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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Nemaf 2023 심포지엄
정서진 조회수:2467 49.175.143.81
2023-08-16 13:17:08

2023. 08. 14 (월) 심포지엄 대담 기록

패널: 김남시, 이광석, 이은희

모더레이터: 김현주, 김장연호

 

김현주: 시작하면서 집행위원장 김장연호 선생님께서 이번 페스티벌 주제 선정하는 과정과 함께 그리고 이 심포지엄을 기획하시면서 또 가지셨던 생각들부터 시작해서 좀 먼저 이야기를 끌어주시고 그리고 함께 질의를 진행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장연호: 네 안녕하세요. 지금 토론을 맡은 김장연호라고 합니다.
저희가 이제 ‘안전한 신체 확장’이라는 주제로 작년 2022년도 2월달부터 이제 고민을 하게 됐어요.
아시겠지만 이제 2022년도 2월달쯤에 우크라이나하고 러시아 전쟁이 났었죠. 그때 이제 그 주제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우리가 지금 이런 시점에서 이렇게 큰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하는 그 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고민을 해야 되냐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나왔던 주제가 평화였어요. 평화라는 주제를 한번 잡아봐야 되지 않을까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과연 우리가 그 평화라는 주제를 고민하기 이전에 지금 현재 우리는 안전한가 이런 어떤 이야기도 한번 나눠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어떤 보도자료에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얘기하는 ai나 로봇이나 메타버스 등 인간이 갖고 있는 신체의 확장, 어떻게 보면 디지털이나 전자라든가 기계에 의한 어떤 인간의 신체의 확장이 어느만큼의 인간을 어떤 유토피아적인 뉴스가 나오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과연 이 기술 매체가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정말 안전한 이 환경과 상황들의 조건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우리가 같이 한번 이야기를 한번 나눠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확장이 아니라 그 안전함에 방점을 찍은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는 주제를 잡게 됐습니다.
오늘 세 분의 선생님들께서 너무나 좋은 이야기 너무나 많이 해주셨습니다.

사실 인간의 신체 성장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은희 작가님이 발표를 해 주시면서 제품의 생애 주기를 얘기를 해 주셨어요. 인상적이었던 게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제품의 생애주기잖아요.
근데 그 생애 주기가 인간의 노동의 생애와 너무 똑같은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제 그 최상의 노동을 할 수 있는 그 시기와 자본주의의 기업에서 이 제품의 생애 주기를 잡아 그 데이터가 너무 똑같다는 각이 들게 되면서 인간이 정말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신체라는 게 부품화, 제품화되는 그 과정에 정말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또 반문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김남시 교수님의 얘기에는 저는 네마프에서 수많은 작업들과 작가분들을 보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해 주셨거든요.
정말 사진과 글쓰기를 어떻게 보면 이 창작을 하는 작가분들을 20년 넘게 보게 된 거죠.
그래서 그 안에서 어느 만큼 창작이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작가분들이랑 했을 때 기성품에서 만들어진, 어떤 기존의 대기업에서 만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거의 대부분 편집을 하잖아요. 이런 편집 프로그램으로 과연 크리에이티브한 이미지가 나올 수가 있느냐에 대한 논쟁들을 상당히 많이 했었습니다.
실제로 이제 작가분들이랑 얘기 나온 것중에 백남준을 우리는 본받아야 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왜냐하면 백남준 작가님은 본인의 어떤 이미지 프로세싱을 하는 그 장치를 바꾸셨잖아요. 유일하게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 프로세싱의 장치를 이제 만들어 내셨고, 그러면 예술가가 그렇게 가야지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부터 사실 이런 작업들이 어떻게 보면 기업들이 만들어낸 소프트웨어를 사용을 하지만 말씀하셨던 것처럼 촬영하는 것도 보면 사진가가 갖고 있는 관점에 따라서 똑같은 이미지도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도 창의적인 영역 안에서 우리가 폭넓게 이해하는 그런 다양한 방법론을 찾아내야지 된다 같은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어떤 생각이신지 좀 들어보고 싶고요.

