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에 돌 던지기
정다희 감독은 <빈 방>(2016), <움직임의 사전>(2019) 등을 통해 신체를 비롯한 물질의 특성을 탐구하고 그것들이 장소 및 세계와 맺는 역학을 고찰해 왔다. 그 연장선에서, <옷장 속 사람들>은 몸이 없는 옷 즉, 외피의 존재와 신체의 부재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외출을 준비하고 사회생활을 해내며 무언가를 성취하려 골몰하는 보편적인 인류의 삶이 전반적으로 노란빛을 띠는 부드러운 색감의 2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다.
몸이 없는 ‘나’는 옷장 속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의복을 갖춰 외출하고, 비슷한 차림새의 옷들과 일정 시간을 소비한다. 이들은 나란히 둘러앉아 장갑, 신발, 모자 등을 착용해 보려고 애쓴다. 신체 말단 부위에 적용되는 의복은 신체 없는 옷에 쉽게 잡혀주지 않는다. 장갑은 꾸물거리며 도망가고, 신발은 제멋대로 달아나며, 모자는 나부낀다. 모자를 쫓아가던 중 몸이 나타난다. 맨몸의 등장에 당혹스러운 기류가 번진다. 옷을 벗어 입혀주려는 옷들의 군집을 옷 없는 몸은 깔깔 웃으며 헤집어 놓는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에 다다라서야 그의 자유로움을 슬쩍 흉내 내어 본다. 물웅덩이 위로 번지는 실체 없는 파동, 찰박찰박 물 밟는 소리,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찰나의 유희를 즐긴 후, 다시 옷을 주워 갖춘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고심하여 골랐던 모자도, 신어보려 그토록 노력했던 신발도, 신발을 품어두었던 가방도 더 이상 붙잡아두려 애쓰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온 집은 외출하기 전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잠시 숨을 고르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 거울에 일순간 빛났다가 사라진다.
<옷장 속 사람들>의 영어 제목은 <Society of clothes>이다. 옷장 속 사람들, 그리고 옷의 사회. 우리가 옷에 귀속되어 살아간다면 그 세계의 이름은 옷장이다. 옷장의 문은 누구나 열 수 있고 또 누구나 닫을 수 있다. 옷 없는 몸이 드나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리하여 그 바깥의 존재는 단단한 공동체에 한 꼬집의 균열을 일으킨다. 무수히 많은 ‘같은’ 것들 사이에서 ‘다른’ 것은 일종의 공백이며, 공백의 발생은 변화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옷 없는 몸은 정말 공동체 바깥의 존재인가. 완전한 타인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서는 비가시화되던 ‘나’의 본질은 아닌가. 오롯한 나만의 공간에 들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던 내면의 무언가가 한순간 반짝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외피를 소유하는 데 시간을 쓰던 ‘나’에게 돌을 던져, ‘나’에게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패턴화된 일상에서 남들과 비슷한 양식으로 살아가며 통제되지 않는 바깥의 것들을 붙잡아보려 애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은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옷장 속 사람들>은 펼쳐 보인다. 언제나 열려 있고 또 닫혀 있는 옷장의 가능성을 긍정한다.
글. 이슬기.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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