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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Nemaf 2023 뉴미디어 라운드테이블: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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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4 14:14:15

<2023 뉴미디어 라운드 테이블: 골짜기>

일시: 2023. 08. 13 (일) 14:00~16:00

장소: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4층

패널: 이율공, 소하현, 고영찬, 김재익, 김현주 x 조광희, 박한나

모더레이터: 문호경

 

오늘 네마프 2023 대안영상예술 선정프로그램 뉴미디어 부문 전시 골짜기에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하게 된 진행자 문호경입니다. 이번 네마프 전시 부문에는 총 6작품이 예선에서 뽑혀서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데요. 이 작품을 만드신 6팀의 작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번 전시 제목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해드리고 싶은데요. 사실 이 6작품도 일종의 경쟁 부문이기 때문에 어떠한 컨셉을 딱 정해놓고 처음부터 기획을 하여 전시한 작품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품들을 다 선정해 놓고 보니 뭔가 하나의 끈으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민을 거쳐서 발견했던 단어가 ‘골짜기’였습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잖아요. 최근 몇 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본의 아니게 보내야 했죠. 공간적, 장소적, 시간적으로도 활동 반경이나 내용적으로도. 그런 것들이 한참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면 크게 보면 세계 역사적으로, 작게 보면 개인 사회에 있어서도 깊은 골짜기로 기록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한 골짜기에서 단지 헤매거나 머물지 않고 그 시간을 멋진 작업을 하는 데에 쓰신 작가님들의 용기에 정말로 박수를 쳐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골짜기가 단지 움푹 파여 있어 허우적거리고 빠져나오고 싶어하기 보다는 더 크고 하나의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골짜기 라는 제목을 지어봤습니다. 좀 설득력이 있나요? (웃음)

그럼 이제 작가님들께 미리 모아본 질문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있는 사람들의 초상 JAE, 이율공 작가님]

-총 4명의 인터뷰이가 등장하는데요. HIV 감염자,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경험한 외국인, 탈북민, 성소수자 가족의 진솔한 인터뷰가 작품에 담겨있습니다. 작가님은 작품의 주제를 어떻게 이것으로 정하게 되었는지, 그 주제를 정했다고 하더라도 인터뷰를 컨텐츠로 한 작품인 경우엔 섭외에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섭외와 허락을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저는 문화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이고, 이전엔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요. 항상 작업을 할 때마다 지니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가장 핵심인 것 같아요. 그 말은 “옆에서 듣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에서 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들린 소리를 모두가 듣기를, 저에게 보인 얼굴을 모두가 보기를. 가만히 듣는 것, 그리고 가만히 보는 것.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줍니다.” 저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말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이 작업도 그 말을 연장해서 기획을 하게 됐고요. 사실 뉴미디어의 여러 전시를 다니면 인간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는 존재론적인 작품도 많고, 사회 문제를 알리는 저널리즘적인 것도 많잖아요. 모든 것들이 훌륭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근데 어떤 존재론적인 고민과 사회적 문제 사이에서 실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긴 호흡의 작업은 다큐멘터리에서만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짧게 이 사람의 이야기를 거칠게 들어볼 수 있는 작업을 해보자’ 하고 시작을 하게 됐어요.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네 분은 어떻게 보면 정치적 이슈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잖아요. 오히려 그 안에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는 지워지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슈로서만 존재하는 존재? 이것도 일종의 ‘타자화’인 거죠. 선정적으로 소비하고 비참한 실상을 전시하고, 실상을 알린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구경물이 되고 우리는 구경꾼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죠. 그리고 인권을 이야기하고 비인간적인 삶을 보여준다는 이름 하에 그들을 정말로 비인간화 시켜버려요. 개개인의 경험이나 희로애락이나 인간으로서 존재의 목적은 지워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들은 집단으로만 보이고 개개인의 이야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우리는 많은 이슈에 대해서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슈들이 문제화되고 정작 그 이슈가 가리켜야 할 사람들은 뒤로 가거나 이용만 되고. ‘이슈이기 이전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리자,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이런 작품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섭외 과정이 진짜 길었어요. 작품의 전체 과정 중에서 섭외 과정이 제일 길었던 것 같아요. 도중에 인터뷰이가 바뀐 경우도 있고, 계획된 인터뷰이들의 인터뷰를 못한 것도 있고요. 처음에 계획했던 건 재한중국동포, 92년도 이전부터 살고 계시던 구화교분인데요. 언젠가부터 중국에 대한 감정이 격화되면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시려고 하기 때문에 여러 단체를 통해서 연락을 해봤지만 아예 섭외를 못하게 됐어요. 다른 분들도 단체를 통해서 섭외를 거치는 과정이었는데, 그 과정이 약 4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섭외를 한 후에도 아무래도 다들 처음 뵙는데 제가 질문을 하면서 이 질문이 질문처럼 안 들리길 원했어요. 일단은 대화를 하자 생각하고 여러 번 뵙고 사전질문지도 주고받으면서 메인으로 소통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찍게 됐습니다.

