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내일’ 대신 ‘오늘, 오늘, 오늘’인 세계
: 신성민의 <어두컴컴한 낮과 밝은 밤>에 관하여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파트의 제목은 ‘어두컴컴한 낮’이고, 두 번째 파트의 제목은 ‘밝은 밤’이다. 3분 남짓한 도입부를 지나고 나서야 첫 번째 파트가 시작되고,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되는 것은 영화가 시작된 지 14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이다. ‘어두컴컴한 낮’과 ‘밝은 밤’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강력하게 암시되는 대비감이 무색하게, 전반부와 후반부를 구별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사실상 거의 없다. 인물도, 서사도, 영화 속 장소와 배경도, 카메라의 연출 방식 또한 그대로이다. 말하자면, 영화 전체가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며 지속되고 있다. 이것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다지 논의할 거리가 못 된다. 그러나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이러한 연속성은 새삼스레 기이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태양이 사라진 이후의 세상을, 서울을 배경으로 그려낸다. 한국에 파견된 일본 남성 연구자와 서울에서 일거리를 찾는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태양이 사라진 이후의 세상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정부와 기업이 ‘새로운 시간’을 만들었고, 그것은 오직 노동의 리듬에 의해서만 정의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리듬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사실상 부재한─세상. 그곳에서 하루는 똑같이 반복될 뿐이다. 따라서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이들의 하루하루에는 ‘방향’이 없다. 오로지 ‘반복’만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미래란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과 오늘, 또다시 오늘뿐이다. 여자의 목소리는 “오늘이 몇 번째 오늘인지 모르겠다”라고 읊조린다.
그렇다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구별’하게 해주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여자는 ‘기억’을 말한다. “예전엔 그래도 이런저런 기억들이 저를 지탱해 줬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그 기억들이 제 발목을 잡는 것 같아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근거가 기억이 아닌 기능이 된 탓이다. 노동에 있어서 기억과 반추는 무용한 일일 테다. 기억과 반추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일, 그것은 현재에의 반복으로 정의되는 노동의 리듬에 방해만 될 뿐이다. 그런데 여자의 말에서 어딘가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진다. “학창 시절이 아니면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어요.”, “보통은 집에 가면 바로 자요, 피곤하니까. 그렇게 오늘이 후딱 지나가죠.” 어느새 당신이 그녀의 말들에 공감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어두컴컴한 낮과 밝은 밤>은 자연적 시공간에 대비되는 세계로서 도시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살핀다.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 어둠이 부재하고 밝음만 계속되는 세계. 이것은 사실상 도시 그 자체의 특징이 아닌가? 태양의 사라짐이라는 기발하고 극단적인 설정과 빛(조명)과 어둠의 대비를 반영할 뿐 아니라 흑백이라는 시각적 장치를 통해서 도시성(都市性)을 구현하는 영화의 전략은 특기할 만하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구별되지 않으며 하나로 이어지는 영화의 연속성은,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도시에서의 삶을 구조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낮임에도 어두우며 밤임에도 밝은 상태로써 그 자체로 모순과 긴장이 내재한 도시적 삶의 특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8분 남짓한 영화의 길이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빽빽한 밀도의 통찰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김윤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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