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어버린 인간들>, 기술에 끼어버린 미래의 디스토피아
흔히 민담, 전설, 문학 작품 등에서 볼 수 있는 테리안스로프(Therianthrope)는 동물을 뜻하는 테리안(therian)과 인간을 뜻하는 안스로프(anthrope)의 합성어이며 인간과 동물의 혼종을 지칭한다. 이들은 늑대 인간, 변신 인간 또는 인간과 동물의 특징을 모두 지닌 혼종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테리안스로프와 달리, 미노타우르스, 켄타우르스, 스핑크스, 사튀로스 등은 동물의 날개, 억센 다리, 용맹함 등을 인간에게 접목해서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이 만들어낸 신화적 존재들이다. 테리안스로프나 이 신화적 존재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동명의 주인공, 빌리에 드 릴라당의 작품 ‘미래의 이브’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카렐 차페크의 희곡에 등장했던 로봇 그리고 근래에는 사이보그 등으로 대체되었다. <로보캅>의 머피처럼 뇌만 남고 거의 모든 신체가 기계로 대체된 현대의 테리안스로프는 <은하철도 999>를 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단골 소재였다. <은하철도 999>는 영생을 살 수 있는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우주를 여행하는 테츠로(철이)와 그를 도와주는 메텔의 활약을 그리는데, 테츠로는 권태로움과 무료함에 지쳐 자살하는 기계-인간을 보면서 생의 의미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적용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사실 우리는 로보캅이나 <은하철도 999>에 등장했던 기계-인간 수준은 아닐지라도 기계를 이미 신체에 이식 중이다. 안경, 보청기를 통해 신체 능력을 향상하는 고전적인 수준을 벗어나, 인류는 휴대폰이라는 강력한 손을 지니고 있다. 이 문명의 이기를 통해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인류가 과거에 행한 모든 행적을 기록한 아카이브에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다.
전영현의 <끼어버린 인간들>의 첫 번째 에피소드, ‘강철 인간 제조 과정’은 노동에 지치지 않고 탈 나지 않는 몸을 가진 테리안스로프로 인간을 개조하는 과정을 강박적인 음향효과와 더불어 감정을 배제한 채 재현한다. 전영현이 연출한 이 에피소드는 멀리 프랑켄슈타인에서부터 가까이는 <은하철도 999>, <로보캅>, <공각기동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접했던 테리안스로프 이야기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서 수 없이 봤던 현대의 테리안스로프에 관한 이야기는 본편에 해당할 것이므로 <끼어버린 인간들>의 두 번째 에피소드, ‘잘못된 인공 강우’는 자연스럽게 시퀄쯤에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인공 강우란 흔히 구름 씨앗(cloudseed)이라고 부르는, 빙결핵이 될 수 있는 화학물질을 대기 중에 살포하여서 주변 수증기를 물방울로 응축시켜 비를 내리게 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가뭄, 미세먼지, 화재 등에 대처하기 위해 포괄적으로 인공 강우를 시도하지만,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될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역작용이 만만찮으므로 섣불리 시도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잘못된 인공 강우’는 앞 에피소드의 상황, 강철 인간을 만드는 산업 시설에서 엄청난 고온이 방출되면서 이에 따라 대기의 수분이 메마르고 심지어는 인간의 체액조차 증발하는 상황을 그린다. 물이 부족해 땅이 갈라지고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되자, 인공 강우 기술을 이용해 비를 뿌리지만 이렇게 내린 비의 정체는 알 수가 없다. 피처럼 붉은색의 비가 땅을 적시지만 이는 생명수가 아니다. 기존의 어떤 생명체라도 이 빗속에서 살 수 없지만 기괴한 형상을 한 테리안스로프는 이 환경에서 번성한다. 기술 발전에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기술지상주의가 만든 미래는 이처럼 인류가 절멸한 풍경일 뿐이다. 새로 도입한 기술이 문제를 일으키면 또 다른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의 함정 혹은 지옥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감독은 그 대안까지 제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대안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채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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