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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LECTURE] 큐레이터 토크 <역사는 지금, 네덜란드 디지털 아트의 미래>
    NeMaf 조회수:3435 추천수:8
    2018-08-20

     

    19, 인디스페이스에서는 LIMA 소속 큐레이터 사네케 하위스만의 큐레이터 토크 <역사는 지금, 네덜란드 디지털 아트의 미래> 가 열렸다. 사네케 하위스만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신의 미술사 학자로, 현대미술과 미디어아트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는 평론가, 작가이기도 하다. 또한 네덜란드 미디어아트 기관 리마(LIMA) 소속의 큐레이터로서 미술 잡지 <네크로폴리탄 N> 에서 미디어아트에 대한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사네케 하위스만은 큐레이터 토크를 통해 네덜란드 미디어 아트의 역사와 LIMA의 활동을 소개하는 한편, 미디어아트의 미래에 대해 관객들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History is now. The future of media art in the Netherlands. Sanneke Huisman, 2018

     

    사네케 하위스만: 안녕하세요, 사네케 하위스만입니다. 저는 미술 사학자, 예술 비평가이자 LIMA 소속의 큐레이터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문화적 문제(Cultural Matter)' 라는 일련의 전시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해볼 겁니다. '디지털 아트의 미래는 네덜란드에 있다' 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이죠.

    이 주제에는 몇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단순히 미디어 아트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디지털 아트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 미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혹은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 디지털 아트를 어떻게 네덜란드에 한정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까 하는 과제들이죠. 오늘 이 과제들이 만들어내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디지털 아트의 미래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주로 말씀드릴 내용은 LIMA와 관련된 것입니다.

    LIMA가 설치된 해는 2013년입니다. 그 이전에는, 새로운 미디어인 '디지털 아트' 를 지원해주는 MonteVideo 센터가 있었습니다. MonteVideo 1993년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되면서, 이후 LIMA까지 생길 수 있었던 것이죠. 1993년 당시 비디오 아트는 새롭게 나타난 장르였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동시에 관련 지식도 필요로 했습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의 문화적, 사회적 분위기와 지원 덕분에 많은 예술가들이 암스테르담으로 모이게 되었는데, MonteVideo는 이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미디어 아트들, 그중에서도 비디오 아트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일은 MonteVideo가 책임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이후에는 미디어 퍼포먼스 중심의 다른 여러 기관들이 합쳐지며 Netherlands Media Art Institute 라는 기관도 생기게 됩니다. 이 기관이 2012년에 문을 닫으면서 LIMA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던 것이죠.

    실험적인 아트 위주의 Steim, 불안정한 미디어를 다루던 V2 라는 기관도 있습니다. 여러 예술가들이 복잡하고 기술적인 설치 예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죠.

     

    저희 LIMA는 여러 가지 비디오 아트들을 보급, 상영, 관리해주는 일을 합니다. 이 중에서 오늘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스크린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입니다. 비디오부터 시작해서 DVD, 인터넷 상 화면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장르죠. 저장 매체는 다양하지만 결국 스크린이 있어야 상영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LIMA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을 봐 주세요. 이처럼 스크린 기반 미디어는 캔버스 위에 그리는 2차원적인 예술과 대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를 생각해보면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이를 현상 또는 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들고자 했죠. 이후에 이런 시도들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이제는 미디어에서도 2차원에서 발현될 수 있는 작품들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가 추상적으로 발전해왔다면, 이제는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가 주된 고민거리가 된 것입니다.

    비디오의 경우, 사진들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사진들이 동시에 보여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예술가들은 다큐멘터리 또는 미디어 자체의 특성이나 사회와 관련된 요소들을 찾아내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순수예술의 반대 속에서도 사진술이 발전해온 것처럼, 이 분야도 비슷하게 발전해온 것이죠.

    스크린 기반 미디어 아트는 1990년대 들어 더 복잡해졌습니다. 새로운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출현하면서 우리에게 닥쳐온 과제는 '소재의 문제' 입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이, 기존의 예술 안에서 다뤄지지 못하고 별도의 다른 예술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디지털 아트라는 소재가 실재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다루기 위해서 저는 여러 작가님과 함께 Cultural Matter라는 전시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소재를 다루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측면에 영향을 끼치는지의 두 가지 측면에서 작품들을 고민하면서 말이죠.

     

    이제 미래에는 어떤 것들을 다루게 될까요? 우선 저는 미디어 아트의 미래가 아주 밝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디지털 아트라는 것은 이제 사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예술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활동들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Olia lialina 작가가 대표적입니다. 인터넷의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는 동시에, 기술 뿐만 아니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해 매우 시적으로 표현하고 계시죠.

    디지털 아트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책임' 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작품을 보는 입장과, 인터넷을 활용하고 사용하는 입장 사이에는 각각의 책임이 있습니다. 광범위한 장르와 프로젝트들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미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아트는 아방가르드와 같은 여러 장르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 뿐만 아니라, 사회적·역사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고민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관객 1 : 전통적인 예술에 비해서 미디어 아트가 가지고 있는 표현적인 문제는, 지금 시대에 우리가 갖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경험을 계속해서 유지시켜 나갈 수 없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품들을 이전과 같은 형태로 보존, 관람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미디어 아트 작품의 보존에 대해서는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나요?

     

    사네케 : 말씀하신 것처럼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보존하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LIMA의 주요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와 관련된 논의를 해왔고, 당시의 환경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록적인 측면에서도 이때 당시 만들어졌던 똑같은 세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spirit을 추출해서 저장하는 것 역시 중요하겠죠. 선진적인 기술에 포인트를 둔 경우에는 작품이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을 때도 해당 기술의 컨셉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예술가들과 계속 논의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작품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겠죠.

