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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NeMaf 2024 디앤 볼쉐이림 <친족의 지리학> 상영 후 마스터 클래스
조한나 조회수:1146 121.171.194.214
2024-08-05 11:46:46

«친족의 지리학» 마스터 클래스

일시: 24.08.2 (금) 19:00 상영 후

모더레이터: 김장연호

참석: 디앤 볼쉐이 림

 

 

김장연호 집행위원장: ‘떠도는 기억, 그 너머의 흔적: 한국 입양 70년’이라는 주제로 작품 초청을 해서 총 4명의 감독님을 여러분께 이렇게 소개를 하게 됐습니다. 디앤 볼쉐이 림 감독 감독님은 사실 너무나 유명한 감독님이셔서 사실 제가 이 주제를 먼저 생각을 하고 제일 먼저 떠올렸던 감독님이기도 합니다. 사실 한국에까지 오실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었고 제가 그냥 메일을 드렸었는데, 한국에 와서 관객분들과 만나고 싶다고 얘기를 하셔서, 저도 이렇게 기획을 하는 그 과정이 상당히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작업이 상당히 많으세요. 작업이 상당히 많으신데 제가 맨 마지막 작품을, <크로싱즈>라고 하는 작업을 제안을 드렸었어요. 그러니까 작품 이 3편 정도로 이렇게 제안을 드렸었는데, 그것보다는 이 주제 자체가 한국 입양에 관한 거기 때문에 본인의 '한국 입양 3부작'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이 작업을 상영을 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제안을 해 주셔서 오늘 이번 프로그램에서 <1인칭 복수>, 그다음에 <차정희를 찾아서>, 오늘 여러분들이 같이 보셨던 <친족의 지리학> 이렇게 세 편의 작업을 소개를 하게 됐습니다. 이제 마스터클래스를 하게 될 건데요. 사실 너무 유명하시죠. 에미 상도 받으시고, 그다음에 <차정희를 찾아서>는 에미 후보까지 오른 작업이기도 하고. 그리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상까지 받은 그런 감독님이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여러분들이랑 특급 마스터 클래스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디앤 볼쉐이 림 감독 감독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디앤 볼쉐이 림 감독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정말 감사드리고요. 또 오늘 이렇게 제 작품을 선보이면서 여러분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오늘 마스터 클래스에서 제가 함께 보여드린 이 내용에는 오디오 동영상이 있는데, 그 오디오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현재 기술적 문제가 있는 관계로 제가 한번 작동을 해보고 얼만큼 잘 전달이 될지 시험해 보면서 그에 따라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초대해 주신 김장연호 집행위원장님께도 감사를 드리고요. 또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하게 돼서 굉장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번에 '한국 입양 70년'이라는 특별한 주제로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셨고 저는 이것에 함께하게 되어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입양의 70년, 그리고 방황하는 기록과 그 너머 흔적'이라는 제목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현재 입양에 대해서, 특히 국제 입양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담화와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올해 네덜란드에서는 자국민들이 더 이상 해외에서 아동 입양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요. 그리고 스웨덴도 작년 말부터 국제 입양을 중단했습니다. 또 미국과 유럽에서도 국제 입양 관행의 합법성 그리고 윤리에 대해서 관심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한국에서도 덴마크 출신의 한인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의 압력 하에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이런 입양과 관련해서 아동 출신지 위조라든가 아동 세탁 그리고 부패 등 해외 입양에 관련된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가 이미 착수되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1960년에서 1990년까지 미국을 포함한 11개 국가에 입양된 한국 아동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올해 네마프의 주제 '한국 입양 70년'은 그만큼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현재 제작한 이 3개의 영화가 사실상 한국에서도 입양에 관련된 영향, 이런 것들이 공론화되는 데 조금이나도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특히나 국제 입양을 통해 한국 가정, 입양 가족 그리고 실제로 세계 입양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런 부분을 조명해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다큐멘터리랑 작업에 대한 얘기를 할 건데요. 저는 이 다큐멘터리 작업, 특히 자문화기술적인 작업들을 숨겨지거나, 잊혀지거나, 또는 지워지거나 한 개인과 집단의 역사를 재구성, 재나레이션하는 방법으로 사용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서 개인에게 자서전적인 어떤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를 말씀을 드리고요. 그 배경에 있는 어떤 문화적, 정치적인 부분들을 좀 말씀을 드리고 그다음에 제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입양에 관련된 것인데요. 아마도 해당 내용을 오늘 여러분께서 보신 <친족의 지리학>하고도 연관해서 비교해 보신다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일단은 제가 작업 중인 영상을 보여드리려고 하지만 오디오가 지금 작동이 안 돼서 그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와 영화계 또는 미디어계의 관련이 어디서 시작했냐, 수십 년 동안 제가 일을 하긴 했고요. 특히나 그 아시아계 미국인 미디어 센터라고 하는, CAAM에서 제가 일을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있고요. 거기에서 일하다가 이후에는 독립 영화 제작자로 따로 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영화를,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 때, 이런 것을 만들게 되었던 욕구나 희망은 바로 내가 누구인가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백인 미국인 가정에 입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캘리포니아로서 유색 인종은 물론이고 한국인은 전혀 없는,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렇지만 굉장히 사랑이 많은 가정에 입양이 되었고 거기서 자랐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저희 어머니 그리고 저인데, 제가 1966년 4월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제가 미국에 1966년 도착했을 때 제 한국인 이름은 차정희라고 알려져 있었고요. 저는 아예 가족이 없는 고아라고 서류상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입양이 되어서 정말 재빨리 영어를 배웠고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 말은 완전히 잊게 되었습니다. 이게 아주 어릴 때가 아니라 8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기억이 완전 상실된 상태였습니다. 제가 과거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서류와 그리고 제 양부모님이 말씀하셨던 것, 즉 제가 고아라는 내용뿐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몇 년 후에, 대학에 다닐 때쯤에 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 한국에 실제로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 형제, 자매 등등 다소 대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게 된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은 입양 과정에서 저와 다른 여자의 이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죠.
