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편 부문4» GT
일시: 24.08.6(화)
모더레이터: 박동수
참석: 이은조, 권세정, 정다희, 안두이 작가
박동수 :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한국 단편 4 섹션 게스트 토크 진행을 맡은 영화 평론가 박동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러면 우선 간단하게 인사말 들어보면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옆에 계신 분부터 쭉 인사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은조 : 네 안녕하세요. <페허의 자장가>를 연출한 이은조라고 합니다.
권세정 : 안녕하세요. 저는 <러브 데스 도그>를 공동으로 같이 만든 권세정이라고 합니다.
정다희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옷장 속 사람들> 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든 정다희라고 합니다.
안두이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칠롱의 방> 만든 안두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동수 : 그러면 제가 먼저 감독님들께 몇 가지 질문드리고 나서 객석에 마이크 돌리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 니다. 먼저 옆에 계신 이은조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은데 <폐허의 자장가> 같은 경우에는 말 그대로 이제 페허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에요.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돌이 나오고 돌을 좀 살리고자 하는 신인류라고 할 수 있는 존 재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말과 그들을 부르는 듯한 소리들로 이루어진 작품인데요. 구성이 SF스러우면서도 독특하 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은조 : 네 돌을 살리고자 하는 아이의 여정을 그린 작업이었는데요. 처음에 하게 된 생각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마주한 여러 가지 비극의 원인 중에 하나가 생명인 것과 생명이 아닌 것을 확연히 나누고 그에 대한 가치 판단으 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러한 가치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훨씬 두드러 지는 것 같아요. 대상화, 도구화를 할 때 지금 여러 가지 위기들이 초래된 느낌이 들어서 인간이 주요한, 유일한 행위자가 아니라 물질로서의 행위자, 활기를 그 상태로 가지고 있는 행위자로서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생각 했고 가장 생명으로부터 먼 것 같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고 어디에나 있는 상징을 찾아봤을 때 돌이 처음으로 떠올 랐고요.
그렇다면 돌의 생명력을 묘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돌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왜냐하면 애도라는 감정은 생명이 생명에게 느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감정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특히나 애도에 있어서 그 리움이라는 감정이 가장 주요된 감정인데 돌이 죽었다는 말이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건 돌의 영속성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돌은 죽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렇게 따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그래서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를 넘어 서려는 것 같은 시도가 같이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기획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박동수 : 말씀주신 대로 이제 <페허의 자장가> 속에 있는 그 철근 콘크리트들이 붙여진 것 같은 배경들도 그렇고 사람의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고 얼굴도 사람이긴 하지만 어쨌든 다 사람 같지 않은 형태의 크리처들도 그런 의미 에서 디자인된 것 같다는 인상을 저도 많이 받게 됐습니다.
그럼 이어서 <러브 데스 도그>의 권세정 감독님께 질문 드리려고 하는데요. 영화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이제 내선 일체라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실행됐던 것들과 함께 그 당시에도 비슷한 시기에 촬영된 개의 사진과 그리고 그 개가 다루어졌던 폭력적인 방식들 혹은 현 시점에서 보면 비윤리적인 그런 방식들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러한 작품인데요. 그런 면에서 지금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 는 행위가 되게 흥미롭게 다가왔던 그런 작품인데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권세정 : 이 작업은 사실은 개인적으로 함께 지내던 개가 죽어가는 과정을 겪게 됐었고 그 과정에서 개라는 존재가 무엇일까 궁금해졌었어요.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도시에서 이 개와 제가 맺고 있는 관계는 어떻게 구성된 거 지 이런 질문들이 좀 생겨서 조사를 시작하다가 가장 오래된 사진은 뭐지 하고 검색을 했었는데 위키피디아에 나 오는 사진 한 장이 있었어요. 그 사진이 궁금해서 누가 찍었고 이 사진 옆에는 또 어떤 사진이 있었고 그 다른 사 진들에는 무엇이 찍혔는지 그 맥락들을 같이 보다가 이렇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박동수 : 한국에서 촬영된 최초의 개 사진 같은 것들을 찾아보셨던 건가요?
권세정 : 네 일단은 최초는 알 수가 없으니까 가장 오래된 사진들을 일단 찾아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미지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 이미지를 먼저 찾고 있었고 그때 어떤 개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이런 것들을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박동수 :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이어서 옆에 정다희 감독님께 질문 드려보고자 하는데요.