 

-이 분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매우 담담하고 솔직하게 얘기해요. 인터뷰를 하는 태도는 편안하지만, 내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 분들이 하는 말 속에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나 모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결코 힘든 투정처럼 들리지만은 않는 게 이 작품의 큰 특징 중 하나라고 봅니다. 인터뷰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섭외도 그렇고 저는 좋은 답변을 만들려면 좋은 질문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질문을 어떻게 만드셨나요?

: 처음에 만들었을 땐 기존에 알고 있었던 그 분들의 집단에 대한 생각이나 조사해서 이런 이야기를 해보는데, 더해서 개인의 경험들을 더 얘기해주시면 어떨까 하고 처음엔 막연하게 생각하고 보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과정이 같이 질문지를 만들어 나갔던 것 같아요. 메일을 왔다 갔다 주고받으면서 질문조차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경우도 있었고, 저의 질문 안에도 이 분들을 대상화하는 질문이 충분히 있을 수도 있고. 질문부터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질문 어때요?” 이러면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싫으면 하지 않게끔 서로 빌드업을 하면서 작업하고 배우는 것도 많았어요.

 

-중간에 흰색으로 자막에 마킹이 지워지는데 의도가 있나요?

: 이야기를 듣는 거니까 청각에 집중했으면 했어요. 자막으로 텍스트를 넣다 보니 시각적으로 먼저 정보 설명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강조하셨던 이야기를 마킹을 해서 가려 놓고 그 단어를 말씀하심과 동시에 블록이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시각을 통제하고 싶었어요.

 

관: 기술적인 문제인데 왜 화면을 두 개로 나눠서 했나요?

작: 4명이니까 4개면 좋았겠지만, 공간상 문제와 기기상의 문제로 두개로 나눠서 상영을 했어요.

 

관: 영상 속 인물 뒤에 있는 조명에 대한 의미가 있나요?

작: 이주민은 가봉국기 색이고, 탈북민은 조명 앞에다 수풀을 달아 놓고 찍긴 했는데요. 이에 대해서 구체화해서 설명하고 그러진 않았습니다.

 

[나만 아는 시간, 소하현 작가님]

-평소에 작가님은 감정, 시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작업을 하게 됐나요?