     

     

    관객 2 : 미디어 아트와 관련된 기관들에 대해 얘기해주실 때, V2가 불안정한 미디어를 다루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것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네케 : 작품의 보존과 연관성이 있다고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미디어 아트 자체가 정형화된 유형, 소재,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장르입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그 작품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따른 문제가 항상 뒤따라오죠. V2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원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공간 설치 작품, 로봇과 관련된 작품 등을 다루죠.

     

     

    관객 3 : 네마프 또한 LIMA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네덜란드와 한국의 상황이 다른 만큼, 한국에서는 미디어 아트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 일반 관객이 와서 즐기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아요. 네덜란드에서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사네케 : 사실 네덜란드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미디어 아트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죠. High-End 아트의 경우 언제나 이런 문제들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 아트 같은 경우는 기술적인 장애물을 극복해야한다고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요. 저희 LIMA에서는, 모두가 항상 미디어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고 싶어요. 두려워하지말고 나가서 즐겨보시라고 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기록 | 전동현, 이혜은 루키

    사진 | 김진우, 지서영 루키

  • [2018] [GT] 한국 단편 6: 젠더와 네러티브
    NeMaf 조회수:3075 추천수:5
    2018-08-20

    8월 20일 오후 7시 30분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한국 단편6: 젠더와 내러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꽃과 거짓말>, <관찰과 기억>,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 <통금> 이 상영 되었다. 이어진 GT 시간에는 네 작품의 감독이 모두 참석하여 관객과 함께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활발히 의견을 나누었다.

     

     

     

    설경숙 : 네 작품 모두 다른 형식으로 된 작품들이지만 전부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사회적 미명 하에 여성의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기제들을 말씀하고자 하는 작품들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먼저 감독님들께 한 질문씩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꽃과 거짓말> 감독님께, 영화 속에서 성관계에 대해서 흔히 나를 속이고 있는 말이라는 걸 자주 듣게 되는데. 성관계에 있어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계속 꽃을 보여주셨는데요. 꽃과 나비, 수동적으로 수정하는 꽃의 입장을 보여주시면서 상투적인 성관계 속의 젠더 역할을 뒤집고 그 안의 거짓말을 보여주셨어요. 꽃을 여성이라고 표현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심혜정 : 꽃이 성기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의미도 있었구요. 공동작업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꽃의 생존 방식은 성기를 드러내는 방식인데 수동적이라고 보이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거죠. 우리도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거짓말이지 않을까, 거짓말이 어떻게 왔다갔다 하는걸까 하는 말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설경숙 : <관찰과 기억> 은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둔 작품이신가요? 작품의 동기가 궁금합니다.

    이솜이 : 네. 실제 기반이구요. 다큐멘터리임과 동시에 실험을 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 시나리오화 되었을 때 캐릭터화 되고, 터트려야 하는 서사적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겪은 것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파편적인 것 같아요. 기억하고 잊는 것을 계속 반복하게 되니까요. 한 공간 안에서 다른 것들이 혼재되고 있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서 만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설경숙 :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는 어머니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이는데. 어머니의 고통에 대한 대물림을 이해하고자 한 시도라고 보여지기도 해요. 작품 이후에 변화된 것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조한나 : 서로 거리를 이해하는 것들이 저는 전보다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서로에 대해서 모르고, 이해를 못했다면 지금은 나쁜 말이지만 알고 하는 말이잖아요. 다만 전 화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전에 있던 좋은 상태로 돌아가는 게 화해인데, 일단 이전에 좋은 상태가 없었고, 돌아가려고 해도 이전의 상처가 있으니까요.

     

     

     

    설경숙 : <통금> 작품은 많이들 웃으셨던 작품인데요. 친구끼리 대화를 하면서 통금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심헤정 작가님과의 작품과도 분위기는 다르지만 상통하는 게 있었어요. 사회적인 거짓말들, 보호라는 이름의 억압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이 인상적이었죠. 대화 장면에서 무언가 먹으면서 진행하신 면이 식욕을 표현한 부분인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소람 : 사실 의도하지는 않았어요. 같이 인터뷰를 해주는 친구들이 고마워서, 뭐 좀 먹으면서 하자라고 했던 건데 정희진 작가님의 문구와 맞으면서 그렇게 이해되었던 거 같아요.

     

     

     

    관객1 : 저는 영화 동시녹음 일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남들에 비해서 체격이 큰 편이라 저 스스로는 밤거리가 무섭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보다 키가 작은 남자인 친구들은 밤거리를 오히려 무서워하고는 해요. 그래서 저는 느끼지 못하지만 많은 여성 분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보통의 남성분들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제 친구가 느끼는 두려움이 완전 다른 성질의 것인가, 저는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소람 : 모든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지만 성폭력의 1차 피해자는 여성인데요. 여성이 성폭력에 가장 먼저 피해자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밤거리를 무서워하는 공포는 모두 공유하겠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밤거리에 대한 무서움에 더하여 내가 성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나타나지 않나, 여성들의 공포란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되어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관객2 : <꽃과 거짓말>에서 꽃 장면들이 계속 나오는데요. 중간에 꽃 이외의 물결도 보이고, 엔딩장면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장면을 선택하셨어요. 저는 소극적이던 욕망이 분출되고 터져나오는 것으로 느꼈거든요. 작품대로 표현하자면 저도 터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구요. 어떤 생각으로 연출하셨나요?

