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미디어 큐레이팅 포럼 Cine-Media Curation Forum 2025
한국 대안영상예술의 흐름: 메타-이미지
Trends in Korean Alternative Cinema & Media Art : The Meta-Image
예정되어 있었던, 그리고 진행 중인 죽음 앞에서 무빙이미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거의 모든 이들이 한국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적어도 ‘산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 급감하고 있는 극장 관객수는 가히 절망적이라 할만하다. 빠른 속도로 침투한 OTT 플랫폼은 한국 영상산업에 대한 과잉 투자를 이끌었고, 글로벌 자본의 수익 모델로 전락한 영상산업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는커녕 무난하고 익숙한 이미지만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알고리즘의 파놉티콘에 스스로 포획된 듯하다.
이제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동시대적 조건 하에서 영상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이때 필요한 것은 영상이 외부 세계를 재현하거나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영상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의 조건과 구조, 존재의 논리를 사유하는 하나의 주체로서 기능하는 방식에 대한 상상력이다. 즉, 이미지의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 이미지 그 자체를 매개로 이미지에 대해 질문하고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힘, ‘메타-이미지적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본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들뢰즈의 통찰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더 이상 서술할 이야기를 갖지 않고 있던 영화는 바로 자기 자신을 영화의 대상으로 삼았고 또 자기 자신의 이야기밖에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상 거울로서의 작업과 배아로서의 작업이 예술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고 항상 예술을 동반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예술이 이러한 작업에서 어떤 특별한 이미지들을 구성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 이정하 옮김, 『시네마Ⅱ 시간-이미지』(시각과언어, 2005)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갖기 어렵다는 시대적 인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상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메타-이미지는 이러한 자각의 지점에서 출현한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자신을 구성하는 기술적·서사적·미학적 조건을 스스로 드러내고, 그로부터 새롭게 사고하며, 또 그 조건을 전유하고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장치가 된다. 나아가 자기 자신의 생성 원리와 존재 조건을 반추하며, 관객에게는 그 이미지 구조에 대한 인식적 체험을 제공하는 하나의 사유 공간으로 재편된다.
본 프로그램은 이러한 이미지의 성찰적 가능성에 주목하며, 최근 제작된 다섯 편의 실험적 대안영상 작품을 통해 영상 매체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질문하고 사유할 수 있는지 탐색하고자 한다. 이들 작품은 사진과 영화 등 필름 기반의 아날로그 이미지부터 디지털 전환 이후 포스트-시네마적 조건에서 새롭게 등장한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빙이미지에 대한 실험과 성찰을 담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게임 UI, 편집 소프트웨어, SNS 콘텐츠 등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무빙이미지는 더 이상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하나의 감각 구조와 세계 인식을 구성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본 프로그램의 작품들은 이러한 이미지 환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미지가 생성되는 기술적·감각적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이미지 자체에 대한 메타적 사유를 유도한다.
<타임라인 풍경>(김혜원, 2024)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 프리미어 프로의 타임라인은 이 작품에서 하나의 풍경이자 예술적 시공간으로 전유된다. 이 작품은 상단 레이어에 의해 은폐되는 하단의 이미지 클립들, 편집 중 마우스포인트 조작에 의해 바뀌는 설정, 어두워지는 작업창의 색감에 이르기까지 무빙이미지의 생성과정을 구성하는 물리적 리듬과 감각의 층위를 드러낸다. 최종 작업물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수많은 이미지들과 노동의 흔적을 통해 영상 편집 그 자체를 하나의 감각적 체험으로 환기시킨다.
<가장 적합한 아바타 만들기>(배인경, 2025)
게임 속 인터페이스에서 아바타를 설정하는 과정은, 어쩌면 차별과 혐오가 가장 익숙하고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머리, 피부, 목소리, DNA’ 등으로 구성된 항목을 통해 인종과 혐오의 정치학을 드러내고, 익숙한 게임 아바타 설정화면 공간에 인류사의 가장 폭력적이었던 순간들을 소환해낸다. SF적 가상 세계와 제노사이드의 기억이 겹쳐지며, ‘적합한 아바타의 생성’은 생존을 변명으로 삼은 새로운 차별과 폭력의 재생산 과정임이 드러난다.
