. 두 번째는 영화가 매우 다층적인 텍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인 문제도 있고 이민자 문제도 있고 여성과 남성의 문제도 있고 복합적으로 잘 융합되어있는 텍스트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영화제가 젠더에 관한 것이니만큼 젠더에 관해 질문을 드리자면 영화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게 여성인데 또한 가족이라는 구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여성인데 가족을 지키고 있는 것도 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의도하신 부분인지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심혜정: 웃으신 장면은 제가 의도한 부분도 있고 배우분들이 웃음의 감각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리딩하고 촬영하면서 포인트를 캐치를 잘해주셔서 그런 부분이 관객분들과 호흡이 되는 것 같아요. 여성 문제에 관해 얘기를 하자면 돌봄 노동이 너무 중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집안에서 돈을 버는 임금노동자가 주된 노동자로 중요한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비치고 딸 가족도 중산층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그렇게 보이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촘촘하게 안에 넣고 싶었어요. 오빠는 오빠의 콤플렉스를 얘기하지만, 사실은 돌봄 노동에서 벗어나 있고 오히려 며느리가 미안해하고 주눅 들어 있고 쩔쩔매잖아요. 돌봄 노동이 집 안에서 여성의 몫인 것처럼 여겨지고 남자는 뒤로 많이 빠져있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임종우: 영화에서 주된 인물로 4명의 여성이 세워져 있잖아요. 병실에 누워있는 나길순부터 유수옥, 강지수, 며느리 이 4명이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보편은 무엇인가? 한 명은 이주여성이기도 하고 한 명은 노인이기도 하고 경제적인 상황도 다르고 내부의 차이도 있는데 여성으로서 커넥션이 되는 보편은 무엇이고 그 안에서 생긴 차이들은 무엇인가. 저는 그런 부분들을 집중해서 봤던 것 같습니다. 또 의견 나눠주실 분 계신가요?

    관객 4: 저는 관계에 집중해서 영화를 봤는데요. 한 사람의 죽음이 굉장히 자연스러운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가족 안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10대 딸이 나오는데 10대 학생과 노인의 대비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거든요. 죽음이라는 게 나이와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10대 학생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아요. 그런 관계들을 되게 촘촘하게 그려내서 이게 여성 감독의 힘인가 생각했습니다. 미라에 관해 얘기를 해주신다면?

    심혜정: 다양한 연령층의 여자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캐릭터를 설정했는데요. 10대의 여성은 엄마나 이전 세대의 행동을 어렴풋하게 보지만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미라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싸우고 다투잖아요. 흔히들 “딸은 크면 엄마 편이야”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왜 그런 이야기를 쉽게 할까 생각해봤는데 여성적 경험이 그 사람을 공감하게 하는 거 아닐까? 어렸을 때는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여성적 공감,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가장 어린 10대는 그 관계 안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한 발 빠져서 보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관객 5: 강지수라는 인물이 부모와의 갈등, 자식과의 갈등, 남편과의 갈등이 많이 다뤄지고 그만큼 감정선이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히 연출하고 싶었던 캐릭터의 특성이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심혜정: 지수가 제 세대여서 더 많은 고민이 녹아있었던 거 같아요. 부모님 때문에 고민하고 집안의 애들도 있고 그런 세대 고민이 제 또래다 보니 현실적인 결들이 더 많이 들어오게 된 것 같아요.

     

    관객 3: 가장 복합적인 인물 중 하나가 강창식이었을 거 같아요.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두고, 본인도 노인으로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또 가부장제 안에서 권력자이기도 하잖아요. 대본을 처음 받으셨을 때 느낌과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하셔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어서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종구: 인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인간상이기 때문에.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잘 해주셔서 괜찮았습니다. 계속 찍으면서 강창식이라는 인물이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애들하고 싸울 때 가부장적인 남성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너무 심하지 않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끝맺음을 잘해서 그래도 나쁜 남자가 안 된 것 같아요. 강창식이란 인물이 저랑 잘 맞아요. 나쁘지 않아요. 연기할 때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나 같았습니다. 물론 저를 만나기 전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는데. 그만큼 강창식이란 인물에게 보편적인 남성 서사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 같기도 하고 삼촌 같기도 한 인물을 잘 뽑아내셔서 저도 굉장히 편하게 연기했어요. 그런대로 강창식의 삶이 괜찮았고,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따귀 때리는 장면은 저도 감독님과 싸워볼걸, 안 때리고 싶다고 말해볼 걸 그런 생각이 오늘 들었습니다. 제 손이 부끄러웠습니다.

    강애심: 때리셨기 때문에 나중에 지수랑 며느리가 ‘헤엑’ 하고 놀랄 때 큰 웃음을 주셨어요. 안 때리셨으면 그 장면이 안 나왔을 거예요.

    임종우: 지금 언급하신 것처럼 장면을 만드는 데에서 배우분들과 의견 차이가 있었는지, 협의해나가는 과정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시나리오를 많이 고치지는 않았고요. 같이 사전에 리딩하면서 톤을 맞췄기 때문에 촬영할 때는 그런 거로 얘기하지는 않았어요. 기술적인 부분에서 NG가 났지, 연출적인 거는 그 전에 다 맞춰서 괜찮았습니다.

     

    관객 3: 강지수가 끝까지 억누르고 참잖아요. 저는 언제 한 번쯤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끝까지 일부러 삼키는 거로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제목이 <욕창>이잖아요. 물리적인 질병, 욕창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꼼짝 못 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주 노동, 돈, 사랑, 콤플렉스 등 각각의 이유로 움직이기 쉽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요. 아마 강지수가 터트릴 수 있었다면 남편의 바람부터 해서 그 전에 터트렸을 거예요. 히스테리컬하고 가족들 안에서 날을 세우지만 정작 자기가 가진 기반, 위치 자체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렇게 설정했고요. 대신에 엄마에게 마지막에 위로받는 장면으로 나타냈습니다.

     

    김현아: 강창식이 동네를 산책할 때 등장하는 할아버지들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강창식이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떨떠름하게 보다가 두 번째는 피해서 반대 방향으로 가잖아요.

    심혜정: 실제로 우리 동네에 그런 분들이 있었어요. 풍 맞아서 동네를 도는데 점점 상태가 좋아지는 걸 제가 마주했었고요. 이 영화에 그분을 넣었던 건 죽음을 상징하기도 해요. 피하고 싶지만 맞닥뜨리게 되는. 그런데 사실 요즘에 두려운 거는 점점 몸이 안 좋아지는 게 아니라, 나이 드신 분들이 점점 몸이 좋아지는 게 두렵지 않나,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게 더 두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인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얘기하고 싶었고 노인 문제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임종우: 끝으로 영화에 대한 소회를 나눠보겠습니다.

    김종구: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 배우가 참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강창식이라는 인물이 괜찮았어요. 마음에 들었습니다

    강애심: 좋은 배역을 맡은 것 같아서 저에게는 행운이었고요. 영화 직전에 제가 삭발하고 비구니 스님 역할을 했었어요. 그래서 영화에서 머리가 가발이었는데 눈치채셨나요? 비밀을 하나 말씀드렸습니다(웃음).

    심혜정: 긴 시간 봐주시고 좋은 얘기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요. 다른 곳에서도 여러분들을 만나 뵐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시고 감사합니다.

     

    임종우: 심혜정 감독님과 두 배우님께 꾸준히 관심 가져주시고요. 영화 <욕창>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네마프는 24일까지 열리니까요. 다른 전시들도 많이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 GT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 김민주 루키

     
    사진 │ 최예준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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