    심혜정 : 다른 작품에선 하나하나 공들여서 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흐름 위주로 구성했어요. 말이랑 어긋나거나 유사하거나 하는 것들을 이미지와 섞으려고 노력했었어요. 마지막에는 젖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게, 누군가에게 무언가 제공하기도 하지만 자기 몸에서 스스로 차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성적 욕망과도 같다고 의미하고 싶었구요. 엔딩에서는 스스로의 쾌락 뿐만 아니라 세상이 모두 촉촉하게 젖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넣었던 것이었습니다.

     

     

     

    관객3 : <관찰과 기억> 감독님께 질문 드립니다. 봤을 때 한번에 파악되지 않는 편집 방식인 것 같아요. 그래서 두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분열적인 편집 방식이라고 느끼기도 했구요. 마지막에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에서 어떠한 분위기나 느낌으로만 남아있다는 그 구절에 맞게 정말 감각에 맡겨서 편집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 구성과 기획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솜이 : 편집이라는 건 어떻게 직감적으로 느끼신 것 일수도 있는데, 저도 찍는 내내 ‘이게 나왔으면 좋겠다’ 가 확실하진 않았어요. 낚시하는 것처럼 제가 일했던 학교에 가게 됐고, 거기서 동네 아이들이 카니발 페스티벌을 구경하는 장면을 우연히 마주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장면 하나하나는 제가 한 공간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닮아있을 때 제가 푸티지로 채집한 것이구요. 맨 처음 가족끼리 소풍간 그곳이 정말 즐거워서일 수도 있고 정말 우울해서일 수도 있다는 거죠.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계급적인 감정들이 느껴진다는 게 편집과정에서 많이 드러난 거 같아요.

    김애란 작가님의 텍스트를 말하셨는데, 증거는 없지만 표정이나 양식으로 남아 있다는 거죠. 그 사람의 표현, 분위기와 양식이 가지고 있다는 걸 함의하고 있고요. 김애란 작가의 텍스트 자체가 젠더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텍스트가 아니고 권력적, 위계적인 질서 안에서 교통 사고가 난 상황에서 정교수가 임시 교수에게 ‘너가 했다고 하면 안되냐’ 라고 말해서 덮어쓰고 밀려나는 이야기거든요. 그런 권력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싶었고,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서 언제, 어떻게, 왜가 아니라 펑퍼짐하게 펼쳐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경숙 : 남성 관객분이 질문해주셔서 감사하네요. 남성들에게 어떻게 전달이 되는가도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관객4 : <관찰과 기억> 감독님께 질문 드립니다. 지금 진행중인 많은 사건이 그러하듯이, 실제 원인이 되었던 문제들도 해결이 안된 채로 자신의 희미해지는 기억만으로 해결 해야 한다는 것을 영화적으로 복기하신건지 궁금합니다.

    중간에 현실인지 기억인지를 섞어둔 장면들이 있고, 직접적인 묘사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스크린만을 보고도 느껴졌는데요. 영화 자체가 기억과 함께 존재하는 데에서 심리적인 영향을 어떻게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이솜이 : 복기하기에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죠. 제가 스무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알바를 했던 때였어요. 거의 9년 넘는 시간이 흘렀구요. 당시에는 직접적으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제도화된 것이나 어떤 운동 조차도 없었습니다. 이게 내가 정말 예민한 것인가하는 자기반성적인 복기와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것들이 진짜라고 이야기하고 성추행이라는 완전한 단어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다시 보면서 뭐가 빠졌을까를 생각했어요. 이게 무엇이다, 라는 말이 없더라구요. 그때 저 혼자서 인터뷰 장면을 진행해서 오프닝장면으로 집어넣었고, 2018년도 작업이 끝난 것이죠.

     

     

    관객5 : <관찰과 기억>에서 남자 아이들이 놀면서 쿠폰이 있어야만 놀 수 있다면서 전개가 되는데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넣으신 거 같은데 장면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지, 다른 무언가에 연계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솜이 : 둘 다 맞구요. 그때 아이들과의 서사적인 사건들이 있었는데 뺐어요. 그 학교 학생이 아니면 잔디깔린 운동장에서 놀지 못하는 그런 학교에서, 제가 학교 직원이기도 했지만 관찰과 제지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거든요. 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계급화되어 있는 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지를 고민한 장면입니다.

     

     

     

    관객6 : 조한나 감독님 작품을 보면서 쭈삣쭈삣 서는 경험을 했는데요. 애니매이션 연출하면서 어떤 연출 방향이 있었다거나 에피소드,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는지요?

    조한나 : 저는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거나 누군가에게 배운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애니매이션으로 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그 과정이 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프레임마다 1/3씩 그려가는 게 저에게 고통을 주었는데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던 거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기도 했구요. 번역 말고는 혼자 그린다는 것, 그냥 이게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설경숙 : 어떤 상처나 기억을 말이 아닌 방법으로 혼자 풀어오셨고. 어머니와 말로 대화하는 방법을 병행하셨는데, 영화에 나오는 상형문자들이 실제로 만드신 글자 같거든요. 말이 아닌 방식으로 대화 했던 것과 내면에서 어머니께 많이 표현했던 것. 그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떻게 느끼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한나 : 저는 인터뷰를 처음 시작하면서 느꼈던 게, 어머니 앞에서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이라는 거였어요. 용기있게 한마디도 못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상형문자도 그 문자를 만들어서 일기를 썼고, 그 안에는 욕도 많이 담겨 있었어요. 사실 인터뷰하는 과정 내내 이걸 말로 인터뷰로 풀어내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엄마가 인터뷰로 들려준 말에 대한 대답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거 같아요.