 그리고 이제 이광석 교수님께서는 지금 시대에 필요한 중요한 이야기를 진짜 많이 해 주셨잖아요. 제가 영상을 많이 보다 보니까 자본주의화된 지금 현재의 디지털 영상은 어떤 영상의 포맷을 갖고 있고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영상은 어떤 포맷인가 이렇게 한번 이제 점검을 해본 적이 있었고 어떤 것이 탄생했는가 라고 보니까 대표적으로 그런 작업 중에 하나가 유튜브라고 생각해요. 사실 비디오 일기는 1970년도부터 나왔던 포맷이거든요. 과거에 1940년대 16mm 필름이든 8mm 필름이든 비디오가 본격적으로 창작이 됐을 때 상당한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 작가분들이 비디오 일기라는 형식의 비디오 아트 작업들을 많이 창작을 하셨기 때문에 비디오 로그라고 하는 내 개인의 일상을 담아내는 유튜브의 하나의 형식은 흐름들을 잡아낼 수 있죠. 제가 느끼기에 자본주의적인 영상 중 하나가 과거에는 없던 ‘먹방’이었어요. 그거는 제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20년 넘게 영상을 봤지만 먹방 영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예술가들의 작업들에서 그거는 정말 디지털 문화에서 만들어진 영상 콘텐츠였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부분들을 과연 판단해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또 좀 개인적으로 좀 해본 시간이 됐습니다.

 

