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인의 정체>, 말하지 않는 공포 그리고 보여주지 않는 윤리
박세영 감독의 <괴인의 정체>는 전통적인 영화 서사 문법을 해체하면서도 감각적 자극과 형식적 실험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공포 체험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대사 없이 흑백의 시청각 리듬만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공포의 본질을 감정이 아니라 감각으로 전환하며, 인간 존재의 윤리적 정체성과 폭력의 순환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대사를 철저히 배제하고 이미지와 소리만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이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공포를 전달하고, 관객이 익숙한 서사적 기대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등장인물들은 말하지 않고, 괴물의 정체나 목적 역시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친절함은 오히려 공포를 특정한 대상으로 환원하는 대신 그 정체를 끝없이 유예하고 흐릿하게 만들면서 보는 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형식적 전략은 시각 이미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영화는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거나 캐릭터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들은 침묵 속에서 불안한 시선과 거칠게 흔들리는 카메라, 어둠과 흰색의 극단적인 대비 등을 통해 정서적 동요를 유발하며, 공포가 화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감각의 진동처럼 관객의 몸에 파고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젠더와 권력에 대한 은유 또한 담고 있다. 괴물의 탈은 여성 인물에게 이식되어 뒤통수에 달라붙는데, 이는 정체성이 누군가의 자의에 의해 부여된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동시에 외부의 시선과 사회적 억압 그리고 개인의 불안이 어떻게 한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 가는지를 드러낸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남성은 이 괴물을 제거하며 자신이 윤리적 주체라 믿었겠지만 그 순간 영화는 그의 믿음을 차갑게 무너뜨린다. 여성을 괴물로 인식하고 죽이는 이 장면은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와 공포를 타자에게 투사하고 제거하려는 충동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영화 종반부에는 남성이 죽인 까마귀의 웃음소리가 묘사되는데, 이는 모든 것을 종결했다는 남성의 환상을 와해시킨다. 이러한 죽은 줄 알았던 존재의 웃음은 이 영화가 윤리적 해결이나 정의의 승리를 이야기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끝없이 반복되는 폭력의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무지와 착각으로 가득 찬 인간의 자의식을 드러낸다. 이는 주인공이 괴물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괴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역설적인 장면과도 연결된다.
이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 관련하여, <괴인의 정체>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장르성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초자연적 존재나 피로 얼룩진 시각적 공포 대신 정체성의 경계가 무너지고 감각이 왜곡되는 과정을 통해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괴물이 누구이고 무엇이 괴물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괴물성이 언제 나에게로 옮겨올지 모른다는 감각이 진정한 공포로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공포는 타자의 얼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괴물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발생하지 않던가?
결국 <괴인의 정체>는 인간이 내가 아닌 타인을 어떻게 타자화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어 가는지를 시각적 언어로 묻는 영화로 보인다. 말이 없는 세계, 정체성이 유예된 인물들 그리고 끝내 웃고 있는 까마귀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이 영화는 괴물을 죽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괴물을 만들어가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폭력과 윤리가 공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비극적 우화이다.
윤필립 평론가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영상번역가. 계명대, 연세대에서 국문학, 영문학, 국어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고, 시나리오작가협회에서 작가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나라꽃 무궁화 스토리 텔링 공모전(산림청)에서 동화 부문 입선을, 서울국제사랑영화제(SIAFF) 기독교 영화비평 대상 수상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을 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및 부일영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사)한국영화평론가협회와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 본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겨레신문 <한국영화사 100년, 한국영화 100작품>, KBS ‘우리 시대의 한국영화 50선’ 집필진으로 참여했으며, 대학에서 한국 언어/문화교육, 담화분석, 한국 대중문화, 인문치료 분야를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르몽드 코리아》, 《영화의 전당》, 《경기일보》 등에 영화와 문화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영화와 가족』, 『영화와 권력』, 『영화와 육체』(이상 르몽드) 등을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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