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2일 수요일, 공간41에서 오픈 전문가 미팅을 끝낸 김소영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김소영 작가는 올해 제18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 작품 <굿바이 마이 러브, NK> 와 <SFdrome: 주세죽>으로 참여하였다.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소영입니다. 이번 네마프에서는 <굿바이 마이 러브, NK> 와 <SFdrome: 주세죽>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굿바이 마이 러브, NK> 의 경우 GT로 관객 분들과 대화를 나눠주셨죠. 이번 인터뷰에서는 <SFdrome: 주세죽> 에 대해서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주세죽은 일제강점기 실제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주세죽의 어떤 면에 매력을 느껴 작품으로 표현하게 되셨나요?
제가 중앙아시아에서 <굿바이 마이 러브, NK> 를 포함한 망명 3부작을 제작했는데요. 그 중에 하나인 카자흐스탄에서 주세죽이 스탈린에 의해서 유배생활을 했다는 데에서 공간적인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의 촬영 기간은 어느정도였나요?
촬영기간은 4년정도였고, 망명 3부작을 함께 작업했습니다. 로켓 발사하는 장면 같은 경우엔 따로 방문해서 촬영하기도 했구요.
SF는 사회주의 여성운동(Socialist Feminism) 이라는 뜻과 함께 과학공상소설(Science Fiction) 이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SFdrome' 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주세죽이 너무 과거의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싫었어요. 제가 SF장르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주세죽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질 당시에 <Arrival (컨택트)> 이라는 영화가 개봉 중이었는데요. 주세죽이 유배되었던 카자흐스탄 지역에 우주기지가 있기도 하고. 주세죽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장르를 통해서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SF 장르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SFdrome' 에서 'SF' 는 말하신 대로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함께 과학공상소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구요. 'drome' 은 <Videodrome>(1983) 의 제목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영상을 기획하시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요?
주세죽이 남긴 글을 아카이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주세죽의 글, 남겨진 발언와 관련 문서를 역사적으로 충실히 전하면서 동시에 여러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SF 장르로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와 달리 네마프에서는 3채널 비디오로 작품을 제작하셨는데, 의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원래 3채널 작품으로 제작을 했었습니다. <신여성 도착하다> 에서는 제가 실행위원으로 기획도 같이 했었는데, 덕수궁관이 좁아서 3채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밤새 편집해서 2채널로 만들었던 거죠. 하나는 비주얼적으로 좀 더 몰입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주세죽이 남긴 글들 위주로 구성했었습니다. 원래 3채널의 테제가 있었어요. '어둠 속에서(in the dark)', '정처(at home)', '화광동진(toward the world)' 이 그것입니다.
<주세죽> 에서는 카자흐스탄의 경관 위에 움직이고 있는 목각인형이 겹쳐서 보여졌는데요. 자유로운 몸짓과 움직임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목각인형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목각인형이 하늘을 나는 걸 구현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우연히 춘천 마임축제에서 그걸 구현할 수 있는 한국 분을 만나게 되었고, SF 장르를 채울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각인형은 저예산이라는 제작여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SF 장르의 마지막 사이보그로 역할하는 것이죠.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는 여성들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시대를 감당하고 헌신한 여성상을 표면으로 드러내셨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가요?
여성의 역사가 접혀있기 때문에 그걸 펼쳐내고 싶었어요. 또 중앙아시아에서는 사회주의 여성운동가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있거든요. 여성사를 세계사 속에서, 또 지역사 속에서 펼쳐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김소영 감독님을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여성 영화인' 인 것 같아요. 그 동안 이어 오셨던 여성 영화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궁금한데요.
제가 기여한 게 있다면, 변영주 감독과 함께 여성 영상집단 '바리터' 를 80년대 후반 설립한 것이 있겠죠.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인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1990) 을 제작하는 등 여성 영화인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현재는 학자나 프로듀서 등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구요. 그 외에도 서울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램디렉터이자 영화제 설립자, 전주국제영화제 1회 프로그래머, 평론가로도 활동하기도 했었죠. 90년대의 흐름에 작은 기여를 했을 것 같아요. 여성사 3부작을 제작하기도 했었고요.
김소영 감독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현대 페미니즘의 흐름에 대한 견해를 들을 수 있을까요?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제 역할이 있다면 역사적인 긴 꼬리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해내고 있죠. 저는 역사적인 문맥 속에서 우리에게 보다 넓은 참고문헌들이 있다는 걸 동시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작품은 네마프에서 <SFdrome: 주세죽> 뿐만 아니라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 중인 <굿바이 마이 러브, NK> 가 동시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혁명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다시 가지고 와서 펼쳐보이고 싶습니다. 처음 영화를 제작한 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실험영화였는데, 아직도 제 다큐멘터리 속에 실험영화적인 속성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렵다고도 하고요.
앞으로의 작품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SFdrome: 주세죽> 을 장편 다큐나 SF적인 저예산 극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SFdrome: 주세죽> 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주세죽은 망명 때문에 카자흐스탄에 마지막으로 머물렀지만, 상해·모스크바·중앙아시아 곳곳의 다양한 곳에서 살아갔거든요. 작품을 통해 주세죽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다른 세계, 문명,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취재 | 이혜진 루키
사진 | 김진우 루키
8월 22일, 공간41에서는 오픈 전문가 토크 <매체 예술과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가 열렸다. 이번 토크의 사회자이자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인 김장연호는 ‘매체 예술과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고동연 미술평론가, 조선령 미학연구가와 함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토크에는 공간41에서 전시중인 김소영 작가와 홍이현숙 작가도 참여하였다.