     

     

    관객7 : 조한나 감독님 영화 보면서 많이 공감했습니다. 일단 저는 어머니와 말을 많이 하려고 하고, 옛날의 힘들었던 일을 풀어내려고 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렇지만 아직도 힘들어요. 어머니도 모성애를 강요 받아 살아 오셨다 보니 힘든 방향으로 진행한 거 아닌가, 저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해요. 그래서 도망쳐 나오고 거리를 두려고 계속 반복합니다. 대화를 하려고 할 때마다 ‘아 잘못된 선택이었구나, 계속 거리를 둬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머니가 사회적으로 정해준 모성애를 받았듯이 저도 첫째 딸로써의 역할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거든요. 거리를 두고 싶고 독립하고 싶지만 딸로서의 역할도 느끼면서 어머니에게 다가가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조한나 : 제가 느끼기에 딸로서의 역할은 가족에게 딸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모성애, 여성성를 대물림받는 가장 큰 존재로서의 역할인 것 같아요. 미래의 엄마가 될 사람이 바로 저인 거에요. 여성성이 나약한 느낌이 아니라 더 강하고, 아픈 것이 아니라 나약한 거라는 그런 바라봄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게 좀 두려운 거 같아요. 대물림 된다는 것이, 다큐멘터리 속 느낌처럼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항상 다짐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알 수 없는 운명을 강요받는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요.

     

     

     

    설경숙 : 작품들을 보면서 제 안의 거짓말을 대면하게 되고, 내면의 관념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이솜이 : 좋은 질문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준비중인 작업은 큰 단어로 이야기하면 ‘군대’, ‘트라우마’ 이구요.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젠더적 이분법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권력적 매커니즘 안에서 풀어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요.

    조한나 : 저는 뭘 할지 잘 모르곘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처음이어서 많이 떨렸는데요. 감사합니다.

    심혜정 : 함께 상영한 다른 작품들이 다 좋아서 재밌게 봤어요. 저는 <욕창>이라는 장편작품을 하나 편집 중이구요. 많이 기대해주시고, 네마프도 응원하겠습니다.

    김소람 : 저는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요. <통금> 막 끝냈을 때는 워킹맘, 모성애, 경력단절 여성 같은 ‘어머니’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인터뷰 섭외가 어려웠어요. 요새는 피해자다움과 정조에 대해서, 화나게 하는 그런 단어들을 찢어버리고 싶어서 시도 중입니다.

     

     

    기록│ 이혜은, 전동현 루키

    촬영 │ 지서영 루키

  • [2018] [GT] 뉴미디어대안영화 장편 <기억의 소리>
    NeMaf 조회수:2341 추천수:3
    2018-08-20

    8월 19일 오후 7시 30분,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된 [뉴미디어대안영화 장편] <기억의 소리>가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임창재 감독 진행 아래 이어진 GT시간에는 이공희 감독이 참석하여 관객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독님은 70년대부터 활동을 하셨습니다. 꾸준히 작업을 하며 관객들과의 만남도 가지고 있으신데요.

    이공희: 대학생 때부터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 당시에는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과 학생이 없었어요. 저는 문학을 했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제 작품 스타일은 1920년대 유럽의 전위예술가,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영상시, 시네포엠 형식의 영화들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계속 영화와 영상을 만들어 내고 탐구하시는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기억의 소리> 기획의도와 배경 궁금합니다.

    2010년에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에서 기획공연으로 미디어퍼포밍아트를 공연하면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고 ‘기억의 소리’라는 제목과 도마질 소리가 떠올랐고, 떠오른 것을 바탕으로 무의식을 따라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며 느껴지는 것은 스토리텔링보다는 무의식의 혼재가 관객들을 어지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생이라는 주제도 다루었는데 극영화 <신과 함께> 등이 유행하는 시대이다 보니 좀 더 이해가 수월할 것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어린시절 장면을 추가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제가 만든 단편 실험영화 <거울>, <착시렌즈> 영상을 부분적으로 삽입하여 소재와 이미지를 확장시켰습니다. 사람의 무의식 속 원죄를 논하고 싶었고, 인간 속에 있는 트라우마가 단순히 어린 시절에서 온 것도 있지만, 영화 속 동굴이라는 코드처럼 전생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넣게 되었어요. 과거의 생은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해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고 상업적인 코드는 전혀 넣지 않았어요.

     

     

     

    관객1: 요즘 디지털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는데, 화면이 독특하고 편안하고 질감이 깊었습니다. 디지털 영화 하고 다른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35mm 필름 영화예요. 저는 필름세대이며, 필름이 인간적이고 아날로그 적이라고 생각해서 필름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질감 차이로 보았을 때 디지털은 너무 가볍고 스마트한데 필름은 확실히 질감이 깊어요. 경상북도 청송군의 주산지 일대에서 촬영을 하였는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인물의 심리와 어울려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여건이 너무 안좋았어요. 시간과 예산이 충분했더라면 자연과 풍광을 많이 담았을 텐데 그런 점에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관객2: 주인공을 외로움 속에 가둬놓고 빛을 못 찾게 하는 것이 관객으로서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주인공인 감독이 비극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끔찍하다고 느껴졌는데요. 상업영화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빛이 있었으면 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둠이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속편을 제작하게 된다면 빛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관객3: 영화 속 ‘감독’ 역할이 스토리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점성술사’의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을 보면서 감독을 초월하는 존재 같다고 느꼈습니다. 점성술사는 감독을 초월하는 존재인지 아니면 단순히 맥거핀인건지 궁금합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감독의 맥거핀으로도 볼 수 있고, 또는 점성 술사를 통해 윤주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감독이 할 수 없는, 인간적으로 보듬는 캐릭터로도 볼 수 있어요. 윤주의 불안과 카르마를 끄집어내기위해 자연스럽게 점성술사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관객4: 아역으로 나온 배우들은 추가된 장면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역배우들에게 메소드의 연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어색해서 아역들이 나올 때마다 몰입도가 깨졌습니다. 아역에 대한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의 주제를 이해시키기가 어려워서 장면에 대한 기초내용만 알려주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텔링화를 위해 추가된 부분이었고, 관객의 이해를 위해 넣었는데,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웠고 좋았다는 평들이 많았습니다.

