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아닌 행성과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법
“나의 돌이 죽었다.” 당신은 낯선 감각과 맞닥뜨린다. 당신의 인지와 언어 체계는 곧바로 이 말의 진위를 의심할 것이다. 당신의 뇌가 성실하게 오류를 판독할 때, 당신의 눈은 공중에 뜬 채 피 흘리는 돌을 본다. 이제 당신은 그들의 언어, 그들의 죽음과 생이 우리와 같은 개념인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여긴 어디이며, 그들은 누구인가.
왜 이러한 분리가 발생하는가. 당신은 누구이고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폐허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말하고 듣는다. 그들은 지구인과 유사한 팔, 다리를 가졌으며 이족보행을 한다. 그들의 생김새는 합금이 녹아내렸다가 녹이 슬어버린 조각상 같기도 하고, 지구 멸망 이후 이상기후에 맞춰 진화한 돌연변이 같기도 하다. 인간의 거죽에 나무와 돌, 짐승의 뼈와 깃털, 흙과 이끼가 오랜 세월 내려앉았다가 한 몸이 되어버린 원시적 밀림 같기도 하다. 당신을 구성하는 얼굴, 몸, 호모사피엔스, 언어, 국적이라는 정체성이 그들과 당신 사이를 적극적으로 분리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이 영화적 시간과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지구가 아니며 현대가 아닌 행성을 당신은 무엇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인과나 귀납, 말이나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 기성의 합의와 개념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과학이 성실히 증명해 온 중력과 물체의 성질조차 미끄러진다. 이는 인류가 축적해 온 세기와 문명의 역사를 벗어나며, 대양과 대륙 또한 벗어난 세계다. 이토록 비가역적인 세계를, 당신이 이해하는 법은 하나다.
“자장가를 불러주며, “다정히 폐허를 돌보던” 그들과 돌의 관계에서, 당신이 그들의 생태적 지위는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감정에 감응할 때, 돌을 잃은 자의 상실과 그에 대한 연민으로 당신은 그들과 일순간 같은 감각을 체험한다. 같은 위상에서의 애도. 지금, 여기서, 그들과 함께, 진심으로 슬픔을 느껴야 한다. 투명하고 전지전능한 지식체의 목격이 아닌, 동등하게 상처입고 오염된 눈의 겸손한 목격. 그것이 <폐허의 자장가>가 제시하는, 지구 아닌 행성과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법일 것이다. 불온한 생태, 유기체적 객체, 불가해한 종, 그 경계 영역을 받아들이는 방법이자, 또 다른 행성(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방법론이다. 우리는 콜럼버스의 후손이지만 지도와 나침반은 내려놓은 채, 이종족이자 이주민으로서 그 땅에 착륙해야 할 것이다. 아주 조용하고 젠틀하게.
*제목은 브뤼노 라투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법]에서 착안하였음을 밝힙니다.
글. 박솔빈.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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