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새>, 광화문 광장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경복궁 광화문과 세종대로 사거리 사이, 중앙에서 바라보면 서편에 조성된 광화문 광장은 2009년 8월 1일 완공되었다. 하지만 여러 번 구조가 바뀌어, 현재 모습으로 거듭난 것은 2023년 이후다. 이곳은 조선시대 백성들이 집회를 열고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던 공간이었다. 그러니 광화문 광장은 어찌 보면 ‘시위’와 ‘말’을 위해 태어난 공간이었던 셈이다. 스포츠 이벤트를 맞이한 대대적인 길거리 응원은 2002년 월드컵 시기, 서울 광장에서 시작되었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광화문 광장이 이 새로운 문화의 중추적인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여의도 공원, 국회의사당, 청계광장, 서울역 광장 등이 시민단체의 주요 집회지로 각광받지만, 상징적인 측면에서 광화문 광장은 여타 공간과 비교할 수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곳에서 열리면서 광화문 광장은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로 기억되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 계엄 선포 후,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 한쪽에서 윤석열 파면을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윤석열 어게인을 외친다. 서로 다른 구호를 목 놓아 부르짖는 초현실적인 풍경이 매일 벌어지면서 광화문 광장은 이제 대한민국 동서 분단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장병준의 <텃새>는 광화문에서의 시위를 다룬 여느 다큐멘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동안 각종 미디어에서는 시위에 초점을 맞춰서 광장의 올바른 역할과 이에 따른 시민의식을 조명해 왔다. 하지만 <텃새>에는 시위 장면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000 TV 들어와서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하고... 할렐루야! 할렐루야!”라는 소리가 들리긴 한다. 하지만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비둘기를 비롯한 새들이다. 이 광장의 진정한 주인인 이 텃새들은 시위대가 흘린 음식 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면서 살아간다. 장병준의 카메라는 시위대를 비추는 대신 텃새들의 시선으로 광화문 광장 곳곳을 비춘다. 그러다가 다시 광장 저편에서 들리는 “12월 3일 불법 내란에 동원되었던 대한민국 국군이 국민 가슴에 총구를 겨누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라는 구호가 화면을 채운다.
시위대의 소리가 잦아들면, 산수국, 병꽃나무, 청단풍을 가리키는 인식표와 함께 “생육 관찰 중–나무가 치료받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팻말이 보인다. 이윽고 집회에 사용된 임시 구조물, 의자들, 바닥에 버려진 유인물을 엮은 몽타주가 지나가면, 환경미화원들이 거리를 청소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 공간에서 들리는 찬송가를 배경으로 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 ‘김 발렌티노’의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고생도 아니고요. 시민의식이 좋아져서 쓰레기도 많이 안 나옵니다. 저희는 뒷마무리만 하는 건데 일단은 감사하죠.” 하지만 그의 인터뷰가 무색하게 여전히 거리를 뒤덮고 있는 각종 유인물과 시위 도구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세종문화회관과 정부 청사 사이에 자리 잡은 카메라는 두 건물 사이의 하늘을 타임랩스 기법으로 촬영한다. 어느새 날이 밝고 다시 광장에 비둘기, 참새, 까마귀, 직박구리가 한두 마리씩 모여든다. 저 멀리 이순신 장군이 희미하게 보인다. 새들은 광장에 남아 있는 먹거리를 청소한 후 홀연히 사라진다. 감독은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지 않은 채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그의 카메라에는 사람들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장병준의 카메라는 다음과 같이 묻는 것 같다. 특별한 때가 되어야 나타나는 철새(인간)가 광장의 주인인가? 이곳이 삶의 터전인 풀, 나무 그리고 텃새들이 진정한 주인인가?
김채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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