제 이름은 사실상 차정희가 아니라 강옥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명이 되는 사진이 두 장인데요. 왼쪽에 있는 게 실제 차정희라는 분이고, 똑같은 이름으로 제가 사진 찍힌 이 오른쪽에 있는 게 제 사진입니다.
제 영화에서 제가 막 튀어나오듯이 지금 현재 연기하는 모습인 것 같은데요. 어쨌든 여러분 이 영화를 상기시키면서 이 내용들에 대해서 조금 의미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일단 제가 알게 된 사실은 제 입양은 불법이었고, 그리고 저는 이른바 이러한 입양, 이름도 바뀌고 여러 가지 사실이 바뀐 것을 아동 세탁, 돈 세탁과 비슷한 말로 아동 세탁의 형태라고 알게 되면서 저의 세계는 완전히 뒤집혔는데요. 저는 정말 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한국 문화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안 건 대학교에 들어가서였고 저는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제 형제 자매들처럼 백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빨리 미국 사회에 동화가 되었고요. 그리고 아시아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고 한국에 대해서도 모를 뿐만 아니라 한국 말 자체를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과 함께 정말 어떤 심오한 위기가 찾아왔고, 이것이 많은 절망감으로 대학교를 다니는 저에게는 다가왔습니다.
일단 저는 분명히 사랑 많은 가족에 입양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입양 자체에서 저는 여러 가지 상실감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내가 태어난 국가, 언어, 문화, 한국에 있을 그런 형제자매들과의 함께 자랄 수 있었던 기회, 그리고 또 한국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모든 기회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가족을 얻었지만 제게 소중했던 모든 것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절망적인 것은 기억의 상실인데요. 너무나도 완전한 상실이었기 때문에 제 생모가 제 옆을 지나간다고 해도 제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기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렇게 하면서 첫 번째 저의 영화인 <1인칭 복수>가 시작되었는데요. 이것은 일종의 생존의 형태라고 볼 수 있고 또 저에게 강요된 진실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제가 갖고 있는 입양 기관에 대한 문서, 법률 서류 그리고 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우리 양부모님의 나레이션, 이런 걸 통해서 나에게 강요된 진실에 대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입양 서류라든가 법적 문서들은 결국은 제 역사에 대한 삭제, 그리고 저 자신의 어떤 과거에 대한 모습 기억에 대한 삭제까지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이 비엣 탄 응우옌이라는 작가가 있는데요. 그의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기업을 위한 투쟁, 고급 분질은 결국은 자신의 결정권이라든가 목소리, 그리고 통제권을 위한 투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내러티브를 통제하기 위한 저의 이 투쟁이 바로 이 <1인칭 복수>라는 영화를 통해서 여정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1인칭 복수>라는 제 다큐멘터리의 시작 부분이 나와 있는데요. 소리는 안 나오지만 제가 이미지를 지나가면서 설명을 좀 해드리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미지 중에 하나가, 제 양아버지 아놀드 볼쉐이가 실제로 만드신 장면들을 많이 담고 있어요. 그 당시 홈무비를 만드는 것, 즉 8mm 볼렉스를 사용해서 찍는 그런 홈무비가 굉장히 유명했는데 저희 아버지도 이걸 굉장히 사랑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제가 좀 많이 담아보고 있습니다.
사실 <일인칭 복수>의 제작 과정 내내 저희 아버지도 촬영을 하고 계셨습니다. 시작 부분에서 보셨듯이 저희는 번갈아 가며 촬영했습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미국 같은 경우에는 50년대, 60년대, 70년대에 코닥 사에서 가족 영상을 찍는다거나 사진을 찍는 거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식자를 통해서 어떻게 촬영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게 있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거기에 홀딱 빠지셔가지고 그걸 굉장히 열심히 보시면서 뭐 와이드 샷, 미디엄 샷, 클로즈 샷 같은 것을 굉장히 많이 활용하셨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크리스마스 아침 날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에 조명을 비치면서, 저희 어머니는 저희를 굉장히 깔끔하게 예쁘게 차려입혀놓고 거기서 이제 선물을 푸는 이런 장면들을 찍는 것을 아버지가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한국어 자막을 보시면 영화가 어떤 내용일지 감이 오실 겁니다. 아버지는 가족 휴가를 촬영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매년 저희는 디즈니랜드로 여행을 갔는데, 우리가 차에 타서 집앞 차도를 벗어나면 그걸 아버지가 찍고, 우리는 차를 타고 돌아와서 아버지를 다시 태웠습니다. 그리고 디즈니랜드 같은 곳에 도착하면 아버지가 표지판을 찍을 수 있도록 내려드리고,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아버지가 그 장면도 촬영할 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연출하셨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보고 제가 많이 배운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60년대 한국에서부터 미국으로 입양온 아이로서는 이런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여주시는 우리 아버지의 어떤 영상 또는 영화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마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수년 후에 다시 아버지가 이렇게 촬영한 영상들을 보면서 느꼈던 건 아버지는 아버지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 가족의 이미지를 담고 싶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상적인 어느 미국 가정 핵가족의 모습을 담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상들을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함을 느꼈던 것이, 미국의 어떤 도시 외곽 지역에 사는 중산층의 백인 가족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결국은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인종적인 것을 중립화시키고 그리고 나의 과거를 완전히 삭제시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통해서 오는 상실이 있었는데 이 상실감을 그 어린 나이에는 뭐라고 구두로 표현하고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10년 후에는 제가 다른 영화를 또 제작했는데요. 