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점 사이의 세계, <모든 점> - 이소정의 감각적 존재론
이소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모든 점(Every Single Dot)>은 제목처럼 단일한 이미지나 서사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점, 단절된 이미지, 무수한 소리의 파편들을 유영하며 감각의 가장자리에서 존재를 감지하는 동시에 그것을 조용하고도 치밀하게 사유하는 작품이다. 그 사유의 과정은 단순히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조건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감각적 존재론의 실험이라 할 수 있겠다.
<모든 점>은 어딘가에서 도착한 한 통의 필름과 그 안에 담긴 ‘부재’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이 ‘부재’는 결코 ‘없음’이나 ‘공백’이 아니다. 감독은 그 필름 위의 노이즈와 점에 주목하고, 그것을 발화의 출발점이자 세계와 연결되는 실마리로 받아들인다. 영화 속 이미지들 가운데 카메라 옵스큐라, 전파망원경, 암흑물질 탐지기 등 무엇인가를 보는 장치들이 등장하나 이 작품은 시각적 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는 행위를 낯설게 만들고, 무엇을 보는가보다는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해 묻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배경이 되는 장소가 바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지하실험연구소 예미랩이다. 강원도 정선 어느 지하 천 미터에 위치한 이 실험실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처럼 존재하지만 감지할 수 없는 것을 탐색하는 과학적 장소이다. 감독은 미지에 대한 탐색, 간접적 징후의 해석, 반복된 실패 속의 사유 등 과학자들이 고요하고 집요하게 보이지 않는 존재에 다가가려는 태도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발견한다. 그래서 예미랩은 이 영화의 주제와 형식을 동시에 수렴하는 실재적이면서도 은유적인 공간으로 작용한다.
실험적인 작품답게 이 영화에는 서사가 없다. 대신 두 개의 목소리 즉, ‘나’와 ‘그’가 교차하며 이미지 위에 말을 얹는다. 그 말들은 대상을 해설하거나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말과 이미지 사이의 틈을 벌려 사유의 여백을 만든다. 이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장뤽 고다르의 영화적 전략 즉, 이미지 정치학과 사유적 내레이션을 떠올리게 한다. 고다르는 영화에서 말과 이미지가 일치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고, 오히려 그 사이의 충돌과 불일치가 관객의 사유를 자극한다고 믿었다. 이소정의 <모든 점> 또한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텍스트가 충돌하거나 어긋나는 순간에 가장 큰 감각적 울림을 만든다. 해설이 아닌 명상, 정보가 아닌 리듬, 재현이 아닌 여백으로 구성된 내러티브 등 이 영화는 보이는 것의 정치성과 보이지 않는 것의 윤리를 동시에 질문하는 고다르적 작품으로 읽힌다.
이러한 <모든 점>에서 점은 핵심적인 미학적 단서이다. 즉, 점은 그 자체로는 미완의 존재이나 다른 점과의 관계를 통해 선이 되고 면이 된다. 이 작품 속에서 점들은 그레인(필름에서 이미지를 구성하는 미세 입자), 노이즈, 먼지, 별, 입자, 신호 등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은 단절과 연결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 점들이 불연속적으로 출현하고 사라지면서 우리는 이 세계가 얼마나 구멍이 많은 다공성의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인식하게 되고, 단절된 것들 사이에도 사유와 감각의 네트워크가 존재함을 체험하게 된다.
이소정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시적이고도 과학적인 언어로 엮는다. 이때 시적이라는 것은 단지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의미를 완결하지 않고 흔들리며, 의미의 가능성만을 남기는 방식을 뜻한다. 과학적인 사유 또한 여기서 동반된다. 입자물리학자들이 수행하는 암흑물질 탐지 실험은 시적 상상력과 다르지 않다. 예미랩에서 촬영한 장면에서 관객은 보이지 않음을 물리적 실재로 감각하게 되고, 그 감각은 곧 영화적 사유로 전환된다.
결론적으로, <모든 점>은 철저히 감각의 영화이자 사유의 영화이다. 시청각적 쾌감보다는 오히려 느낌과 시간의 지층을 인식하게 만드는 영화이며, 관객을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존재로 호출한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보는 것의 감각을 재조정하고,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그 보이지 않는 연결을 감각하게 만드는 드문 다큐멘터리이며, 이미지와 존재, 과학과 예술, 사유와 감각이 교차하는 예술적 실험의 공간이다. 그렇게 <모든 점>은 하나의 점으로 남지 않고 관객 안에서 또 하나의 점을 찍으며, 그 점들이 우리 삶과 세계의 인식 지형 위에서 새로운 선을 그리도록 유도한다.
윤필립 평론가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영상번역가. 계명대, 연세대에서 국문학, 영문학, 국어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고, 시나리오작가협회에서 작가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나라꽃 무궁화 스토리 텔링 공모전(산림청)에서 동화 부문 입선을, 서울국제사랑영화제(SIAFF) 기독교 영화비평 대상 수상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을 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및 부일영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사)한국영화평론가협회와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본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겨레신문 <한국영화사 100년, 한국영화 100작품>, KBS ‘우리 시대의 한국영화 50선’ 집필진으로 참여했으며, 대학에서 한국 언어/문화교육, 담화분석, 한국 대중문화, 인문치료 분야를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르몽드 코리아》, 《영화의 전당》, 《경기일보》 등에 영화와 문화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영화와 가족』, 『영화와 권력』, 『영화와 육체』(이상 르몽드) 등을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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