사회(김장연호) : 오픈 전문가 미팅인 만큼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 이라는 주제와 한국 비디오 디지털 아트에 대해 활발한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공간 41에서 작품을 전시 중인 두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김소영 : 제가 지난 5년간 망명 3부작을 준비하면서, 한국 안산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고려인들의 궤적을 따라서 다녔어요. 그 중 가장 많이 간 곳이 카자흐스탄입니다. 이전부터 신여성이나 모던걸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거나 글을 쓰곤 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주세죽’과 같은 사회주의 신여성을 소개하게 되었어요. 사실 주세죽이 있던 곳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이고, 작품에서 소개된 우주발사기지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입니다. 위치는 가깝지만 조금 다르죠. 하지만 저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면서 마치 주세죽이 저에게 말을 걸어 ‘작품으로 안 만들면 안 되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트로츠키와 같은 사회주의의 묻혀진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SFdrome: 주세죽> 은 3채널로 구성되어 있고, 3개의 화면이 '어둠 속에서(in the dark)', '정처(at home)', '화광동진(toward the world)'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at home’ 은 번역을 많이 고심했습니다. 결국 'home' 은 정처라고 번역하게 되었는데 마음에 들어요. 'Home', 즉 '집' 이라는 건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죠. '정처' 라는 것은 디아스포라이자 유배자인 사람이 정한 자신의 처소를 말하는 것인데, 저는 '정처 없이 헤매다' 라는 의미를 뒤집어서 여성이 자기자신의 거처를 정한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홍이현숙 :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를 다룬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이죠. 또 깊은 상처를 가지신 분들을 볼 때면, 그만큼 그 상처가 그 사람을 크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좋은 주제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불편한 것들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당시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은 전쟁터에서 완전히 생사를 헤매고 있을 때 후방에서는 그것이 유리되어 있었던 것이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우리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집에 왜 왔니' 라는 동요 속 '꽃' 은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을 뜻하는 겁니다. '하나이찌몬메' 라는 동요가 있죠. 그 노래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우리 집에 왜 왔니' 가 된 것입니다. 저도 그런 노래인지 정말 몰랐어요. 작품을 찍으면서 나중에, 지금 저도 멀게 느껴지긴 하지만 젊은 친구들과 어떻게 동시대적인 호흡을 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이제 힘이 부족해서 이용수 할머니와 같은 적극적인 분을 만나보기 힘들어서 주춤거리고 있기도 하구요.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깊이나 일상성을 조금 더 취재하고, 작업으로 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해보려고 해요.
사회(김장연호) : 제가 한국에서 기획작으로 비디오예술작업을 소개한 것이 19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한국 작가분들의 작업을 돌이켜보니, 유독 대항기억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키워드이기도 하구요. 왜 그렇게 대항기억적인 작품이 많을까, 생각해보니 식민지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역사 속에 묻혀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또 대항기억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여성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았구요.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여성에 집중하며 대항기억의 코드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무악파출소에선 현재 네덜란드 비디오아트 특별전을 진행 중인데, 여기에서는 매체 실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네덜란드 특별전에 참여한 각각의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 매체언어와 그 언어에 대한 풍부한 작업들이 정말 다양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국에서의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작가들과 기획자인 제가 아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 과정을 통해 다음 세대가 네덜란드처럼 매체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작품들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으로는 또 이야기가 많은 한국의 정서, 상황들이 한국의 예술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이중적인 생각도 들구요.
고동연 : 맞습니다. 또 저는 김소영 작가님께서 당시 사회주의 여성들이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김소영 :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 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어요. 러시아혁명과 3.1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러 한국 땅으로 들어갔던 주세죽 같은 인물들이 성추행, 성폭행을 많이 당했습니다. 우리가 한국의 잔다르크라는 식으로 말하는 인물들의 이면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는 거죠. 이건 어떻게 보면 당시의 여성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잠재적인 분노의 동력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콜론타이를 보면 레닌과 싸우던 여성이자 10월 혁명을 이끌었던 17년 여성의 날을 이끈 인물이죠. 여성부를 설립한다거나 공동육아제 같은 여성주의 아젠다를 주장하기도 했었고, 일본과 조선의 신여성들에게 영향과 동시에 힘을 줬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10월 혁명은 계급혁명만이 아니라 성의 혁명, 여성혁명이었고, 조선의 역동적인 정동을 일으켰던 혁명이었습니다. 주세죽은 이 영향을 받아서 40년대 말까지 한글운동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 속에서 주세죽이 몇 가지 글을 남기는데, 하나가 여성의 정조에 관한 거에요. 남자들은 멋대로 살면서, 여성들의 정조를 문제삼느냐는 거죠. 단발이 부르주아적이라면 하지 않겠지만 실용적인 목적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적기도 했구요.
고동연 : 그렇죠. 단발 때문에 쫒겨나거나 심하면 죽임을 당했던 여성들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주세죽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신 건가요?
김소영 : 8,90년대 여성운동을 추적하기도 하고, 나혜석의 삶을 중심으로 당시 여성운동에 대해 연구해보기도 했습니다. 주세죽에 대해서는 자료가 워낙 없어서 몰랐는데, 실제로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렸던 것 같아요. 중앙아시아는 냉전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소련 연방이면서 동시에 유목민들이 정주하고 공존하는 그런 공간이죠. 실제로 방문하게 되면서 한국의 사회주의를 지리적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이해하게 된 거죠. 고려인들을 만나면서 소련, 북한의 완전히 다른 레퍼런스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소련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처럼, 고대의 다른 문명부터 주세죽까지 이어지는 어떤 것을 보게 된 거에요. 카자흐스탄 홍범도 거리에서도 주세죽이 여기 있었구나, 그런 느낌을 받는 경험도 했구요. 주세죽은 냉전사, 문명사, 이슬람문화를 동시에 관통하는 인물이었다는 거죠.
사회(김장연호): 맞아요. 2차적으로 소외된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럼 <SFdrome: 주세죽> 속의 소제목 3개를 시각적으로 소개해 주시겠어요?
김소영 : 제가 배웠던 것을 탈배움하는 과정에서 제가 봤던 중앙아시아의 문명들을 가장 잘 예지하고 글로 남겼던 사람이 서양철학자 중에서는 들뢰즈라는 사람이 있어요. 제가 페미니스트고 탈신비주의 비평을 하는 사람으로서 들뢰즈를 인용하는 건 사실 문제가 있지만요.(웃음)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 속 목차들의 영향을 받아서 제목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정처(at home)' 라는 제목을 왜 이름 붙이게 되었냐면, 저에게 비디오아트를 처음 알려준 사람이 차학경 씨인데 그분이 보여준 비디오 중에 <Home> 이라는 작품이 있었거든요. 집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이미지로 저에게 남아 있어요. 디아스포라인 차학경이 생각하던 집의 이미지를 보고 제가 잘 구현할 수 있는 이미지로 표현하게 되었던 거죠. 그 뒤로 <천 개의 고원> 속의 소제목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이걸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at home' 을 집으로 하지 않고 어떻게 새롭게 번역하느냐, 여기서 답을 준 것이, <굿바이 마이 러브, NK> 를 찍으면서 보게 된 고려인 한진 선생님이 남기신 글이었습니다. '태어난 곳을 일러 고향이라고 하는데, 죽어 묻힌 곳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라는 말이요. 자기가 죽는 곳을 새롭게, 정답게 다시 이름 붙이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는 절절한 표현이죠. 한국에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민족', '역사' 같은 단어로 그들을 환원시키려고 하잖아요. 한진 선생님은 거기서 벗어나서, 북한에 대한 애정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뭐라고 할 것이냐는 인류학적으로 새로운 선언을 하셨던 거죠. '정처' 라고 하는 단어는, 중국학을 전공하신 백원담 선생님과 'home' 을 뭐라고 해야 할까 함께 고민하다가 말하신 단어예요. 그거다 했죠. 그래서 'at home' 이라는 소제목은 죽어 묻힌 곳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반영한 제목이기도 합니다.
