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바깥_수직방향으로> (이하 지도 바깥)에 등장하는 지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지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기호도, 축적도, 평면도 존재하지 않는 지도이다. 오히려 작가가 원하는 것은 지도에 하나도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작가는 관객에게 그녀가 완전히 새로 그린 지도를 함께 읽을 것을 제안한다. 그곳에는 기호 대신 자살 신고를 알리는 표지판이, 축적 대신 석촌 호수에 둥둥 떠 있던 러버덕이 그리고 평면도의 자리에는 이러한 입체적인 덩어리들이 놓여있다. <지도 바깥>이라는 이름처럼 정말이지 지도에는 포함된 적 없었던 것들이 담겨있다. 이러한 이유를 미루어 이번 네마프에서 상영된 정혜정 작가의 <지도 바깥>은 인류세의 도래와 더불어, 함께 대두되고 있는 기술 화석 (technofossils)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한강을 배경으로 하여 그 밑을 탐험하면서 마치 유람선 창문을 통해 강을 바라보는 듯한 1인칭 시점으로 작품을 전개한다. 작품을 보는 관객은 승무원을 따라다니는 듯한 관광객의 위치에서 땅속 깊이 침전해있는 인공물들의 잔해를 살펴보게 된다.
이러한 시선은 ‘인류의 종말 이후 우리의 존재 대신 남게 될 인공물’을 의미하는 기술 화석의 정의와 겹치면서, 어쩌면 작가가 “인류가 모두 사라진 이후의 시대의 관점에서 작품을 기술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강물 속에는 사람의 얼굴을 한 인면어가 헤엄치고 있고, 땅속에 쳐박히거나 둥둥 떠다니는 인공물들은 자동차, 보트, 철골 구조물과 같이 대부분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산업적 성취와 관련되어 있다. 또 몇몇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적 이슈를 표방하는데, 탄핵집회를 상징하는 촛불과 붕괴된 성수대교, 또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명보트가 바로 그렇다. 이렇듯 근대로 명명되는 기술적 발전의 역사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것들이 강물처럼 첨벙거리고 또 섞인다.
작품의 중심부는 위와 같고, 그 앞을 구성하고 있는 시퀀스 또한 흥미로운데, 찰랑거리는 강물의 표면 위로 흘러나오며 또 반복되는 “가끔은 이곳에 있었다. 늘 여기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파랑 파랑(...)”과 같은 대사는 지구의 표면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되어 ‘어머니 지구’와 같은 거대한 행성의 목소리로 여겨진다. 새도 될 수 있고, 바위도 될 수 있는, 언제나 가변이 가능한 지구, 예측할 수 없는 지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우주로까지 확장되며, 작품은 오랜 과거로부터 먼 미래까지의 시간을 분절 없이 통합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때문에 네마프 전시 부문에도 초청된 작가의 작품 <끝섬>이 비인간 존재들의 세계를 묘사적으로 그려냈다면 <지도바깥>은 지구에 대한 총체적인 사유를 하게 만들면서 더욱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보여지는 그러한 변화는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발전하지에 대한 기대를 내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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