     

     

     

    관객5: 카르마라는 요소가 나오는데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답을 주지 않고 관객의 몫으로 남겨 놓았는데 카르마와 윤회, 전생이 작품 속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둘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생과 윤회에 대해 믿고 있고,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습니다. 깊이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관객6: 동양적인 운명에 대한 메시지와 음악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일반 대중화된 영화보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불교와 샤면틱한 색채를 더욱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관심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샤머니즘에 매료되었고 작품의 배경인 청송과 어울리기에 이러한 방향을 택했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밝은 작품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관객7: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엔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모범 답안이겠지만 하나의 주제를 관철하다 보니 어두운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주제를 탐구하는 것을 앞으로의 과제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객8: 눈이 머는 자매를 보며 ‘오이디푸스 왕’이 떠올랐습니다.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루는 것 같은데요.

    고려한 부분은 아니구요. 본래는 40분짜리 중편으로 생각해서 만든 작품이었어요. 시각에 대한 것만 고려하고 기획했는데 장편으로 변경되면서 내용이 확장되어 추가된 설정입니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점점 달라지는 부분이 생겼어요. 눈의 상처는 심리적인 상처로 기억과 환청과 연결되는 매개체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자본만 있다면 제가 가진 능력에서 마음껏 펼치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영화와 문학을 접목시키는 ‘시네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글을 쓰고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데, 시네포엠, 시네 에세이 장르로 뉴미디어 대안 영화의 제작에도 또다른 접근을 하고 싶네요. 또한  영화 <기억의 소리>를  연극, 춤, 영상과 함께 융복합 공연으로 무대에  새롭게 올리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주제와 표현을 보다 감성적으로 형상화시켜서 관객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런 방식들이 훨씬 폭넓은 대중성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록│ 이혜진, 홍수진 루키

    촬영 │ 전해라, 지서영 루키

  • [2018] [INTERVIEW] 오재형 감독, 이선태 배우
    NeMaf 조회수:3026 추천수:6
    2018-08-20

     

     2018년 8월 19일 오전 11시 인디스페이스 라운지에서 21일 상영과 GT를앞두고 있는 <봄날>의 오재형 감독, 이선태 배우를 만나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영화 <봄날>의 기획 의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5.18 기념재단에서 해마다 기념 음반 제작을 하는데 올해는 특별하게 영상이랑 같이 제작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뢰를 받았어요. 마음대로 만들어도 된다는 조건이어서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그렇게 되었지만 저도 고향이 광주이고 부모님도 5.18과 연관이 있으셔서 언젠가 한 번 다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음악도 직접 만드신 건가요?

     

    음악을 만드신 분은 류형선 음악 감독님이시고요. 그분이 음악을 맡고 제가 뮤직비디오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댄스 필름 형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같이 만들어갔어요. 음악을 조금 보내주시고 저도 해당 부분을 구상을 하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본인이 늘 하고 싶으셨던 실험적인 음악과 국악 베이스로 연결을 하셔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습니다.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 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5.18에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이 문제에 관련해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인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어요. 형식은 댄스필름에 대해 관심이 있어 늘 염두해두고 있었구요. 소설 속 여러 군상을 끄집어와서 하나의 무형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용가 섭외와 안무는 도움주신 분이 따로 계셨을까요?

     

    캐스팅은 제가 하고 디렉팅은 무용수분들께 맡겼습니다. 음악만 던져주었기 때문에 그분들은 안무가이자 무용가로 참여를 하게 된 거에요. 무용가 섭외의 경우, 이선태 배우는 작년 이맘 때 쯤에 인디포럼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출연하셨던 작품을 보고선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하이경, 천현아 무용수는 선태 씨가 소개해준 무용가였고 김수진 무용가는 제가 원래 알고 지냈던 무용수여서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왜 수어라는 매체를 이용하였나요?

     

    장진석 선배님은 여러 독립영화제 개막식이나 폐막식 때 나와 수어 통역을 많이 하시는 분이에요. 여러 영화제를 통해서 자주 봤었는데 언젠가부터 제가 그분의 손짓이나 표정을 엄청 집중해서 보고 있더라구요. 작품을 구상하면서 생각이 나서 섭외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어 통역사라기 보다는 한 명의 퍼포머로 섭외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수어의 내용은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으로 아들을 회상하면서 독백을 하는 부분인데 감정이 가장 격한 부분이에요. 제가 낭독을 하고 그분이 수어 통역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 선배님이 쌍둥이를 출산하셨을 때라 감정적인 연기를 하는 게 힘드셨다고 하더라구요.