그것은 <차정희를 찾아서>라는 영화였고요. 이것은 에세이 식의 영화였습니다. 거기에는 더 현대적인 제 수퍼8 카메라를 가지고 제가 찍은 내용인데요. 여기서 저는 제가 느꼈던 그 상실감을 표현하고자 했고요. 그리고 아버지가 찍었던 8mm의 볼렉스 영화가 제 것과 좀 더 인터랙션하는 걸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은 저희 아버지가 이렇게 조명한 디즈니랜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 이런 것들에 대한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저는 투명한 인간이 되고, 내 자신의 어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동시에 느끼는 것입니다. 결국은 미국인이 하고 있는 입양이라는 것의 특징, 그리고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 이런 것들을 저에게 투영을 시켜서 제가 마치 백인인 양 생각하게 만든, 새로운 어떤 세탁의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 바로 이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두 개의 자전적 영화인 <1인칭 복수> 그리고 <차정희를 찾아서>를 하면서 또 한국 전쟁과 관련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그것은 이제 저희가 우리나라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한국 전쟁에 관련된 영상들에 관련된 좀 더 심도 깊은 리서치를 하면서 그 실상을 알아가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 문서고를 통해서 많은 영상들을 연구를 하면서 본 건 결국은 한국 전쟁에 관련해서 미국의 뉴스 릴이라든가 또는 미국에서의 영화, 이런 영상들을 보면 한국 전쟁에서의 고아들 이 어린이들 입양된 어린이들을 영상이 중점에 두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흔히 이 한국 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이 이미지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어린이들과 또 미국에서 참전한 군인들, 이런 이미지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현장을 통해서 첫 1년 동안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고아가 되거나 또는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결국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에 대한 어떤 정당성 인도주의적인 이유로 우리가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러한 미국의 군인들의 모습은 결국은 이런 어린이들을 보호해 주고 또 구원해 주는 존재로서 조명이 되고 있었습니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의 미군들의 활약상들은 사실상 이런 영상 뿐만 아니라 '라이프'라는 잡지라든가 '스타즈 앤드 스트라이프즈(성조기)' 등 국가 관련된 잡지, 이런 데에도 계속 나왔습니다. 수백 개에 관련된 그런 발췌 내용이 있는데 그 이상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미군들이 한국의 어린이들을 실제로 구원하고 또 보호해 주고 심지어는 이들을 입양도 해주는 그런 훌륭한 분들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초기에 제작된 한국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보시면, 여기는 미군들의 구조, 구출 임무가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51년에 제작된 <철모>라는, 샘 풀러라는 감독의 영화를 보시면 고아가 된 어린 한국인 아이가 마스코트가 돼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게 있고요. <전송가>라는 더글라스 서크 감독의 내용도 보시면, 록 허드슨이라는 희대의 영화 배우가 딘 헤스라는 실존했던 대령 역으로 나오면서 제주로부터 1천 명에 해당되는 고아를 공수해서 구해주는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제가 굉장히 많이 영감을 받았던 것은 브라운 대학의 다니엘 킴 교수의 책인데요. <갈등의 친근감>이라는 책인데 여기서도 해당 영화들과 관련하여 굉장히 비슷한 류의 내용들을 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꼈던 것은 아카이브 자료의 내용들을 보니까 실제로 이 전쟁 통해서 이루어졌던 대규모 폭격이라든가 또는 광범위한 어떤 네이팜 탄의 사용 그리고 무차별적인 폭력,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서구의 인도주의적 차원의 노력 같은 것들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한국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만이 있는 것은 결국은 이렇게 전쟁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고아가 되는 아이들에 대한 아이러니를 잊히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기록 자료를 통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전쟁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존재들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이 되지 않았고 이들의 주체성이라는 것은 전혀 이런 기록에서 발견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서 제 목표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회복시키고 또 실제로 눈에 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전쟁의 어떤 쓰레기라고 보여지는 미망인들, 고아들 그리고 매춘부들, 장애인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공개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민주화시켜서 모두의 목소리를 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친족의 지리학>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좀 더 많이 비출 수 있고 또 확장했던 것은 바로 이런 해외 입양이 가지는 어떤 범위가 좀 더 확장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그런 양상 또는 모습 중의 하나가 실제 이런 입양을 최초로 했던 사람들은 바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한국 전쟁에 참전했거나 또는 전쟁 이후 한국에 주둔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주로 해외로 입양됐던 많은 상당수의 어떤 한국의 한국 입양아들의 내용들을 보시면 이들의 집합적인 기억이나 추억들을 다시 한 번 저희가 중심으로 끌어다 보면서 초기 입양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서술을 좀 더 밝혀낼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원래는 그 다음에 프로젝트는 <비교적 낯선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그 이전의 이 모든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해서 구축이 된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영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관계로 여기서 제가 내용을 좀 마무리하고 다음 순서로 진행하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괜찮을까요?

