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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LECTURE] 이토 타카시 감독 강연 <실험영화가 내 인생을 미치게 하다>
NeMaf 조회수:2273 추천수:2
2018-08-19 16:20:53

8월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일본 독립영화의 거장 이토 타카시 감독이 <실험영화가 내 인생을 미치게 하다>라는 제목으로 본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강연을 가졌다. 임창재 감독의 진행하에 강연이 마친 후에는 관객들과 짧은 질의응답을 가지기도 했다.

 

 

<SPACY>와 <아트만>

<SPACY>는 이토 타카시 감독의 처녀작으로 감독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만든 작품이다. <SPACY>는 사진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10여 장 정도의 사진을 사용해, 사진과 배치에 관해 연구한 작품이다. 감독은 마음속에 있는 어떤 인물을 상정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생활 모습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순수하게 고민하고 이 일상적인 공간을 세밀하게 분해해서 재구성한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아트만>에서 얻었다. 1976년 제작된 이 영화 역시 <SPACY>처럼 단순한 움직임이 12분 정도 지속된다. 감독은 20살 무렵 우연히 이 <아트만>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대학 시절 접하고 해당 작품을 극장에 가서 본 뒤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아이디어와 상상력, 기술만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지게 되고 본인도 실험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실험 영화를 시작했다. <아트만>은 상상 선과 48 등분 한 공간을 좌표를 향해 분해하고 재구성하고 영상의 시각적인 움직임은 새로운 곳을 봤다는 느낌을 준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SPACY> 를 만들 때 이러한 감정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제작 방법을 차용했다.

1976년 만든 이토 타카시 감독의 작품 <노>는 이 <아트만>을 카피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만든 작품이다. 아트만은 반야의 가면을 했지만, 이토 타카시 감독은 마스크를 활용했다. 무표정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인간을 통해 희로애락과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것이 또 다른 작품 <최후의 천사>에도 연결되어 있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대학 4년 동안 <아트만>을 답습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영화를 만든 지 4년째 되는 해에 제작한 <MOVEMENT-3>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사진 속에 있는 사진에 들어가려고 하는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 작품을 1년 후 발전시켜 만든 작품이 <SPACY>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작품에서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본 60년대 영화 붐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토 타카시 감독에게 영향을 준 일본 실험영화들]

아이하라 노부리로 감독의 <STONE>

일본 독립영화 제1세대인 아이하라 노부히로 감독의 <STONE>에서 감독은 강한 자극과 충격을 받는다. 애니메이션 내에 지속적으로 보이는 데칼코마니, 프레이밍 외부의 외관까지 작품의 일부로 삼는 비상식적 연출, 애니메이션과 바깥의 움직임을 동시에 잡아내는 등의 시도에서 감독은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야마자키 히로시 감독의 <HELIOGRAPHY>

야마자키 히로시 감독의 <HELIOGRAPHY>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천체 관측, 별의 움직임 묘사를 카메라를 통해 이뤄낸 작품이다. 현실에는 일어나지 않는, 영상으로 밖에 체험할 수 없는 영상적 체험을 통해 우주의 거대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일반 상업영화에서는 할 수 없는 시도다.

 

오쿠야마 준이치 감독의 <LE CINEMA>

일본 실험영화를 대표하는 오쿠야마 준이치 감독의 <LE CINEMA>도 언급했다. 이 작품은 1초에 24장의 그림이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영화의 구성요소를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 작품이다. 여자가 머리를 넘기는 1초의 장면을 24개의 프레임으로 나누고 이 1번부터 24번까지의 장면들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SPACY>의 구성에 큰 참고가 되었던 작품이다.

 

서 슌조 감독의 <FILM DISPLAY>

제1부는 사람이 걸어가는 것, 제2부는 개가 달려가는 것이고, 제 3부는 ‘트릭’ 이라는 기법이 사용된 영상이다. 제1부와 2부는 운동하는 피사체가 세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여주고 제3부의 필름은 횡으로 움직인다. 실제 영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상에선 가능한 측면이다.

