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기관
‘X’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이다. 당신은 6장의 사진, 이 도큐먼트로 8월 6일의 기억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 역추적에 주어진 단서는 색상의 정보값이 소거된 열화상 카메라의 푸티지와 발화자를 찾을 수 없는 자막, 시점을 알 수 없는 복수의 나레이션뿐이다. 이 몽타주는 당신을 도와줄 수도, 혼동시킬 수도 있으리라.
8월 6일의 기억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한 장의 사진에 찍힌 그날의 풍경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로, 친구가 선물한 벽걸이 달력이 그것이다. 하지만 화자는 날짜를 감각할 때 이 종이 달력을 보지 않는다 고백한다. 이 ‘시간을 감각하기 위한 수단’인 달력은, 정작 시간과 유리된 채,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는 매체로, 방에 존재한다. 화자가 버리지 않는 한.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는 달력은 전도된 현상과 불일치로서, 방의 풍경과, 기억과, 조용히 협응한다.
이 기묘한 자가당착 아래 펼쳐지는 옥상의 푸티지는 같은 공간의 다른 위치에, 반복적으로, 마치 ‘올바른 자리’를 찾듯이 교통한다. 하지만 이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공교롭게 미끄러진다. 기억나지 않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 4편은 ‘봤다’는 사실만이 남으며, 열화상 카메라에 비친 2인은 서로를 보고자 하지만 보는 행위는 차단되어 있다. 교차되는 푸티지와 발화자, 나레이션은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위증의 위기에 처한다.
기록은 의심에 처하며, 기억은 소실의 위기에 처한다. 이는 누구의 것인가? 의미가 채워지지 않은 8월 6일의 기표는 기원전 예수의 생애와 1945년 히로시마로 거슬러 간다. 성서의 기적적인 기록과, 히로시마 원폭에 관한 무미건조한 기록이 뒤섞인다. 화자는 당신이 당연하게 믿었던 역사적 기록과 믿음의 일부로 존재하는 기록을 뒤섞어 놓는다. 기록과 기억에 의심의 층위를 불어넣는다. 이는 기억이 기록과 늘 상응하는가를 의심하는 동시에, 기억이 단독적으로 실존할 수 없음을 방증한다. 기억이 다수의 인지망에 존재한다면, 실존을 부여받는 것인가. 나의 기억이 없다면, 나의 어제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제 기억과 기록은 개입과 믿음의 문제로 나아간다.
끝끝내 규정할 수 없는 날들은 다시 ‘X’로 남는다. 검증과 위증, 그리고 다시. 본 작업은 필연적으로 사후(事後)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록의 성격에서 출발하여, 사후에 작동하는 기억 기관의 작동과 주관의 틈입을 보여주는 불연속적인 푸티지다. 기록과 기억, 이 태생적으로 사후적인 산물을 검증하기 위해 활성화되는 각종 신체의 기관들을 ‘사후기관’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Shadow Hunt>는 기억의 수용과 복기에 작동하는 체계, 즉 사후기관의 흔적을 추적하고, 냄새를 맡으며, 포착하려는 비물질적인 사냥의 푸티지다. 이토록 비물질적인 메커니즘을 대담하게 물질로 포획한 시도에서, 감독의 다음 화두가 한층 궁금해진다.
글. 박솔빈.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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