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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TALK] 오픈 전문가 미팅 <매체 예술과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
NeMaf 조회수:4527 추천수:8
2018-08-24 15:22:05

8월 22일, 공간41에서는 오픈 전문가 토크 <매체 예술과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가 열렸다. 이번 토크의 사회자이자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인 김장연호는 ‘매체 예술과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고동연 미술평론가, 조선령 미학연구가와 함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토크에는 공간41에서 전시중인 김소영 작가와 홍이현숙 작가도 참여하였다.

 

 

 

사회(김장연호) : 오픈 전문가 미팅인 만큼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 이라는 주제와 한국 비디오 디지털 아트에 대해 활발한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공간 41에서 작품을 전시 중인 두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김소영 : 제가 지난 5년간 망명 3부작을 준비하면서, 한국 안산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고려인들의 궤적을 따라서 다녔어요. 그 중 가장 많이 간 곳이 카자흐스탄입니다. 이전부터 신여성이나 모던걸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거나 글을 쓰곤 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주세죽’과 같은 사회주의 신여성을 소개하게 되었어요. 사실 주세죽이 있던 곳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이고, 작품에서 소개된 우주발사기지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입니다. 위치는 가깝지만 조금 다르죠. 하지만 저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면서 마치 주세죽이 저에게 말을 걸어 ‘작품으로 안 만들면 안 되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트로츠키와 같은 사회주의의 묻혀진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SFdrome: 주세죽> 은 3채널로 구성되어 있고, 3개의 화면이 '어둠 속에서(in the dark)', '정처(at home)', '화광동진(toward the world)'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at home’ 은 번역을 많이 고심했습니다. 결국 'home' 은 정처라고 번역하게 되었는데 마음에 들어요. 'Home', 즉 '집' 이라는 건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죠. '정처' 라는 것은 디아스포라이자 유배자인 사람이 정한 자신의 처소를  말하는 것인데, 저는 '정처 없이 헤매다' 라는 의미를 뒤집어서 여성이 자기자신의 거처를 정한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홍이현숙 :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를 다룬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이죠. 또 깊은 상처를 가지신 분들을 볼 때면, 그만큼 그 상처가 그 사람을 크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좋은 주제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불편한 것들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당시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은 전쟁터에서 완전히 생사를 헤매고 있을 때 후방에서는 그것이 유리되어 있었던 것이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우리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집에 왜 왔니' 라는 동요 속 '꽃' 은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을 뜻하는 겁니다. '하나이찌몬메' 라는 동요가 있죠. 그 노래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우리 집에 왜 왔니' 가 된 것입니다. 저도 그런 노래인지 정말 몰랐어요. 작품을 찍으면서 나중에, 지금 저도 멀게 느껴지긴 하지만 젊은 친구들과 어떻게 동시대적인 호흡을 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이제 힘이 부족해서 이용수 할머니와 같은 적극적인 분을 만나보기 힘들어서 주춤거리고 있기도 하구요.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깊이나 일상성을 조금 더 취재하고, 작업으로 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해보려고 해요.

 

 

 

사회(김장연호) : 제가 한국에서 기획작으로 비디오예술작업을 소개한 것이 19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한국 작가분들의 작업을 돌이켜보니, 유독 대항기억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키워드이기도 하구요. 왜 그렇게 대항기억적인 작품이 많을까, 생각해보니 식민지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역사 속에 묻혀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또 대항기억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여성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았구요.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여성에 집중하며 대항기억의 코드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무악파출소에선 현재 네덜란드 비디오아트 특별전을 진행 중인데, 여기에서는 매체 실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네덜란드 특별전에 참여한 각각의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 매체언어와 그 언어에 대한 풍부한 작업들이 정말 다양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국에서의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작가들과 기획자인 제가 아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 과정을 통해 다음 세대가 네덜란드처럼 매체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작품들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으로는 또 이야기가 많은 한국의 정서, 상황들이 한국의 예술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이중적인 생각도 들구요.