또 제가 발견한 건 이거예요. 근현대에서 신여성 모던걸들은 '내외' 라는 개념에 항상 갇혀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죠. 한국에서 형성된 내외, 안팎이란 개념이 굉장히 공고해요. 물론 경계가 포스트모던적으로 약간의 구멍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한국의 내외는 젠더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너무나 공고하죠. 자아나 타자라는 것도 잘 안 드러나요. 저는 그걸 탈주하는 방법으로써 코스모폴리탄적인, 세계적인 방법으로의 시도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나혜석의 '경희는 우주 속의, 세계 속의 사람이다' 라는 세계적인 선언. 여성이 세계 속에서 내외의 구획에 끌려가는 데에 저항하는 시도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화광동진(toward the world)' 는 저에게 새로운 시도죠.
고동연 :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라는 거죠?
김소영 : 그 패러다임을 뭐라고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일본의 양자역학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양자역학을 일본에서 불교적으로 잘 풀어서 설명하거든요. 일본의 양자역학센터에서 화광동진이라는 단어를 쓰더라구요. 자신의 ‘뛰어남’을 내세우지 않고, 세상 속의 먼지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양자역학 속의 진리라고 이야기해요. 저에게는 주세죽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주세죽은 조선의 3대 미녀이자 가장 아름다운 당대 여성 중 한 명이었던 반면에, 박헌영은 굉장한 추남이었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런데 이 주세죽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여성동우회를 조직하고, 사회운동가들을 위해 밥도 짓고요.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화강동진이 아닌가, 세상 속의 먼지로 들어가서 세상을 밝히는 것, 그런 게 아닌가 했어요.
조선령 : 전 어제 와서 전시를 봤구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 아까 김장연호 위원장님께서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어요. 주제가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 인데, 몸짓의 재구성이라는 것 자체가 매체에 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제 전시를 보면서 주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이야기를 하자면, 아까 김장연호 선생님이 한국에 유독 대항기억을 다루는 작가들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이 대항기억을 다루는 영상과 전시들의 뿌리가 튼튼한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여기 네마프에서도 영화와 전시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데, 둘 간의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역사적 맥락이나 언어같은 것들은 조금씩 다르죠. 특히 비디오아트는 영상매체를 통한 전시를 베이스로 하는데, 그게 튼튼하냐 하면 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영상매체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고, 대중문화 자체가 영상 베이스로 흘러갔구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회운동의 분위기가 넓게 퍼져 있다가 '액티비티다',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엔 이런 분위기 다 소용없다는 식으로 새로운 매체가 들어왔어요. 가상과 실제, 대중문화와 예술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구요. 비디오를 매체로 사용하는 나라들 중에서도 저항적인 것들이 있고, 내용적이건 매체적이건 간에 계보가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이 저항적인 시도가 좀 뜬금없이 시작되었기에 뿌리가 튼튼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아직 그 뿌리가 튼튼하지 않고 계보가 형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해야할 일은 너무나 많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작가들의 개별적인 작품보다 역사적, 매체적인 계보 속에서 지금 현재 한국 비디오아트는 어디에 있는가, 영상언어란 건 무엇인가 하는 걸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용적인 혁명을 벗어나 언어적인 혁명, 예를 들면 영상언어나, 매체에 있어서의 혁명이 20세기 초반에 많이 일어났죠. 러시아 구축주의 이론가들이 언어의 혁명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죠. 그렇다보니 작가들은 할말이 많지만, 그 뿌리가 튼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선령: 발화, 텍스트, 보여지는 것, 청각적인 것들을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홍이현숙 선생님께 질문 드리고 싶어요. 작업을 뭐라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면 약간의 각도차이만 있을 뿐 할머니에만 집중하고, 배경은 장롱에서 머무르는데 촬영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느끼신 건가요? 사실 영상작품이 인터뷰형식인 것이 많은데, 여기엔 큰 리스크가 있잖아요. 인터뷰만 나오면 도망간다는 관객들도 있구요.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미술계 사람들이 볼 때도 이건 증언인가? 작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바깥에서 보면 이런 정적인 형식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홍이현숙 : 작가는 언제든지 선택을 해야 하죠. 제가 이용수 할머니를 만났을 때 저는 할머니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또 전달하고 싶었던 건, 이 할머니가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계속 헤매는 모습이었어요. 본인이 일본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이 2년인지 3년인지 본인도 모르겠다고 하세요. 실제로 자기는 16살에 조국 땅을 떠났는데 사람들은 17살 때 돌아왔다고 하고, 그러니까 혼란이 오시나봐요.
고동연 : 갇혀 있었기 때문에 시간 감각이 무뎌진 거 아닌가요?
홍이현숙 : 같이 갇혀있던 분이 옆에서 진실인지를 계속 지켜보시더라구요. 사실 이용수 할머니 말이 팩트죠. 이용수 할머니는 모든 것이 사실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아요. 화면에 잡히지 않을 내 뒤통수까지 완벽한가, 하는 그런 미끌거리는(floating) 경계 위에 서 계신 느낌이었어요. 할머니의 안타까운 그 모습을 영상에서 어떻게 보여줘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한편으로는 동료들과 클럽을 간다고 말하시거나 하는 놀던 가락을 꺼내서 보여주고자 하는 압박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사실 할머니들이 드러나게 뭘 한다는 게 귀찮고 싫으신건데, 그걸 헤쳐나가면서 이런 운동을 한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다 찍은 후에 다시 대구로 돌아가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도 했는데, 찍을 당시에는 할머니들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었어요. 저는 작품이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냐면, 연출이라는 것보다 흐르는 공기 안의 여려 결들을 어떻게 하면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느낀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청바지 입고 노래하실 때 만큼은 나는 현명 했고 틀리지 않았다, 난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하는 강박들을 다 잊으시더라구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업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요.
