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함의 상태에서
국립국어원은 ‘신원미상’을 ‘개인의 성장 과정과 관련된 자료가 확실하거나 분명하지 않음’으로 정의한다. 즉 신원을 관리하는 측의 입장에서 신원미상의 상태란 ‘역사 없음’에 다름없다. 이를 뒤집어 접근한다면, 신원확인은 단순히 이름을 묻는 것을 넘어 이를 통해 확인가능한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 사람이 어떠한 경위로 지금 이곳에 위치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받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국가의 입장에서, 특히나 주민등록 체계를 적극 도입,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남한에서 신원미상인 이는 통제하에 둘 수 없는 자이자 관리가 까다로운 공백의 존재이기도 하다. 추적과 식별의 불가능과 그 난감함. 아이러니하게도 <(신원)미상>에서 드러나는 난감함 역시 같은 지점에서 비롯된다. <(신원)미상>에 등장하는 푸티지 속 인물들은 1938년부터 1970년까지의 경성, 서울의 일부로써 카메라에 담긴다. 영화가 꾀하는 것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부속물로써 이미지 한 켠을 차지한 개인들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방법론을 찾는 것이며 이를 통해 앞서 말한 ‘신원미상’의 개념을 해체하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언급하듯, 이미지 자체만으로 해당 촬영본들의 맥락과 상황, 대상과 의도를 식별하고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통제와 관리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이들을 역사화할 수 있는가? 빈 곳을 채우지 않고서 질량을 측정하는 일은 가능한가? <(신원)미상>은 이 난감함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신원)미상>이 직면하고자 하는 두 번째 난감함은 이 ‘빈 곳을 채우는 일’에 있다. ‘그 어떤 기록에도 남고 싶지 않았던 남자의 이야기’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한국에서 유일하게 카메라를 가지고 있던 모리스의 일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영화 자신이 가진 곤란함과도 연관된다. 모리스는 자신의 모습도, 목소리도 드러내지 않는 수수께끼의 남자를 추적하려 했으나, 밝혀내려 하면 할수록 그의 존재는 명료해지기는커녕 흐려지기만 한다. 개인을 역사화하는 작업이란 고정된 좌표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산만한 궤적을 좇는 일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그 궤적조차 모호한 이들, 오로지 파편으로만 남거나 이목구비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이들은 어떠한가? 모리스가 수수께끼 남자의 신원을 밝혀내는 데 실패했듯, 푸티지 속 ‘미상’들의 신원을 추적하고자 한다면 그것 역시 결국 실패할 것이다. <(신원)미상>이 애당초 ‘사람을 찾습니다’와 같은 수색의 방식을 채택하지 못하(거나 그러지 않)는 까닭이다. 그 대신 임수미 감독은 이 수수께끼의 남자 일화를 소개하는 부분의 소제목을 ‘미상, 상상의 조건’으로 붙인다. ‘빈 곳을 채우는 일’의 난감함은 아카이브의 한계가 아닌 새로운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조건’으로 되돌아온다.
아감벤은 이미지 몽타주에서 ‘반복(repetition)’과 ‘중단(stoppage)’의 역량을 발견하며, 반복을 “있었던 것의 가능성”으로, 중단을 “그 이미지를 자체로 드러내기 위해 내러티브의 힘으로부터 이미지를 떼어내는 힘”으로 본다. 이 반복과 중단의 과정을 통해 이미지들은 본래 부여된 의미에서 탈피하여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이 둘은 본래의 맥락에서 떼내어진 이미지가 재배열되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아카이브 영화의 핵심적인 특성과도 연관된다. <(신원)미상>의 이미지들 역시 반복되어 등장하지만 매 순간 변주됨으로써 아감벤이 설명한 ‘반복’을 수행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미지 속 개개인의 역사를 상상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흐릿함의 상태를 시작점으로 삼는다. 그렇게 <(신원)미상>은 거대서사에 대한 대항 가능성을 모색하는 아카이브 필름 자체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시도로써 우리 앞에 놓인다.
글. 성진혁.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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