     

     

     

    늘 국가 폭력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배경,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나요?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하면, 저는 원래 미대를 나와서 자연을 그리고 있었는데 2012년에 제주도 강정마을을 알게 되었어요. 거기 내려가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구나, 이게 국가폭력이라고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세월호가 터지고, 사회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용산 참사 등 국가 폭력에 대해 유심히 지켜보면서, 나가서 활동가로서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작가로서, 작품으로서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학도인데 어떻게 춤과 몸짓에 대한 영상을 다루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댄스필름’이라는 장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어요. 국내에서도 생소한 장르였구요. 그러던 중 무용가이시기도 한 김수진 씨가 네마프에서 연출자로 상영한 댄스필름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 많은 감명을 받아서 5.18 작품에 시도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저만의 해석을 더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고 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장르가 있나요?

     

    애착이 가는 장르는 당연히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예요. <보이지 않는 도시들> 같은 경우가 제 정체성과 가장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도 그리고 연주도 하고 영화도 찍는다고 해주셨는데 독립적으로 보면 굉장히 아마추어예요. 영상도 전공한 게 아니구요. 이걸 다 합쳐 놓으면 제가 된 것 같아요. 대학교 때부터 영상도 관심 있었고,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작가들처럼 다방면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촬영하면서 가장 많이 고려했던 것이 있나요?

     

    영화에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후반부의 투사씬입니다. 새벽 3~4시쯤 휴대용 발전기를 이용해 빔프로젝터와 카메라를 동시에 들고 찍었었어요. 그게 아무도 없는 광주에서 영상을 투사했는데 마치 제가 광주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 같았어요. 도시를 위한 씻김굿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앞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주제나 작업 계획이 있나요?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그 작품들을 모아서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합니다. 또 제가 만들었던 영화를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로 옮겨볼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아예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인데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을 기반으로 도시 하나하나를 만들고 있고, 한 달에 한편씩 유튜브로 올리고 있습니다.

     

     

     

     

    이선태 배우님께 여쭤봅니다. <봄날>을 촬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선태: 인디포럼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무용계에서는 댄스필름을 찍어줄 분이 없어서 참여할 기회가 없었는데 운 좋게 기회가 되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시놉시스를 받기도 했나요?

     

    이선태: 시놉시스보다는 <소년이 온다> 책을 받았었습니다. 정독을 하지는 못했지만 캐릭터 잡는 등 연구하는 데는 충분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어떤 캐릭터를 맡으셨나요?

     

    감독님: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20-30대 정도의 남성에 투영해서 역할을 디렉팅 했습니다. 구체적인 인물을 지시하지는 않았어요.

     

    이선태: 연기가 아니니까 디테일한 캐릭터 분석은 하지 않았어요. 감정 상태에서 나오는 움직임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을 했고, 과거에 있던 트라우마에 의해서 사소한 소리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연기를 했습니다. 과거의 아픈 시간 속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땠을까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상처 속에 들어와 계속 괴로운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 집중을 하고 공간과 관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안무도 전적으로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선태: 제작한 음악을 보내주시고 저는 안무를 한다는 개념이었어요. 정확히 안무를 사전에 짜서 한다기보다는 나름대로 음악 속 파트를 구분 짓고 움직임의 원리나 방법을 바꾸어서 진행했던 것 같아요. 공간이 주는 힘이 강해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바꾼 것들도 많았습니다.

     

     

     

    연기, 댄스필름,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선태 : 무용계에서는 작년에 댄스필름이 처음 시작되었어요. 제가 댄스필름의 씬에 있다고는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말해보겠습니다. 제 생각에 기존 춤추던 것과 많이 다를 건 없어요. 그런데 재미있죠. 관객의 시선을 바꿀 수 있고 연출을 다양하게 할 수 있거든요. 현대무용은 한정적인 부분이 있는데 댄스필름을 할 때는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너무 재미있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느낌입니다. 무대에서는 한순간을 위해서 해야 하는데 댄스필름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얻은 결과물들을 오래도록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단발성으로 끝나는 무대가 많이 아쉬웠었거든요. 요즘은 춤을 출 때 저 자신을 무언가에 맡기거든요. 한 번은 눈을 가리고 월광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춘 적이 있었는데 너무 좋았거든요. 제 몸에 집중하는 이 순간이 좋은데 이 즉흥을 했을 때 몰입되던 순간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이 소중한 순간이 사라지는 점이 아쉬웠는데 필름으로 담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공연과 댄스필름은 항상 공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봄날>, 완성작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이선태: 일단은 제가 너무 잘 나와서 감사드리죠. 사실은 제가 조금 더 많이 나올 줄 알았어요. 춤을 리플레이해서 보면 댄서들은 자기만 봐요. 심리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 보니 저는 저 밖에 기억이 안 나네요.(웃음) 제가 상대적으로 너무 연기를 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오재형: 한마디 보태자면. 선태 씨는 무엇이로도 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연기들이었고, 세 파트 모두 달랐어요. 그래서 저는 그 점이 오히려 더 좋았어요. 김수진 씨 같은 경우에는 한가지 혼에 빙의 되어서 따라가는 느낌이었는데 배우 분들마다 스타일이 다 달라서 저는 좋았습니다. 연출 의도 자체가 각각의 다른 트라우마들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선태: 처음에 얘기해주셨던 의도와 일관적으로 잘 나온 것 같습니다. 다만제 생각과 달랐던 부분은 많이들 ‘더 아트적이다, 대중적이다’ 라는 말을 하는데 <봄날>은 조금 더 대중 쪽에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그로테스크 하기도 하고 대중들이 봤을 때 혐오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대중적이더라구요.