사회(김장연호) : <우리집에 왜 왔니> 1,2편을 보면서 대항기억을 비디오아트에서 어떻게 담아냈는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첫째로는 파운드 푸티지를 차용하셔서, 일본 뉴스 영상 사이에 <난징난징> 같은 영화 속 일제시대 위안소에서 윤간당하는 장면들을 삽입하셨죠. 일본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뉴스를 만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플래시웍을 하면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시도하셨어요. 이 작품의 마지막에 다같이 플래시웍을 하면서 끝나죠. 기존의 동요도 전복되고, 새롭게 몸짓이라고 할 수 있는 걸 재구성하고, 기존의 일본뉴스에도 새로운 영상을 넣으면서 역사를 재구성하고,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 같은 것이 담겨져 있는 추모 회전을 돌면서 살풀이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몸짓들이 신성하고 과거에 있는 어떤 상처들을 소통하고 애도할 수 있지 않을까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김장연호): 또 <SFdroam: 주세죽>에서는 1900년대 초반이나 1800년대 후반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속에서 주세죽이라는 인물의 삶을 매력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맨 마지막에는 목각인형의 몸짓이 반복적으로 제시가 되더라구요. 그 묘사의 의도는 뭘까요?
김소영 : 이 영화는 SF 장르인데요. 주세죽이 유배되었던 그 장소에 우주기지가 만들어졌죠. SF 장르가 가지고 있는 유토피아적인 미래와, 과학적 유토피아가 만나서 저 장소가 펼쳐진거죠. SF 장르에는 <인터스텔라> 처럼 블록버스터 SF 도 있고, ‘트래쉬 SF’ 같은 저예산 SF들도 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SF 장르가 깡통로봇이 나와서 총 맞고 도망가고 하는, 저예산 SF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되었던 것 이구요. 춘천 마임축제에서 '나는 목각인형' 을 구현하는 분이 있더라구요. 날아가는 목각인형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세계에 2명밖에 없대요. 장르적으로 보면 저예산 SF 영화의 컨벤션으로 여성주의적으로, 날아가는 목각인형을 쓴 거죠.
관객 1 : 작가님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이 유동적이라서 미끌거린다(floating)는 그 말이 정말 SF 적이기도 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홍이현숙 : 기억은 사라지는 거니까요. 과거의 주세죽이나 현재의 이용수 할머니를 보면서, 살아계신 분을 다루는 건 또 다른 책임감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선령 : 살아계신 분을 이야기하셨는데, 생각이 많이 드네요. 얼마 전에 제가 공동체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행사에 갔었는데, 주된 내용이 제3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작가는 항상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 제3자의 역할이고, 나르시시즘은 예술의 적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예술의 언어라거나 매체언어를 발명한다거나 하는 건 결국 내가 타자의 자리에서 역사, 사회를 어떻게 볼지, 역사 속의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사실 영상매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퍼포먼스와 그것의 기록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로 2차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1차와 2차적인 존재로 볼 때, 모든 영상은 이미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그 프레임을 다시 만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차적 영상은 진실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하는 것을요.
또 김소영 작가님의 작품은 주로 광활한 자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 타자의 시선 이잖아요. 그들에게는 선택되지 않는 배경이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기에 강한 인상을 주죠. 이런 시각의 개인이라고 하는게 저는 어떻게 보면 예술의 전제조건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김소영 :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자연을 찍은 장면들은 스펙타클하게 보이지만 드론으로 공장지대와 함께 찍어서 중간지대이자 애도의 공간으로 설정한 장면들입니다. 인류학적인 자연, 이국적인 모습들을 주제로 찍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김장연호): 김소영 작가님이 말하신 내외라는 주제 자체가 독창적이고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체와 타자를 새로운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항기억이라는 것은 푸코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사회에서 타자라고 정의되는 분들과의 작업들, 또 타자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들을 이번 전시에 풀어 보았습니다.
관객 2 : 미디어에서는 몸짓(gesture)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가지고 있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몸짓이죠. 타자에게 열려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몸짓, 그리고 거기서 오는 내외의 개념이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김소영 : 맞아요. 또 일본이 식민통치 당시 내지·외지 개념을 만들기도 했죠. 원래는 오키나와 역시 일본이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내지가 되었구요. 당시 한 신여성이 백화점 외부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저에게는 영감을 주더라구요. 내외가 젠더적, 사회적, 식민지적으로 많은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몸짓의 '짓' 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전복(subversion) 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구요.
사회(김장연호) : 대항기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가, 가지고 있다면 어떤 몸짓으로 표현하게 되었는가를 이번 전시로 소개해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픈전문가 미팅이라는 주제 아래 관객들이 전문가 미팅 속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 | 이혜진 루키
사진 | 김진우 루키
8월 22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한국 단편 2: 대안적 내러티브 GT가 진행되었다. <O_>, <궤적, 좋은세상>,<고한용, 1920년대 경성의 다다이스트>,<로다: 길리엄의 세 편의 시>,<463-poem of the lost>,<sweet golden kiwi> 6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O_>의 김다은, 유수민 감독, <로다: 길리엄의 세 편의 시> 조규준 감독, <463 - Poem of the lost> 권아람, 이세연 감독이 임종우 모더레이터의 진행 하에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권아람 : 제가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데 태국에 2주 동안 워크숍을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 기회를 통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중국이나 필리핀에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태국에 대한 기록은 없더라구요. 그 기억을 찾아 나가며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조규준 : 한 달 정도 바르셀로나에서 머물게 됐어요. 그때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입니다.
유수민 : 졸업작품으로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
유수민 감독님게 질문드립니다. <O_>의 제목을 '오 언더바'라고 읽는데, 어떻게 지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유수민 : 대사가 없는 작품이고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하다 보니까 제목도 쉽게 읽히지 않는 것으로 정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의 동그란 모습과 달팽이의 일직선 모양에서 연상하여 정했습니다.
조규준 감독님께 시를 차용한 구조를 묻고 싶습니다.
조규준: 바르셀로나에 여행 갔을 때 친하게 지낸 음악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쓴 시집에서 느껴지는 부분하고 마을에서 느껴지는 부분을 조화시키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권아람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작품 속에 태국어와 한국어가 텍스트가 병기되는데 왜 그렇게 나타내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권아람 : 태국어와 한국어가 병기된 이유는, 태국에서 더 많이 사셨고 돌아가신 노수복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태국에서 더 오래 살다 보니 한국어는 잊고 태국어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디아스포라적 삶으로써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는 경험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O_> 감독님 두 분께, 공동연출을 하셨는데 의견이 안 맞거나 하는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수민 : 함께 작업한 친구는 입학 때 만난 동기인데, 처음부터 성격도, 생각도 잘 맞아서 수업을 자주 함께 들었어요. 역할 분담은 저는 캐릭터 부분을 주로 했고 김다은씨가 스토리부분을 연출 하는 식으로 했습니다.
