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글에서 다룬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서 영화는 채영의 과거 경험을 그녀가 그린 그림과 일기로 재구성한다. 벤야민은 삶의 관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수공업적 관계라는 것에 대해 자문하며, 일종의‘베를 짜는[직조하는] 일’의 리듬과 같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저절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고 설명한다.1) 옹기그릇에 남은 도공의 손자국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베를 짜는 행위로부터의 몸과 마음의 협응을 불러오는 수공업적 방식은 모든 것이 액체로 기화한 근대의 시대에 동시적이고도 비동시적인 시간성을 중지에 이르게 한다. 여기에서 ‘중지’할 수 있는 것이 만약 어떠한 진리를 생산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진리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중지의 순간이 어떠한 앎의 순간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중지로 하여금 발생하는 틈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묘사하는 언어가 아니라 행위하는 언어, 즉 언어의 수행성으로 하여금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는 사건의 전달일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넘어 이야기를 듣는 자의 삶까지를 다시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짧은 앞부분을 제외하고는 애니메이션과 내레이션으로 오롯이 전개되는 <양림동 소녀>는 감독 임영희의 그림책 『양림동 소녀』를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에게 읽어 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중학교 시절, 진도에서 광주로 유학을 떠나 양림동에 자리 잡았던 ‘양림동 소녀’ 임영희 감독과 그의 아들 오재형 감독이 협업하여 만든 작품이다. 또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알 수 있듯, 임영희 감독의 남편이자 오재형 감독의 아버지는 타이포그래피를, 딸이자 누나는 번역을 맡으며 가족 구성원 전부가 참여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임영희 감독의 개인적 이야기는 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점으로 점차 하나의 구술사적 기록으로 응집된다. 감독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는 서부 경찰서에 체포되어 고문당했던 30일간의 시간, 도청 분수대에서 민주 시를 낭독하고, 동료들을 두고 돌아오던 길목 뒷편에서 들려오던 총소리의 회억은 지금껏 남성 중심의 서사로 기록되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을 보다 확장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또한 영화는 청년기와 장년기를 지나, 갑작스럽게 발병한 -떨어진- 질병 후유증으로 인해 겪게 되는 사람들의 선입견과 맞닥뜨리게 되고, 이러한 그녀의 경험은 보고 듣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 매체를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작품으로 구성되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 오재형 감독은 이미 그의 전작 <피아노 프리즘>(2021)의 편집 단계에서부터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영화를 만들고 지속적인 상영 방식을 고수한 바 있으며, 이렇듯 삶과 조응하는 영화의 형식적 시도는 신체의 장벽을 허문다.
1)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9 – 서사/기억/비평의 자리』,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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