: 요새 들어서 제 작품이 대개적으로 반항적이거나 어떤 걸 탈하려는 성향을 지니려는 게 많아요. 시간을 인지하는 부분에 있어서 기본적인 개념을 탈피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들어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언어도 그렇고 어떤 정해진 법칙을 주입 받고 그게 맞는 것처럼 배우잖아요. 과거에서 전해져 와서 배우면서 그걸로 삶이 대부분이 채워져 있잖아요. 특히 시간이라는 건 시, 분, 초 개념을 통해서 시간을 정할 때 이용하고 인지를 하는데, 시간이라는 게 정해진 진리는 아니지만 이미 정해진 진리처럼 일을 하니까 그런 걸 탈피하고 싶었던 작업인 거죠. 사실은 시간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지만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 보고자 만든 거고요. 그 시간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시, 분, 초 개념이 아니라 어떤 걸 기준으로 삼아서 우리가 이해해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해볼 때 저는 감정도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나의 개념으로써. 그래서 감정으로 시간을 인지하는 단위로서 사용을 했고, 그런 세계관에서 나올 수 있는 에피소드를 선정해서 작업을 했습니다.

 

-피자를 다시 먹고 싶었을 때로 돌아간다는 순환으로 이해하는 게 맞는지, 만약 그 순환이 맞다면 결국 먹지 못한 거 같은데 혹시 다시 돌아간다면 행동을 달리할 수 있을까요?

: 반복되는 상황의 결말과 결말에 대한 결정적인 주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뭔가 영화를 열린 결말로 만들었는데 답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아 약간 당황스럽네요. (웃음) 사실 그 부분도 만들 때 생각은 했는데, 기본적으로 두 개의 에피소드가 영원히 반복된 갇힌 시간으로 잡았고, 만들 당시에는 계속 못 먹는 걸 생각하긴 했어요. 사실은 영상이 계속 루틴이 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에서 잘리니까 보는 관객 분들에 따라서 먹을지, 안 먹을지는 개인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가 생각했을 때는 일반적으로 타임머신으로 돌아가서 계속 과거로 돌아가서 같은 걸 먹었을 땐 사람이 굉장히 무뎌지잖아요. 그걸 오히려 바꿔보고 싶었어요. 맨날 같은 걸 봤고, 반복된다고 해도 조금만 달라지거나 내 예상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쉽게 당황하곤 하잖아요. 특히 저 작업 같은 경우는 감정이라는 걸 시간의 단위로서 인지해 보고자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첫 번째 에피소드도 특정한 그때로 돌아가자는 작업이었거든요. 그런 상태일 때 이 사람은 자기 안에 갇힌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못 먹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 감정은 완전히 똑같지 않고 매일매일 다를 거고 지나가면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기준이라는 게 에피소드에 담겨있어요.

 

-화면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단순화되어 있어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 애니메이션 작업이다 보니 실사 영화랑 다르게 모든 것들을 제가 컨트롤할 수 있잖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니 불필요한 것들은 굳이 들어갈 필요도 없고. 캐릭터가 가장 기하학적인데 첫번째 에피소드가 그래프 같은 게 나오잖아요. 모티브가 레일이에요. 시간을 점으로 지나가는 것 같은 사람이 레일 위의 점을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래프라기보다는. 그래서 저 레일을 지나가는 선과 점이 흔적을 남기면서 내 감정과 시간을 보여주면서 지나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기하학적으로 생겼다거나 단순히 점, 선, 면을 이용해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업을 했습니다.

 

[도로리, 고영찬 작가님]

-이 실종 사건을 조사하게 된 특별한 계기와 추적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었나요?

