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취미에 대한 소개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나의 취미는 ‘로드뷰 산책’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인터넷 지도의 로드뷰를 이용해 즐기는 산책, 가상 현실에서의 산책이다. 나는 이것을 주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들 때 사용한다. 산책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도망쳐서 콱 숨어버리고 싶을 때, 지겨운 집구석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아주 유용하다. 산책을 하고 나면,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상쇄되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 여행의 목적 외에도 내가 어릴 적 지냈던 동네들을 다시 살펴보기 위해 로드뷰 기능을 사용한다. 이미 사라진 건물이나 장소여도 상관없다. 로드뷰 안에서는 특정 연도와 날짜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존재들을 언제든 부활시킬 수 있다.
그렇게 가상 속 공간을 유영하고 있자면 내 안에서부터 어떤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소와 결부된 추억도. 어떤 것들은 희미하게, 또 어떤 것들은 마치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시 찾아가는 세원빌라>의 작품소개를 읽자마자 굉장히 신이 났는데, 왜 그랬는지 돌이켜보니 두 명의 작가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 크게 작용을 한 것 같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조영주, 조유진 작가의 <다시 찾아가는 세원빌라>는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작가의 어릴 적 주거 공간을 VR 기술을 활용하여 과거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그리는 작품이다. 빌라는 오래 전 찍어둔 사진을 바탕으로 3D 모델링 되고, 관객은 VR 전용 고글을 쓴 채 그 공간을 체험한다.
안경 속 세계에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꽤 비슷한 모습으로 건설된 집이 있다. 가운데에 나선형 계단을 두고 복층으로 이어진 집 구조를 중심으로 각각의 공간이 전개된다. 작가는 그 공간의 바탕이 되는 실제 사진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전달한다. 또한 이미지 뒤로 그때 그 시절에 들렸을 법한 생활 소음들을 들려주는데, 깔깔거리고 소곤대는 소녀들의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시청각적 자극은 VR이 가지는 1인칭 시점과 만나 더욱 강화되며 공간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또 작가는 VR체험 외에도 그 양옆으로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영상과 그곳에서의 기억을 기술한 카탈로그를 함께 전시하면서 작품에 더욱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더하려고 노력한다. 인터뷰에 의하면 ‘세원빌라’는 그녀의 유년 시절이 온전히 담겨있는 공간으로, 어릴 적부터 여러 나라를 옮겨 다녀야 했던 작가가 한국에 들어와 처음 살게 된 집이다. 또 그곳에서 정착했던 기간은 총 10년으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정착해 있었던 집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작가는 ‘세원빌라’를 단순 거처 이상의 ‘정서적 고향’으로서 명명한다. 관객은 이러한 작가의 말들을 들으며 한 개인과 빌라 건물 사이에 얽힌 깊고 질긴 유대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사실 VR보다도 내게 진정 흥미로웠던 건, 이와 같은 작가의 인터뷰와 카탈로그의 담긴 내용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작품을 두고 ‘불안정한 인간의 기억보다 더욱 정확한 구현이 가능한 모델링 기술을 이용하여 공간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구현하고 싶었다.’라며 그 계기를 밝혔다.
나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답변을 두고 여러 가지 질문들이 구름처럼 뭉개 뭉개 피어올랐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과 보존에 관한 질문이 많이 떠올랐다. 여태껏 우리에게 ‘기억’과 ‘추억’이라는 단어는 불안정한 것, 왜곡될 수 있는 것,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렇게 기술로서 기억의 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도래한다면 과연 그 기억은 어떠한 것이 될까? 그때가 되어도 기억과 그로부터 불러일으켜지는 노스텔지아는 유효할까?
요약하자면 즉, “그래서 디지털 이미지가 사람의 기억을 대체할 수 있는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이와 관련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아니오’라는 대답을 고수했던 사람이었다. <다시 찾아가는 이러한 세원빌라>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에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왜냐하면 전시를 구성하고 있는 전반적인 뼈대는 3D모델링과 VR이라는 첨단기술이지만, 결국 그것에 살을 붙이는 것은 ‘서사성’이라는 특질이었기 작가는 작품에서 위 같은 기술의 놀라움을 선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한 개인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방법을 택하면서 서사와 노스텔지아,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한데 묶는다.
흔히들 인생은 자기 서사 구축의 여정이라고 한다. 절대 되돌아갈 수 없는 선행적인 시간 속에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새겨넣는다. 삶에서 발생한 어떤 이벤트들이 인과관계를 이루며 굴곡을 만들 때, 우리는 그로부터 배우고 깨달으며 성장한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순간은 나를 구성하는 데 일조한다. 이를 미루어본다면 우리가 ‘재개발’이라는 이슈 앞에서 느끼는 ‘허망함’이라는 감정은 물리적인 붕괴에 대한 충격뿐 아니라 어떤 한 개인을 구성했던 서사를 무너뜨리는 내면적 붕괴또한 의미한다.
그렇기에 과거의 노스텔지아와 현대의 노스텔지아는 그 성격이 다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주요 정서로 작용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노스텔지아는 ‘붕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괴에 대한 무력감에 기인한다.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다시 찾아가는 세원빌라>는 한 개인의 유년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회고가 아니라 자꾸만 무너지고 사라지는, 모래성 쌓기와 같은 텅 빈 노동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그것은 방안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관람자의 허우적거림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쉬이 없어지는 존재가 아닌 기억은 계속해서 우리를 자극하고 그러면 또 우리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재구성해내야 한다. 이 순환은 정말 뫼비우스의 띠 같아서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내가 5년 전 다녀온 프랑스의 어느 거리를 로드뷰를 이용해 찾아내고 지금까지 서성이고 있는 것처럼. <다시 찾아가는 세원빌라>도 작가에는 그런 존재겠지? 이 자리를 빌어 우리의 아스라진 추억과 당신의 안녕을 빈다.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