     

    오재형: 만약에 제가 댄스필름을 다시 한다면 더 과감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선태: 이제 조금씩 사람들이 아트를 알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모든 부분에 있어 오픈 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오재형: 잘 모르다보니…(웃음)

     

    이선태: 항상 도전적이잖아요. 항상 도전적인 게 너무 좋았어요. 오재형 감독님 같은 분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재형: 댄서는 본인 나름대로 의도를 가지고 춤을 추잖아요. 그런데 편집을 하면 컷이 되잖아요. 안무가로서 컷이 된 것들을 보면 아쉽나요?

     

    이선태: 컷이 많이 된 것은 부족한 부분을 가리려고 하는 거에요. 컷이 많아지게 된다면 저희가 실력을 늘릴 필요가 없는 거에요. 그러면 억울하잖아요.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움직임의 흐름까지도 생각해서 만드는 건데 컷이 되면 그것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아쉬운 마음이 생기죠. 그래서 소통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댄서와 배우로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이선태: 사실 둘의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환경이 다르다는 것 이있는 것 같아요. 지금 드라마를 하나 찍고 있는데, 바스트컷을 찍는 부분에서 제가 자연스럽게 몸 전체를 큰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다거나 이런 부분들이 조금 부딪혔던 것 같아요. 저는 연기를 배울 때 라이브가 연기라고 배웠어서 모든 걸 라이브로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고요. 그런 지점들 말고는 같은 것 같아요.

    연기를 배우면서 무용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개념이 달라졌어요. 몸을 움직이는데 이유가 생긴 거에요. 또 무용도 요즘 말을 많이 해요. 십 분 동안 계속 말을 한 적도 있어요.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했던 공연 중에 말을 하고 춤을 추는 공연이 있었는데, 최근 무용계에서 이런 형식이 많이 보편화되었어요. 무용계에서 연극을 하고 연극계에서 무용을 하기 시작했구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이선태 : 채널A에서 6년 만에 12부작 드라마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안무감독으로 참여를 하다가 연기도 하게 되었는데 12부작이 3막으로 나뉘고 2막에서 제가 좋은 기회로 배역도 맡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그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고, 무용협동조합에서 신작도 하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핸드폰이나 다른 기기를 이용한 영상도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일 큰 근황은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작년에 인문학에 빠져 철학적인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우주까지 갔다가 현실과 타협했습니다. 지금도 우주과학에 관심이 많아요. 시간에 대한 관심도 많다 보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어요.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착각하는 것. 깨닫고 인정하게 되니까 내가 착각하게 되는 것들, 잘못 보는 것들, 선동하는 당하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구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어요. 공익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에 대해 힘을 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끝으로 <봄날>을 보러 온 관객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재형: 봄날을 기획을 하면서 느꼈던 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것이에요. 국가 폭력,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어떤 상처를 입으면 “나 이런 상처를 입었어” 하고 언어적으로 표현을 못 하잖아요. 트라우마는 기분이나 느낌이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는 어떤 종류의 것인데 대사로,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표정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화를 보고 어렵고 난해하다고 말하기도 해요. 진짜 5.18을 겪으신 어르신들께서는 되게 어려워하시더라구요. 저는 애초에 겪으신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기보다는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 소통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제 또래와 제 아래에 있는 세대에 맞춰 제작을 했고 그분들에게 5.18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5.18에 대해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선태: 아트적인 장르의 장점이 어떤 생각의 길을 제시하지 않아요. 작품을보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의 길을 만들 수 있는 게 아트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5.18도 그렇고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예술작품이 나왔을 때 의도를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스스로 본질부터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록│ 이혜진, 홍수진 루키

    촬영 │ 전해라 루키

  • [2018] [GT] 한국 장편 2: <굿바이 마이 러브, NK>
    NeMaf 조회수:2614 추천수:10
    2018-08-19

    8월 18일 토요일 오후7시 30분 인디스페이스에서 [한국 장편2] 김소영 감독의 <굿바이 마이 러브, NK>가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김소영 감독이 자리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눌 수 있었다. 이날 GT는 미술 평론가 이양헌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고 이전에 접할 수 없는 이야기여서 흥미로웠습니다. 올해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는 ‘대항기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항기억은 주류의 역사가 아니라 타자들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인데요. 이번 네마프의 주제와 아주 잘 연동하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작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망명 3부작 구성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김소영 감독님 작품을 보지 못한 분들은 새롭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디아스포라적인 삶에 대해서 타자들의 정체성, 즉 고려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제가 타자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안과 밖에서 바깥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타자라고 하면 경계가 딱 그어지잖아요. 2000년대에 <거류>라는 다큐를 만들었는데 저희 할머니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요. 할머니가 시집을 가서 자신의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예요. <거류>가 두 가지 뜻이 있어요. 불교적으로는 삶과 죽음을 의미하고, 또 잠깐 머무는 것을 의미해요.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가는 것이죠. 타자라기 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어느 지점으로 바뀌게 되고, 그런 이동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이동 중에 생성하는 많은 이야기들이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산자라고 표현하는 고려인이 모국어를 능숙하게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인터뷰할 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작품 안에 감독님이 직접 등장하셔서 인터뷰를 했던 장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했을 때 어려웠던 지점이 있을까요?