관객1 : 조규준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대사가 무음인 화면이 나오는데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규준 : 의미를 설명드리자면, 이미지를 표현할 때 몽환적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영상편집 기법으로 나타낼 수도 있었지만 관습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비현실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무성영화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몰입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관객2 : <O_> 감독님들께 질문 드립니다. 애니매이션 캐릭터들이 감정을 나타내는 데 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작품 속 캐릭터의 눈 모양이 매우 독특합니다. 어떻게 디자인하게 되셨는지요?
유수민 : 눈 디자인을 많이 고민했는데요. 당시 칸딘스키와 같은 작가들의 도형적인 면에 많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동그란 실루엣은 유지를 하고 그 안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변경을 해보자 해서 생각한 디자인입니다.
다른 감독님들도 영화를 만들며 가장 신경 쓴 점이 있으셨다면 말해주세요.
조규준 : 저는 제가 마을에서 느낀 감정과 경험을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권아람 : 저희가 알 수 있는 것은 증언 밖에 남아 있지 않고, 태국에 남아 계신 분들도 거의 돌아가셔서 구체적인 경험과 증언을 얻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를 쓰는 방식을 차용했습니다.
<463 - Poem of the lost> 속에 녹아 있는 시를 쓰는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권아람 : 이 작품은 기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억한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리적인 공간에서는 남아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기억을 한다는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에서 시발 되어 시를 썼던 것 같습니다.
<로다: 길리엄의 세 편의 시>는 어떻게 세 편의 시를 선정하시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조규준 : 시집 안에는 목가적인 내용이 많았습니다. 영화에서 두 번째 나온 시에 ‘허공에 스스로 몸을 던지듯이’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 지역은 불교적인, 동양적인 문화와 거리가 먼 데도 그 사상과 연결이 되지 않나 싶어서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관객3 : 권아람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영화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고 다큐멘터리지만 시 형식도 빌었는데 이런 새로운 형식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말해주세요.
권아람 : 우리는 참 쉽게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영화나 소설이 만들어지고 현재적인 이슈로 가져오는 계기들이 생겨납니다. 그런 와중에 기억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만들어 본 작품입니다.
관객4 : 기억을 계속 강조하셨는데 기존의 다큐멘터리는 고증을 중시하잖아요. 자료는 많이 찾으신 것 같은데 영상에서 왜 활용하시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권아람 :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 공간을 카메라에 담는 것 자체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장소 캡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서 위안소가 있었다라고 하지 않고 추정된다고 나옵니다. 모든 기본 자료는 자문을 받아서 알아낸 것인데, 완전하게 사실로 고증된 상황은 없습니다. 태국 지역 위안소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맨 처음 자막에서도 나왔다시피 태국 문서 보관소에 명단이 있는 것도 공개가 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어요. 태국의 현지 의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온도 차이가 있었고 연구에서도 자세한 단서를 얻을 수 없어서 쉽지 않았어요. 앞으로 연구가 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드시면서 아쉬운 점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유수민 : 대학교 졸업작품이다 보니 정해진 기간이나 형식 같은 게 있었어요. 거기에 부딪혀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마음대로 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저희가 생각한 만큼 솔직하고 용기 있는 작품은 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조규준 : 주인공이 경험한 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기억을 고증한다는 의미를 하기도 하는데, 저는 철저한 사실 고증보다 있는 대로 표현했습니다. 또 하루 만에 모든 내용을 찍었다 보니 마을에서 느낀 점을 풍부하게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권아람 : 작업이 짧은 2주라는 시간에 이루어졌다 보니 찬찬히 공간들을 느끼면서 작업하는 것이어려웠어요. 그런 지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뒷부분에 나온 방콕 호텔의 경우에는 100년이 넘은 건물인데 재개발로 인해서 곧 없어진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물리적 공간이 없어지는 것까지 담고 싶었는데 시간 문제로 인해서 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네마프 참석하신 소감과 추후계획을 들려주세요.
김다은 : 영화 페스티벌은 처음이어서 굉장히 영광이었습니다. 차기작은 지금 작업 중이고 곧 마무리 지을 예정입니다. 또 네마프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수민 : 함께 만든 작품으로 영화제에 오게 되어서 기분이 좋고, 앞으로도 같이 작업을 하고 싶네요.
조규준 : 네마프는 늘 수준 높은 작품을 많이 상영해주시는데 제 작품도 상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살면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소재가 있으면 영상으로 만들고 싶고 또 상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권아람 : 네마프에서 이 작품을 첫 상영 했는데요. 앞으로도 공간에 대한 인식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내는 작품을 만들 것 같습니다.
이세연 : 작년부터 성 소수자인 제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내년쯤에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록 | 이혜은, 홍수진루키
사진 | 전해랑, 지서영 루키
2018년 열흘간 펼쳐진 Nemaf가 성공적으로 그 막을 내렸습니다. Nemaf에는 수많은 감독, 스텝뿐 만 아니라 자원봉사자인 뉴미디어루키들의 노력도 녹아있습니다. 뉴미디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더운 여름 그 누구보다 치열한 열흘을 보낸 뉴미디어 루키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리고 왜 이곳 네마프 각 부서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프로그램팀 안수빈: 프로그램팀 영어 통역을 맡은 안수빈입니다. 평소에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고 지난 학기에 영화 수업을 들어서 영화제에 대한 체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 전공인 국제사무학과인데 감독님들의 의전 등을 해보며 실무 감각을 익혀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기술팀 안지혜 : 원래 영화전공이고 영화를 계속 할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텝 일을 알아 볼까 해서 영화진흥위원회구인 공고를 보던 중에 뉴미디어루키 모집 공고를 보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기획 운영팀 임현진 : 씨네 21의 리쿠르팅을 통해 접했습니다. 영화 홍보사나 영화사에 관심이 많지만 전공이 전혀 다른 분야여서 방학동안 영화산업에 관련된 경험을 하기 위해 뒤지던 중 찾게 되었습니다.
현장기록팀 김진우 : 원래 사진 찍고 기록하는 일을 좋아해서 취미 겸 경력, 즉 덕업일치를 하러 왔습니다.