김현주: 그리고 질문이 조금 있는데 저는 일단 김남식 선생님께 먼저 좀 드리고 싶은데요.
그러니까 지금 사진찍기라는 행위와 타자를 친다라고 이 두 가지 행위를 통해서 몸짓을 통한 그 장치 내지는 기술과의 인간의 어떤 접점 그리고 융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매체들은 오래된 매체이기도 해서 저희가 사실은 거의 한 세계를 가로지르는 그런 논의를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어찌 보면 사물의 소멸이라고 하는 측면도 여기서 사물은 좀 더 물질적인 사물이겠죠.
그래서 예전에 이야기했던 장치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또 몸으로서 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다고 보자면 오늘날 소프트웨어화된 그런 디지털 사회에서의 장치와의 접합은 굉장히 비물질적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선생님께서 굉장히 오랫동안 연구들을 해오셨던 걸로 알고 있어서 오늘날 달라진 어떤 물질성을 가지고 있는 매체, 플랫폼화된 어떤 기술 환경 속에서의 몸짓 그 측면은 또 어떻게 좀 생각하시는지 그런 부분들 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은희 선생님께는 작품 설명 잘 들었고 또 직접 전시 작품도 함께 보고 싶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굉장히 좀 특이한 아티스트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어쨌거나 간에 개인적인 피로 그리고 번아웃이라는 용어는 굉장히 일상적으로 우리가 많이 쓰지만 이것을 건설 현장이나 아니면 제품의 어떤 스트레스 쪽으로 연결하는 건 굉장히 독특한 시도인 것 같아서 어떻게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소재를 작품으로 끌어오셨는지 그런 과정들이 좀 궁금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광석 선생님께 개념에 대한 풀이를 좀 부탁을 드리고 싶고요. 횡단 신체라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여기서 횡단의 의미를 조금 더 말씀을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오늘날의 기술이 반영된 시대상, 시대의 현상들을 말씀 주시면서 어찌 보면 우리가 그때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그런 가상 공동체, 민주적 인터넷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던 시대에서부터 지금은 굉장히 암울하다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그 대안적인 것들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라고 하는 그런 비전, 여러 가지 문제의식 속에서 선생님께서 생각해 보시는 그런 관점이 있다면 어떤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남시: 제가 말씀드렸던 타자기나 카메라가 이미 오래된 아날로그틱 매체인 거죠. 그런데 컴퓨터라고 하는 장치가 등장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러니까 타자기나 카메라 하드웨어적으로 작동하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의 가능성과 비교해 봤을 때 컴퓨터는 되게 독특한 것이 소프트웨어가 계속 만들어지잖아요. 그러면 컴퓨터라고 하는 하드웨어 외에 소프트웨어가 어떤 소프트웨어가 장착되는가에 따라서 컴퓨터라고 하는 전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의 범위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장비인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아까 백남준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는 작가들이 그런 소프트웨어에만 국한하는 것보다 하드웨어 자체를 만들고 차안하는 것, 그건 이미 그 하드웨어가 할 수 있는 가능성 프로그램 자체를 착안하는 일이잖아요. 이런 건 연습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기계 장치라고 하는 개념 속에서 이 기술 자체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거나. 이런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기술 속에서 우리가 진입해서 기술을 가지고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마당에 나온 관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컴퓨터라는 그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이 장치의 가능성들을 더 되게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고 적극적으로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를 우리가 만들 수도 있고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뭔가를 혹은 컴퓨터의 하드웨어 자체를 보며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는 한편으로는 하고 있고요. 플랫폼화된 거는 자본과 결합되어서 오늘날의 기술적 장치들이 작동하는 방식이 우리를 규정을 하고 있죠. 근데 저는 이 플랫폼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우리가 전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우리를 완전히 슬레이브화시키는 것이기만 할까? 우리가 규칙들을 변형하고 이용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의 여지들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그렇게 생각해야만 우리가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뭔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플랫폼이나 요즘의 기술도 워낙 다 지배적이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우리는 그냥 거기에 당하는 것일 뿐이야라는 관점보다라는 생각보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번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이은희: 어떤 심리적인 병리와 산업 환경의 부분들을 엮은 계기에 대해서 물어봐 주셨는데 그게 간단하게는 다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사실 요즘 세대들이 왜 우울감을 느끼는가, 왜 무기력해지는가 아니면 특정 세대들이 왜 그런가라는 어떤 이야기나 기사나 어떤 분석을 봤을 때 사실 개인적인 것으로 우리가 해석하지 않잖아요. 어떤 노동자의 우울 아니면 어떤 특정 젊은 세대의 우울 이런 것들이 개개인이 겪는 어떤 경험들도 있겠지만 공통적인 경험들에 의한 것들도 되게 많다고 생각해요. 이미 그렇게 우리도 이렇게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었고요. 그러면 그런 것들을 왜 우리가 특정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느끼는 어떤 무기력감들을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나 혼자 무력해지고 그게 나에게만 너무 괴롭고. 이런 감정에서부터 벗어나거나 이거를 좀 뛰어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걸 내 스스로를 사회적인 관점으로도 바라봐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계속 고민을 했던 것이죠.
또 작업을 할 때도 모든 일하는 분들, 모든 노동하는 주체가 다 그렇지만 나의 페이스대로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내가 너무 돈을 못 벌고 그래서 번아웃이 왔고 이렇다기보단 번아웃과 우울감, 무기력감이 오는 계기가 무엇인가를 생각을 하다 보니까 굉장히 많은 연결성이 있다고 느꼈었고요.
그리고 또 그런 우리에게 무력감을 주는 사회적인 실제 사건 사고들을 제대로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거나 아니면 다른 관점으로도 조금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걸 기술이랑 연결했을 때는 우리가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건도 사고가 스크린도어 때문에 사고가 난 거라고 생각을 안 하잖아요. 세월호 참사도 선박에 의한 사고라고 생각을 안 하고. 어쨌든 그런 사회적인 시스템에 의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기술은 어쨌든 독단적인 것 아니면 주체성을 본인이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래서 더더욱 뭔가 인간과 엮어서 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광석: 김장연호 집행위원장님 말씀하신 내용 중에 아마 이제 작가적 영상이 미학적으로 굉장히 완성도가 높은 작업들도 많긴 합니다. 유튜브에 흔한 영상과 다른 작가적 영상의 차이를 짚어주신 것 같은데요. 거기서 이제 먹방 사진, 자본주의적 영상에서 최근에 자동화된 이미지 생성 기계, 텍스트 생성 기계가 작업의 창작 능력이 표절 혐의나 의학적 완성도가 낮은 형태로 배출이 되면서 저작권의 문제가 되는 경향들도 있지만 그게 기술적 결함이라고 생각한다면 편향을 잡을 수가 있잖아요.
강화 학습을 통해서 우리가 공식화된 편향들이 혐오나 혐의가 있다고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거나 파악이 되는 텍스트나 이미지들이 있죠. 그런 것들은 예전에 이루다 때처럼 처음에 사건 터지고 나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과정 중에서 바로잡는 과정들이 있겠죠. 근데 사회에 굳어 있는 고착된 편향이나 약자에 대한 태도, 불균등 구조에 대한 내용들을 강화 학습을 통해서 잡아내기는 어렵죠.
그러니까 부여된 세계관의 상식선에서 얼버무리거나 대답을 회피하거나 어느 정도 문제가 툭 튀어나온 부분들을 마무리 작업들을 하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지능형 기계들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것이 이미지나 텍스트 편향이건 잡아낼 겁니다. 그런 지점에서 보자면 지금 향후 창작의 능력이나 이런 지점에서 거의 인간과 같은 리믹스 작업이나 창작 생성 작업들을 저는 할 거라고 보는데요. 그러니까 생산형 ai가 만들어내는 자동 기계 작업이 자본주의적 영상 작업이라고 본다면 작가적 작업은 과연 뭐가 차별점이 될 것이냐 그 부분을 좀 생각하게 되었고요. 개별적 작업이 암만 혁명적이고 반역적이고 어떤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작업이지만, 주류화된 시스템 안에서 그 작업이 던져지면 그 콘텐츠 안에서 작용하는 반역성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콘텐츠들의 배열 안에서의 반역성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개인적 작업의 반역성이라는 것이 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미학적 성취도를 스스로 온라인이라는 저 넓은 바다 안에서 자기의 작업들의 어떤 누군가에게 공명을 줄 수 있는 힘이 한두 사람에게는 있을 수가 있겠죠. 근데 그 이전에 비해서 상당히 악화될 것이다. 이미지와 영상의 범람과 과잉화 속에서 특정의 이미지를 전유하거나 혁명적, 반란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화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에 투항한 거라고 저는 생각이 되는데요.