 

고동연 : 맞습니다. 또 저는 김소영 작가님께서 당시 사회주의 여성들이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김소영 :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 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어요. 러시아혁명과 3.1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러 한국 땅으로 들어갔던 주세죽 같은 인물들이 성추행, 성폭행을 많이 당했습니다. 우리가 한국의 잔다르크라는 식으로 말하는 인물들의 이면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는 거죠. 이건 어떻게 보면 당시의 여성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잠재적인 분노의 동력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콜론타이를 보면 레닌과 싸우던 여성이자 10월 혁명을 이끌었던 17년 여성의 날을 이끈 인물이죠. 여성부를 설립한다거나 공동육아제 같은 여성주의 아젠다를 주장하기도 했었고, 일본과 조선의 신여성들에게 영향과 동시에 힘을 줬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10월 혁명은 계급혁명만이 아니라 성의 혁명, 여성혁명이었고, 조선의 역동적인 정동을 일으켰던 혁명이었습니다. 주세죽은 이 영향을 받아서 40년대 말까지 한글운동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 속에서 주세죽이 몇 가지 글을 남기는데, 하나가 여성의 정조에 관한 거에요. 남자들은 멋대로 살면서, 여성들의 정조를 문제삼느냐는 거죠. 단발이 부르주아적이라면 하지 않겠지만 실용적인 목적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적기도 했구요.

 

 

 

고동연 : 그렇죠. 단발 때문에 쫒겨나거나 심하면 죽임을 당했던 여성들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주세죽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신 건가요?

김소영 : 8,90년대 여성운동을 추적하기도 하고, 나혜석의 삶을 중심으로 당시 여성운동에 대해 연구해보기도 했습니다. 주세죽에 대해서는 자료가 워낙 없어서 몰랐는데, 실제로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렸던 것 같아요. 중앙아시아는 냉전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소련 연방이면서 동시에 유목민들이 정주하고 공존하는 그런 공간이죠. 실제로 방문하게 되면서 한국의 사회주의를 지리적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이해하게 된 거죠. 고려인들을 만나면서 소련, 북한의 완전히 다른 레퍼런스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소련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처럼, 고대의 다른 문명부터 주세죽까지 이어지는 어떤 것을 보게 된 거에요. 카자흐스탄 홍범도 거리에서도 주세죽이 여기 있었구나, 그런 느낌을 받는 경험도 했구요. 주세죽은 냉전사, 문명사, 이슬람문화를 동시에 관통하는 인물이었다는 거죠.

 

 

 

사회(김장연호): 맞아요. 2차적으로 소외된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럼 <SFdrome: 주세죽> 속의 소제목 3개를  시각적으로 소개해 주시겠어요?

김소영 : 제가 배웠던 것을 탈배움하는 과정에서 제가 봤던 중앙아시아의 문명들을 가장 잘 예지하고 글로 남겼던 사람이 서양철학자 중에서는 들뢰즈라는 사람이 있어요. 제가 페미니스트고 탈신비주의 비평을 하는 사람으로서 들뢰즈를 인용하는 건 사실 문제가 있지만요.(웃음)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 속 목차들의 영향을 받아서 제목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정처(at home)' 라는 제목을 왜 이름 붙이게 되었냐면, 저에게 비디오아트를 처음 알려준 사람이 차학경 씨인데 그분이 보여준 비디오 중에 <Home> 이라는 작품이 있었거든요. 집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이미지로 저에게 남아 있어요. 디아스포라인 차학경이 생각하던 집의 이미지를 보고 제가 잘 구현할 수 있는 이미지로 표현하게 되었던 거죠. 그 뒤로 <천 개의 고원> 속의 소제목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이걸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at home' 을 집으로 하지 않고 어떻게 새롭게 번역하느냐, 여기서 답을 준 것이, <굿바이 마이 러브, NK> 를 찍으면서 보게 된 고려인 한진 선생님이 남기신 글이었습니다. '태어난 곳을 일러 고향이라고 하는데, 죽어 묻힌 곳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라는 말이요. 자기가 죽는 곳을 새롭게, 정답게 다시 이름 붙이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는 절절한 표현이죠. 한국에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민족', '역사' 같은 단어로 그들을 환원시키려고 하잖아요. 한진 선생님은 거기서 벗어나서, 북한에 대한 애정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뭐라고 할 것이냐는 인류학적으로 새로운 선언을 하셨던 거죠. '정처' 라고 하는 단어는, 중국학을 전공하신 백원담 선생님과 'home' 을 뭐라고 해야 할까 함께 고민하다가 말하신 단어예요. 그거다 했죠. 그래서 'at home' 이라는 소제목은 죽어 묻힌 곳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반영한 제목이기도 합니다.