<옷장 속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많이 생각나기도 할 것 같아요. 되게 얼굴이나 몸이 없이 둥둥 떠다니기는 하지만 인간처럼 걸어 다니고 산책도 하고.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좀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림체 자체가 주는 따뜻함 같은 거랄까요? 그런 게 동시에 느껴지는 작 품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어떻게 출발하게 되셨는지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다희 : 네. 내가 나라고 믿는 모습이 있잖아요. 근데 그게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이 옷을 벗을 수가 없는 거예 요. 그래서 그런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했고 또 제가 인디애니페스트 라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트레일러를 만 들게 됐었는데 그 영화제 슬로건으로 ‘너는 누구냐’ 이런 거를 줬었어요. 근데 그때 사람이 만들고 입는 물체들이 사람의 욕망이나, 사람이 무엇인지를 많이 보여준다고 생각을 해서 옷에 사람을 비유해서 여러 가지 떠오르는 아 이디어들을 재미있게 계속 생각해내면서 만들게 됐고 그걸로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박동수 : 말씀해 주신 대로 옷들이 계속 걸어 다닌다거나 옷들이 서로 또 신발을 바꿔 신는다거나 그런 장면들을 기억에 남는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안두이 감독님께 <칠롱의 방> 관련해서 질문 하나 드리고 객석으로 마이크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아이 샤라는 전쟁 난민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내레이션이 등장을 하지만 또 이미지는 칠롱이라고 하는 보호소에 있는 곰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데요. 어떻게 보면은 곰과 난민, 모두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 안에서 굉장히 타자로, 주변부로 여겨지는 존재들이라고 생각되고 또 영화 속에서 보호소가 나오는데 보호소 라는 이름 안에서 사실상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또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안두이 : 다른 작업을 하다가 사육 곰의 존재와 그 문제를 알게 되었고 한번 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그래 서 그냥 그렇게 알고 지내다가 작년에 푸바오가 너무 되게 인기였고 사육 봉사를 가서 만났던 친구들이 생각나서 이 친구도 그냥 브이로그처럼 하루를 찍어보고 싶다 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가서 촬영을 하고 왔 는데 어떻게 영상으로 조립해서 소개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하면서 문제의식이 더 심화되고 결국은 이 곰 의 특수성이 아니라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내러티브를 완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동수 : 그러면은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샤에게 보내는 편지라든가 그 이야기들 자체는 허구적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안두이 : 네. 이제 칠롱은 완전히 실제로 실존하는 곰이고 근데 아이샤는 제가 허구로 구성을 한 인물인데. 그 내 러티브를 구성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좀 되게 전략적으로 편지 형식을 통해서 소개해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걸 통해서 드러나는 이야기는 저 스스로 진정성을 갖고 이 동등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박동수 : 제가 몇 가지 또 질문 더 드리고 객석에서 질문을 받아보는 식으로 또 진행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러브 데스 도그> 관련해서 질문 하나 더 드리고 싶은데 영화 마지막에 보면 감독님의 반려견이 직접 등장을 하는데 사실 그 이미지 자체가 앞서 등장했던 흑백으로 찍힌 거의 100년 전의 사진들과 인상 자체가 다르다는 생 각이 들었어요. 특히 야만의 대상처럼 촬영된 개들과는 달리 말 그대로 반려되고 있는 어떤 존재 혹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시선에 대해서 애정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좀 충격적이기도 했는데요. 인간의 역사 속 에서 그 주변부에 존재해 온 비인간으로서의 개들을 어떻게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가를 영화의 마지막에 그 장면 을 통해서 다시 질문하고 있다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직접 실제 반려견의 이미지를 넣게 된 이유 같은 것도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권세정 : 일단은 전개가 가장 먼 개로부터 모두의 집 속의 개로 구성이 되길 바랐었고요. 그래서 조금 무리하지만 저의 친구도 포함을 시켰었습니다. 그리고 촬영에 있어서도 말씀해 주신 대로 흑백 사진들 같은 경우에는 근대화 의 명분을 위해서 대상화되는 방식으로 촬영이 되어졌고 그런 부분을 저희도 이걸 조사하면서 알아서 그 일본인 학자나 사진작가에 대해 사실은 이입을 하기도 하고, 뭐가 그렇게 다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진행을 하게 됐었는 데 마지막에 그럼 나는 대체 이 대상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촬영을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 는 과정이었고요. 그래서 저의 친구도 최대한 다르게 촬영해 보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일단은 윤곽을 확 인하기 위한 그런 형태가 아니라 이 대상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을 최대한 포착하고 싶었고 살아있는 존재처럼 다루 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박동수 : 사실 앞에 나왔던 사진들과 다르게 일단 움직이고 그 다음에 개와 카메라 뒤에 존재와 상호작용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되게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놀랍다라는 이런 인상을 줬던 그런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객석에서 질문 받아보고자 하는데요. 질문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관객1 : 네 안녕하세요. 저 권세정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러브 데스 도그>를 합정지구 전시 때 한 차례 본 기억이 있는데 그때는 조금 더 러닝 타임이 길었고 감독님의 시선이 묻어나는 푸티지들의 양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게 영화제로 스크리닝 됨에 있어서 편집된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는데 혹시 이유가 어떤 것인 지 여쭙고 싶습니다.
