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리아>, 인류를 구원한 골든 레코드에 관한 이야기
1977년, 인류는 보이저 1, 2호를 우주 너머로 쏘아 올리면서 이 탐사선 안에 외계 문명에 지구를 알릴 수 있는 정보가 담긴 골든 레코드를 실어 보냈다. 여기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것을 포함해 전 세계 50여 개 나라의 언어로 된 인사말 그리고 지구와 인류를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와 문학 작품들의 발췌본도 수록되어 있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외계 생명체 존재의 유무를 알고 싶어 했고 어쩌면 이 디스크를 통해 외계 생명체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골든 레코드가 우주의 지적 생명체에게 발견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고 인류가 그토록 원했던 무한한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작업도 더디게 진행되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감독 이세형은 골든 레코드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먼 미래로 관객을 보낸다. 이세형이 구축한 디제시스에서 인류는 골든 레코드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탐사선에 우주인을 실어 보내기로 결정한다. 내레이터는 이들이 우주의 비밀을 알아낸 날, 임무는 완수되고 여행은 종료된다고 설명한다. 우주인 김과 박은 장장 500년 동안 우주를 떠돌다가 갑자기 강력한 자기장을 방출하는 ‘스포일리아’라는 이름의 행성에 불시착한다. 어쩔 수 없이 행성 탐사에 나선 두 사람은 지금까지 알게 된 우주에 관한 지식을 소재 삼아 심드렁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가 피가 흐르는 개울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따라가자 날카로운 도구로 자신의 경동맥을 잘라 자살한 지적 생명체를 발견하게 된다. 김과 박은 피의 개울이 흐르는 반대편으로 가보는데, 그곳에는 방금 자살한 생명체와 같은 종족이 손목을 가른 채 누워있다. 이 생명체는 먼저 자살한 동료가 흘린 피가 자신의 손목으로 흘러들어 죽지 않았다면서 김과 박이 여기에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별은 ‘뇌로 만들어진 별’이며, 모든 지식과 사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뇌별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외계의 생명체가 이 별에 불시착해 신경다발을 건드리면 그때야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지게 된다. 김이 건드린 신경다발로 인해 되살아난 뇌의 입은 이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김과 박에게 자랑한다.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박이 뇌의 입을 박살 낸다. 왜냐하면 뇌의 입이 우주의 비밀을 말해버리면 김과 박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물론 여행 역시 종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자극된 신경다발은 계속 활동하면서 뇌를 자극하고 뇌는 거대한 입을 다시 만들게 된다. 되살아난 뇌의 입이 김에게 속삭인다. 우주의 비밀을 전해들은 김은 날카로운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해 버린다. 뇌의 입은 인류의 선각자, 성현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모두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제 자신은 입이 생겼으니 그 비밀을 다 폭로할 것이라고 한다. 그가 우주의 모든 비밀을 말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골든 레코드가 그의 입을 막아버린다. 뇌의 입에 돋아있던 마지막 촉수가 디스크가 재생되는데 필요한 바늘 역할을 하게 되면서 골든 레코드 속에 들어 있던 전 세계의 인사말이 우주에 울려 퍼진다. 발터 벤야민, 질 들뢰즈, 지그문트 프로이트, 기 드보르가 자살한 이유,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활화산 에트나에 몸을 던진 이유가 정말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서일까? 감독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속 인물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를 영원히 기다리면서 살아가듯이, 미지의 어떤 것들은 그 존재 자체가 우리 삶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감독 이세형이 이 세계에 던진 골든 레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 디스크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감독이 오랫동안 고심해서 만든 SF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감독이 창조한 디제시스의 진정한 요체는 김과 박의 입을 빌려 발화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이며, 이 명제로 인해 인류는 영생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김채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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