또 제가 발견한 건 이거예요. 근현대에서 신여성 모던걸들은 '내외' 라는 개념에 항상 갇혀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죠. 한국에서 형성된 내외, 안팎이란 개념이 굉장히 공고해요. 물론 경계가 포스트모던적으로 약간의 구멍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한국의 내외는 젠더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너무나 공고하죠. 자아나 타자라는 것도 잘 안 드러나요. 저는 그걸 탈주하는 방법으로써 코스모폴리탄적인, 세계적인 방법으로의 시도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나혜석의 '경희는 우주 속의, 세계 속의 사람이다' 라는 세계적인 선언. 여성이 세계 속에서 내외의 구획에 끌려가는 데에 저항하는 시도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화광동진(toward the world)' 는 저에게 새로운 시도죠.

 

 

 

고동연 :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라는 거죠?

김소영 : 그 패러다임을 뭐라고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일본의 양자역학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양자역학을 일본에서 불교적으로 잘 풀어서 설명하거든요. 일본의 양자역학센터에서 화광동진이라는 단어를 쓰더라구요. 자신의 ‘뛰어남’을 내세우지 않고, 세상 속의 먼지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양자역학 속의 진리라고 이야기해요. 저에게는 주세죽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주세죽은 조선의 3대 미녀이자 가장 아름다운 당대 여성 중 한 명이었던 반면에, 박헌영은 굉장한 추남이었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런데 이 주세죽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여성동우회를 조직하고, 사회운동가들을 위해 밥도 짓고요.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화강동진이 아닌가, 세상 속의 먼지로 들어가서 세상을 밝히는 것, 그런 게 아닌가 했어요.

 

 

 