권세정 : 이게 사실은 두 가지 버전이 있고 보신 버전이 에필로그라고 6분 정도가 더 붙은 버전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는 제가 아예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박제된 동물과 재현된 인간의 모습들이 교차하면서 또 저의 개와 함 께하고 있는 일상이 교차하면서 더 먼 과거에 대해서 상상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 있었는데 네마프 같은 경 우는 상영 조건이 안 맞아서 이 버전을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박동수 : 그러면 또 질문 있으신 분 계실까요?
관객2 : 네 안녕하세요. 저 첫 번째 작품(폐허의 자장가)에 대해서 질문이 있는데 움직이는 것들이 몇 개가 나오잖 아요. 근데 이제 그중에 활물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 것이 살아있는 거랑 살아있지 않은 거를 구분하는 거 자체 가 자기는 이상하다고 하는데 또 이야기 속에서는 그 의견이 좀 무시되고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해서 그 세계 안에 서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을 구분하지 않는 게 더 주류적인 건지 아니면 더 소수 의견에 가까운 건지 그런 게 궁금 했었고 그리고 작품 안에서 돌이 피를 흘리는 부분에서 생명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은 또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건 페허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들이 인류의 영향을 받아서 살아간다 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만드신 건지 궁금했습니다.
이은조 : 네 두 번째 질문에 답을 먼저 드리면 제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돌이 대체 어떻게 죽 었고 어떤 삶이었고 어떤 관계였는지 보다는 돌이 죽었다는 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거였어 요. 왜냐하면 생명과 비생명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가 의식이 있느냐 근데 그 의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돌이라는 가장 죽어 있는 듯한 비생명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비생명의 생명을 말하는 자는 결국은 그 사회에 서 소수이자 약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고 그게 어떻게 보면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유이기도 할 것 같아 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와 같은 인간주의적인 법칙에서는 그냥 그 사회는 굉장히 픽셔널한 세계이 고 그 세계 자체에서의 죽음과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지금의 삶과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또 이어져 있기를 바랐거든요. 네 대답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박동수 :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뒤쪽에 또 질문 있으신 것 같은데요.
관객3 : 안녕하세요. 저는 정다희 감독님께 질문이 있는데요. 우선 보면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소유하는 것들 그 리고 보여지는 것들에 되게 집착하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어서 공감하 면서 인상 깊게 봤고요. 제가 궁금했던 건 발소리가 아예 없고 또 신발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소유되기를 피하는 그런 모습이 좀 인상이 깊었는데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정다희 : 네 감사합니다. 일단 존재하지 않는 세계니까 이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세계관을 설립을 하게 되잖아 요. 그런데 옷이 그냥 옷으로만 존재하고 안에 몸이 없다는 설정이거든요. 그래서 발소리가 아무도 없고 소리가 이제 옷을 비벼서 나는 소리밖에 없는데 캐릭터마다 다른 소리가 나야 되고 다른 캐릭터성이 보여 져야 되고 이러 다 보니까 사운드 작업에서 창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재미있었고, 신발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 잖아요. 그게 장갑이랑 모자랑 신발이 그 옷들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들인데 누군가는 소유할 수 있고 누군가는 소 유할 수 없고 하면서 그걸 계속 갈망하게 되는데요.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모습이 무언가를 갈망하면서 쫓으려고 한다고 생각을 해서 그걸 장갑 모자 신발로 이렇게 단계별로 상징을 만들어서 넣은 것 같습니다.
박동수 :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또 질문 있으신 분 계실까요?