 

코타 이사오 감독의 <네덜란드의 사진>

해변을 걸어가고 있는 장면을 한 장씩 찍고 이런 사진을 연속적으로 복사하는 과정을 통해 ‘공간’이 생겨난다. <SPACY>를 제작할 때 기술적인 영감을 주었던 작품이다.

 

[이토 타카시 감독의 현 작품 세계]

2000년의 촬영한 <메트로놈>은 댄서와 댄서의 영상을 겹쳐 제작한 작품이다. 실제적인 육체와 영상 간의 관계를 추구하면서 만든 영화로 무대의 실제 공연과 퍼포먼스의 합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연다. 실제적인 육체가 존재하는 동시에 영상이라는 복제는 유령처럼 보이게 된다. 실제와 유령 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2016년 촬영한 <세 명의 여자>는 세 개의 스크린과 이를 관람하는 관객 그리고 이를 영사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스크린 안의 스크린에서는 자살한 두 사람의 유령과 살아있는 한 여인의 관계가 나타난다. 살아있는 실재 여인은 스크린 너머로 나타나 영사기를 틀고 끈다. 무대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하나의 새로운 표현이 시작된다.

감독은 실험영화는 상업영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개인의 기발한 상상력, 창작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여러 작품에 관한 언급이 있었지만, 실험영화 감독인 동시에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역시 시도한 마츠코토 토시오 감독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가장 많이 표했다. 고전적인 드라마를 부정하며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장르를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신념을 따르며 이토 타카시 감독 역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경계선을 확실히 구별 짓지 않고 느슨하게끔 만드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질문]

관객 1: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들이 주로 영상의 촬영기법이나 화면에 대한 실험에 대한 내용을 강조하셨는데요. 저는 그뿐만 아니라 사운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운드에 대한 제작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이토 타카시: 사운드는 여러 사람과 공동 작업했는데요. <세 명의 여인>을 제작했을 때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연출할 때 카메라 근처에서 녹음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저는 녹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음향을 전부 제작했었습니다. 16채널 작품인데, 12개의 스피커를 배치해서 제작했습니다. 음향 작가와 함께 여러 개의 스피커를 배치해서 소리밖에 듣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누가 말을 했는지를 나중에 확인해서 시각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음향적으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제작했습니다. 요네마루라는 분의 작품인데, 4면의 공간을 음향으로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를 굉장히 연구해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SPACY>라는 작품은, 음향을 담당하는 분과 의논해서 같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음향을 제작하신 분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일부러 제작의 요구사항이나 부탁을 하지 않았구요. 그분이 만든 음향과 저의 영상은 서로 다른 세계가 되었고, 그분이 표현한 음향을 보고 저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만든 영상이지만 그분이 만든 음향을 함께 합칠 때 새로운 느낌이 만들어져 놀라기도 했구요. 작가에 따라서는 음향을 맡은 분에게 음향적 이미지에 대한 주문을 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그러한 주문을 하지 않고 음향감독이 만들어낸 새로운 음향 세계가 열리고 거기서 오는 스릴감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게 앞서 말했던 ‘콜라보레이션’의 정신이겠죠.

 

 

 

관객 2: 이토 타카시 감독님의 작품을 볼 때 대부분 사실적인 조명만을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조명에 대한 실험 등은 보이지 않아 궁금합니다.

이토 타카시: 빛이 있으면 좋겠지만, 새로운 빛에 대한 흥미는 없는 편입니다. 빛이 있는 장소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과학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TV의 인공적인 빛도 너무 밝아요. 자연광이 좋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것 안에 리얼리티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조명은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저는 구름의 그림자 같은 것을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합니다. 그림자가 있으면 빛이 있으니까요. 조명에 힘을 쓰기보다는 빛이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편입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그래서 촬영하기가 힘들죠. 비가 온다거나, 구름이 많이 꼈다거나 한 날씨는 정말 곤욕이죠.

 

 

 

관객 3: <세 명의 여인> 안의 전시 컨텍스트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사운드 작가와 협업하셨다고 하셨는데, 관객들도 사진 안에서 보였잖아요? 관객들도 왔다 갔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작품이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관객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어디까지 움직일지를 생각하고 만드신 작품인가요?