<해부학수업 챕터.2>(유하나, 2023)
어린 시절 개구리 해부의 기억은 이 작품 안에서 이미지를 해부하는 실험으로 이어진다. 과도하게 확대되고 맥락에서 이탈된 시청각 자료들은 해부가 단지 생물학적 행위가 아닌, 권력적 시선과 재현의 위계를 수반한 폭력이었음을 환기시킨다. 특히 ‘이미지의 해부’라는 형식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을 실험대에 올려놓는 행위와 이미지를 분절하고 대상화하는 시각적 관습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을 드러낸다. 해부하는 주체와 해부당하는 객체 사이의 균열은 이미지와 현실을 향한 불편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FROMAI>(박주혜, 김용규, 황주원, 홍은진, 김예은, 2025)
엘리베이터 안, 다섯 명의 인물이 마주한 것은 AI가 만들어낸 낯선 이미지의 감각이다. 이 작품은 생성형 AI 이미지의 언캐니함을 제거하기보다는 정면으로 응시하며, 기술적 재현 너머의 감정과 윤리를 사유한다. AI가 감시자이자 창조자로 등장하는 이 공간은, 우리가 AI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인간의 감각이 AI 이미지에 적응해가는 과정, 그리고 그 낯섦마저 하나의 감각적 리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들이 이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라진 모든 방법들>(송시영, 2025)
어린 시절 국민체조의 기억은 고대 그리스의 무용을 복원·계승하려던 나치 선전영화 속 군무 이미지의 파시즘적 욕망과 겹쳐지며, 개인의 몸이 집단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소거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수많은 필름 프레임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무빙이미지의 제작 장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신체와 이미지 사이에 작동하는 권력 구조를 해부하고, 우리가 ‘사라지는 방식’의 미학적·정치적 메커니즘을 성찰하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움직이는 이미지 속에 희미하게 남은 개체의 흔적이 드러나며, 관객은 이미지의 운동 속에서 사라진 존재들을 상상하게 된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이 다섯 편의 작품을 동시대의 새로운 실천을 보여주는 ‘대안영상’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단순히 ‘주류 산업의 실패를 대체할 대안’이나, ‘낡은 이미지의 반작용’으로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들은 주어진 매체 환경과 기술 조건을 섬세하게 활용하면서, 동시대 영상의 감각 구조를 갱신하고, 우리가 영상과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전환시키는 실천을 보여준다 ‘산업’과 ‘예술’,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분법 속에 쉽게 포섭되기보다는, 오늘날 우리가 디지털 영상과 맺고 있는 감각적이고 윤리적인 관계를 전면에서 묻는 자기 반영적 실천들로 읽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본 프로그램은 영상이라는 존재가 기술을 넘어서 사유하고 발화하며 저항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닌다는 믿음 아래, 그 가능성의 일부를 펼쳐 보이길 기대한다. (글 남기웅)
일시 2025년 8월 11일 (월) 18:00
Date August 11 (Mon) 18:00
장소 KT&G 상상마당 시네마(지하 4층)
Venue KT&G Sangsangmadang Hongdae Cinema (B 4F)
패널 <한국 대안영상예술의 흐름: 메타-이미지> 참여작가(김혜원, 배인경, 박베리, 김용규, 송시영)
Artists Hyewon KIM, Inkyoung BAE, JuHye PARK(Bahk Berry), Yongkyu KIM, Siyoung SONG
모더레이터 남기웅(시네미디어큐레이팅포럼 <한국 대안영상예술의 흐름: 메타-이미지> 큐레이터)
Moderator Kiwoong NAM (Curator, CineMedia Curating Forum The Trajectory of Korean Alternative Moving Image Art: Meta-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