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산책자들Flâneurs of the Screen

시네미디어 큐레이팅 포럼 Cine-Media Curation Forum 2025


 

 스크린의 산책자들 - 어니 기어, 배리 거슨
Flâneurs of the Screen - Ernie Gehr, Barry Gerson

 

요나스 메카스와 그의 동생 아돌파스 메카스가 창간한 아방가르드 영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잡지《필름 컬쳐 Film Culture》의 63-64호(1977)에서는 두 영화작가의 필모그래피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한명은, 어떤 이견 없이 그 이름을 만신전에 올릴 수 있는 어니 기어(Ernie Gehr)이고, 다른 한명은 국내의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는 배리 거슨(Barry Gerson)이다. 1977년에 한창 주가를 날리던 이들의 이름을 오늘날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곧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영화의 ‘디지털 전환’ 이후인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들이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영화를 찍던 시절보다 더욱 정열적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굳이 자신들이 친숙하던 매체인 필름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대개 제한적으로 소개되어 왔다. 작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어니 기어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서 배리 거슨의 필름과 디지털 작업을 아우르는 상영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디지털 작업은 미국 바깥의 관객들에게는 지도가 그려지지 않은 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 듯 하다. 그러한 상황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다소 소박하면서도, 굉장한 야심이 있어보이지도 않으며, 단순히 ‘취미와 즐거움’으로 도시를 산책하거나, 자신의 집에서 촬영하고 편집했을 뿐인 이 작품들의 좋음을 감지하는 일은 어쩐지 동시대의 영화 관람 환경에서는 마땅한 자리가 없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니 기어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 3부작 Lower East Side Trilogy>은 그가 1960년대 뉴욕에서 거주하며 살았던 로어 이스트 사이드 지역의 인상을, 18년 간의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뒤 새롭게 응시하며 시작된 작품이다. 도시의 변화, 기억의 재구성은 이 3부작의 주요한 정서적 토대가 된다. 수십 편에 달하는 어니 기어의 디지털 작품의 수많은 결(포스트 뤼미에르주의, 초기 영화나 원시적 애니메이션에 대한 매혹, 구조주의적 필름 작업의 연장)을 폭넓게 소개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이번 프로그램에서 선보이는 3부작은 그의 디지털 작품 세계로 들어가는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한편, 배리 거슨이라는 이름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요나스 메카스와 마이클 스노우의 찬사를 받았으며 (거슨의 이름은 스노우의 <라모의 조카>에도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그의 미학이 너새니얼 도어스키에게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거슨은 1982년 이후 한동안 영화 제작을 중단하고, 약 20년의 공백기를 거친 후에야 디지털 매체로 작업을 재개하게 된다. 이러한 긴 공백과 이른 시기의 단절은 그의 이름이 아방가르드 영화사의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동시에, 디지털 환경에서 재개된 그의 작업은 필름 시대의 작업들처럼 비평적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낮은 상영 빈도와 제한적인 접근 속에서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 거슨의 디지털 작업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그는 필름 시절부터 일관되게 탐색해온 빛과 색채, 텍스처의 운동이라는 영화적 조형어휘를,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매체 환경 속에서 더욱 밀도 있게 확장하고 있다. 일상적 사물들과 내면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이 세계는, 감각과 지각의 경계를 섬세하게 뒤흔든다.

이러한 질문이 남는다. 올해 작고한 P. 아담스 시트니는, 작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어니 기어의 회고전에서 그의 디지털이 아닌 필름 영화들만을 보았다고 한다. 전세계의 아방가르드 영화 관객들에게 적잖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스페인의 웹진 《뤼미에르 Lumière》에서는, 그들의 연말 베스트 리스트를 대부분 필름 작업 위주로 선정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러한 밈이 있다. “유명한 백인 아방가르드 영화 감독의 상영회”에 환호하는 사람,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 상영회가 “그들의 최근 디지털 작업”이라는 것에 바로 실망하는 사람. 어쩌면, 우리는 넘쳐나는 디지털 무빙 이미지의 홍수 앞에서, 그 홍수의 광경 자체에 압도된 나머지, 정작 개별 작품들을 맨몸으로 대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감각이상(paresthesia)의 상태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두 거장의 디지털 작업은,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감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오랫동안 영화를 가르쳐온 이들 두 교육자의 방식답게, 아주 교육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시네미디어 큐레이터 한민수)
 

 


 

일시 2025년 8월 9일 (토) 11:00 | 2025년 8월 11일 (월) 14:00
Date August 9 (Sat) 11:00 | August 11 (Mon) 14:00

장소 KT&G 상상마당 시네마(지하 4층)
Venue KT&G Sangsangmadang Hongdae Cinema (B 4F)

마스터클래스 시네포럼 장민용(실험영화 감독, 서경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어니 기어의 작품 세계와 디지털 전환기 이후 아방가르드 영화
Master Class CineForum Minyong JANG (Experimental Filmmaker,
Professor of Film and Media Arts at Seokyeong Univ)
The Cinematic World of Ernie Gehr and Avant-Garde Film in the Post-Digital Transition Era

모더레이터 한민수(시네미디어큐레이팅포럼 <스크린의 산책자들 - 어니 기어, 배리 거슨> 큐레이터)
Moderator
Han Minsu (Cine-Media Curating Forum: “Flâneurs of the Screen – Ernie Gehr and Barry G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