    김소영: 1부는 안산의 고려인 2세, 3세 분들을 인터뷰했어요. 고려 말을 하는 분들도 있고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제가 원칙적으로 전문 통역자를 구하지 않고 커뮤니티 내에서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과 인터뷰를 함께 했어요. 그러다 보니 통역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고 그런 상황이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내용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말이 안 통하는 것보다 이념적인 문제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김정훈 선생님이 한국의 주류언론에서 인터뷰를 하셨는데, 한국에서는 김일성을 비판하면 대부분 오른쪽으로 가게 돼요. 그래서 이 분이 끝까지 사회주의자로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서 선생님을 찾아와 인터뷰를 하면 계속 오른쪽 줄에 서게 되구요. 저는 그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북한 체제가 역사적으로 전혀 당연하지 않았고, 김일성을 비판한 것이 본인이 자유주의자라는 뜻도 아니며, 이 모든 게 역사적인 길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국인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부분 중에 자서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 있어요. ‘우리는 역사를 보존 해야하는데 어떤 식으로 기입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최 감독님이 반성적인 성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소영 감독님은 이런 것들을 영화로 작업하셨는데 영상매체를 통하여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저는 아카이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아카이브에 묻혀 있는 어떤 분류되어있지 않은 것을 찾아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한국의 디아스포라의 역사, 등의 아카이브 작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미시사나 거시사나 개인사나 하는 것보다는 남겨져 있는 것들을 구전하고 보존하는 작업들을 중요시한 것 같아요.

     

     

     

    관객1 : 처음 감독님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궁금했던 고려인 삶을 잘 표현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혹시 촬영하시면서 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이상하게 어려운 점이 없었어요. 수월 하지는 않았는데, 찾고자 하는 자료가 있으면 바로 다 나타났구요. 최국인 감독님도 원래 인터뷰를 안하시고, 몸도 많이 편찮으셨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때가 잘 맞아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제 힘으로 하는게 전혀 아니었기에 수월하고 굉장히 놀라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관객2 : 직접 외국에 가서 촬영하시고 그분들을 찾아내시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촬영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궁금하고 다큐를 찍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거의 5년정도 걸렸습니다. 3부작을 돌아가면서 찍었기 때문에 오래 걸렸구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촬영감독한테 프랑스 영화 중에 심장의 박동 소리에 관한 액션 영화가 있는데, 카메라 워크가 좋아서 인터뷰 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후에 보니 전혀 그렇게 찍지 않은 거에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심장의 박동 소리가 들린거에요. 원래는 테크닉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었어요. 그런 것들이 놀라워요. 이게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구현이 되는 거에요. 역사적인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제 의지라기 보다는 이분들의 의지가 어떠한 방식으로 저를 움직이는 것 같아요.

     

     

     

    관객2 : 유리 패널이 자주 등장하잖아요. 묘비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그것도 굉장히 수월하게 됐는데요. 알마타에 있는 산에 유명한 천문대가 있어서 원래는 거기에 가려고 했는데 공사중이어서 문을 안 열었어요. 그래서 다른 것을  찍으러 돌아다니는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설치미술을 해놓은 거에요. 마침 제가 원하던 프리즘 같은 파편들, 유리가 설치 되어 있어서 찍게 되었어요. 저희가 직접 설치하려고 했으면 힘들었을 거에요. 이런 식으로 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있어서 찍을 수 있었어요.

     

     

     

    관객 3 : 망명이라는 주제로 3부작을 찍으셨다고 했는데 처음에 망명이라는 소재로 찍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망명을 한국말로 하면 잘 와 닿지 않는데 영어로 하면 ‘exile’, 더 표현이 와 닿을 거에요. 어느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이동에 대해 관심이 있었어요. 홍콩에서 중국 광저우에 들어가 아프리카 무역상을 연구하는 친구가 있어요. ‘도시를 떠돌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구요. 그 와중에 고려 여성인들에 대한 수기를 읽었어요. 그 역사적인 디테일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그 때가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기도 했는데, 한 할머니가 자신의 방에 수의를 걸어 놓으신 걸 보고 굉장히 와 닿았어요. 후에 카자흐스탄에 가서 고려인들의 역사에 빠져들게 되고, 최국인 감독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아카이브에 가서 찾아봐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고 이러한 여러 가지가 상황들이 섞이어 5-6년이 지나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관객 4 : 촬영을 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편집을 통해서 드러난 것 같은데, 이 촬영의 목표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저는 목표가 있기 보다는 자기발견적인 것을 좋아해요. 사실은 고려인들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많아요. 제가 그것을 목표로 했으면 아마 이런 분들을 못 만났을거에요. 그래서 목표는 없었구요. 다만 제가 냉전시대, 박정희세대예요 그래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에 대해 갑갑함을 느껴서 이동하는 것을 좋아해요. 기존의 고려인에 대한 구술을 하신 분들이 많은데 제가 취한 태도나 발견한 영역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 그 분들은 민족적인 부분으로 포용하려고 했다면 저는 약간 세계주의적인 것을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영상이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체제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인 것 같다가도 조국에 대한 애틋함이 나타나구요. 그래서 학술적 성취라기보다는 ‘공감과 감각적인 연대를 가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4 : 이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네러티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제가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한진 작가님의 말이에요.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죽는 곳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고향처럼 정다운 이름이 있어야할텐데’ 이 말이 저에게는 화두였어요. 고려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다른 생각이었다고 생각해요. 고향을 떠나 사는데 죽는 곳에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다시 보게 하는지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김소영 감독님의 나레이션 부분이었어요. 제가 작가님의 작품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2000년 대에는 여성사 관련, 그리고 망명 3부작을 하셨는데 앞으로의 방향과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소영: 제가 <신여성, 도착하다> 주세죽 부분을 했었어요. 네마프에서도 전시하고 있구요. 주세죽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해요. 주세죽이 혁명의 시기 때의 여성주의자인데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기록│ 이혜진, 이혜은 루키

    촬영 │ 전해라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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