컴퓨테이셔널 이미지들에 대해서 이전의 이미지들과 나의 알고리즘화된 이미지들이 예전에 현실의 왜곡일 수도 있고 제한된 이미지일 수 있는데 그 이미지들이 만들어지는 것들과 지적한 것은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sns 등등에 올라가면서 그 이미지들이 관계성을 갖는데 그건 자본주의적 관계성이죠.
주목을 끌기 위한 관계성, 여러 가지 형태의 사물화된 그런 관계성에 지배당한 컴퓨테이셔널 포토들이 있잖아요. 과거에 어떤 방식의 포토들이죠
근데 제가 얘기하는 작가적인 상상력이 들어갈 수 있는 관계성들은 뭔가 다른 관계성의 미학적 효과들을 만들어 대항적 미학들을 만들어내는 힘일 텐데 아마 그것이 전공의 미학이라고 얘기하는 특정의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서 거대한 군집화된 온라인상의 커뮤니티나 유저들이 특정인 삶에 달라붙는 방식, 연대하는 방식, 얽히는 방식 그런 형태일 수도 있고요. 지금의 자본주의의 그런 미학적인 소비 방식에 대항할 수 있는 이미지나 영상과 관련된 대안적 작업에 대한 창안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횡단 신체성은 아까 담론의 차원이라고 얘기드렸던 온라인상에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대화 이데올로기의 영역, 정치의 영역 이런 것들이 말의 영역이죠.
흙의 영역은 환경의 영역이고 신체가 그 신체를 둘러싼 말과 흙의 영역들이 계속 조건화하고 있는 상태 그리고 그 몸이 개별적인 주체가 아니고 분리 몸이 데이터로 쪼개지기도 하고 다공성이라고 얘기했던 몸이 닫힌 존재가 아니고 흙과 말에 의해서 유동적으로 독성도 생기고 변화해 나가는 그런 존재이고, 상처도 받고 등등의 그런 리트머스지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 존재로서의 횡단 신체성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전한 신체의 확장 제목이 굉장히 좋았어요. 오늘 그 대안적 관점이라는 주제는 좋았고 그것의 대안이 안전이라는 것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제가 지금 강압적인 통제가 아닌 기술 장치를 통해서 어떻게 한 도시의 그런 정보의 흐름이라든지 담론장들에 형성되는 방식들을 관리하냐의 부분들을 안전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고, 전쟁과 관련해서도 안전이라는 경우는 결국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권력체 국가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서 국가 의존형 안전 시스템이 과연 우리에게 좋은 것이냐 라는 것을 조금 한번 말씀드리고 싶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안전이 대안이 되기보다는 상호 돌봄이 중요하고 안전에서부터 박탈당하는 현실 그런 약자들의 상호 돌봄의 공동체적 기회를 오히려 모색하는 것들이 안전의 위험성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녹취 및 정리: 정서진 아카이브팀 ALT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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