이토 타카시: 보통은 여기처럼 앞에 관객이 있고, 반대인 뒤편에 화면이 있죠. 이런 것이 일상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성이죠. 저는 이런 안정감을 파괴하고 부숴버리고 싶었습니다. 관객이 화면 맞은편에 있었지만, 작품은 위와 밑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파괴하는, 이것이 이 작품의 컨셉이자 개념입니다. 영사되는 화면 안은 세 여인의 불안정한 세계를 보여주는데, 불안정한고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제작한 것입니다.

 

 

 

관객 4: 이전의 작품들은 네러티브보다는 이미지에 집중했지만, 최근의 작품들은 이미지보다는 네러티브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님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이토 타카시: 저는 마츠모토 토시오의 <장미의 행렬>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초기 작품, 예를 들면 <SPACY>와 같은 영화들도 기술만을 보여주고자 했던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속의 이상하고 괴이한 움직임, 저는 그런 괴이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걸 네러티브 쪽으로 옮기는 순간 괴이함이 좀 더 복잡하게 표현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괴이함은 영상 내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표현되는, 상당히 영적인 무언가입니다. 영적인 무언가가 영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죠. 제 영화가 이미지에서 네러티브로 움직인 것은 동기부여로 인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변화해 나간 것입니다.

 

 

 

관객 5: 이토 타카시 감독님은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님의 제자로서 설치와 영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을 해오셨는데요. 7~80년대 일본에서 예술 공학 전공이 생겨나면서 그런 시도가 이루어진 것일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처음 그런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미술 베이스, 영화 베이스라는 구분이 영화계 내에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구요. 이토 타카시 감독님은 일본의 예술 공학 베이스로 분류되는 1세대 감독이신데요. 이 정체성 속에서 감독님은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들어 나가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이토 타카시: 저는 예술 공학이라는 개념이 있는 규슈예술대학에 재학했습니다. 예술과 공학이라는 두 개의 다른 분야가 합쳐졌을 때의 영향과 시너지를, 그러한 것들을 모색하는 대학이었습니다. 공학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을 동시에 하면서 자연스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구요. 이런 과정에서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이 새롭게 교수로 부임하셨습니다. 당시 제가 재학하던 규슈예술대학이 새로운 융합의 장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토시오 감독도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었기에 교수로 부임해 오셨던 것이구요. 토시오 감독 역시 예술과 공학을 넘나드는 작품들이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실험영화에 대한 많은 커리큘럼들이 생겨난 것도 이때구요. 그러면서 많은 학생들이 실험영화에 참여하게 되었고 자극을 받았습니다. 자연적으로 커다란 움직임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일본 전역에서 규슈예술대학의 실험영화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장르를 넘어가고 극복하는 분위기 안에서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겠지요. 전통을 유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런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6: 일본 실험영화의 감독들이 미국 언더그라운드시네마나 유럽의 아방가르드 영화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생각하실 때, 일본 실험영화의 복잡성을 정의한다면 이와 같은 영화들에 영향을 받았던 요소 외에 어떤 요소들이 있을까요?

이토 타카시: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에 답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서구의 영향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는 젊은 감독들도 있죠.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분야의 여러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독자성’을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인터넷 안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고, 누구나 영상을 만드는 시대에 세계적인 영향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작품을 만드는 젊은이들이 셀 수 없이 많지요.

 

 

 

관객 7: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아트만>을 마약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하셨고, 많은 카피 작품들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 궁금한 것이, 실험영화나 아방가르드 영화와 상충되는 ‘카피의 욕구’ 가 생겨나는 작품일 정도로 어떤 원형이라는 것이 있는 건지요.

이토 타카시: 일본 아방가르드 영화 역시 일본 독자적인 영화가 아니라 미국에서 왔다거나,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기에 제 나름대로 재밌게 생각했던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독일의 표현주의라거나, 1920년대의 시대적 사고방식에 심취했었지만, 근본적으로 저 자신의 생각에 집중했습니다. 프로토 타입이라는, 원형이 확실히 있는 것일지는 저 또한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록 | 전동현, 홍수진 루키

사진 | 지서영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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