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린의 작업은 꾸준히 가부장제적 사회와 그 속에서 고정된 여성의 지위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제네시스>(2017)는 여성의 몸 위에 올려진 타투를 애니메이션의 재료로 삼아 창세기를 여성의 이야기로 다시 쓴다. <플로라>(2018)는 약동하는 3D 애니메이션을 통해 ‘꽃’이라는 소재로 고정된 여성의 지위를 질문한다. <메이트>(2019)는 동판화를 사용해 페니스와 클리토리스가 함께 춤추는, 에로틱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춤사위를 선보인다. <아이즈 앤 혼즈>(2021) 미노타우로스를 소재로 삼은 피카소의 “볼라드 스위트” 연작에서 영감 받아 여러 섹스와 젠더의 뒤얽힘을 표현했다. 다소 추상적인 것들을 다뤄온 그의 신작 <나는 말이다>는 ‘태몽’이라는 익숙한 소재에서 출발한다. 태몽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민간신앙이지만, 한국에서 태몽의 해석은 지극히 가부장적이다. 태몽이 실제로 작동하는 무언가라기보단 무의식적인 믿음에 가깝기 때문일까? 사주팔자나 타로 점괘의 해석이 사회적 가치관에 따라 변화하는 것처럼, 태몽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임채린의 작업은 꾸준히 현대미술가들의 작업을 참조한다. 특히 최근의 두 작품인 <아이즈 앤 혼즈>는 피카소를, <나는 말이다>는 이중섭을 끌어온다. 두 작품은 20세기에 활동한 ‘남성’ 미술가였기에 가능한 보여준 자유로운 창작과 시선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여성인 자신에게도 가능할지 가늠해보는 시도에 가깝다.
<나는 말이다>는 감독의 태몽과 이중섭의 그림을 연결한다. 이중섭의 그림은, 마치 한국에서의 태몽 해석처럼, 소년들을 위한 유토피아와도 같다. 이중섭의 그림 속 여성은 어머니일 뿐이며, 소녀는 재현되지 않고, 헐벗은 소년들은 자연 속에서 뛰논다. 임채린 감독의 외할머니가 꾼 태몽에서 그는 호랑이였고, 어머니가 꾼 태몽에서 그는 야생마였다. <나는 말이다>는 태몽의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번역한다. 반인반마와 반인반호(虎)의 모습으로 등장한 여성들은 이중섭의 소년들과 황소가 그랬던 것처럼 넓은 공간에서 뛰놀고 춤춘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싸워야 한다. 무기를 들고 자신을 뜯어먹으려는 대상과 투쟁해야 한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태몽의 단계에서부터 자신을 가부장제적으로, 여성혐오적으로 해석하려는 사회와의 투쟁임을, <나는 말이다>는 표현해낸다.
글. 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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