: 저는 장소에 관심이 많아요. 취미기도 한데 한국말로는 ‘도시 탐험’이라고 하거든요. 영어로는 어반 익스플로레이션(Urban Exploration)이라고 하더라고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폐허나 접근하기 힘든 곳들? 이런 곳들이 사실 사유지라 들어가는 게 합법적인 활동은 아니거든요. 제가 5~6년전에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을 몰래 들어갔는데 매력을 느껴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런 정보를 찾으려고 조사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는데 그 배경이 부안이거든요. 당시 제가 전주에서 아티스트와 머물 기회가 있었고, 그쪽 지역의 기사를 찾아보다가 기사 헤드라인을 보게 되었는데 그게 사라진 16년 돌오리의 행방이 나오는 헤드라인이었어요. 그 헤드라인만 연결을 해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예를 들면 돌오리가 누가 훔쳐갔다, 근데 그게 호돌이 동상 발 밑에서 발견이 됐다, 걔를 다시 올리려고 하는데 배나 등이 어딘지 몰라서 못 올리고 있다는 헤드라인이라서 소설보다 소설 같아서 그 사이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을지 궁금해서 추적하는 식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진행하면서 에피소드는 처음에는 주민들이 등장도 하고 그 분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상상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모든 창작자와 현지 분들과는 관계를 다 맺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참여할 마음이 없으면 한 쪽에서만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 처음에는 주민분들이 제가 영상을 만드려고 왔다 하니 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촬영 당시에는 오리는 찾았지만 어디가 배고 등인지 몰라서 못 올리는 상황이었어요. 주민들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데 왜 못 올리는지 미디어를 통해서 사실을 알리고 빨리 오리를 옮기기 바란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호의적이셨는데 제가 자주 가고 캠코더와 삼각대 하나 들고 다니는 계속 물어보는 저의 행색을 보고 아셨던 것 같아요. ‘아 내가 알고 있는 그런 매체는 아니구나.’ 하면서. (웃음) 어느 순간부터 저를 귀찮아 하셨어요. 예를 들면, “읍내 가면 뵐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쭤보면 병원 약속이 있어서 못 볼 것 같다고 하셨는데, 우연히 마을을 갔는데 마주치면 되게 어색해지는 상황이 된다거나… 그리고 이 분들이 해주시는 말들이 흥미롭긴 하지만 의중이 파악이 된다고 할까요? 예를 들면 이장님은 욕심이 많으신 것 같았어요. 본인의 임기 기간 안에 오리를 올리는 거에 큰 야망이 있어 보이고 그랬어요. 각각 다 이유가 있던 상황들이 있긴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람을 못 믿게 되고, 사람을 찍을 수 없다 생각해서 포기하고 큰 마을을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풍경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로 진행을 했어요.

 

 -화면이 상하로 뒤집혀서 되는 것도 나오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 그때 했던 이야기가 오리가 사라지고 나서 마을에서 새로운 오리를 만들어서 올렸어요. 근데 그 오리가 너무 통통하게 제작돼서 안 들어가는 거예요. 오리 배를 깎았어야 했는데 솟대를 깎은 거죠. 그러고 진짜 주인 오리가 돌아왔을 때는 안 들어가니까 어디가 오리의 배인지 등인지 알 수 없었다는 그 얘기인데요. 그 에피소드를 주로 다뤘기 때문에 돌오리의 시선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게 있어서 화면이 돌아가 있습니다.

 

[먼지의 시간ㅡ미현, 김재익 작가님]

-작품의 제목에서 왜 미현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셨나요?