홍보팀 전동현 : 평소에 영화산업 쪽에 관심이 많아서, 심심할 때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올라오는 구인정보 게시판에 들어가보는 습관이 있거든요. 거기서 네마프 뉴미디어루키를 모집한다는 글을 우연히 보고, 방학기간 동안 참여해보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홍보팀 이혜은 : 방학 때 의미있는 일을 하나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이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미디어를 전공하고 있고, 영상이나 매체에 관한 관심이 많은데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는 기존의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새롭게 도전하는 작품들을 많이 보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행사기간동안 루키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팀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프로그램팀 김민주 : 상영 전 후로 게스트 토크가 있을 때 한국어, 영어로 공지를 합니다. 보통은 상영 전 멘트를 하고, 혹시라도 상영에 문제가 생기면 그 중간에 기다려달라는 멘트를 통역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습니다. 또한 감독님들 의전을 위해 공항으로 픽업을 나가고 호텔과 극장 길을 안내해드렸습니다. 개인적인 부탁을 하시면 그것도 통역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일례로 회고전을 가진 이토 타카시 감독님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같이 가고 싶어 하셔서 감독님과 같이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기획 운영팀 임현진 : 저희는 상영관팀이라 상영안내와 기타행사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15분 전부터 입장객을 받아 관리하고 사은품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티켓팀이나 전시팀은 티켓이나 카달로그 판매를 하고 있고 전시팀은 홍대의 전시관을 관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술팀 김태민 : 기술팀 : 상영관이 작으니 영사 보조를 할 일은 별로 없어요. 상영이 잘 되고 있는지 들어가서 확인하고 GT 때 마이크 관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일을 엄청 많이 다루진 않습니다만 사전 작업으로 자막 넣는 일을 했어요.
현장기록팀 김진우 : 각종 행사 스케치를 담당해요. 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도중 생기는 여러 일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보정하여 공식 사이트와 인스타그램 등에 올리고 있습니다. 영상으로 기록하고 편집하는 영상팀도 있습니다.
홍보팀 이혜은 : 주로 GT와 토크 등의 행사에 참여하여 대화 내용을 타이핑하여 기록하고, 추후 말을 덧붙이고 다듬어 기사로 작성하는 일을 했습니다. 감독님이나 배우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일하는 동안 즐겁고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프로그램팀 김민주 : 일단 저는 감독님과 직접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서 좋았어요. 그 분의 작품에 대해서나 왜 한국에 특별히 왔는지를 좀더 가까이서,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프로그팀 안수빈 : <미지의 세계>를 찍은 스티브 산구에돌체 감독님을 공항에서 호텔로 같이 모셔왔었는데 1시간 반동안 영어로 대화하면서 외국 감독님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같이 점심 겸 저녁도 먹었는데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프로그램팀 김소연: 제가 맡았던 분들은 구애 심사위원 분들이어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는 하진 못했는데 공항에서 오는 동안 가이드 역할도 했던 것 같아요. 그 분들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기술팀 안지혜 : 쉽게 볼 수 없는 비상업 영화를 정말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저와같은 취미와 취향을 공유하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기획 운영팀 임현진 : 평소 보기 힘든 스타일의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이 더운 여름 시원한 실내에서 근무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팀원들이 너무 좋아요. 누군가 일을 시킨다기보다는 각자 할 일을 알아서 분담하는데 이런 자율적인 작업환경이 좋았습니다.
현장기록팀 김진우 : 행사 기간 동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어서 자유로운 제 성격에 맞았어요. 저도 다른 친구들 말처럼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난 점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홍보팀 전동현 : 재밌었던 부분은, 영화를 직접 제 눈으로 볼 수 있고 감독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수상작 단편들, 그리고 일본 아방가르드 영화 같은 새로운 영화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너무 즐거웠구요. 기사를 작성하려면 감독들이 한 말을 몇 번씩 다시 들어보고 정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감독들이 가졌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힘들었던 건 행사에서 나왔던 말들을 기사로 정리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감독과 관객들의 입으로 나오는 생각들을 글로써 정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 같아요.
홍보팀 이혜은 : 재미있으면서 힘든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행사 내용을 타이핑 하다보면 말를 듣고 바로 바로 적다보니, 이상한 오타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이름이나 제목 같은 부분에서요. 나중에 녹음본이랑 자료를 보고 수정할 때 내가 이렇게 잘못 들었다니 하면서 황당했던 웃픈(?)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하는 동안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프로그램팀 안수빈 : 저희가 사전 활동이 많아요. 의전도 행사 전이고 각자 맡은 영화를 홈페이지에 형식에 맞춰 올리는 사전활동이 끝나고 나면 막상 행사 때는 할 일이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작은 영화제다 보니까 대기 시간도 길고 지원금도 한정적인게 아쉬웠습니다.
기술팀 김태민 : 김태민 : 영화관을 관리해야 하다보니 일찍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했어요. 하지만 쉴 시간은 충분해서 괜찮았습니다. 다만 여러 팀들 간의 소통이 적어 일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다소 있었습니다. 각 팀 대표를 모은 단톡방 같은 게 내년에는 있었으면 해요.
현장기록팀 김진우 : 영화제가 생각보다 규모가 작습니다. 좋은 점이기도 하고 나쁜 점이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획 운영팀 임현진 : 저희 팀도 출 퇴근이 이르고 늦은 편이어서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들 바쁘시다보니 공지 같은 부분에서 디테일이 부족했어요.
홍보팀 전동현 : 저희는 업무가 있을 때만 출근하면 됐지만 대신 일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행사에서 나왔던 말들을 기사로 정리해야 했는데 감독과 관객들의 입으로 나오는 생각들을 글로써 정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 같아요.
내년 뉴미디어루키들에게 합격, 혹은 근무 시 팁을 전한다면?
프로그램팀 안수빈 : 동시통역에 부담을 갖지 않고, 준비된 상황이 아닐 때에도 그때그때 통역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은 점을 유념하시면 될 것 같아요. 외국어 실력이 정말 중요한 팀입니다. 저희도 대부분 외국 경험이 있거나 관련 전공입니다.
기술팀 김태민 : 사실 지원했을 때 홍보팀에 가라고 하셔서 붙을 줄 몰랐어요. 군필자라는 점에서 가산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자친구들이 더 많이 일하고 있거든요.
기술팀 안지혜 : 영화 전공이라 각종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알고 영사실에서 일한 경험도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기획 운영팀 임현진 : 적극성을 강조했던 점을 높게 쳐주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적극적인 성격이 많이 필요한 팀입니다.
기획 운영팀 박사라: 근무 시간이 긴 것은 사실이지만 급한 스케줄 조정은 매니저님과 상의 후 조정 가능하니 너무 부담감을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장기록팀 김진우 : 본인이 현장 경험을 배우고 싶다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비는 물론 있어야 하지만 엄청 좋은 장비여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영상팀의 경우에는 편집 능력이 필요하구요.
홍보팀 전동현 : 타자가 빠르면 좋을 것 같아요. 장난이고... 홍보팀에 지원하시는 분들은, 사람들이 입으로 하는 말들을 어떻게 글로 옮길까를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말이 글로 바뀔 때 그 글이 어색하지 않게 수정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의미가 바뀌면 안되니까요.