조선령 : 전 어제 와서 전시를 봤구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 아까 김장연호 위원장님께서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어요. 주제가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 인데, 몸짓의 재구성이라는 것 자체가 매체에 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제 전시를 보면서 주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이야기를 하자면, 아까 김장연호 선생님이 한국에 유독 대항기억을 다루는 작가들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이 대항기억을 다루는 영상과 전시들의 뿌리가 튼튼한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여기 네마프에서도 영화와 전시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데, 둘 간의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역사적 맥락이나 언어같은 것들은 조금씩 다르죠. 특히 비디오아트는 영상매체를 통한 전시를 베이스로 하는데, 그게 튼튼하냐 하면 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영상매체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고, 대중문화 자체가 영상 베이스로 흘러갔구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회운동의 분위기가 넓게 퍼져 있다가 '액티비티다',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엔 이런 분위기 다 소용없다는 식으로 새로운 매체가 들어왔어요. 가상과 실제, 대중문화와 예술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구요. 비디오를 매체로 사용하는 나라들 중에서도 저항적인 것들이 있고, 내용적이건 매체적이건 간에 계보가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이 저항적인 시도가 좀 뜬금없이 시작되었기에 뿌리가 튼튼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아직 그 뿌리가 튼튼하지 않고 계보가 형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해야할 일은 너무나 많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작가들의 개별적인 작품보다 역사적, 매체적인 계보 속에서 지금 현재 한국 비디오아트는 어디에 있는가, 영상언어란 건 무엇인가 하는 걸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용적인 혁명을 벗어나 언어적인 혁명, 예를 들면 영상언어나, 매체에 있어서의 혁명이 20세기 초반에 많이 일어났죠. 러시아 구축주의 이론가들이 언어의 혁명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죠. 그렇다보니 작가들은 할말이 많지만, 그 뿌리가 튼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선령: 발화, 텍스트, 보여지는 것, 청각적인 것들을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홍이현숙 선생님께 질문 드리고 싶어요. 작업을 뭐라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면 약간의 각도차이만 있을 뿐 할머니에만 집중하고, 배경은 장롱에서 머무르는데 촬영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느끼신 건가요? 사실 영상작품이 인터뷰형식인 것이 많은데, 여기엔 큰 리스크가 있잖아요. 인터뷰만 나오면 도망간다는 관객들도 있구요.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미술계 사람들이 볼 때도 이건 증언인가? 작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바깥에서 보면 이런 정적인 형식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홍이현숙 : 작가는 언제든지 선택을 해야 하죠. 제가 이용수 할머니를 만났을 때 저는 할머니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또 전달하고 싶었던 건, 이 할머니가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계속 헤매는 모습이었어요. 본인이 일본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이 2년인지 3년인지 본인도 모르겠다고 하세요. 실제로 자기는 16살에 조국 땅을 떠났는데 사람들은 17살 때 돌아왔다고 하고, 그러니까 혼란이 오시나봐요.

 

 

 

고동연 : 갇혀 있었기 때문에 시간 감각이 무뎌진 거 아닌가요?

홍이현숙 : 같이 갇혀있던 분이 옆에서 진실인지를 계속 지켜보시더라구요. 사실 이용수 할머니 말이 팩트죠. 이용수 할머니는 모든 것이 사실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아요. 화면에 잡히지 않을 내 뒤통수까지 완벽한가, 하는 그런 미끌거리는(floating) 경계 위에 서 계신 느낌이었어요. 할머니의 안타까운 그 모습을 영상에서 어떻게 보여줘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한편으로는 동료들과 클럽을 간다고 말하시거나 하는 놀던 가락을 꺼내서 보여주고자 하는 압박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사실 할머니들이 드러나게 뭘 한다는 게 귀찮고 싫으신건데, 그걸 헤쳐나가면서 이런 운동을 한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다 찍은 후에 다시 대구로 돌아가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도 했는데, 찍을 당시에는 할머니들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었어요. 저는 작품이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냐면, 연출이라는 것보다 흐르는 공기 안의 여려 결들을 어떻게 하면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느낀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청바지 입고 노래하실 때 만큼은 나는 현명 했고 틀리지 않았다, 난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하는 강박들을 다 잊으시더라구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업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요.

 

 

 

사회(김장연호) : <우리집에 왜 왔니> 1,2편을 보면서 대항기억을 비디오아트에서 어떻게 담아냈는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첫째로는 파운드 푸티지를 차용하셔서, 일본 뉴스 영상 사이에 <난징난징> 같은 영화 속 일제시대 위안소에서 윤간당하는 장면들을 삽입하셨죠. 일본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뉴스를 만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플래시웍을 하면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시도하셨어요. 이 작품의 마지막에 다같이 플래시웍을 하면서 끝나죠. 기존의 동요도 전복되고, 새롭게 몸짓이라고 할 수 있는 걸 재구성하고, 기존의 일본뉴스에도 새로운 영상을 넣으면서 역사를 재구성하고,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 같은 것이 담겨져 있는 추모 회전을 돌면서 살풀이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몸짓들이 신성하고 과거에 있는 어떤 상처들을 소통하고 애도할 수 있지 않을까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김장연호): 또 <SFdroam: 주세죽>에서는 1900년대 초반이나 1800년대 후반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속에서 주세죽이라는 인물의 삶을 매력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맨 마지막에는 목각인형의 몸짓이 반복적으로 제시가 되더라구요. 그 묘사의 의도는 뭘까요?

