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로 세계를 수정하기: 김샨탈의 <테이프 휴먼 되기>에 관하여
칼과 가위의 차이를 모르는 이는 테이프와 본드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다. 칼은 내부에서 밖으로 빠져 나가며 선을 만들고, 가위는 모서리에서 내부로 침투한다. 본드는 안쪽에서부터 물건들을 접착시키고, 테이프는 외부에서부터 사물들에 달라붙어 서로 다른 것들을 이어붙인다. 여기에 테이프와 본드의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테이프는 사물의 외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수정’한다. 글씨를 수정하고, 형태를 수정하여, 세계에 개입한다. 지워지지 않는 자국들을 가리고 수정하는 것은 테이프에게만 허락된 일이다.
김샨탈의 <테이프 휴먼 되기>는 크로마키 앞에서 모습이 거의 사라져 하얀 실루엣으로만 간신히 식별되는 한 사람이 자기 몸에 색 테이프를 붙이며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1장 셀프테이핑을 거쳐, 2장 상호 테이핑 단계에서는 다른 흰 실루엣이 등장하고, 이들은 서로의 몸에 테이프를 붙여주며 상대를 새로이 인식하며 모든 배경들이 지워진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후 3장 협력 테이핑에서는 배경과 또렷히 구분되는 검은 타이즈를 입은 인물이 등장하고 흰 실루엣과 검은 타이즈는 서로에게 테이프를 붙인다. 검은 타이즈는 흰 실루엣에게 색깔 테이프를 붙여 그 존재의 위치를 가시화하고, 흰 실루엣은 검은 타이즈에게 (아마도 원래는 청테이프였을 듯한) 흰 테이프를 붙여 명백한 신체에 틈을 만들어 낸다. 마지막 4장에서, 검은 타이즈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상대에게 주고, 상대는 그 옷을 받아 입는다. 옷을 바꾼 둘이 함께 북북춤을 추며 영상은 마무리된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김샨탈이 테이프라는 매체를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이다. 테이프는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부서진 것을 잇고, 떨어진 것을 붙이고, 서로 다른 것들을 합치고, 구멍을 메우고, 못생김을 가리고, 틈을 지운다. 이 과정 속에서 테이프는 그 자체의 형상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뚤뚤 말려 퉁퉁해진 접합부를 전시하듯이 내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일반적으로 본드의 미덕이 접합부를 최대한 자연스레 숨기는 데에 있는 것과는 여실히 다르다. 테이프의 목적은 사물을 복원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변형시키는 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서로 다른 사물들을 붙이거나, 틈을 막거나, 흠집을 가리고,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 이로써 세계를 수정해 나가는 것, 김샨탈에게는 이것이 테이프의 본질이다. 김샨탈은 테이프 롤을 들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접착제와 필름으로 이루어진 테이프가 본질과 실존에 개입할 수 있다고 믿는 김샨탈은, 존재의 형상이 지워지는 크로마키 앞에서 그 얇은 테이프를 몸에 붙여 나감으로써 실존을 만들어 나간다. 이때 김샨탈이 시도하는 정체화가 단순히 기존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기반한 그러나 분명히 다른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는 이미 선택할 수 없는 배경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개인 또한 그 안에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와, 약간의 위트, 그리고 함께 해줄 동료가 있다고 믿는다면, 테이프만으로도 세상은 변화해나갈 것이라고 김샨탈은 믿는다.
마지막으로, 김샨탈의 영상 속에서 두 인물이 추는 춤이 북북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북북춤은 일본 개그 만화 <마법진 구루구루>의 괴상한 조연 북북노인이 추는 우스꽝스러운 춤이다. 그러나 사실 그 춤의 동작은 세계관 내 최고의 마신을 부르는 소환진 형상을 암시한다. 만화의 주인공 쿠쿠리가 북북춤의 마법을 통해 용사를 구해내는 것처럼, 테이프로 가시화되는 안무가들의 무용은 이 세계에서 다른 이를 돕는 초석이 될 것이다.
글. 유미주. 시각문화 비평가.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