마지막으로 함께한 뉴미디어 루키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프로그램팀 김소연 :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고, 더 좋은 페스티벌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술팀 김태민: 다들 꿈을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뜬금없나 (웃음)
기술팀 안지혜 : 다들 너무 정 들고 함께 일한 기획운영팀 친구들이 귀여워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구애작들도 너무 좋았어요.
현장기록팀 김진우 : 앞으로도 만나서 재미있게 놀아요!
기획 운영팀 임현진 : 너무 수고하셨고 해단식에서 다 같이 재미있게 놀아요!!
기획 운영팀 정호림 : 11월에 기획 운영팀 친구들을 제 고향인 대구에 부르기로 했는데 그 곳에서 재미있게 놀겠습니다!
기획전시팀 박사라 : 긴 기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끝나더라도 계속 소통하고 다른 곳에서 만나서도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홍보팀 전동현 : 홍보팀 팀원들, 혜은이 혜진언니 수진언니 너무 재밌고 고마웠어요! 현장기록팀 팀원분들도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내년에 네마프 관객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홍보팀 이혜은 : 우리 홍보팀, 그리고 같이 활동한 현장기록팀 까지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른 데서도 또 같이 일하면 좋겠어요!
취재 | 이혜진, 홍수진 루키
8월 21일 19시 30분, 인디스페이스에서 한국 단편1: 몸짓영화 섹션의 GT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날 GT에는 <rotation>의 김윤지, 문종인 감독, <호접몽>의 이승엽 감독, <봄날>의 오재형 감독, 이선태 배우, <그 책>의 이정식 감독, <풍정. 각(風精.刻) 골목낭독회>의 송주원 감독이 자리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GT행사는 곽창석 모더레이터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올해 네마프 예심에서부터 두드러졌던 면이, 내러티브 보다는 다른 측면을 강조한 다양한 포맷의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몸짓, 행위가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위해 '몸짓 영화' 라는 별도의 섹션이 만들어졌는데요. 섹션의 이름은 관객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붙여졌고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온전히 담아내는 제목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감독님들께 질문을 드리자면, 몸짓, 행위를 연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주안점을 준 부분이 어떤 것이지 궁금합니다.
송주원 : 저는 무용가입니다. 안무를 하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저는 도시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작업들을 해나가고 있고, 이 작업의 경우 몸짓은 옥인동 재개발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옥인동 골목을 무용수들과 다니면서 골목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춤으로 만들었어요. 연습실에서 철저히 무브먼트를 만든 뒤 실제 장소에서 구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원테이크 촬영을 하고자 했지만, 구현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더라구요.
이정식 : 몸짓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만든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하얀 종이로 17분의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어떤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하얀 종이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종이를 쓰다듬는다거나 펄럭이거나 하는 동작들을 집어넣어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오재형 : 저도 댄스필름이라는 장르를 처음 시도해보았는데요. 몸짓 같은 경우 무용수들에게 따로 디렉션을 주지 않고, 한강의 <소년이 온다> 라는 책을 주고 직접 표현해보라고 했습니다. 다들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참여해 주신 거죠. 이후에 제가 몸짓을 재구성하는 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승엽 : 저는 댄스필름을 만들면서, '내가 과연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가 궁금했고, 거기에서 영화는 시작했습니다. 가면을 벗고, 벗겨도 또 가면이 있는 모습, 즉 남에게 얼마나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가, 그리고 그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인가, 가면을 다 벗고 난 뒤의 검은 얼굴도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 아닌가 하는 데서 착안했습니다. 박진영 안무가와 함께 상의하면서 안무를 발전시켜 나갔구요.
김윤지 : 인간의 생각, 감정을 몸짓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원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동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색감 같은 것들로 그동안 표현을 해왔거든요. 몸동작이나, 시간에 흐름에 의해 변화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번 작업에서 음악하시는 분과 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저는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짓 연기는 옆의 문종인 친구가 맡아서 해주었습니다.
문종인 : 저 손동작을 찍을 당시만 해도 어떤 주제를 할 지에 대해 이야기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항상 무엇을 먼저 정해놓지 않고, 그때그때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하거든요. 달걀들을 손에 움켜질 때마다 손 모양이 전부 달라지는데, 작업을 하면서 손 모양 자체에서 나올 수 있는 표현들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선태 배우님께서는 댄서로서 참여하셨는데요. 표현에 있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선태 : 오재형 감독님께서 5.18 광주 사태를 예로 들어주셨어요. 제가 그 사태를 겪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구요. 그것을 전제로 두고 그 사태를 겪은 사람의 트라우마 속에 들어갔을 때의 심정과 감정을 최대한 몸짓과 움직임으로, 그 공간과 함께 섞이게끔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 영화는 모두 행위나 몸짓이 주가 되는데, 그 공간 또는 배경을 선택 및 구성하실 때는 어떤 점을 고려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r o t a t i o n> 같은 경우에는 심해나 우주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 배경이 있었는데요. 어떤 것을 염두에 두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윤지 : 이 영화는 추상적인 주제, 생명체의 진화나 시공간에 대한 세계관같은 것들을 담고 있는데요. 전 3차원의 세계가 아닌 상상 속의 판타지적인 시공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 물방울들의 움직임은 물방울 하나하나 색을 입혀 합성을 한 진짜 물의 움직임입니다. 그걸 통해 관객에게 행성이나 빛 덩어리를 연상시키고, 판타지의 시공간으로 넘어가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손의 움직임으로 굉장히 빠른 진화의 단계를 보여주는데, 이건 인간의 시간이 아닌 영원 속의 시간, 인간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같은 상상 속의 단계들이구요. 꿈을 꾸면 배경이 잘 기억나지 않듯이, 물의 배경에서 다른 배경으로 넘어갔을 때 무의식적으로 상상하고 있던 시공간 안의 이야기들을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시작의 이미지, 진화의 은유를 담은 작품으로 적절한 배경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승엽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네마프에게 익숙한 문화비축기지에서 촬영을 하셨는데요, 날것의 이미지와 동시에 인공적인 느낌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죠. 어떻게 선택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승엽 : 이 영화 자체가 현실 같으면서 아닌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많이 공개되지 않은 특이한 공간을 찾고 있었습니다. 제가 촬영했을 때가 문화비축기지 오픈 첫 주였는데, 오픈 전 방문했다가 촬영지로 고르게 되었습니다.