김소영 : 이 영화는 SF 장르인데요. 주세죽이 유배되었던 그 장소에 우주기지가 만들어졌죠. SF 장르가 가지고 있는 유토피아적인 미래와, 과학적 유토피아가 만나서 저 장소가 펼쳐진거죠. SF 장르에는 <인터스텔라> 처럼 블록버스터 SF 도 있고, ‘트래쉬 SF’ 같은 저예산 SF들도 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SF 장르가 깡통로봇이 나와서 총 맞고 도망가고 하는, 저예산 SF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되었던 것 이구요. 춘천 마임축제에서 '나는 목각인형' 을 구현하는 분이 있더라구요. 날아가는 목각인형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세계에 2명밖에 없대요. 장르적으로 보면 저예산 SF 영화의 컨벤션으로 여성주의적으로, 날아가는 목각인형을 쓴 거죠.

 

 

 

관객 1 : 작가님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이 유동적이라서 미끌거린다(floating)는 그 말이 정말 SF 적이기도 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홍이현숙 : 기억은 사라지는 거니까요. 과거의 주세죽이나 현재의 이용수 할머니를 보면서, 살아계신 분을 다루는 건 또 다른 책임감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선령 : 살아계신 분을 이야기하셨는데, 생각이 많이 드네요. 얼마 전에 제가 공동체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행사에 갔었는데, 주된 내용이 제3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작가는 항상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 제3자의 역할이고, 나르시시즘은 예술의 적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예술의 언어라거나 매체언어를 발명한다거나 하는 건 결국 내가 타자의 자리에서 역사, 사회를 어떻게 볼지, 역사 속의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사실 영상매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퍼포먼스와 그것의 기록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로 2차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1차와 2차적인 존재로 볼 때, 모든 영상은 이미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그 프레임을 다시 만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차적 영상은 진실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하는 것을요.

또 김소영 작가님의 작품은 주로 광활한 자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 타자의 시선 이잖아요. 그들에게는 선택되지 않는 배경이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기에 강한 인상을 주죠. 이런 시각의 개인이라고 하는게 저는 어떻게 보면 예술의 전제조건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김소영 :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자연을 찍은 장면들은 스펙타클하게 보이지만 드론으로 공장지대와 함께 찍어서 중간지대이자 애도의 공간으로 설정한 장면들입니다. 인류학적인 자연, 이국적인 모습들을 주제로 찍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김장연호): 김소영 작가님이 말하신 내외라는 주제 자체가 독창적이고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체와 타자를 새로운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항기억이라는 것은 푸코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사회에서 타자라고 정의되는 분들과의 작업들, 또 타자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들을 이번 전시에 풀어 보았습니다.

 

 

 

관객 2 : 미디어에서는 몸짓(gesture)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가지고 있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몸짓이죠. 타자에게 열려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몸짓, 그리고 거기서 오는 내외의 개념이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김소영 : 맞아요. 또 일본이 식민통치 당시 내지·외지 개념을 만들기도 했죠. 원래는 오키나와 역시 일본이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내지가 되었구요. 당시 한 신여성이 백화점 외부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저에게는 영감을 주더라구요. 내외가 젠더적, 사회적, 식민지적으로 많은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몸짓의 '짓' 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전복(subversion) 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구요.

 

 

 

사회(김장연호) : 대항기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가, 가지고 있다면 어떤 몸짓으로 표현하게 되었는가를 이번 전시로 소개해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픈전문가 미팅이라는 주제 아래 관객들이 전문가 미팅 속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 | 이혜진 루키

사진 | 김진우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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