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극장. 스크린에는 누군가가 과거에 쓴 일기가 상영되고 있다. 곧 화면이 스크린 속 영상으로 전환되며 나레이션이 시작된다. “한 여배우의 생애에 있어서의 위기. 제목입니다. 사이-존재로서, 저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안에 시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끝맺고 싶었습니다. 죽음은 어떤 걸까요? 아마도, 어둠 속의 빛? 어쩌면 그것은 아름다운 무엇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원한 것. 벗어나고 싶었어요. ...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 창조주이자 피조물로서의 인간인 나는 또 결론을 짓고 싶습니다.”
배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기 고백을 이어가지만, 그 맥락을 단번에 붙잡기란 쉽지 않다. ‘사이’, ‘불안’, ‘죽음’ 같은 단어들을 통해 그녀가 실존적인 위기에 처해 있음을 가늠할 뿐이다. 두 번째 챕터 ‘상실’은 작품 전체의 기획을 드러내지만, 그 의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배우는 프린터 오류로 잘못 인쇄된 논문들을 살피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대본을 완성해나간다. 단어 사이의 간격에서 리듬감을 포착해 안무와 동선을 짜고, 활자의 형태에서 인간의 표정을 떠올리는 식이다. 오류에서 비롯된 이 작업은 일종의 글리치 예술로 바라볼 수 있지만, 기계가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남겼다는 발상은 더욱 과감한 해체주의적 실험으로 이어진다.
주어진 자료를 해체하고 순전히 연상에 따라 재구성하는 방식은 극단적이다. 매번 달라지는 기준 속에서 단어는 늘 이전과 다르게 읽혀나간다. 패턴이 없는 곳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착시효과는 자칫 무의미한 헛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이를 이해할 실마리는 <시련과 입문>에서 반복되는 구절 속에 숨겨져 있다. 핵심은 내용이 아니라 반복 그 자체다. 배우는 텍스트를 분석‧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균열을 일으키고, 잘게 분해된 조각들을 자신의 현재 상황과 감정에 맞춰 재조립한다. 같은 단어를 마주할 때도 번아웃 이전과 이후의 배우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이를 통해 각 장에서 발화되는 ‘여배우의 위기’가 매번 다른 의미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정된 텍스트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열어젖히는 주체는 배우만이 아니다. <시련과 입문>은 상영 중인 극장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며 메타적인 전략을 취한다. 그중 네 번째 챕터 ‘포착과 난입’은 극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현실과 픽션의 자유로운 넘나듦에 관객은 혼란에 휩싸인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사이-존재’의 변주를 인지하면서,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나무”처럼 시간 여행을 이어가는 배우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각 장의 실존적 위기는 배우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제각기 다르게 다가오는 셈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맥락화할 수 있다면,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장이 된다. 배우는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비좁은 틈새에 머물며 존재론적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자아정체성의 고뇌가 죽음에 대한 동경으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 “창조주이자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언제든 스스로를 새롭게 빚어갈 수 있는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현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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