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름한 공사 현장을 지키고 서 있다. 권력은 그녀에게서 ‘교환’을 제의한다. 그녀의 육체를, 하루 분의 일당을. 그것은 노동하기 위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모순적인 몸부림이었다. 교환이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 되어 버린 이곳에서, 여자는 가난한 노인과 마주한다. 폐지를 줍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는, 교환의 수단이라곤 귤 한 아름뿐인 노인을 여자는 동정하면서도 외면한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까닭이다. 이처럼 <물물교환>은 약자를 돕는 일이 일종의 금기가 되어 버린 자본주의 사회 속 ...
신문에서 전하는 간결한 부고에는 삶의 묵직하고 눅눅한 모든 것은 생략되기 마련이다. 이 9분짜리 영상은 어떤 한 인물을 기억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부분이다. 그의 인생을 다 담아내기에는 신문의 부고처럼 더없이 짧았지만, 그가 느꼈을 감정의 무게만큼은 고스란히 담아낸 듯하다. 다양한 질감의 소리와 빛, 목소리가 영상 안에 어우러져 시가 되고 춤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추모 방식이자 예술작품이 되었다. 역광으로 검은 실루엣만 드러난 한 남자가 보이고, "이쿠라(얼마)" 라는 말이 강박적으로 들려온다. 남성 성노동자였...
(김경묵 감독) 화면의 오른편에는 여성의 것으로 유추되는 형체가 흐릿하게 떠올라 있다. 그 형상은 모호하게 비춰져 있어서 그저 꾸물대는 덩어리로 보일 뿐이다. 그 덩어리 옆에 위치한 왼편의 남자는, 그의 몸의 흔들림과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손으로 스스로를 만지고 있다. 그는 오른편의 여성의 몸을 만지기를 욕망하는 이성애자 남성일 수도, 여성의 몸으로서 만져지기를 원하며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꿈꾸는 이일 수도 있고, 혹은 만지거나 만져지기보다 그것을 지켜보기를 원하는 관음증을 지닌 인물일 수도 있다. 왼편이나 ...
<유예기간> (김경묵, 기진 감독) 그림자의 명암이 향하는 곳 최근 한겨례의 토요판 르포에서는 영등포 집창촌을 두고 ‘서울에 스며든 그림자’라고 표현했다. 이 ‘스며든 그림자’는 김경묵, 기진 감독의 <유예기간>에서 문자 그대로의 방식으로 충실하게 드러난다. 종종 보아왔던 다큐멘터리의 모자이크 처리가 된 얼굴들 대신, 어렴풋한 형상을 집요하게 감지해내는 카메라의 관음증적인 시선 대신, 명암이 뚜렷한 빛과 어둠을 교차시키며 집창촌의 성노동자들을 등장시킨다. 이후 벌어지는 관객의 감응은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