관객4 : 이은조 작가님께 여쭤볼게요. 작품을 처음 딱 만났을 때 미래적인 느낌을 받긴 했어요. 근데 아까 말씀하 신 대로 돌이 왜, 어떻게 죽었지 이런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어른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싶으셨다고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좀 더 궁금해졌어요. 작가의 의도 속에 어떤 이야기를 더 발전시키고 싶으셨는지, 그리고 포인트로 잡았던 어른들의 존재, 더 성숙됐거나 아니면 더 발전적으로 가고 있는 어떤 존재들의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상징적으로 더 던져졌으면 좋지 않았을까 되게 궁금해지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은조 : 너무 감사합니다. 원래의 이야기 구조를 조금만 더 설명을 드리면 페허라는 공간 자체는 삶과 죽음이 구 별되지 않은 그 자체를 구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래서 그들은 돌과 페허를 먹으면서 산다는 설정이었어요. 그래서 가장 삶을 표현할 수 있는 1차적인 시각적인 언어가 저한테는 피였고, 그래서 페허로부터 나오는 피 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었는데. 그 아이가 돌이 죽었다고 했을 때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니 아이가 돌의 죽음을 해결하러, 다시 돌의 삶으로 돌아오게 만들려고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싶었고, 그 후에 더 자세한 이 야기는 사실 커다란 괴물 같은 존재를 만나서 괴물이 아이에게 돌을 살리고 싶으면 산 채로 너를 먹어야 된다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아이가 기꺼이 희생을 하고 괴물이 아이를 얻죠. 그리고 그 후에는 사실은 가면 같은 걸 쓰 고 있는 커다란 버전의 아이인데 가면을 벗어요. 그러면 그 아이랑 똑같은 괴물이 나타나면서 돌을 바라보는 식으 로 끝나는 걸 구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돌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그 자신이었고, 자기로부터 떠나 고 다시 돌아오는 그런 여행을 중점으로 맞췄던 구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페허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처음에 일어나는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개인적으로 좀 더 풀고 싶은 부분이어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동수 : 상세한 질문과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또 질문 있으신 분 계실까요?
관객5 : 저는 네 분 작가님 어느 분인지 좀 답변을 좀 해 줄 수 있으면 좋겠고요. 사실 네마프 영화제는 처음인데 저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네 분 작가님의 영화를 딱 특정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네마프의 슬로건처럼 정말 대안 영상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 그런 작품을 네 편을 본 것 같아요. 그래서 다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 화, 드라마, 연극 여러 장르에서 사실 중요한 축은 이야기 같아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네 분 작가님들의 이 야기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혹은 굉장히 그거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또 그게 전부인 것 같기 도 하고. 아니면 그와는 반대로 그냥 미처 다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고. 그러면 내 이야기가 누군 가에게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라는 걸 검증이라고 한다면 그런 절차는 본인들이 어떻게 소화하고 계시 는지, 그게 어떤 일반적인 영화적 문법에서는 작가들이 개입해서 하는 일이겠지만 외부 감독님들은 좀 다른 특별 함이 있는 것 같으니 말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동수 : 제가 한마디 보태자면 사실 네마프가 내걸고 있는 게 대안영상 예술제잖아요. 그리고 사실 대안 영상(영 화)라고 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게 되게 강조되어 있는 어떤 것을 벗어난 것 혹은 샛길로 빠지는 것 들 혹은 이제 실험적이거나 아니면 너무 내 이야기라서 남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게 네마프 가 표방하고 있는 대안 영상 그리고 대안 영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오늘 작품들도 그런 작품들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이런 지점들에서 관객이 질문 주신 거에 대해서 혹시 얘기를 좀 해 주실 분들이 계실까요?
정다희 : 저는 영화를 처음 좋아했을 때부터 실험적인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요. 그게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 면 실험적인 영화들이 각자의 고유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우리가 얼 마나 다양한지, 어떻게 얼마나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안두이 : 저는 이야기라는 것, 카메라라는 것이 주변부에 있는 소외된 존재들을 다룬다고 했을 때 좀 폭력적인 매 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것이 어떤 완결된 이야기를 가지고 관객이나 독자에게 도달했을 때 만 든 사람을 통해서 이미 왜곡된 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완결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좀 부담 스럽게 느낀다든지 그 렌즈의 왜곡됨이 과하게 느껴지면 불편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런 타자를 더 많은 사람에 게 알리기 위해서 이야기화할 때에는 관객이 나는 이 프레임을 통해서 보고 있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나 라는 사람, 촬영하는 사람의 위치성이 무엇일까를 의식할 수 있을 때, 혹은 이 매체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를 의식하게 될 때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 칠롱이라는 존재를 사람 들에게 소개할 때 대안적인 방식들을 고민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박동수 : 사실 시라든가 회화 같은 것들을 생각할 때는 추상적이거나 혹은 완전히 하이퍼리얼한 작품도 있고 그런 것처럼 다양한 형태와 면모의 작품들이 있고 그게 어떤 영화, 영상 그리고 애니메이션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도구 들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있다라고 생각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질문 있으실까요?