 

김장연호 집행위원장 
마스터클래스는 끝났는데요, Q&A로 질문 한 두 개 좀 더 받아보고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1 
감독님 안녕하세요. 저도 역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 감독님의 <크로싱즈>와 <1인칭 복수>를 이미 보았고, 이를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배웠고요. 특히나 오늘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서 배운 것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번에 나온 <친족의 지리학> 같은 경우에는 앞서 두 개의 입양에 관련된 내용보다 본인 자전적인 내용이 좀 덜하고 다른 입양인들에 조명을 많이 맞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친족의 지리학>이라는 제목을 지을 때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심지어 한국이라는 나라가 첫 장면에 보시면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고, 외부에서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았다, 그러면서 미국과 다른 여러 곳에 있는 입양아들을 추적하는 내용이 나왔는데요. 이 <친족의 지리학>이라는 타이틀이 어떤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고,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관심을 가지고 지향하시는 건지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디앤 볼쉐이 림 감독 
좋은 질문 해 주셨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해외 입양자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한 400명 정도 전 세계에 입양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호주 등 너무나 많은 다른 사람들이 한국 출신이었는데 한국 입양인이었고, 다른 문화와 다른 국가 그리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성장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느낄 수 있었던 친족감이라는 것이 있었고요. 그리고 이 많은 그룹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성을 가지고자 하는 열망, 욕구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것이 제가 알고 있는 친족이라는 감정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양한, 굉장히 폭넓은 지리상의 여러 지역에서 왔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친족의 어떤 감성 또는 느낌이 있다라는 것들을 표현하고자 이 제목이 나왔습니다.