: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사적 기억하고 보편적인 기억들이 순간적으로 고착을 하잖아요. 예를 들면 배고파서 뭐 먹지? 라고 생각하면서 길을 걷다가 사이렌이 들리면 전쟁이 났나? 하고 보편적인 생각과 동시에 그래서 뭐 먹지? 라는 내 지극히 사적인 생각이 들잖아요. 사건이나 장소들 같은 경우도 보면 역사적인 사건인데 자고 일어나면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가 될 수도 있거든요. 인터넷이나 신문을 보면 정보 소화력이 안 될 정도로 혼란스럽잖아요. 미현이라는 단어가 거기서 나온 건데 사적 기억과 보편적 기억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단어를 찾다 보니 미현이라는 단어가 나오더라고요. 미현이 무질서한 혼란스러운 표현이었기 때문에 충돌되는 지점 작업을 통해 의도한 게 약간 있어요. 저기 붙어져 있는 한자 같은 것도 천도재나 49제 때 거였는데 오색으로 휘황찬란해요. 일반적으로 사건을 가보면 저런 게 많이 걸려있는데 사실 사람들은 죽고 난 이후에 슬픔만 생각하잖아요. 그 전부터 이미 펼쳐진 뿌리나 반대적인 측면이 있는데. 종이에 적혀 있는 건 어떻게 보면 죽고 난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오색찬란인데, 따지고 보면 죽기 이전에 각자 생존했을 때 앞으로의 원하던 꿈이나 미래가 있었을 거잖아요. 나만이 꿈꾸던 화려한 오색찬란이 있을 텐데 그게 내 인생의 희망이자 꿈이었는데 반대편 종이에 적혀 있는 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죽음 이후에 프레임처럼 느껴지는 보편적 애도도 중요하지만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뿌리부터 알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계신데, 주로 어떤 걸 수집하고 측정위치의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 작업 자체가 가시적인 것보단 비가시적인 걸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운드와 더불어서 보여지는 데이터들이 안 보이는 것들인데 비가시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수집한 건 아니고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예요. 도시를 상징화하는 데이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게 있어요. 과거와 현재를 통해 변화되는 오염지수 데이터가 지금의 오염지수는 농도가 예전 데이터를 봤는데 다르더라고요. 이런 데이터들을 그래픽적으로 시각화해서 실시간으로 보여주되 이런 현상들이 지금도 일어나는 것들이니까 보편적인 것도 하지만 같이 동시에 보여주면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빼뻘 - 시공을 몽타쥬하다, 김현주 x 조광희]

-작가님은 어떻게 그곳을 알게 되셨고, 빼뻘 마을에 어떤 점이 끌려 작품을 만들게 되었나요?

: 한국전쟁과 관계한 작업들을 몇 해 간 했어요. 아무래도 역사적 작업을 하다 보니 노인세대를 만나게 되고, 그 분들의 얘기를 하면서 전쟁 당시 여성 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인터뷰 이후에 돌아가신 분들도 많아요. 사실 전쟁이라고 하면 군인이 떠오르는데, 무고하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이 많다는 걸 뒤늦게야 알게 되었는데요. 전쟁 당시 여성 분들의 이야기를 주목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전쟁 전후로 남한 쪽에 많은 미군기지가 세워진 걸 알게 되고,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공동체에 끼쳐진 영향이 황당해서 그 삶을 관심 갖게 됐습니다. 2018년도에 조금 더 집중해서 작업을 진행하게 됐는데 그 작업 자체가 스스로 관념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이게 역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누군가의 책이나 기사 속에서 간접적으로 찾고 있는 게 스스로도 불편했어요. 작업을 다시 시작을 해야 되겠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건 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장기 프로젝트로 1~2년 정도 생각하고 기존 마을을 찾고 있었는데 빼뻘 마을이 어떻게 보면 마을들 중에 가장 하드코어였어요. 어떻게 보면 힘들고 불편한 기억도 많았지만, 마지막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어요. 이 마을이 동두천일 줄 알았는데 의정부였고 실제로 서울과 그리 멀지 않더라고요. 찾아가서 제가 머물 공간을 찾았는데 미군들만 다닐 수 있는 클럽 공간을 1년 정도 빌려서 작업을 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오래 걸렸고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고 해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되고 만나는 과정이 자연스러웠으면 했어요. 작업을 목적으로 오긴 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관계를 맺는 게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 마을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빼뻘 마을이 기지촌이라고 불리기에는 굉장히 많이 변했잖아요. 부대도 대부분 이전을 했고. 현재 남아있는 미군이 실제 병력인가요?