관객6 : 네 저 칠롱의 방 감독님께 질문인데요. 아까 사육 곰 영상을 먼저 찍고 나서 그 후에 이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샤의 레이어를 씌우셨다고 하셨잖아요. 꼭 아이샤라는 어떤 난민이 아니라 다른 변방의 어떤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보면서 베고니아를 깨면서 자기가 그 순간 이제 살 수 있 었던 그 부분을 고백할 때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느꼈는데 동시에 사육 곰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난민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 사람으로서 난민에 대해서 굉장히 무지하기까지도 하고 단일민족이란 환상을 계속 갖고 있는 사람으로 서 관객인 저에게서는 약간 멀어지기도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왜 난민이라는 어떤 존재 가 선택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두이 : 일단은 좀 오해의 여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하고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인데요. 난민 의 존재 자체가 칠롱을 위해서 들어와야겠다라고 한 것은 아니고 내가 칠롱에 대한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사육 곰이 발 디딜 데가 없도록 만드는 것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느낀다고 했을 때, 근본 적으로 어떤 윤리적 책임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고 그것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적인 잘못이 뭘까에 대해서 저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시점에 저에게 윤리적 책임을 굉장히 느끼게 했던 것이 미디어를 통해서 본 난민이었고 그래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라는 인간의 윤리적 책임이 특정한 대상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게 무자비하게 발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타협하고 싶지 않아 서 거기까지 내용을 밀고 나갔던 것 같습니다.
박동수 : 나와 다른 타자들을 환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어떤 질문을 스스로 감독님 스스로에게도 굉장히 좀 던 지고 있는 그런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다른 타자들, 나와 같은 땅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다른 존재들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고 어떻게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라는 어떤 그런 질문들이 담긴 그런 영화라는 생각 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질문 하나 정도만 더 받아보려고 하는데요. 질문 있으신 분 손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객7 : 네 이은조 감독님한테 질문이 있는데요.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제가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지금 그동안 인간의 관점에서 역사화되지 않았던 존재들을 역사화하려는 게 요즘에 젊은 역사학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런 시도에 대해 1번으로 나오는 비판 중에 하나가 어차피 인간의 시선으로 보는 것인데 어떻게 인간 이 아닌 존재를 역사화할 수 있느냐 결국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이 아니냐인데요. 그게 사실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다루려고 하는 데서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이은조 감독님의 영화가 그거에 대한 반론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국은 돌을 가장 존중하는 방식으 로 죽은 돌을 다시 살려내려고 그 아이가 계속 시도를 하는 거잖아요. 돌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인간인 것처럼 받 아들이는 게 비생명을 대우하는 가장 윤리적이고 존엄한 방식일 수 있다라는 걸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되게 재미있었는데 이은조 감독님께서 어떻게 비생명을 존엄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굉장히 많 이 해오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생명을 대우하는 가장 윤리적인 방식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그게 되게 어쩔 수 없다라는 메시지로도 읽혔는데 이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이은조 : 네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동물도 슬픔을 느끼고 기쁨을 느낀다고 했을 때 그걸 의인화라고 칭하는 순간 기쁨과 슬픔은 인간만의 것이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잖아요. 인간 자체도 수많은 동물 중에 어떤 한 종일 뿐인데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것이 기준점이 되는 그거야말로 인간 중심적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죽음, 삶, 슬픔과 기쁨 등의 감정들, 비인간 존재들이 느끼는 것을 저는 적극적으로 조금 더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중심주의 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느끼고 그래봤자 제가 인간이지 않느냐라는 포인트는 회의주의적으로 갈 수 있는 위험성 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환대할 수 없는 것을 환대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해나가야 어떤 형식으로든 더 나아진 영향력이나 세상을 같이 뭔가 꾸려가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 있어서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박동수 : 답변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오늘 사용된 4개의 작품이 모두 타자들을 대하는 감독님 각자의 태도 혹은 각자의 방법론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 김소희 (아카이브팀 ALT루키)
녹취 : 김보민 (아카이브팀 ALT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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