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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 CRITCISM - 해파리와 함께하는 비평 웹진

[2021] The Future of Futures 1 (박유정) – 정원 관객위원
nemafb 조회수:1787 추천수:1 222.110.254.205
2021-09-01 12:37:42

"When I was just a little girl I asked my mother, what will I be?"

십대 때 도리스 데이의 `Que Sera Sera`를 가끔 들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몰라 방황할 때 무엇이든 될 거라 답변해주는 노래의 가사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렇다. 될 일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설마 주린이가 될 줄이야. 투니버스에서 만화를 보던 90년대생은 이제 손바닥 안에서 주식 창을 보고 있다. 이것이 필연이었던 것일까.

도리스 데이의 음악과 함께 핸드폰의 스크린을 닮은 좁고 높은 화면을 세계 곳곳의 이미지와 소리가 채운다. 아니, 채운다기보다는 나타나고, 겹치고, 또 사라진다. 이후 등장하는 돈 드릴로의 인용문은 인간이 시간에 - 특히 노동의 효율 상승을 위한 노동 시간에 - 집중하느라 영원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멈추었다고 지적한다. <미래의 미래 1>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듯 쉽게 휘발하는 파편화된 이미지, 정보, 사건에 휩쓸려 가는 감각을 전달하면서도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영화에 의하면 세계는 금융화를 통해 수치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합되었다. `매듭이 없는 세계`란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전제한다. 디지털의 총체성은 세계의 시간과 공간적 분리를 해체하고 수치라는 비자연적 속성은 역설적으로 파편들을 연결시킨다. "한국의 환율은 일본의 증권이며 미국의 채권"이고 지구 반대편의 위기는 투자자에게 기회이다. 그리고 숫자로 하나가 된 세계는 하나의 침몰하는 배다. 그러나 배에 뚫린 구멍은 정보이자 투자 기회이고 몫을 거두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은 승객의 의무이자 내일을 위한 사과나무다.

모든 것이 연결된 세계에서 금융은 하나의 언어이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하나의 사고체계다. "어느새 인간관계의 처단과 단절은 주식의 처분, 매각과 동일한 이름을 갖게 된다"는 내레이터의 말처럼 사람은 상품이, 관계 맺기와 끊기는 이익과 타이밍의 문제로 치환된다. 그리고 새로운 사고체계는 새로운 윤리를 확립한다. 내레이터가 말하는 디지털의 정언명령. 그것은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누구에게나 같은 도덕적 행동을 요구한다. 영원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휘발하는 세계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피로 아래에는 뒤처짐이라는 감각에 있다. 그러니 연결되고, 그래프와 삶을 동기화시키는 것, 그리하여 "뒤처짐이라는 감각 자체가 부재하는 시간에 가닿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대의 윤리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금융화에 대해서 어떤 주장을 관철하는 대신 연속적으로 상반되는 정보와 주장을 함으로써 변증법적인 독백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레이터는 아침에 일어나 별자리로 운세를 보면서도, 자신의 동물적인 감각을 신뢰하면서도, 과학을 믿는다. 각종 투자방식에 대한 영상들이 쉼 없이 흘러나오며 그 투자방식이 잘못된 이유를 설명하는 영상이 뒤따라온다. 짧고 자극적인 이미지와 소리 또한 유려하고 긴 문장들과 대비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내용을 놓칠까 불안하게 만든다. 아마 이는 <미래의 미래 1>은 세계라는 혼란스러운 주식에 대한 혼란스러운 주석으로서 잘 작동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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