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경계에 관하여, <끝나지 않는 – 끝나길 기다리는>
<끝나지 않는 – 끝나길 기다리는>은 오키나와 나하 공군 비행장부터,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했을 때 주민들이 피난처로 삼았던 시무쿠가마, 캠프 슈바브,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현장과 건설 반대 운동 현장 등을 걷는다. 그리고 제주 강정마을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군산 공군기지, 동두천 상패동 공동묘지, 옛 소요산 성병관리소, 의정부 빼뻘마을 등 미군기지와 기지촌의 과거와 현재를 비춘다. 때로는 오키나와의 풍경에 캠프 스텐리가 겹쳐지고, 때로는 한국의 풍경에 후텐마 기지가 겹쳐지면서 두 풍경은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는 닮은 얼굴들이 되어간다.
기지를 따라 이어지는 풍경은 끝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공간적으로는 끝이 반드시 있을 테지만, 닮은 장소들이 끝도 없이 연결되면서, 그리고 그로 인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면서 시간적으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 끝나지 않는 역사의 시간에 터 잡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있다. 삶이 거기에 있기에, 거기에 머무는 사람들.
<끝나지 않는 – 끝나길 기다리는>은 계속해서 땅을 비추고, 뿌리를 비추는데, 이는 거기에 시간이, 기억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 땅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그들의 삶이다. 그들이 사라지면 땅의 기억은 끝날 것인가? 철학자 데리다는 진정한 애도란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은 어떤 역사적인 사건을 종결시키고자 하면서, 애도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사라져버리게 만들거나, 또는 오히려 기념물 또는 기념관을 세워 바로 그 장소에서만 애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계를 긋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상처의 사건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끝나지지 않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땅의 기억은 결코 종결되지 않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처의 사건들을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지 않을 일 뿐일 것이다. 제목의 ‘끝나길 기다린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상처의 사건들을 계속 이어지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를 망각 속에 두지 않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진정한 애도처럼, 결코 끝나지 않는 기억 속에서만 오히려 우리는 끝나길 기다리고, 이 기나긴 상처의 사건의 연속을 끝낼 수 있도록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끝내기 위해 끝내지 않는 것, 잊기 위해 잊지 않는 것, 종결시키기 위해 결코 종결시키지 않는 것, <끝나지 않는 – 끝나길 기다리는>은 그것을 위해 걷고 또 걷는다. 걷고 또 걸으며 기억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이곳을 걷는 것이 기억과 무슨 상관이죠?” “기억은 짧아요. 구체적인 ‘함’으로만 나타나죠. 당신이 걷는 이유는, 그 ‘함’을 이어가려는 시작이에요.”
강선형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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