빼뻘은 다른 곳에 비해서 과거의 외형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곳이에요. 캠프스텐이라는 미군 부대와 함께 형성된 마을이에요. 의정부에는 10개의 미군기지가 남아있고 그 중 하나가 캠프스텐인데 제가 여기 마을에 들어오기 한 해 전부터 미군들이 본격적으로 철수를 하기도 했어요. 2000년대 초반에 9.11 테러 이후 우리나라, 일본, 독일 등 전세계에 퍼진 미군 병력이 옮기면서 단축이 됐어요. 이란이나 그런 쪽으로 많이 파견이 된 거죠. 조금씩 감추면서 줄어 들긴 했지만 미군들이 있었고 지금은 정확한 병력을 알 순 없지만 매일매일 헬기가 들어와서 주유를 하고 가는?  그리고, 기지촌이라는 곳이 기지가 만들어지고 그에 맞게 사업활동이 시작됐어요. 지금 병력이 많이 나가기도 했지만 기지촌의 정서는 많이 남아있는 거예요. 땅에서 계속 살아냈던 분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활발한 사업활동은 아니지만 정서는 여전히 남아있으면서 하드화 되고 있어요. 또, 빼뻘이 미군과도 여러 문제가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땅문제도 얽혀있어요. 연결된 고리들이 지금도 계속 남아있어요.

 

-VR 360도 카메라 제작이 굉장히 효과적으로 느껴져요. VR 촬영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 우선 지역에 있다 보면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되고 장소의 변화를 목격하게 돼요. 2019년부터 마을의 1/5가 완전히 쓸어 나가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 과정을 들어오면서 쭉 보게 됐고, 그 다음 해에는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던 공간도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없어지고 그랬어요. 제가 들어가지 못했던 장소나 외벽, 내부 공간까지 아직 보지 못했는데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절박함과 위기감이 있었어요. 그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장소도 없어지는데 주민 분들이 연세가 있으시니까 돌아가시게 되더라고요. 이분들의 이야기는 남아있는데 작업이 되지 않더라도 꼭 구현했으면 했어요. 작은 낙서나 공간의 구조 등 여러가지 단서가 있는데 전 이게 일종의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사람들도 기억을 갖고 있지만, 빈 공간도 기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상호작용이 안 된 상태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제대로 서둘러서 아카이브를 해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이 지역을 아카이브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그래서 설득을 했죠.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빨리 안이나 밖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설득을 해서 VR 매체로 이 지역을 최대한 기록을 해보겠다고 하니 좋아해 주셨어요. 기록을 목적으로 받은 사업 기금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했죠. 그래서 처음에 매체로 작업을 해보자 했는데 내부는 쉽지 않았어요. 뭔가 이유 없이 보여주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고, 안 보여주고 싶은 공간도 있잖아요. 안에 들어가서 설득하고 촬영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다 하고 나서 든 생각은 그곳의 보여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지촌에 대한 고착된 생각 때문에 보고 싶은 게 정해졌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머무는 동안에도 다양한 작가들이 와서 여러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찍히고 그랬는데 이게 원숭이처럼 불쾌했겠다, 오래 지역을 머물면서 느꼈는데 시각적으로 사실적 이미지들이 고착화를 깨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걸 강화시키고 슬럼화 된 모습들을 더 강렬하게 보여주면서 지역에 피해를 준 건 아닌지 고민에 많이 빠지기도 했어요. 다 개방해서 전시장에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걸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야 관련된 이야기들을 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상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됐고요. 처음엔 3개월동안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하다 보니 계절이 바꼈는데, 주차되어 있던 차도 바뀌고 사람도 사라지고 그런 것들을 주목하면서 기억해야 된다는 실체에 대해 생각을 했어요.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파편화 되고 기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한계를 강조해서 편집을 했어요. 기억에 대한 불확실함 질문 자체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마을 주민들과 하는 여러 활동은 무엇인가요?

: 매 해마다 조금씩 달라요. 올해 같은 경우는 교육 활동을 통해서 상반기에 진행했어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만나면 더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고 예술교육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에 일을 하셨던 여성분들도 소그룹을 만들어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고, 경제활동을 하셨던 분들로 구성을 해서 만났어요. 정기적으로 수업을 했더니 재미를 느끼셨나 봐요. 땅 얘기 아니고도 재밌을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주민분들을 모시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해봤는데요. 여기가 어떻게 보면 서울이랑 한 시간도 안되는 거리인데 음식 주문이 안 되는 곳도 많고 마을에서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게 노인분들에겐 어렵더라고요. 놀 수 있는 장들을 만들면 그것들이 기반이 되어 저와의 관계도 달라지는 것 같았고요. 8월부터는 개별적으로 만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가능해지면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짧은 여행을 하면서 소소하게 노는 방법을 생각 중이에요. 주민들이랑 같이 어떻게 재밌는 다양한 것들을 할지 기획하고 있습니다.