 

김장연호 집행위원장 
답변 되셨나요? 질문 하나 정도 더 받아보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2 
안녕하세요. 디앤 볼쉐이 림 감독 감독님께서는 굉장히 입양 사회에서 유명한 영화 제작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번 네마프 영화제 기간 동안에 프로그램 관계자들과 큐레이터들이 이렇게 영화를 소품하시고 같이 얘기하게 됐는지, 그래서 한국의 대중 문화가 입양과 입양인을 다루는 방식에 대항해서 입양에 관련된 문화를 이런 영화제를 통해서 얘기를 할 것인지, 이런 것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장연호 집행위원장 
사실 제가 작은 에세이를 2017년도에 쓰게 됐어요. 오랫동안 영상 작업들을 기획하는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사실 조금 다른 분들보다, 그러니까 입양의 경험을 갖고 있는 디렉터나 아티스트 분들을 많이 만나고 직접 소개를 해 왔는데,  그런 에세이를 쓰면서 이게 너무나 중요하다. 한국의 어떤 근대사의 부분에서 너무나 중요한데 그 부분들이 명확하게 한국의 분들이 많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상당히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이제 그 자료를 찾으면서 제일 먼저 놀랐었던 거는 한국 전쟁 이후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서 일국일민정책이라고 하는 정책이 있었구나라는 걸 처음 알게 됐었거든요. 그 에세이를 쓰게 되면서 그것이 해외 입양을 가게 되는 혼혈인들과 관련된 흐름들을 갖고 있고, 그거 이후에 지금까지도 어떻게 보면 이미 전쟁은 끝났는데, 아까 이제 <친족의 지리학>에서도 보셨지만 60년대 70년대 80년대까지 입양인의 숫자가 증가를 하잖아요. 그래서 되게 어떻게 보면 기형적이고 안 좋은 문화다라는 생각을 상당히 많이 갖고 이걸 언젠가는 제가 특별전으로 좀 소개를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진행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정리가 조금 되고, 2024년도 주제를 어떻게 정할까 이 생각을 하다가 한국 입양에 대한 것들을 이 인공지능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이 부분들을 같이 연결해서 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메모리가 뭘까라고 생각을 했을 때 저는 한국 입양에 관한 기억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 부분들이 조금 더... 사실 70주년은 작년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을 했던 것보다 너무 사회적인 파장이 없는 거예요.
70주년인데. 그래서 좀 더 사람들, 일반 분들이 다 알 정도로 계속 70주년 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원래 71주년이죠. 71년인데 70으로 그냥 계속해서 소개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감독님을 이렇게 만나게 됐네요.