오재형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왜 광주라는 공간을 선택하셨는지, 또 광주가 감독님에게 각별한 공간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재형 : 5.18 기념재단이라는 곳에서 매년 기념 음반을 만듭니다. 작년에는 영상과 함께 음반을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셔서, 자유롭게 모든 걸 만들 수 있다는 조건으로 영화 제작을 맡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광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님께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왔었고 그걸 언젠가는 영화로 표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무용수들과 함께 촬영했던 장소들은 폐허의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찾아낸 곳들입니다. 새벽 아무도 없는 광주의 거리에 영상을 투사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부분입니다. 마치 제가 광주에 제사를 지내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정식 감독님께는 공간이 주제와도 많이 맞닿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백색의 공간이 검은색과 굉장히 대비되는데 색깔 선정의 이유와 주제와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부탁드립니다.
이정식 : 공간 색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작품을 시각예술적인 작업으로 방향성을 잡았기 때문에 화이트 큐브의 느낌, 화이트 톤으로 색감을 정했어요.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서사적인 삶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삶 하나하나를 하나의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제가 썼던 글 중에 자존감이 낮은 한 여성이 빗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내용의 글이 있었어요. 그 여성은 자기가 종이라면 빗속에서 녹아내릴텐데, 녹아내린다면 자신에게 쓰인 문장들은 어떤 색으로 녹아내릴까 빨간색일까 파란색일까라고 생각을 해요. 그때부터 낮은 자존감을 해체되는 종이의 이미지로 생각했었고, 내 이야기, 내 책에 대한 작업을 할 때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언젠가는 파쇄되어, 사라질 하얀색의 책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송주원 감독님께는 왜 옥인동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쇠락한 골목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꽤 많을 텐데, 왜 옥인동을 선택하셨나요?
송주원 : 먼저 영상의 장소는 옥인동의 재개발 지역입니다. 저희 집이 부암동인데 수많은 골목으로 다니는 걸 좋아해요. 옥인동이라는 곳은 저의 산책길 중에 하나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무용수들이 계단에 앉아있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1910년대에 지어진 원형이 남아있는 윤씨고택이에요. 서촌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사람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가 된 곳이에요. 메인도로에는 굉장히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데 그 안에 있는 골목들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고요. 그 안에도 사람들의 삶이 있고, 따뜻함이 있고, 정서가 있고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도요. 특히나 그 골목에 우리의 삶처럼 울퉁불퉁한 길이 있고 양갈래 길이 있고, 선택을 하면서 가야한다는 것 그런 부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관객1 : <풍정, 각 골목낭독회>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옥인동에서 공연을 하시고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셨는데요. 퍼포먼스는 일회적이고 사건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는 반면에,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했을 때는 영원성과 반복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새롭게 가지게 되잖아요? 영화 끝부분에서 퍼포먼스가 순환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이런 공연과 영상에 상반된 성격에 대해서 의식을 하시고 영상을 만드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송주원 : 무용이 가지는 특성은 일시성, 한시성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상이라는 매체는 다시 재생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죠. 실제 옥인동은 지금 많이 바뀌었어요. 영상으로 그 시간을 저장한다는 것이 저에겐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영상이 시간을 정지시키지만, 동시에 계속 흐르게 만든다는 걸 계속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이선태 : 무용수들이 캐릭터가 잘 잡혀있는 것 같은데, 캐릭터를 미리 정하고 그에 맞는 장소를 선정하신 것 인지, 또 연습실에서 안무를 짠 뒤 그 안무에 적합한 장소를 정하신 것인지 순서에 대한 부분이 궁금합니다.
송주원 : 우선 골목에 대해서 서치를 많이 했구요. 무용수들하고 골목 답사를 한 뒤 각자의 삶 속에서의 골목에 대한 기억들을 소환하도록 했어요. 그런 기억으로부터 움직임을 만들고, 발전시켰습니다. 그 중에서 장소에 맞는 것들을 선택해서 영상에 담게 되었고, 무용수 각자의 서로 다른 표현을 통해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네마프에 참여하신 소감,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송주원 : 저는 원래 블랙박스에서 춤을 추고 만드는 사람인데, 영화라는 프레임안에서 춤이라는 매체를 가지고 저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설레고 특별한 일 같아요. 또 9월달부터 낙원악기 상가에서 <풍정, 각> 시리즈의 1편부터 8편까지의 모든 영상이 붙여진 4시간 반짜리의 영상전시를 준비하고 있구요. 올해 하반기에도 단편을 준비해볼 생각입니다. 춤이라는 매체가 확장되는 과정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고요. 그렇기 때문에 춤이 무대라는 장소가 아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정식 :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고 느껴져요. 네마프를 통해서 제 작품을 보여드리게 되어서 감사하구요. 이 섹션에 댄스필름이 다섯 편이나 있는지 몰랐는데 다른 감독님들의 영상 너무 재밌었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9월부터 대전에서 공간’구석으로부터’에서 전시를 합니다. 전시보러 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선태 : 저는 재작년부터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혼자서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네마프에 감독으로서 참여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은 연기도 같이 하고 있는데 영화에 춤을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9월부터 시작되는 채널A의 ‘열두밤’이라고 하는 드라마에 참여 하게 되었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오재형 : 네마프가 유일하게 댄스필름 장르에 관하여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첫 작품도 네마프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에 네마프와 인디스페이스라는 이 장소가 항상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편집이 작년 12월에 끝났는데, 이제서야 작품과 거리두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오늘에서야 보이는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편집 프로그램을 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엽 : 저는 영화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원래는 내러티브 영상에 더 익숙한 사람입니다. 이번 영상 작업을 하면서 미디어아트나 실험 영상에서 오는 다른 종류의 희열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호접몽> 을 찍기 전에 판소리와 현대무용이 섞인 작품을 하나 더 찍었었고, 내년 1월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네러티브 영상 작품을 찍어보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종인 : 오늘 선보였던 작품의 음악은 사실 여러 대의 스피커를 설치하고 라이브 퍼포먼스와 같이 하는 형태로 제작된 음악이어서 음악의 반이 없는 상태로 상영이 되었어요 다음에 다시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라이브 퍼포먼스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공간을 활용해서 음악적 특성을 드러내는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구요. 비디오 자체를 음악적 재료로 활용해서 음악 일부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9월 13일 부터 한남동에서 제가 몸담고 있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기획한 믹스앤매치 시리즈의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함께하는 연주회가 있는데 많은 관심 부탁 드리겠습니다.
김윤지 : 저는 그림만 그려서, 이런 영화제에 초청될지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런 귀한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만들 때를 돌이켜보면,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다른 스탭없이 저희 둘이서 조그만 카메라로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사실 오늘 작품은 제가 하는 작업의 연장선, 설명적인 측면의 작품이었는데요. 앞으로도 오늘 작품처럼 좀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 고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록 | 이혜은, 전동현 루키
사진 | 지서영, 전해라 루키