 

관: 빼뻘에서 구체적으로 같이 했던 주민들과의 팁이 있나요?

작: 이 분들이랑 뭘 하면 재밌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평화로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했어요. 대화를 할 때 습관이라던지 그런 걸 다르게 전환하고 싶었어요. 규칙적으로 이 공간에는 무엇을 하고 만날 땐 뭘 하고 과정에선 어떻게 하고 헤어질 때 어떻게 하는지 이런 걸 일종의 하나의 대화라고 생각해요. 점진적으로 만남을 가지다 보니 다 익숙해지게 되더라고요. 하게 된 동기가 서로 사이도 안 좋았고 그분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마을의 복잡한 문제를 얘기 말고 예술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서로 칭찬해주면서 인사도 나누고 그런 걸 진행했던 것 같아요.

 

[유령의 풍경, 박한나 작가님]

-왜 현재의 시간이 아닌 2080년으로 미래를 설정하셨나요?

: 기후위기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관련해서 제주에 살고 있는 해녀 분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어요. 그 분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자연과 연결되었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는지 질문을 했어요. 동시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분들의 목소리가 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슬프게 들렸어요. 주제를 위해 계속 자료를 찾다 보니 우울해지더라고요. 이분들은 지금의 자연을 좋아하는데 슬프게 들려서 내가 너무 지나치게 미래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면서 성찰로 통해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이야기를 담고 싶고 매우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슬프게 들을 수밖에 없는지 그 고민에서부터 화자를 설정했어요. 시대를 잡으면서 몇 년으로 하느냐 고민을 했어요. 일단 두 세대 정도로 상상을 해서 임의로 설정을 하고, 그로부터 시작해서 흔한 이야기들일 수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 허구의 인물을 설정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직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풍경이나 바다 등을 3D로 표현을 하셨어요. 이런 이미지를 선택할 때 어떤 걸 고민해서 담으려고 했나요?

: 이미지 아카이브를 할 때 미래 배경인데 미래 이미지를 가져올 수가 없잖아요. 현재 안에서 내가 미래를 보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당시에 바다에 많이 빠져 있어서 골랐는데 제가 제주에 살면서 산업화되는 풍경을 많이 봤고 폭염이나 가뭄으로 갈라진 땅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주요한 풍경이 되지 않을까 했고, 그 안에서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현실을 외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디지털 가상 세계 안에서 접속하는 이미지를 통해 눈앞에 펼쳐진 걸 제대로 보지 못한 건 아닐까 싶어서 다양한 이미지를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제주도가 처한 현실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 질문이 굉장히 어렵네요. 뭐, 정치적인 문제부터 사회적인 문제까지 참 많다고 생각해요. 생물 다양성에 관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제주도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제2공항이라고 생각해요. 도로확장공사 같은 거나. 물론 이게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시적으로 이슈들이 눈에 많이 보이면서 전지구적 모습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서울에서 살다가 제주로 이사를 간 건데, 도시라는 공간 안에선 제주도의 소식이 잘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 같아요. 도시가 사라지면 역사가 사라지는 건 슬프지만 자연이 삭제되는 건 아니잖아요. 제주도는 자연의 하나의 상징이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국한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이번 골짜기를 준비하면서 작가님들과 작품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는데요. 작가님들께서 작업들에 대해 하고 싶었던 얘기가 많으셨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긴 시간 동안 함께 해 주신 관객분들, 작가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녹취 및 정리 정서진 아카이브팀 ALT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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