 

관객 3 
질문은 아니고요 감사의 말씀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저는 입양 문제나 이런 거는 전혀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지인이 오늘 감독님 작품에 같이 참여를 하셨던 분이거든요. 그래서 소개로 한 번 왔다가 보고서 정말 대한민국이 그동안 많이 발전하고 뭔가 커다란 모습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고 있구나라고, 좀 민주화 문제나 노동자 문제가 많은 것들을 해결하고 있구나 하는 안이한 생각을 했는데, 오늘 와 보고 입양인 문제가 얼마나 우리에게 정말 역사적으로 오래되고 심각한 문제인가, 그리고 그걸 예방할 수 있는 미혼모나 여성 인권 이런 부분이 아직 얼마나 많이 개선돼야 하는가에 대한 굉장히 큰 문제 의식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건네줘서, 그래서 정말 관심 많이 가지고 아주 많은 부분들을 개선해야겠구나, 하는 책임감도 주고. 그리고 이렇게 활동해 오신 분들의 희생, 용기, 그런 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이 좋은 다큐를 통해서 한 개인이지만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디앤 볼쉐이 림 감독 
감사합니다. 제작에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지금 함께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권지연 님께 감사의 말씀 드릴게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해주세요. 허스턴 킴께서는 학술자문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제 작품을 봐주는 아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관객 4 
저는 여성학 연구자고요. 몇 년 전에 한국이 해외 입양인들을 자신의 국가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 개본을 조금 했던 연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보여주신, 미국이 한국인 입양인을 보여주면서 제시하고자 했던 이미지를 보면서 좀 마음이 좀 서늘해지기도 했습니다. 이게 겹쳐져서요. 그리고 이건 조금 개인적인 얘기인데요. 제가 오늘로써 선생님의 입양 3부작 중 두 개를 보게 됐는데, 이번 상영작이랑 <차정희를 찾아서>, 이렇게 보게 됐는데 특히 오늘 이제 다른 입양인들이 나온 얘기를 보면서 질문이 좀 들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입양인의 자녀입니다. 국내 입양인의 자녀고요. 저는 항상 아버지에게 과거로부터 좀 벗어나서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없느냐, 이제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좀 벗어나서 조금 더 좋은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던 딸이었어요. 근데 오늘 영화를 보면서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 찾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 아버지가 그 답을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라든가 이런 걸 찾게 됐는데 그게 오늘 영화를 보면서 제가 짐작을 한 부분은 많은 입양인들이 그러니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얘기하면서 사실은 이번에는 내가 선택해서 나에 대한 얘기를 찾고 싶다라는, 그러니까 그 무력감을 탈피하면서 효능감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조금 더 하게 됐고요.
그리고 동시에 약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어떤 과정이라든가 애정을 받는 연결감이 있잖아요. 타인으로부터 애정을 받는 연결감을 획득하고 싶을 거라는 답이 조금 찾아졌어요.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좀 충족이 될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또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제가 지금 짐작한 이 두 가지 요소 외에 많은 입양인들에게 감독님께서 해주고 싶은 어떤 중요한 삶의 요소 같은 게 더 남아 있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디앤 볼쉐이 림 감독 
본인의 얘기를 공유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사실 좀 복잡하게 들리기는 합니다. 하지만 일단은 계속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탐색하고 또 그의 과거에 대해서 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일단 저 같은 경우에 그런 어떤 조언을 해준다거나 이렇게 말씀드릴 만한 입장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거는 패스를 하고 싶습니다. 다른 영화를 보러 올 수 있다면 더 이야기해 보도록 합시다.

 


김장연호 집행위원장 
내일 7시에 <1인칭 복수>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7시에 상영을 할 예정이고, 그때 아티스트 토크가 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 아티스트 토크 때 같이 또 오셔서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고요. 사실 이 주제는 저희가 계속 이야기해야 되는 주제 같아요. 이렇게 이벤트처럼 한 번 했다가 그만 해야지,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한국 전쟁만큼 우리가 매일매일... 어렸을 때 한국 전쟁과 테러에 대해서 신문에서도 보고, 되게 많은 영화들이 나오고 했잖아요. 그것처럼 이 내용 자체가 사실 우리가 일상화돼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주제여야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게 국내 첫 특별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기획전을 준비를 했고요. 내일 또 아티스트 토크 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기록 : 정윤지, 김소희 (아카이브팀 ALT루키)

녹취 및 정리 : 정유진 (시네마기획운영팀 ALT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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